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일에는 혁신이라는 말이 안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디나 혁신이라는 말이 붙어다닌다.

좋은 말도, 이쁜 것도 너무 많이 보고 들으면,

그게 좋은 것인지, 이쁜 것인지 무디어 지고 마는게

사람들 마음 아닐까

 

벌써부터 '혁신 피로'가 나타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혁신이 어느 정도로 퍼져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으리라..



해서 3일간 합숙 교육을 받고 왔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야 회사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일 없어서 좋다고 하는 말이 있으니까,

그런저런 핑계에, 일과 관련있는 교육이기도 해서

교육을 받으러 갔다.

 

청와대와 과기부의 연구개발 계획에 관한 강의로부터 시작해서,

한국 경제의 상황은 어떻고,

연구개발은 어떻게 하고, 혁신은 어떻게 하는지,

사흘동안 강의만 듣고 있었으니,

피곤한 일이기도 했지만, 도를 닦는 심정으로 단 1분도 땡땡이 치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물론 점심 먹고 나면 졸지 말라고, 웃음 치료, 비타민 건강, 이미지 컨설팅 등의

웃기고 재미있는 강의를 배치해 났으니 쉽게 졸지도 못했다.

 

지난해 워크샾에서 들었던 강의도 몇개 있어서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들어도 모르는 어려운 것들은 여전히 모르는 채 듣고 있었고....

 

문제는 마지막 강의였다.

교재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 전망과 이를 통한 경제발전...

2025년이 되면 1인당 GDP가 몇불이 되고, 2050년이 되면 또 몇불이 되고...

뭐 이런 내용이 주절이 주절이 실려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들었다.

박정희 시절에 천불 소득, 1억불 수출, 마이카 시대...를 외쳤듯이

이런 장및빛 그림이야 얼마든지 그릴수 있으니까..

강의는 이 교육을 주관한 연구원의 원장이 했다.

 

강의 초반에 교재는 참고로 하고 자신이 준비해 온 다른 자료를 중심으로 강의를

하겠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들었는데,

시작부터 별로 탐탁치 않다.

보수와 진보를 들먹이는데, 조선일보나 조갑제 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잠이나 좀 잘까 하고 한참을 졸다가 자다가 깼는데,

여전히 그러고 있다.

1시간 반의 강의시간 중 1시간이 넘었는데, 강의의 수준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더 가관인 수준으로 가고 있었다.

'베네주엘라? 그런게 무슨 나라냐?, 김일성은 초호판 생활을 하면서 국민들을 굶기는

북한이 무슨 나라냐? 그런건 나라도 아니다. 아프리카에 국가라고 할만한 나라가 있냐?'

'시민단체를 어쩌구 저쩌구 한다고 설치더니 뭐또 어떻게 한 아무개와 아무개가 한게  

무슨 시민운동이냐?'

'자본주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어쩌구 저쩌구.. 우리나라는 평등만 얘기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슨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겠냐?'

 

하튼 그런 야그들이었는데, 이양반이 도대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를 알고나 떠드는 것인지,

엥겔스도 들먹이는데,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린지 점점 피가 머리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저걸 계속 떠들게끔 냅둬야 하나, 제동을 걸어야 하나?

하고 한참을 더 들었는데, 도저히 짜증이 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계속 강의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들었다.

 

"원장님! 원장님의 지금 강의하시는게 무슨 박정희 시대에 반공교육하고 계시는 거

같습니다. 그런 정도의 얘기는 지금 우리들도 다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나라도 아니다라고 하신다든지, 우리나라가 평등을 너무 강조해서

이모양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너무 평등을 너무 소홀이 해서 그런거 아닌가요?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말씀하시는데, 제대로 알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우리가 3일동안 교육 받으면서, 현재는 다양성의 사회라서 다른 의견을 많이 듣고

토론하라고 배우고 있었는데,

원장님 말씀은 보수와 진보를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무슨 ***당이나

수구꼴통의 논리를 그대로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보수와 진보를 얘기하고, 그리고 균형을 갖추라고...

#$%^&*^^%$###......."

 

후다닥 얼버무리고서는 빨리 끝내겠다고 하더니, 강의를 끝냈다.

그래도 시간은 당초의 시간만큼 다 채운 거였다.

 

같이 교육 받던 한 친구가 강의 끝나고 다가 와서는

"정말 짜증났는데, 잘 하셨어요.."이런다.

 

수료식이 끝나고, 밖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다시 강의실로 올라 왔는데,

진행자가 나를 좀 보잔다.

그래서 따라 나갔더니, 원장이 좀 보자고 한대나...

원장을 만났더니,

"그런 뜻으로 강의한건 아닌데... 그리고 내가 젤 싫어하는게 *** 당인데..."

"그래요.. 알겠습니다."

"어디서 일하시오? 명함이라도 한장 주시오."

명함을 주고 받았다.

"하튼 그 패기만은 좋습니다. 나도 직원들한테 그렇게 패기있게 얘기하고,

일하라고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언제 우리 연구원에 오거든 한번 들르시오."

"네......."

 

그리고 강의실에 올라와서 수료증을 받고 다들 헤어지려는데,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진행자를 붙잡고 뭐라고 하고 있고,

진행자는 얼굴이 뻘개져서 당황해 하고 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 친구가 따라오면서 얘기한다.

"저도 저 강의 너무 심하다 생각해서 과기부에 항의하려고 했는데,

  담당자가 자기 얼굴 봐서 좀 참아달라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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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7 10:39 2006/05/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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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뻐꾸기 2006/05/27 13: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어느날 100인미만 규모의 공장에 검진하러 갔는데 노동자들이 혁신이라는 붉은 완장을 차고 다니더군요. 검진하고 있는데 대기중이던 혁신을 총괄한다는 자가 다같이 구호를 외치자고 해서 참으로 황당했던 기억이......더 놀라운 것은 그곳은 유기용제 노출이 너무 심해서 여름에 배앓이를 하는 작업자들이 속출한다는 것이죠. 무엇을 혁신하자는 것인지......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혁신'은 어디서 기원한 것이라 하더이까?

  2. 머프 2006/05/27 19:1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잼있네요~ 강의도 그렇고, 산오리가 딴지 거는 장면도 그렇고..
    하튼, 고생 하셨습니다~!

  3. 산오리 2006/05/30 13: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뻐꾸기/이 나라에서는 광풍이 잘 일어나죠..ㅎㅎ
    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