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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1장 요약

제1장. 미국의 노동계급은 왜 다른가



다른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자주의 정당, 사회민주주의 정당, 공산주의 정당의 우세에서도 나타나듯이 상당 규모에 달하는 노동계급의 조직과 의식이 있는데, 이것이 미국에는 유독 없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미국 맑스주의를 괴롭혀온 망령이다. 이에 대해 고전 혁명이론에서는 어떻게 보았는지 검토해보자.

맑스, 엥겔스, 카우츠키, 레닌, 트로츠키 등은 저마다 한번쯤은 미국혁명운동의 발전전망에 매료된 적이 있다. 이들이 보기에 미국의 노동계급은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다소 ‘미성숙한’ 모습, 즉 과도기적 조건들 때문에 발전이 지연되거나 굴절당한 상태라고 보았다. 이들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사회 체제 전반의 경제위기가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을 유발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미국사회의 부르조아 민주주의 제도들은 독자적인 정치활동 및 대중적인 노동당이나 사회주의 정당의 형성에 도약대 역할을 할 것이고,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우 여러 세대에 걸쳐 일어난 발전단계들이 미국에서는 ‘결합된 불균등한 발전’ 과정의 가속화로 말미암아 ‘축약’된 모습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희망은 아직 사산상태이다. 민족적․인종적 분열, 자본가의 양당제도가 흡수해 버린 노동계급 내부의 문화적 간극 등은 신생 노동자정당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중에서 대공황은 가장 역설적인 경험을 몰고 왔다. 플린트에서 주방위군의 총부리에 맞서 싸우고 봉기에 가까운 미니애폴리스 총파업 때 경찰을 거리에서 쫓아낸 바로 그 노동자들이 선거에서는 로즈벨트를 지지하는 주춧돌 역할을 한 것이다. 산별노조투쟁에 참가한 수백만의 젊은 노동자들이 한편으로는 ‘미국 자본주의의 구원’이라는 깃발을 들고 나온 한 준귀족적인 정치가의 돌격부대로 동원되었다.

이런 미국의 ‘예외상태’를 해명하기 위한 이론적 시도로서 미국 문명에 대한 관념론적 접근법이 있다. 커먼스-펄먼(Commons-Perlman)학파가 제기하는 이런 시도는 봉건제하의 계급투쟁이 없었다든가 로크적인 세계관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고 변경이라는 안전판이 마련되어 있는 등등의 미국 문화 구조 자체에 의해, 이 계급의 탄생 이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사회주의적 의식이 발달한 것은 역으로 봉건제의 유물로 점철된 특수한 사회역사적 배경에 의해 산업화가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는 다른 미국 노동계급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준거틀을 재구축해야 한다.

일단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유민주주의건 문화적 개인주의건 또 다른 무엇이건) 모종의 목적에 의해서 혹은 상호작용하는 단순한 원인들(신분상승 지향성 더하기 민족문제 더하기 ....)의 기계적인 작용에 의해서 미국 노동계급의 운명이 형성되어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든 가능한 설명변수들을 계급투쟁과 집단적인 실천의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체화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 동안 이런 방법을 택해 왔던 맑스주의 고전들은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들이 이후 노동계급의 발전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구속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치적 계급의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일시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관점은 미국 노동계급이 겪은 일련의 역사적인 패배들이 갖는 누적적인 영향력을 잘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서유럽의 모든 프롤레타리아트는 얼마간은 노동자개혁주의의 중개하에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집단적이고 자생적인 제도들이 서유럽 전역에 걸쳐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정치활동의 하부구조를 마련해주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계급의 ‘전국적인 제도와 의미체계들이 없기 때문에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과 지역공동체 등은 극단적으로 파편화되고 계열화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대조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전후에 경제팽창의 물결이 일면서부터였다.(의회민주주의와 대량소비가 안정화된 시기) 그렇다면 이 두 지역간의 차이는 경제적인 차원에서도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미국 노동계급을 통일시켜내지 못한 1930, 40년대 노동운동의 실패가 아니었나 하는 짐작도 해볼 수 있다.



1. 미국 민주주의의 역설


모든 유럽국가에서 노동계급은 선거권과 시민적 자유를 얻기 위해 오랜 투쟁을 해야 했다. 중산층의 나약함이나 노골적인 배반에 직면한 신생 노동계급운동들은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동원을 통해 민주주의 투쟁을 수행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잔존하는 전자본제적인 계급구조나 사회구조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로크철학, 청교도주의, 농업자본주의와 같은 17세기 가장 선진적인 생산관계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들이 옮겨 심어졌다. 즉 미국에서 (백인남성의) 인민주권은 산업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 이전에 이미 생겨난 이데올로기적․제도적 틀이었다.

또한 유럽에서는 ‘민주주의’에 굳건히 반대하는 부르조아 자유주의조차도 평민층 분자들의 폭력적․혁명적 민주주의와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미국은 부르조아지의 정치적 대표들(대상인, 은행가, 대자본가, 토지소유자, 농장소유자 등)이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의 상층 지도부를 별 무리 없이 장악했다. 다른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들이 구체제의 구조를 무너뜨리는데 어느 만큼은 평민적인 분파들과 같은 ‘대리자들’에 의존해야 했던 상황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소자본가 농민계급이 수적으로 압도적이었으며, 이들의 존재는 사적 소유의 신성함과 자본축적의 미덕을 찬미하는 명백히 부르조아적인 청치입장에 확고한 사회적 발판이 되어주었다.

이처럼 ‘민주적’ 부르조아지의 존재 및 ‘구체제’의 부재라는 역사적 요인들이 이처럼 특수하게 결합함으로써, 남북전쟁 이후 장인과 노동자가 스스로 자율적인 정치세력을 구성하는 일은 훨씬 어려워졌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만든 것은 경제적인 환상과 정치적인 환상 때문이었다. 전자는 소생산, 소자산이 지배적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모든 사회계급간의 이동이 왕성했기에 일어났다. 그 결과 ‘생산자주의’ 이데올로기가 생겨나, 계급관계는 ‘생산자’ 대 ‘기생적인 금융세력’의 축을 따라 설정되고 모든 층의 노동자와 대부분의 자본가가 하나의 ‘산업’블록으로 뭉뚱그려졌다. 또한 후자는 미국만이 독특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 무제한적으로 백인남성의 참정권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노동계급에게 미국사회의 예외성을 깊이 신봉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백인 노동자는 자신의 정치적 자유를 경제적 착취와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전복적인 측면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착취와 계급적 양극화의 심화 앞에서, 미국노동자의평등주의 이데올로기는 집단적 조직화와 전투적인 저항의 강력한 촉매가 될 수 있었다. 유럽의 공장주는 하층계급의 경외심과 문화적 예속 등 예로부터 내려온 양상을 번번이 활용할 수 있었으나, 미국의 산업가는 온정주의를 거부하고 동격으로 대접받기를 요구하는 ‘자유롭게 태어난’ 양키노동자를 다루어야 했다.

국가의 탄압이나 경기침체가 노동당들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했다면, 19세기 후반 혹은 20세기 초엽의 미국에도 이런 요소들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미국노동자는 폭넓은 참정권을 활용하여 독자적인 정치 기구들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하였는가?



2. 정치의식과 계급구성


사회적 노동과정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이는 데 따라 생겨난 계층화는 노동계급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던 민족적․종교적․인종적․성적 적대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물론 19-20세기 초에 걸쳐 작업장에서 방어조직을 결성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은 이를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이에 비견할만한 움직임이 없었다. 1870-1932년 미국의 투표성향에서 실제로 민조적․종교적 균열이 계속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1) 노동계급과 남북전쟁


1830년대 중반부터, 큰 항구도시의 장인들은 자기네끼리 공제조합과 초보적인 노동조합을 조직하면서 그들의 독자적인 경제적 이해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1937년 공황 때와 1857년 경기침체 때 사멸했으나, 이러한 영고성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태동하는 ‘노동자주의’가 전체적인 정치적 정세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고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잭슨 시대에는 대규모의 자본집중과 평등주의의 유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자각이 근로계급 사이에서 증가하고 있었다. 한 예로 잭슨 임기말에는 뉴욕의 ‘워키즈’가 민주당 내의 ‘로코포코’ 이반파로 부활하였다. 로코포코 노선이란 기존의 독자적인 노동자운동으 공식적인 당제도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양당으로 하여금 늘어나는 유권자집단인 ‘노동’ 쪽으로 극적인 방향전환을 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이 대규모의 실업사태와 선업노동자의 소요가 발생하는 등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노동자가 하나의 독자적인 정치주체로 서지는 못했다. 노동계급의 노예제 반대 흐름이 결핍된 가운데, 노동자는 남부 흑인대중과 통일의 고리를 만들어내거나 자기 나름의 혁명적-민주주의적인 정치 전통을 창출해낼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세 가지 원심력이 작용하여 미국 산업혁명이 ‘도약점’에 도달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노동운동을 산산이 부숴뜨리고 만다.


① 산업도시 변경지대

당시 미국 서부의 신흥공업도시들은 하룻밤 사이에 세워지다시피 했으며 산업화 이전의 전통이나 사회관계와는 거의 연속성이 없었다. 이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산업화에 대한 장인들의 저항에 깊은 뿌리를 두지 않고 일어나났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로 인해 지리적 이동이 집단적 행동을 대신하는 일이 매우 잦아졌듯, 미국의 노동자는 억압적인 근로조건에 손으로가 아니라 발로 (즉 다른데로 옮겨감으로써) 반대표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② 토박이주의와 미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문화적 분열

두 번째 원심력은 1840년대 유럽의 흉작 이후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물밀 듯 쏟아져들어온 수백만의 가난한 노동자의 물결에 대한 토박이노동자들의 반발이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경쟁관계의 영향도 있지만, 깊은 문화적 반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문화의 핵심적인 역설은, 그것을 “가장 순수한 부르조아 문화”라고 부른 엥겔스도 옳았지만, “북미는 현저히 종교적인 국가”라고 한 맑스의 지적 또한 마찬가지로 옳다는 데 있다. 미국의 산업혁명은 대중문화와 노동계급 의식에 대한 종교의 영향력이 다시 강화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미국혁명에서 나타난 영국의회에 대한 애국적인 반란은 ‘인간의 권리’를 완벽주의적인 개신교의 어휘로 번역해 낸 급진적 복음주의의 발흥에 의해 정당화 되었고, 북부 개신교도의 민족주의적 정체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도 개신교가 큰 몫을 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1789년 혁명이 패배한 뒤끝에 생겨난 ‘신앙혁명’의 소산인 그들 특유의 가톨릭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왔다. 더욱이 아일랜드 이민의 대다수는 엄밀한 의미에서 소농이 아니라, 식민지하 저개발상태의 살인적인 결과를 피해 도망온 소작농, 농업노동자, 계절적 인부 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주도한 미국 가톨릭교회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데 가장 선봉에 섰다.

그러므로 북부 노동계급의 문화적 동질성을 깨뜨린 것은 그냥 이민이나 가톨릭 이민 자체가 아니라 1840년대 후반 이래 종교적 분열을 축으로 하여 조직되어 막대한 제도들과 운동들을 통해 작용하는 두 개의 담합주의적인 하위문화가 형성된 점이다. 미국의 노동자와 대부분의 서구 노동자의 사회적․문화적 세계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민족적․종교적 다양성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이 다양성이 전국적인 규모로 하나의 민족적․문화적 축을 따라 집결하고 대치하는 방식에 있었다. 1850년대에 이런 문화적 균열은 정치적으로 재생산 되어 반가톨릭적이며 반이민적인 ‘아메리카당’이나 ‘노우나씽당’ 등이 형성에 기여했고, 이후 휘그당의 진영과 융합하여 새로운 공화당을 형성하였다. 역설적이게도 ‘자유노동’이라는 공화당의 투쟁구호는 노동자집단의 권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개인적인 지위 상승을 통해 임노동에서 벗어나려는 꿈만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반발하여 가톨릭 이민은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을 자유방임적으로 관용하는 정책을 들고 나온 민주당으로 쏠렸다. 이에 따른 미국 노동계급의 정치적 분열은 뉴딜 전야까지 계속되어 계급의식의 발전에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③ 인종차별주의: 통일의 주제

이미 백인의 인종차별주의가 굳어져 있는데다 북부 노동시장에 흑인이 넘쳐날 것이라는 풍설까지 더해지자, 토박이노동자들은 대부분 흑인자유민의 사회적 평등과 참정권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이민 프롤레타리아트 가운데 일부 독일계 노동자층은 노예제의 위기가 미국노동자의 앞날에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혁명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붉은 48년대인들’은 미국 노동자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언어문제 때문에 게토화되었다. 결국 이들의 영웅적인 노력은 노동운동의 주류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아일랜드계의 경우 1840년대에 개리슨은 당시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던 반가톨릭법안 철폐운동과 노예폐지론 사이에 연대를 구축하는 과감한 전략을 만들어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해방자’ 다니엘 오코넬은 이에 답해 “드넓은 대서양 너머로 내 목소리를 전하니, 그대 아일랜드인이여, 그런 나라에서 나오라,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노예제도를 묵인한다면 우리는 그대를 더 이상 아일랜드인이라 인정치 않으리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에 살고 있던 아일랜드인들은 이에 대해 분노했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하나의 뚜렷한 계급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이 위대하고 영광스런 공화국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예철폐 문제에 대해서든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우리를 시민이 아니니 다른 이름으로 부르려는 시도는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건간에 비열하고 간악한 행위라 본다.”고 응수했다. 이들은 비단양말을 신은 부자도 증오했미만 흑인도 똑같이 증오했다. 이것은 흑인이 이미 대부분의 육체노동 범주에서 밀려난 상태인 것을 감안할 때, 경제적인 경쟁관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시민’이라는 단합을 강조하는 정착민식민주의의 신조를 담합주의적인 하층계급 문화들(토박이-프로테스탄트 vs 이민-가톨릭)이 저마다 고유한 가치의 프리즘을 통해서 충실히 반영한 당시의 사회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이었던 것이다.


2) 노동계급과 인민주의


남북전쟁 후 계속된 산업호황으로 많은 이민노동자들은 미숙련직종에서 숙련부문으로 옮아가기 시작했고, 이와 동시에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불어온 혁명의 새 바람은 이민노동자들을 한층 급진적인 방향으로 정치화시키고 있었다. 전후세대 노동투쟁의 기본 조류는 작업장에서의 노동계급 단결의 증가와 좀더 효율적인 연대 및 노조조직 형태에 대한 모색이었다.

파업의 물결들이 일 때마다, 한층 넓고 포괄적인 전국적 노동조직을 건설하려는 시도가 강화되었다. 아무리 숙련된 기능공이라도 고용주의 적의와 국가의 폭력 앞에서 조합조직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이 시기에는, 모든 프롤레타리아트를 포괄하는 거대한 운동만이 강력한 연대와 상호원조의 틀을 구성하여 산하조합을 성장․존속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대표적인 노동자 비밀결사였던 ‘노동기사단’은 순수 경제적인 조직을 넘어서 좀더 대안적인 프롤레타리아 시민사회를 이룩하려 하였다. 기사단으로 대표되는 맹아적인 계급문화는 ‘순수․소박’한 노조경제주의를 넘어설 뿐 아니라 지배적인 민족적․종교적 하위문화들에 대한 최초의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기사단을 열렬히 환영한 엥겔스는 기사단의 발흥이란 바로 미국 노동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 되는 분명한 첫걸음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3차 반(反)굴드파업의 패배 및 헤이마켓 학살에 잇따른 탄압의 여파로 기사단의 어지러울 만큼 빠른 성장은 갑자기 끝나버렸다.

기사단 몰락의 이유로는 1> 주요 노동자가 경제 전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노동자집단 특유의 힘을 절감한 자본가(ex: 철도자본가)에게 매수되었기 때문에. 2>노동지도층과 민주당 후원기구 사이에 공생관계가 강화되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몽고메리는 영국과 미국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이 시기에 계급의 식의 성숙과 노동당 창출에 “가장 효과적인 방해물”이 된 것은 바로 “미국노동자가 쉽게 공직에 선출될 수 있었던 점”이라고 시사한 바도 있다.

그러나 기사단의 몰락으로 노동자 전투성의 물결이 끝났다고 보면 잘못이다. 한편으로 유진 뎁스가 이끄는 미국철도조합은 모든 철도노동자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려는 근질긴 바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노동총연맹(AFL)도 그 이후의 모습과는 달리 아직은 실리적 조합주의(business unionism)의 보수적 단일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서 1893~96년 대공황 이후 발생한 풀먼회사에 대한 미국철도조합의 파업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 파업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농본적 급진주의와 국제저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두 거대한 흐름이 유례없는 결합을 이룩했다는 사실이다. 1880년대 후반에 탄생한 농민동맹은 농촌인구 중 빈곤층에 뿌리박음으로써 흑백 소작농을 단결시키는 미증유의 과업을 달성함으로써 가늠하기 어려운 잠재력을 지닌 전복세력이 되었다. 더욱이 남부와 남서부 지역에서는 노조들, 기사단지역회의, 동맹 사이에 적극적인 협력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동자인민주의는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현하고 있던 새로운 노동계급 정당에 해당하는 미국의 토착적인 운동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주정부가 1894년 탄광파업을 진압하고 풀먼파업에 연방정부가 개입하자, 인민주의 운동은 대중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인민당 주창자들을 승인했으며, 전국 차원의 인민당 건설 논의가 촉발되었다. 특히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로이드는 노동자인민주의를 “인민당을 미국의 ILP(Independent Labor Party)로 변혁하는 운동의 선봉”으로 삼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반면 AFL 내부에서 생겨나는 사회주의의 도전을 물리치고자 하는 곰퍼즈의 결심 또한 대단했다. 은본위제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재정자원을 등에 업은 중서부인들은 우선 인민주의 정강을 무제한적인 은화 발생이라는 단일 논제에 국한시키고 나아가 민주당의 은본위제 지지파와 통합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끌어가고자 했다. 이는 노동자인민주의에 대해 혐오하고 있던 곰퍼즈의 생각과 일치했다.

곰퍼즈는 결국 다수의 평조합원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ILP정강을 부결시키도록 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사회주의자들은 ‘화학성분상 순수한’ 혁명강령만을 주창하는 고립된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런 요인 외에도 급진주의적 노조투사와 아직 대다수 미조직상태였던 도시 노동계급의 명백한 냉담이나 무관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괴리가 있었다. 독자적인 노동자정치를 추구하는 운동은 시카고 및 북서부 지역을 제외한 다른 주요 도시․산업 중심지에서는 성장하지 못하였다. 왜인가?

첫째, 남부의 자영농과 소작농의 단합된 봉기는 농민동맹과 흑백협동을 ‘짐 크로’(Jim Crow: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권리를 박탈한 극도의 흑인차별주의적 관행이나 이를 보장한 법률체계)와 지방노동자 선동으로 되받아친 지방 지배계급의 격렬한 역습에 의해 분쇄되었다. 둘째, 산업노동계급 안에서 토박이주의와 민족적․종교적 갈등이 재연되었다. 황량한 공황기인 90년대 중반에 토박이 및 ‘구’이민노동자들은 늘어가는 이민이 자신들에게 심각한 경쟁의 위협이 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게다가 1890년과 1892년 선거에서 아일랜드계 민주당원들이 거둔 정치적 성공은 반가톨릭주의를 부활시켰다. 이른 흐름은 노동자인민주의의 기반임에 틀림없는 산별노조들, 즉 광부 및 철도노동자의 단결까지도 와해시켰다. 셋째로 인민주의 운동 자체도 이민노동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거나 ‘생산자계급들’이 점점 양극화되어가는 것을 막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느 때보다도 더 정치에 참여하고 있던 시기에, 토박이주의의 역습과 보통선거권에 대한 새로운 제한의 결과 미국 노동계급은 놀랄 만큼 선거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링컨의 연방주의에 입각해 구성된 기존의 대중적 민족주의는 사회적 다윈주의와 ‘과학적 인종주의’에 입각한 ‘앵글로색슨 미국주의’라는 외국인 혐오적인 신조로 변형되고 있었다.


3) 뎁스 사회주의의 실패


① 분열된 노동의 세계

신이민층은 구이민과 마찬가지로 천연자원개발산업, 가사용역, 건설 등에 초과착취되는 노동집단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대개 참정권도 없고 빈곤이나 의도적인 차별로 말미암아 토박이노동계급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빈민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결국 민족, 종교, 기술이 새로이 결합된 위계구조가 생겨났다.

한편 작업장 내에서도, 노동분업의 심각한 재편은 신이민의 효과를 중층결정하고 더욱 강화하였다. 공장경영주측은 직능공들의 세력을 분쇄하고 그들의 기술을 희석시키면서도 그들을 반숙련공의 지위로 ‘평준화’하는 것은 피하는 방향으로 주도면밀하게 공작을 펴나갔다. 바로 이러한 지위의 폭발적인 균질화를 막기 위하여 회사에서는 기죽은 숙련노동자들에게 도급제, 보너스, 저축제도, ‘이윤공유’ 등을 미끼로 내밀었다. 기업은 이제 쁘띠부르조아지와의 상징적인 동화를 고부하는 새로운 사회규범들 --특히 주택소유자라든가 애국단체회원이라는 ‘자부심’--을 조장했다.

이러한 노동계급 내의 신분제도는 노동계급 주거생활의 엄격한 격리와 파편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즉 미국에서는 주거에서의 계급적 격리현상의 증가에, 마침 확대되고 있던 민족적 분화가 겹쳤다. ①중산층 교외 ②토박이노동자나 일부 ‘구’이민이 거주하는 주택지대 ③새 프롤레타리아트 이민에게 잠자리를 빌려주는 북적거리는 하숙집, 셋집, 허름한 아파트 지대.


② 미국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정신

1909~13년은 국제노동운동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해로서, 미국에서도 격렬한 대중파업이 일어나고 새로운 미숙련노동자층이 계급투쟁에 돌입하였다. 이에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가 지원을 가했다. 한편 AFL은 기술편차의 희석, 테일러주의 능률촉진 등에 의해 그들의 숙련기술이 평가절하되는 데 맞서 쓰라린 수세투쟁을 해나가야 했다.

그러나 1877~96년 시기의 파업물결과는 달리, 20세기초의 대중파업들은 토박이와 이민 노동자를 단결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1912년 미국 사회주의의 주된 두 경향 중 어느 것도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거나 노조의 전략과 사회주의자의 도시 정치권 개입을 조화시키는 현실적인 전략을 제시하지 못했다. 개량주의자는 산별 노조운동을 꾸릴 계획이 없었던 반면, 혁명주의자들은 숙련노동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AFL의 곰퍼즈 지배에 도전하는 일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았다.

사실상 미국의 사회주의는 민족과 언어로 분열된 사회주의들의 집합일 뿐이었다. 언어권에 따라 구성된 소수민족 사회주의들의 개별 조직들은 분산적이고 당권력으로부터도 떨어져나간 상태였지만 당지도부는 이것을 방치해두었다.

사회당은 이러한 당내 모순을 인식하거나 해명하는데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했는데, 뎁스만이 혼자 공통된 투쟁방향에 기초하여 계급의 내부단결을 이루지 못하는 한 사회주의는 미국 노동계급을 획득하기를 결코 바랄 수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간파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생디칼리스트 좌파가 지지한 복수노조를 거부하고, 동부(UMW)와 서부(WFM)의 광부연합을 기반으로 하여 산별노조의 ‘중앙’을 건설하자는 약간 엉뚱한 선언을 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대량 생산산업의 조직운동을 이끌어내고 곰퍼즈 노선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축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뎁스의 호소는 무시되었지만, 이후 1917년에 되살아난다. 피츠패트릭과 나클즈의 전투적 지도하에 시카고 ‘노농동맹’은 협소한 숙련공 중심의 구호를 버리고 정육포장 노동자들을 조직해 역사적 승리를 거둔다. 다음 해, AFL의 미온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이들은 가축사육장의 운동방식을 펜실베이니아 계곡의 철강지대와 시카고 남부의 공장지대에 도입하려 했다. 이 곳은 미국 오픈 숍의 전선이었으며 그것의 조직화가 곧 전 산업노동계급의 중대한 전략적 열쇠가 된다는 점은 널리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중서부 공업주들에서 큐 클럭스 클랜(KKK)이 발흥한 것을 필두로 하여 토박이주의적인 반동의 물결이 밀어닥치자 ‘새’ 이민들은 민족공동체라는 은신처로 후퇴하고, 한때 막강했던 광산 노동자와 철도수리보수공조합들의 폐허 위에 오픈 숍을 주축으로 한 ‘미국적 방식’이 세워졌다.

1919~24년 미국 노동계가 겪은 패배의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엄청났다. ‘미국적 방식’이 채택된 이 짧은 막간에 고용주는 노동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을 공격하는 데 박차를 가했고, 새로운 형태의 기업 경영과 작업감독에 발맞추어 새로운 대량생산기술의 지전도 이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생산혁명과 전후 AFL의 패주로 말미암아 숙련공의식의 물적 지주 또한 약화되고 있었다. 대량생산이 ‘포드주의’로 통합됨으로써, CIO가 출현하고 산별노조운동이 부활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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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난 김훈에 대해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때 김훈이 <칼의 노래>로 히트칠 때, 책 표지가 풍기는 포스가 심히 휘황하여 붙들고 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무참히 쏟아져나오는 한자어를 감당하기 힘들고, 수능 스트레스로 폭발 직전이어서 그런 책이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았다. 그리고 올 해 들어서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을 읽었는데, 난 그 묵직한 문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무궁한 표현력에 껌뻑 죽어버렸다. ㅠ.ㅠ

 

얼마 전 학교 후배 및 동기를 만나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쩌다보니 요즘 읽는 책 얘기를 했는데,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게 이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는 "난 김훈의 소설이 좋더라."라고 말했다. 그 때 옆에 있던 풍선인형이 "걔 쫌 이상하고 보수적이야."라고 말하길래, "그래도 난 그 사람의 문체나 글의 소재가 좋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작가를 그 사람의 이념적 성향으로 재단해서 그걸로 평가를 끝내버리는 것 만큼 작가입장에서 억울한 것도 없을 것 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가서 그의 산문집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를 보니까 그의 정치적 입장도 보수주의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허무주의, 아나키즘 등을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어서 굳이 정치적 색깔로 그를 판단할 꺼리도 없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아, 난 어찌 이렇게 무식하던가?

오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가 한국일보 재직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전담'해서 썼다는 것 아닌가? ㅠ.ㅠ 이에 대해 최근 남긴 인터뷰 한 마디...

 

“내가 안 썼으면 딴 놈들이 썼을 테고… 난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를 감독하던 보안사 놈한테 이런 얘기를 했지. 내가 이걸 쓸 테니까 끌려간 내 동료만 때리지 말아달라. 걔들이 맞고 있는 걸 생각하면 잠이 안 왔어. 진짜 치가 떨리고….”

 

네이버 지식IN에 누가 올려놓은 글인데, 여기에 누군가 댓글을 이렇게 달았다. 그런다고 보안사에서 동료들 안때릴꺼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냐고... 사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고 안했고를 떠나서 이런 자기 위안으로 자신의 '도덕적'(살인범을 찬양한 것은 전적으로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 결함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안일함인가?

 

그리고 이 사람은 철저한 다윈주의자였다. 여기서 '철저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다른 의미가 아니라, 철저하게 속류화된 다윈주의를 채득한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어렴풋하게만 느끼고 거의 신경을 안 쓴 부분인데) 여러 논평가들은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에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내가 너무 소설을 통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그런가? 난 <남한산성>에선 인조와 영의정의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는 무뇌의 대가리에 소스라쳤고, <칼의 노래>에선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서 이순신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같은 이유에서 전공을 세워 목소리를 높일 이순신이 두렵기도 한 선조의 이중성에 냉소를 품게 되었는데... 그 화려한 수사들 속에 숨겨져 있던 다윈주의의 흔적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으악!!!

 

<너는 어느쪽인지를 묻는 말에 대하여>에서 보여진 김훈의 태도는 그의 말대로 아나키적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근주의로 보일지라도 사실상 페미니즘과 지향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고 말하거나, 세상은 약육강식이기 때문에 세상을 엎을 수는 없다고 뱉어대는 그의 말은 또한 지극히 보수주의적이다. 아나키와 보수주의가 공존하는 그의 정신세계. 아, 난 현란한 문체에 속아버린 것일까?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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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시오 구즈만의 <칠레전투>

redbrigade님의 "선거? 그거 이겨 뭐하게?"에 관련된 글

 

 

 

3일 전에 그 동안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못 보고 있었던 <칠레 전투>를 보았다.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편당 거의 90분에 육박하는데,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인터넷에 그걸 다 올려놨더라. 낮 시간 내내 일이 없을 때 짬짬이 봤는데도 결국 2부작까지 밖에 못봤다.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를 탄핵하기 위한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기독교민주당 세력들이 합법적인 방식으로는 이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옌데를 대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외곽조직을 만들어 낸다. 조직의 이름까지 영화에서 명확히 나오는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들은 반 정부 친위대라 할 수 있을만한 조직이다.

의회에서 다수당인 기독교민주당이 아옌데 정부가 내놓는 개혁법안이나 임명하는 장관들의 대부분을 꼬꾸라뜨리고 있는 동안  이 조직은 맑시스트 정부가 칠레를 망쳐놓았다는 선전을 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친정부 단체들을 공격한다.

이렇게 의회 내외적으로 파시즘적 기운이 충천해 가고 있는 동안, 기독교민주당은 아옌데 정부 초기에 국유화를 통해 소위 '귀족 노동자'가 된 구리광산 노동자들을 부추겨 파업을 일으키도록 한다. 40%의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구리광산 노동자들은 아옌데 정부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행동은 민중연합파 노동자들 내부의 갈등을 불러와 보수파의 공세에 직면한 아옌데를 궁지로 몰아넣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차피 기독교민주당에게는 미국 CIA라는 강력한 백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들 밑에서 강력하게 훈련된 군 조직이 있었으며, 독점 자본과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도 이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중조직과 노동계급의 분열을 통한 파시즘적 기운을 북돋움으로서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를 아사상태로 몰아갔고, 결국엔 군사 쿠데타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40여년 전에 벌어진 이 광경이 한반도 남녘의 과거이자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거라고 한다면, 노무현의 집권 5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비적으로 아옌데의 민중연합과 기독교민주당의 관계는 노무현과 한나라당의 관계를 빼다 박은 듯 하다. 물론 전자가 합법적인 탄핵은 못시켰어도 무력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후자가 합법적으로 탄핵시켰음에도 헌법재판소라는 최고 법률기관의 판정에 따라 무효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영화를 통해서 2004년 3월 12일을 떠올리는 것은 기억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의 매우 자연스러운 두뇌작용일 것이다. 얼마 전에 <시대와 철학> 최근호의 서문으로 실린 김교빈 교수의 글을 보니 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예 대놓고 노무현은 한국의 아옌데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같은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칠레 전투>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완전히 억지는 아니겠다라는 느낌이다. 그러나 김교빈 교수가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면 한국과 칠레는 엄연히 정치적 대립의 선이 다른 지점에 그어져 있다는 것일게다. 아옌데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노동자 민병대, 각종 노동자의 자주적 위원회, 노조 등에 근거하고 있었다면, 노무현은 그런 기반은 물론 경제적 기반까지 무너져 상실감에 빠진 대중들의 '비물질적인' 열망에 기반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건 이 글을 쓰면서 우연히 든 생각일 뿐이니 이런 정의에 대해 딴지걸지 마시길 ㅋㅋㅋㅋ) 그래서 노무현의 이념적 지향은 쉽게 묻어갈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자리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쨌든 과거는 과거인거고,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일텐데... 영화 초반에 등장한 기민당의 친위조직을 보면서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장면이 있다. 바로 얼마전에 거국적으로(!!) 창립하신 '애국기동단' 어르신들!!! 그들이 서울대 교수들 시국선언하는데 쫓아가서 깽판치고 노무현 분향소를 때려부시는 모습들... 게다가 그들은 항상 '군복'을 입고 다닌다. 그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칠레에서와 같은 군사쿠데타의 전주부분을 연주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전에 통과된 미디어법. 이걸 보면 그런 징후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것을 통해 보수세력의 전방위적 선전망이 강력하게 확보된다면, redbrigade님의 말처럼 사실상 다음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당선이 안되도 이들 입장에서는 별 상관없는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들은 대통령 자리보다 더 강력한 것을 가진 것이기에, 정치의 모든 인풋 아웃풋을 자신들 통제하에 검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제일 안좋은 경우의 수는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다음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낙선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자본권력, 언론권력, 거기다 지방권력까지 보수세력이 독점한 상태에 민주당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정치권력의 일부(분명 위 법들이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대통령이라는 것은 권력의 '일부'일 뿐인 존재가 될 것이다)를 가지게 된다면? 정세는 지금보다 더 엄혹한 상황이 되겠지만, 지금과 같이 불만스러우나마 반MB전선 따위도 만들지 못할 것이고, 권력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결집을 도모하기는 더욱 요원할 것이다.

 

물론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림일 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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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MB판 '복불복 게임'인가?



 

한겨레 '왜냐면'에 투고한 글. 과연 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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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MB판 ‘복불복 게임’인가?

 - 평택에서 재연되는 죽음의 버라이어티 쇼를 중단하라



요즘 예능 프로그램 중에 최고의 인기는 단연 ‘1박2일’이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저녁식사와 잠자리가 걸린 복불복 게임. 자신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운에 맡기는 이 게임은 ‘1박2일’의 30%를 넘는 시청율의 수훈장이다.

그런데 여기 ‘1박2일’의 아성에 도전하려는 복불복 게임이 있다. 그것은 웃음과 재미를 주는 ‘1박2일’의 복불복과는 차원이 다른, ‘운명의 장난질’에 가깝다. ‘1박2일’에선 결과를 알 수 없긴 해도 운명의 선택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출연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가? 이들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된 무리의 일부에게 어느 날 갑자기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에 ‘해고’라고 적혀있으면 야외취침, 그렇지 않으면 실내취침.

이것은 지금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하드코어 복불복 게임에 걸린 것은 하룻밤 잠자리 같은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이 프로그램에 강제로 섭외되어 해고 편지를 받은 노동자의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서 보여줬듯이, 생존의 문제를 두고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물론 이 게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올해 초 용산에선 철거 계고장 한 장에 의해 결판 난 복불복 게임의 결말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가감없이 보고야 말았다. 좀 더 멀리는 2006년 같은 평택의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결정에 의해 평생의 삶의 터전이 삽으로 흙을 퍼내듯 들려나간 농민들이 있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상희 현 국방부장관은 대추리에 총기로 무장한 군인을 투입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 때는 단지 계획에 그쳤던 것을 이젠 실행에 옮기려는 것일까? 현재 쌍용차 주변엔 살인무기라 할 수 있는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경찰 병력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선진화’를 국정운영의 최우선 목표로 세워 노사 모두가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선진화든 경쟁력 강화든, 좋다. 그러나 이런 무작위적 인종청소를 연상시키는 정리해고 복불복 게임이 당신들이 말하는 경쟁력 강화인가? 심지어 사측에선 이번 갈등의 초기부터 비해고대상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해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려는 악날한 행태를 보여왔다. 당신들은 혹시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 현실이 되길 바라는가?

얼마 전 MBC 스페셜에서 방영된 ‘타인의 정리해고’편을 보니 평택 시민들은 대부분 이번 노조의 파업에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파업 때문에 평택 경제가 마비된다는 우려도 들린다. 그러나 시민들의 두루뭉실한 바람처럼 파업이 파괴되고 나면, 그리고 경제위기의 후속 여파가 더 밀려든다면, 여지없이 평택 시민들도 이 ‘죽음의 복불복 게임’의 다음 출연자가 될 것이다.

정부와 쌍용차 사측에게 묻는다. 국내의 어떤 시청자도 즐겁게 볼 수 없는, 이 죽음의 버라이어티 쇼는 누굴 위해 만들고 있는 것인가? 혹시 해외 투자자의 투자 유인을 만들기 위한 전시용인가? 그런 식으로는 투기자본의 경제를 살릴 수는 있을 지언정,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중도강화론을 이야기하면서 목청을 높인 ‘서민경제’를 살릴 순 없다. 언제까지 이 무고한 노동자 서민들의 죽음을 전 세계에 전시할 텐가? 죽음의 버라이어티 쇼를 중단하라.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당신들의 권력을 내려놓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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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노무현의 유산이 아니라고?

어제 오랜만에 시립도서관엘 갔다.

시립도서관엔 다른데엔 없는 녹색평론과 진보평론이 있다.

근데 어제 녹색평론을 보다가 정말 기가 막히는 글을 발견했다.

송기호. 작년 광우병 논란때 100분토론에 출연하여 농림부 관료의 협상문 해석 오류를 폭로한 '스타' 변호사. 한미FTA반대대책위에서 통상관련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유능한 변호사.

사상적으로는 나와 별로 맞는 부분은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참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 분.

 

그가 녹색평론에 <한미FTA는 노무현의 유산인가?>라는 글을 썼다.

결론은, 아래 옮겨놓은 글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노무현의 유산이 아니라는 거다.

앞에서는 한미FTA는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그래서 자신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한미FTA에 반대했던 것이라고 해놓고, 결말에 가서는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디딤돌이며

이명박의 한미FTA는 노무현의 한미FTA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전에 봤던 다른 386들의 글에서도 느꼈던 것인데,

노무현을 둘러싼 이 386들의 정신분열이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노무현이 임기 초 한미FTA를 구상하고, 임기 말에 가서는 결국 체결 하기까지

그 수년 간, 노무현에게는 이명박의 영혼이 빙의되기라고 했단 말인가?

노무현이 추진하는 FTA는 '애통'한 일이고, 이명박이 추진하는 FTA는 '분통'터지는 일인가?

 

이 글로 인해 나의 올 해 목표가 하나 세워졌다.

노무현에 대한 기억을 둘러싼 386들의 정신분열의 원인은 무엇인가?

답이 나올때까지 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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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민주주의

 

내가 노 대통령 재임 시 한미FTA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던 이유는 민주주의 때문이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대중이 5년에 한번씩 대통령 선거를 위해 투표소에 갈 수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허헌중 지역재단 이사가 이번호 녹색평론에 썼듯이, 자본과 시장을 민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노동자가 일상적인 노동 공간에서 무방비적으로 축출당하는 곳을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한미FTA는 바로 이 민주주의를 전복시킨다. 자본과 시장이 관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과 시장이 공적 제도를 관리한다. 수천만의 대중을 대표한 국회가 만든 법률이 단 한 사람의 미국인 투자자에 의해서, 셋 중 둘은 외국인인 국제중재에 회부당하는 것에 동의하는 법적 문서가 한미FTA이다. 단 세명의 국제중재 결정을 한국이 거부할 경우, 오로지 이를 이유로 미국이 한국에게 무역제제를 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장치가 한미FTA이다.

이런 틀은 수출동원의 박정희 체제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무역기구 체제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이르러 한미FTA체제를 시도하려 했을까? 왜 그 시기에 미국인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무역제재를 당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을까? 왜 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행정법원에 충분히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한미FTA가 우리 안의 경제민주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체제 기득권이 택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미FTA가 법적 힘을 갖게 되는 날, 국제금융자본과 한국의 IMF 기득권자들은 두손을 들고 만세를 부를 것이다. 한미FTA는 자본과 시장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좌절시키는 강력한 무기이다. 보라! 지금 이명박 정부는 세계무역기구를 핑계로 유통 대자본이 골목 상권마저 싹쓸이하는 것을 규제하려 들지 않는다. 한미FTA가 되면 자본에 대한 국가의 정당한 규제는 끊임없이 공격당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역설을 빌면, 권력을 시장에 넘기는 법적 문서가 한미FTA이다.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FTA 서명을 마친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입한 곳이 삼성인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한미FTA서명을 지시한 것은 노 대통령에게 권력을 준 대중이 흘릴 눈물을 예고한 비극적 과오였다.

아파트값 폭등과 사교육비 폭발이 상징하듯이, 참여정부가 자본과 시장에 대한 민주적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결과 IMF 이후 해체와 빈곤의 위기를 맞은 중하층, 중산층들이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선택한 것이 이명박 정부다. 그러므로 노 대통령이 한미FTA를 비판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며, 노 대통령은 그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려는 치밀하고도 집요한 노력을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미FTA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쇄국론자로 몰아세웠다. 참으로 애통한 과오였다.

 

한미FTA는 노 대통령의 유산인가

 

노 대통령이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뜻은 대중의 행복한 삶과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뜻은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로는 실현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의 비젼2030를 폐기했기 때문이다. 비젼2030은 사회복지 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노대통령의 종합미래구상이었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가 초래할 경제민주주의의 퇴행을 1,100조원에 달하는 비젼 2030의 예산으로 보완하고자 했다. 물론 이는 시장의 패배자들을 조장해 놓고 그들에게 세금을 걷어 치료하는 것이므로 온당치 않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마저 폐기했다. 지금 그 어떠한 관료도 더 이상 비전2030을 말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한미FTA는 이명박 정부의 것과 같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는 노 대통령의 유산이 아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농업선진화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쌀의 전면 수입개방(관세화)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미FTA는 질적으로 전혀 달라진다. 노 대톨령의 한미FTA는 쌀을 일단 비켜가는 구조이다. 쌀이 수입자유화가 되지 않아 '수입관세율'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쌀을 전면 개방하면, 쌀의 수입관세율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관세율 폐지를 중요 목적으로 하는 한미FTA는 조만간 쌀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쌀이 농업과 국민생활에 갖는 위치에서 볼때,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FTA로 변질된다. 또한 국제금융위기를 낳은 국제금융자본을 민주적으로 관리하려는, 세계 정세의 근본적 변화에서 볼 때에도, 이명박 정부의 한미FTA는 노 대통령 때의 그것이라 할 수 없다. 한미FTA는 더 이상 노 대통령의 그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수백만 사람들의 진실된 추모와 애도 속에 갔다. 노 대통령을 떠나보낸 대중은 노 대통령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서 자양분을 얻으며 새로운 역사를 감당할 것이다. 한미FTA라는 과오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노 대통령을 한국 민주주의의 디딤돌로 삼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추모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 또한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그를 사랑하고 추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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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는 책 (2) - <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 <보건의료: 사회 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비센트 나바로 외, 공감, 2006)

 

 

올 해 2월엔가 사놓고 안 읽다가 이번달 초에 몰아쳐서 읽은 책.

이 포스트의 제목을 책 표지에 있는 그대로 옮겨 놓긴 했는데, 난 좀 이해가 안된다. 사실 이건 공감에서 나오는 책의 일관된 특징이기도 한데, 이게 해외 단행본을 그대로 번역해서 내놓는 책이 아니라 과천연구실 연구원의 총괄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보충적인 읽기자료 형식으로 번역글을 실어놓는 일종의 세미 무크지(??)같은 형식이다. 근데 왜 마치 이 책이 비센트 나바로(와 그외 여러 사람들)의 글을 번역해서 내놓는 단행본인 것처럼 책을 디자인 하는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10년이 넘도록 일관되게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로 책 표지를 고수하는 뚝심은 알아줄만 하다. ㅋㅋㅋㅋ

 

이 책은 근래에 산 책중에는 정말 없는 돈 털어서 작심하고 산 책이다. 작년쯤에 반다나 시바 등의  생태주의에 빠져 열독 중일 때, 생태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인간 몸의 건강 문제에 대한 정치경제학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고는 좀 더 심층적인 텍스트를 찾아 해맸다. 그래서 손에 쥐게 된 게 바로 이 책.

 

근데... 솔직히 그닥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특히 비센트 나바로의 글은 지나치게 환원론적이다. 의료문제가 자본주의 계급모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 빼고는 다 쓸데 없는 얘기라는 식의 논의는 좀 안습이다.

 

그래도 공감이론신서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과천 연구원들의 교과서적인 글들은 나름 유익하다. 그 중에서도 하일라와 레빈스의 논의에 기초해서 설명하는 '현대의학의 생의학적 모형의 생물학적 기초'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되는 생태학적 관점에 주목해 보면 좋다. 또한 책의 뒷부분에 실린 송인주의 '가족과 여성보건'이라는 글에 실린 보론 '황우석 사태 비판'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생명공학을 비판하고 생명공학적 관심사가 어떻게 여성의 신체를 자본의 새로운 이윤 창출의 출구로 활용하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  *  *

 

뱀발) 짤막하게  서평을 쓰려고 했던 것인데, 뭐 이렇게 글이 중구난방이냐...

안 쓴 것만 못하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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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읽는 책(1) - <직선들의 대한민국>

서류발급 기계로 살게 된지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 간다. 얼마 전부터는 매일 밤 2시간 반씩 커피와 빵 파는 기계의 삶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나의 모든 사회적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들은 철저히 파괴(!!) 되었고, (자의든 타이든 간에) 사실상 홀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사회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는 인터넷과 책 뿐이다.

그나마 인터넷은 워낙에 잡 쓰레기가 많이 굴러다녀서 그걸 헤집고 나가는데 퍼부어야 할 노력이 더 수고스럽다. 그래서 요즘 나를 작게나마 위로 또는 희열, 즐거움 등을 주는 매체는 오직 책 뿐이다.

 

그 10개월 동안 한 달에 책을 꼭 10권 이상 읽겠다고 다짐하고 살았는데,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8-9권을 읽었을 뿐.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 속독 능력과 내 독서시간을 앗아가는 밀려오는 민원인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2년 안에 평생 읽을 책의 절반 이상을 읽겠다는 각오로 독서에 임하고 있는 마당이니, 중간중간 독서 계획을 잡고, 간단한 독서평을 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상적 과제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히 최근 한 달 사이에 내가 읽은  책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들에 대한 감상만을 끄적여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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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웅진지식하우스, 2008)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된 서평을 따로 써 볼 생각이다. 사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저자의 공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88만원세대>가 세간의 평가에 비해 매우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책도 별로 기대를 안했다. (예전에 진보넷 블로거인 EM님이 <88만원세대>에 대해서 "경제학적 개념을 통해 세대론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세대론을 빌려와 경제학적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평한 것을 봤는데, 얄짤없이 정확한 평가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 이 책은 뭐... 내가 볼땐 우리나라 청소년, 또는 젊은이들에겐 <88만원세대> 보다는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대론이라는 것은 각각의 세대가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접어두고 그저 윗 세대에 대한 공분만을 재생산해 소득없는 논쟁을 부풀릴 위험이 있다. 지극히 감상적인 것이긴 하나 실제로 <88만원세대>가 그런 효과를 낳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님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단 하나의 가치관"을 말하라면 바로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생태미학'이 아닐까 한다.

 

길게 설명할 거 없이, 저자가 말하는 생태미학이라는 것을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런거다. 얼마전에 석돌이의 동생(그는 대구소재 모 대학의 토목과(맞나?)에 다닌다)이 방학을 맞아 삼촌이 일하는 공사현장에 일도 배우고 돈도 벌 겸 해서 며칠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런데 그 공사가 하천 제방을 쌓는 공사인가 뭔가 그런거 였다. 공사과정에서 하천 바닥의 토사를 포크레인으로 퍼나르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미꾸라지, 개구리 등등 민물고기들이 제집을 잃는 난리를 겪어야 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석돌이 동생은 안타까운 마음에 미꾸라지, 개구리들을 품에 안아 인근 논에 '방생'해 주었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석돌이 동생은 가슴이 아팠단다. 그 미꾸라지, 개구리들은 어차피 논에 뿌려진 농약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련의 경험을 통해 석돌이 동생은 "미꾸라지와 개구리, 그리고 거기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터전을 파괴하면서까지 하천공사를 해야하는걸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스스로 친환경 토목설계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그는 그렇게 스러져갈 미꾸라지와 개구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오로지 "나는 생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입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지 않은가? 라고 비관한다.

 

어느 한 어리고 착한 토목공학도의 순수한 자기고백 쯤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나는 너무나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시대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참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바로 석돌이 동생이 가진 이런 '생태미학'이 있어야만 미래에 대한 대안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고가아파트에 살면서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어린이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으며, 화산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난개발때문에 홍수를 겪게 된 제주도 사람들과 뭇 생명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MB정부의 대운하 건설계획 비판을 중심으로 이런 미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묵직하게 역설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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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가격 및 이윤] 요약

임금, 가격 및 이윤



I. 생산과 임금


▶ 웨스톤의 논거 : 1) 국민적 생산물의 총량은 수확자가 말하는 대로 고정된 것 불변의 량, 또는 불변의 크기라는 것.  2) 실질 임금, 즉 그것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양에 의하여 측정되는 임금의 총액은 고정된 총액․불변의 크기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주장은 명백한 오류. 국민 생산물의 총량 또는 그 크기는 부단히 변한다. 인구수의 변동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자본의 축적과 노동생산력의 부단한 변동으로 인하여 가변의 크기로 될 수밖에 없다.

웨스톤은 일정한 상황 하에서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임금 총액은 본성으로 보아 고정된 크기 이므로 당연히 반작용이 그에 뒤따라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또 자본가가 임금 인하를 강제로 실시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항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경우에도 당연히 반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 인하의 시도를 반대하거나, 이미 실시된 임금 인하를 반대하는 노동자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임금 인상을 달성하려는 그들의 행동, 역시 정당한 것이다.

만일 웨스톤씨가 이 결론을 부정한다면 이 결론을 맺게 하는 전제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임금 총액이 불변량이라고 주장해선 안되고, 오히려 임금은 인상시킬 수 없으며 또 인상시켜서도 안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하하는 것이 자본에 필요하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인하할 수 있으며 또 인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들어 미국이 영국보다 높은 임금률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 임금율을 차이를 미국과 영국 자본가들의 의지의 차이로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왜 미국과 영국 자본가의 의지가 다른가? 하느님이 나라에 따라서 다른 의지를 적용하셔서?

물론 자본가의 의지는 되도록 많이 획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업은 그의 여하를 논의하는데 있지 않고 그의 힘과 이 힘의 한계 그리고 이 한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다.



II. 생산, 임금, 이윤


웨스톤의 논의는 다음으로 귀착된다. 만일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화폐 임금의 형태로 4실링 대신에 5실링을 자기에게 지불하게 한다면 자본가는 상품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5실링의 가치 대신에 4실링의 가치를 반환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 총액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액은 왜 4실링의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고정되어 있는가? 왜 3실링이나 2실링 또는 어떤 다른 총액의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가? 만일 임금 총액의 한계가 자본가의 의지나, 노동자의 의지에도 의존하지 않는 어떤 경제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웨스톤씨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법칙을 설명하고 논증했어야 했을 것이다.

웨스톤은 만일 일정한 수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이정량의 국이 대벚에 있을 때 이 양은 숟가락의 폭을 더 넓게 했다고 해서 더 많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로마의 평민들이 로마의 귀족에 반대하여 파업하였을 때, 귀족인 아그리파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귀족의 배(腹)가, 국가라는 신체의 사지인 평민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말한 예를 떠오르게 했다. 웨스톤씨는 노동자들이 식사하는 대접 안에는 국민적 노동의 전체 생산물이 들어 있고 이 대접에서 노동자들이 더 많이 떠내지 못하는 것은 대접의 용적이 적거나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 빈약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의 숟가락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임금률의 전반적 인상은 생활 필수품에 대한 수요 증대를 야기하고 따라서 그 시장 가격의 등귀를 야기한다. 이러한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지분하는 임금 인상은 그들의 상품에 대한 시장 가격의 등귀에 의하여 보상된다. 그러나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지 않는 다른 자본가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임금의 전반적 등귀로 야기된 이윤율의 저하를 자기 상품의 각겨 등귀로서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입은 감소할 것이고 그런 까닭에 전반적으로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들 상품의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부분에서의 이윤율은 임금율의 전반적 상승에 단순히 비례하여 하락할 것이다.

임금률의 전반적인 등귀는 시장 가격을 일시적으로 교란시킨 후 이윤율의 일반적 하락을 야기시키나 상품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장기적인 변동도 초래하지 않는다.


웨스톤은 생활 필수품에 대한 거대한 수요 증가와 그 결과로 일어날 무서운 물가 등귀를 좀 생각해보라고 외쳤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미국의 농산물 가격은영국보다 낮고, 또 미국에서 자본과 노동간의 이반적인 관계가 영국과 동일하고, 연 생산물은 미국이 영국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농업 노동자의 평균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영국 농업 노동자 평균 임금의 2배 이상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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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남한산성> 읽기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는 한자어들 때문에 읽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재밌는 소설이다.

 

여기서 재밌다는 말은 약간의 썩소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조선놈으로 태어난 것을 다시 한번 진정으로 부끄러워 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선놈들은 '외교'를 모른다. 21세기 조선놈들은 세계가 다자주의로 재편되고 미국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있다는 객관적 정세를 외면하고 오매불망 태평양 건너 코쟁이들 나라만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들의 조상들은 강산이 골백번 바뀌어도 오로지 천자의 나라는 한족의 나라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남한산성>은 그렇게 대가리 회전속도가 거의 소달구지 수준인 조선 사대부들의 추태를 담은 소설이다.

 

청나라 칸이 한반도의 정 가운데까지 밀고 들어와 성곽을 맞대로 조선 왕을 죽일까 살릴까 저울질 하고 있는 마당에 조선 왕과 사대부들은 명의 황제를 향해 망궐례(望闕禮; 임금을 공경하고 충성심을 표시하기 위한 의식으로, 임금을 직접 배알하지 못하는 지방 관리들이 행했다. 임금이 정월 초하루나 동지, 성절(聖節, 중국 황제의 생일), 천추절(千秋節, 중국 황태자의 생일)에 왕세자와 조정의 신료들을 거느리고 황제가 있는 북경 쪽을 향하여 예를 올리던 의식도 망궐례라고 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말함)를 올린다. 대가리가 안굴러가면 팔다리가 고생이라고, 임금과 사대부가 그 지랄을 해대는 통에 고생은 남한산성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다 뒤집어 쓴다. 급기야 나중에 가서는 군졸들이 싸우지도 않을 거면서 성문 쳐닫고 뻣대지말고 걍 나가서 항복하자고 성화를 낸다. 물론 지체높으신 사대부양반들은 천자에 대한 예를 갖춘답시고 반대를 한다. 그리고 아우성쳐대는 군졸들을 한 사대부 양반께서 칼을 빼드신다. 허허. 그러나 이미 달관의 경지에 오른 우리 군졸들께서는 전혀 기가 죽지 않는다. "그 칼로 나가서 적과 싸우시지요?" 그러자 사대부 왈, "사대부가 어찌 전쟁의 일을 알겠느냐?"

 

밖에 나가선 찍소리도 못하는 것들이 안에서만 괜히 뒷짐지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대는게 꼭 오늘의 뭐시기들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이 양반들의 탁상공론의 추태는 가히 진기명기감이다. 초소를 지키고 있는 군졸들이 겨울날씨에 동상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일어, 빈집 초가지붕을 뜯어 볏짚으로 군졸들이 쓸 깔개를 만들어 올렸다. 그런 상황에서 영의정이라는 양반이 한다는 소리가, "싸움을 하고자 한다면 말이 튼실해야 할 텐데 말 먹이 할 것이 없습니다. 군졸들이야 사람이니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하나 말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부디 깔개를 거두시어 말먹이 할 죽을 만드소서" 영의정의 이런 발언에 예조판서인가가 한 마디로 일갈한다. "줬다 뺏으면 군졸들이 삐진다."

 

이렇게 한심한 꼴을 하고 있으니 적의 우두머리인 청나라 칸이 조선의 임금과 사대부를 걱정해주기에 이른다. 다음은 청나라 칸이 조선 왕에게 보낸 문서.(본문 284-5쪽) 그 걱정해주는 맘씨가 하해와 같다. 글솜씨도 칸 자신의 말처럼 군더더기 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것이 너무 빼어나 옮겨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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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기어이 나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조차도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나의 선대 황제 이래로 너희 군신이 준절하고 고매한 말로 나를 능멸하고 방자한 침월侵越로 나를 적대함이 자심하였다. 이제 내가 군사를 이끌고 너의 담 밑에 당도하였는데, 네가 돌구멍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몸뚱이는 다 밖으로 내놓고 머리만을 굴속으로 처박은 형국으로 천하를 외면하고 삶을 훔치려 하나, 내가 너를 놓아주겠느냐. 땅 위에 삶을 세울 수 있고 베풀 수 있고 또 구걸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을 훔칠 수는 없고 거저 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너는 명을 아비로 섬겨, 나의 화포 앞에서 너의 아비에게 보이는 춤을 추더구나. 네가 지금 거꾸로 매달린 위난을 당해도 너의 아비가 너의 춤을 어여삐 여기지 않고 너를 구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너는 스스로 죽기를 원하느냐. 지금처럼 돌구멍 소게 처박혀 있어라.

너는 싸우기를 원하느냐. 내가 너의 돌담을 타 넘어 들어가 하늘이 내리는 승부를 알려주마.

너는 지키기를 원하느냐. 너의 지킴이 끝날 때까지 내가 너의 성을 가두어주겠다.

너는 내가 군사를 돌이켜 빈손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느냐. 삶은 거저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나는 이미 말했다.

너는 그 돌구멍 속에 한 세상을 차려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너의 백성은 내가  기른다 해도, 거기서 너의 세상이 차려지겠느냐.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서 내 앞으로 나오라. 너의 도모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내가 다 듣고 너의 뜻을 펴게 해주겠다. 너는 두려워 말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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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 왕은 끝까지 돌구멍 속에 대가리 처박고 있다가 궁댕이로 성문을 열고 나가서는 칸에게 똥침을 받고 만다.

 

아, 이래서 세상은 대가리를 써가면서 살아야 하는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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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 한국사회의 뒷통수를 까발리다!

 

작년과 올해, 두편의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소설을 읽게 되었다. 하나는 박범신의 <나마스테>, 또 하나는 김려령의 <완득이>. <나마스테>가 한국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주노동자와 그를 포함한 이주노동자 공동체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비극적인 시련을 과연 작가가 표현해 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슬프게 표현해 냈다면, <완득이>는 이주노동자 어머니를 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통해 그것이 비극이 아닌 경쾌한 삶의 에너지, 그리고 내 안에 오롯이 박혀있는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임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나마스테>와 <완득이> 모두 훌륭한 작품이지만, 나는 이 구리고 구린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불쌍하고 때론 불결한 이미지로 범벅이 된 이주노동자의 삶을 경쾌한 목소리로 전달해 준 <완득이>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에 나는 <완득이>에 필적할 만한 영화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이 영화는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와 거침없는 행동과 말투로 당당한 포스를 자아내는 10대 소녀의 아슬아슬한 러브스토리(??)를 통해 한국사회의 치부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한국사회는 한 일주일은 머리 안 감은 사람처럼 비듬 투성이이다. 아닌척 하고 앞머리에만 대충 왁스를 범벅하고 돌아다니는, 이 비듬으로 떡이 된 한국사회의 뒷통수는 <반두비>에 의해 하나둘씩 경쾌하게 까발려진다.

 

 

"저 사람이 끼어들어서..."

 

카림이 컵라면을 먹고 있던 편의점에서 우연히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로또를 사러 왔다. 그러나 편의점 직원은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안된다고 한다. 그러자 중년 남성은 "너 지금 내가 명박이 믿고 뉴타운 투자했다가 쪽박찬 놈이라고 무시하는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편의점 직원에게 시비를 건다. 이에 편의점 직원 왈 "그걸 왜 시급 3500원짜리한테 따지세요? 명박이 한테 가서 따지지!" 그렇게 시비가 붙은 둘은 결국 멱살잡이를 하는데, 이를 보다 못한 카림은 둘의 싸움을 말린다. 그런데 이 둘은 그 사이에 눈빛이 통했는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갑자기 연대를 형성해 싸움의 책임을 카림에게 덮어씌운다. 

 

뉴타운으로 쪽빡차고 로또에 하룻밤 희망을 걸다가 그게 여의치 않자 시급 3500원짜리한테 분풀이를 하고, 그러다 경찰서까지 끌려가자 엉뚱한 사람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게 바로 '내국인'들의 모습이다. 여기서 카림을 둘러싼 상황은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에서 동물원을 뛰쳐나온 동물들이 친구였던 사자가 야생성을 되찾아 점점 자신들을 고깃덩어리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 해 일종의 '제물'로 바닷고기를 회를 떠서 사자에게 갖다 바치던 상황과 겹쳐진다. <마다가스카>에는 온갖 금수(禽獸)들이 등장하지만 오로지 바닷고기들만이 눈빛이 없고 말할 수 없는 존재로 나온다. 중년 남성과 편의점 직원의 눈에 비친 카림 또한 마찬가지다. 실업자든 시급 3500원 짜리든간에 '한국'이라는 정상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계급적 지위를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은 이주노동자라는 무표정의 제물을 경찰이라는 국가기구에 상납한다. 그리곤 중년 남성은 이렇게 내뱉는다. "이딴 새끼 그냥 지네나라로 보내 버려요. 괜히 여기서 우리 일자리나 뺏지 말고." 한번도 카림이 했던 3D업종에서 일하겠단 생각을 한 번도 안해 봤을 법한 양반이. 아마 이 중년 남성도 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고,  08년엔 촛불을 들고 시청광장에 나와 "이명박 개새끼"를 외쳤을 것이다. (아마도...) 그리고 지금은 "재수없는 깜댕이"를 읊조리고 있다.

 

 

"자지 하나 달고 들어와서 빌붙는 주제에..."

 

민서의 절친이 된 카림은 민서의 친구들과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와의 만남에도 초대된다. 그 만남에서 카림은 내내 굳은 표정인데 반해, 원어민 강사는 김치가 햄버거보다 맛있다느니, 한국사람들 너무 좋다느니 수다를 떨고 있다. 카림의 어두운 표정이 불만이었던 민서는 돌아오는 길에 카림에게 화를 내며 말한다. "후진국에서 와서 그래." 하지만 카림은 그 잘난 선진국에서 온 원어민 강사가 한국 여자들을 두고 뭐라고 했는지 상기시킨다. "한국여자들 다루기 쉽데. 그게 무슨 말이겠어? 한국여자들 창녀같다고 말한거야." 카림과 원어민 강사의 영어대화를 못 알아듣고 내내 웃음만 짓던 민서가 이제서야 그 뜻을 알고 빡돈다. 그리고 학원에서 만난 원어민 강사의 '자지'를 휘어잡고는 말한다. "너 어제 뭐라고 했어? 다시 한번 말해봐. 한국여자들 다루기가 쉽다고?"

 

남성의 상징(??)인 이 '자지'는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주유소 알바에서 짤린 민서는 마사지 업소에서 남성의 '자지'를 만져주는 일을 한다. 남자들 세계에선 그것이 '남근의 상징'일지 몰라도 민서에게는 그저 돈벌이에 쓰이는 도구일 뿐이다. 게다가 업소에 출입하는 남성들은 그런 성적 서비스를 받는 것에 금전적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이는 곧 그 물건이 그냥 '물건'일 뿐이라는 거다. 원어민 강사의 자지를 휘어잡고 "다시 한번 말해봐"라며 윽박을 지르고, 카림을 출입국사무소에 신고한 민서의 '아빠 지망생' 기홍에게 "자지하나 달고 들어와서 빌붙는 주제에..."라는 일격을 가한다. 카림의 1년치 월급을 떼먹은 사장집에 찾아것는 "만수야, 너 언제 인간될래?"라고 말하며 집안을 때려부순다. 자지하나 달고 세상을 호령하는 남성들이 여성, 그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어보이는 여고생에게 시종일관 엿을 먹는 거다.

 

이 영화의 핵심은 '여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여고생이 '남성'의 세계에서 최하층인 이주노동자와 '반두비'로서 연대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서가 다른 남성들과의 관계에선 늘 공격의 타겟이 되었던 '자지'는 카림과의 관계에서만은 친밀함의 코드로 상징화된다. 이 영화에 '19금' 딱지를 붙이고 '원조교제를 조장한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인간들이 볼 때에는 불순한 장면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어떤 사람들은 카림이 순진한 여고생 꼬득여서 성관계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장면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 하는 인간들은 영화 안보고 지껄이는게 분명하다. 카림은 분명 민서의 손길을 뿌리쳤고, 집에 돌아와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물론 나중엔 둘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져 바닷가에 가서 키스를 나누기도 한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남녀가 사랑한다는데 누가 말릴꺼야? 20살 가까이 나이차이 나는 사람들끼리도 잘 만 결혼하는 세상에 여고생과 29살 청년의 사랑이면 예쁘게 봐줄 수도 있는 거지... 혹여나 무슬림 남자들은 여성들을 명예살인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난 이영애씨처럼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적어도 이런 말은 그 무슬림 나라에 가서 섹스관광 즐기는 남정내들이 벅지글거리는 한국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아닌거다.

 

 

촛불집회, 그리고 한국사회의 풍경

 

이 영화에서 계속해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2008년 한국사회를 집약하는 상징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학교 정문 바로 옆을 비추면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 벽보가 보이고, 민서가 던져놓는 가방엔 촛불소녀 뱃지가 달려있다. 신만수 사장집에 쳐들어간 민서는 테이블에 놓인 조선일보를 집어들고 흔들며 "이 따위 신문이나 읽고 있으니까 니가 쓰레기처럼 살지"라고 말한다. 심지어 마사지 업소를 그만둔 민서는 대문짝만한 광우병 소 반대 현수막이 걸린 서점에서 알바를 한다. (눈치 챈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서점은 바로 서울대 앞 고시촌에 있는 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이다.)

 

그런 역동적인 2008년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를 보면서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 국민이 한 목소리로 '광우병 반대'를 외쳤던 그 속에서도 여전히 이주노동자는 타자로 남아있고, 내국인들이 쳐 놓은 욕망의 울타리에 이주노동자는 '출입금지'를 선고받았다는 점 또한 영화는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명박이 탓하던 중년남성과 민서가 하나가 아니듯이 2008년 촛불도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가 아닌것을 하나라고 외치는 사이 우리는 카림을 울타리 밖으로 또 추방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점이야 말로 촛불에 동의했건 안했건 간에 '내국인'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아했던 한국사회의 지저분한 뒷통수가 아닐까? <반두비>는 그런 내국인들의 얼굴 앞뒤로 거울 하나씩을 갖다놓고 "자, 니 뒷통수좀 봐. 얼마나 더러운지..."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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