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from 읽고 보고 2005/06/21 12:10

그러니까 재수할 때 학원의 영어선생님은 버트런드 러셀의 팬이었던 모양이다.

성문종합영어에 지문으로 러셀의 글이 나오면 흥분해서 박정희를 욕하고, 이나라 지성의 한심함에 대해 한소리를 하시고는 지문해석에 들어갔다.

그때 지문의 출처로 나왔던 것은 '행복의 정복' 이었다.

 

                        

 

러셀이 얼마나 유명한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종합영어에 나온 지문은 해석하기에 너무 어려웠다. 어찌 어찌 단어들을 끼워 맞춰서 문장은 만들었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무어람....

 

이런 어려움은 나이가 먹어서도 버트런드 러셀을 읽지 못하도록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버트런드 러셀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두어달 전에 '행복의 정복'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권력' 이렇게 세권을 샀다.

행복의 정복이 그나마 쉬울거 같아서 놀러 가서는 틈틈이 읽었는데,

오래전에도(30년대이지) 자본주의의 폐해를 많이 지적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행복을 찾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을

나름대로 잘 정리했다고 생각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영어식 표현이 많아서 여전히 읽기에 거슬리는 부분들은 많았지만...

 

돌아와서는 두번째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는데,

이건 진짜 재밋다. 1956년에 책을 만들었는데, 그 때도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폐해를 사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해 가고 있다.

안그래도 종교라면 학을 띠는 산오리 입맛에는 딱 들어 맛는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니까 박정희가 왜, 그리고 우리나라의 힘 있는 인간들이 왜 그 당시에 버트런드 러셀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못하도록 막았을까 하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리고 재수 할때 학원 영어 선생님이 왜 침을 티기면서 러셀을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는 위정자들을 비난했었는지 이해가 간다.(당시에 위정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까딱 누군가 한마디만 하면 당장 긴급조치 위반으로 잡혀 갔을 때였으니까..)

 

"여러분도 세상을 둘러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서적 발전,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인종에 대한 처우개선, 노예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이 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세계적으로 조직화된 교회 세력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교회들로 조직화된 기독교는 이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가장 큰 적이 되어 왔으며 지금 현재도 그러하다는 것을 나는 긴 심사숙고 끝에 말하는 바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재산을 나눠줄 것이며, 싸우지 말 것이며, 교회에 가지 말 것이며, 간음을 벌하지 말 것을 가려쳤다. 그러나 구교도, 신교도들은 이런 점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욕을 보여준 일이 없다"

 

한때는 이 나라의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했던 기독교인들이 왜 이즈음에 와서는 오히려 위정자들보다 더 악랄한 사람들이 되어 가는가에 대해 분노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이즈음의 일도 아니고, 그저 그들의 일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도 버트런드 러셀을 좋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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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1 12:10 2005/06/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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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2005/06/21 14: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은 것이 공장생활할 때였어요. 노동에 숭고한 가치라는 것이 있다고 믿고 있던 차에 읽었던 러셀의 글은 충격이었죠. 이영희 교수의 우상과 이성을 읽고 정신을 잃었던 중학교때의 충격과 비슷한 정도로... 러셀을 이제야 좋아하게 되시다니~! 앞으로도 독후감 계속 올려주세요~~~ *^^*

  2. 산오리 2005/06/21 14:5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상과 이성을 중학교 때 읽다니... 산오리는 스무살도 넘어서 읽었는데(그즈음에 책이 나온건지, 어쨌는지 모르겠네, 우상과 이성도 금서였죠...ㅎㅎ)
    하튼 행인의 지적 수준에 놀라움을....

  3. 자일리톨 2005/06/21 21:5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러셀이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어요. 러셀의 책은 한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지라... 우상과 이성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4. 빈산 2005/06/22 20:3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진 자알보고 간다.
    파리 좋은 곳이지! 노래에도 나오잖아
    저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산오리를 수놓아준채 말이 없는데~

  5. 행인 2005/06/23 05: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자일/ 우상과 이성... 반공소년 행인에겐 충격일 수밖에 없는 책이었죠. 근데 지금 상황에서 보시면 그닥 충격은 없을듯 해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