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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바퀴벌레...

그동안 내 방의 주인은 바퀴벌레였다. 내가 끔찍이도 바퀴벌레를 싫어하는 바람에, 바퀴벌레를 잡기는 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해하는 탓에, 바퀴벌레는 그야말로 무소불위 절대의 권력자로서 내 방의 모든 것을 지배했었다. 심지어 방주인인 나조차도 바퀴벌레가 행차하면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을 정도로.

 

그런데 고양이가 들어오고 나서 그 서열이 바뀌었다. 이를테면 바퀴벌레의 수난시대라고나 할까? 벌써 항상 눈에 보이던 손가락 세개 굵기의 바퀴벌레들이 이제 한 마리 겨우 남아 있다. 나머지는 방바닥 어딘가에, 그리고 싱크대 주위 어딘가에 개미가 들끓는 것을 흔적으로 발견했다. 그 주범은? 다름아닌 고양이다.

 

고양이가 바퀴벌레 사냥을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략 보름 전쯤. 그 전에는 너무 어려서인지, 아니면 집에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바퀴벌레를 잡는다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언제부터인지 휘리릭 날아다니며 바퀴벌레며 파리며 낼름낼름 잡아서 먹는다.

 

녀석들이 방안에서 사냥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날아가던 파리를 앞발로 때려 떨어뜨린 뒤 그걸 낼름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날 바퀴벌레 한 마리를 잡아 물고 방안을 누비는 그야말로 살떨리는 경험을 했다. 고양이 입에 물린 채 꿈틀거리는 바퀴벌레 뒷다리라니.(우웩~)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 이후 내 방은 고양이의 사냥터가 되었다. 때로는 파리도 잡아먹고, 때로는 모기도 잡아먹고, 가끔 길잃은 잠자리가 날아 들어오면 그것도 먹는다. 귀뚜라미는 고양이밥과 더불어 양대 주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 먹는 지, 아니면 잡아서 어디다 갖다 버리는 지 알 수 없는, 후자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퀴벌레다.

 

덕분에 이제 내 방의 서열은 완전 바뀌었다. 서열 1위는 역시 고양이. 이놈들 자리에 누우면 나는 피해서 앉아야 한다.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으면 키보드 들고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가끔 바퀴벌레라도 입에 물고 들어오면 나는 아예 방을 나선다. 그러면 방은 온전히 고양이의 차지가 되어 버린다.

 

서열 2위는 고양이에게 서열 1위의 자리를 빼앗긴 바퀴벌레. 아직도 나는 바퀴벌레가 보이면 일단 도망부터 치고 본다. 물론 바퀴벌레는 모습을 보이자 마자 고양이 두 마리의 추격에 온몸이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 죽거나 혹은 잡히거나 도망친다. 도망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는 잡혀 장난감 신세가 된다. 불쌍한 서열 2위라고나 할까?

 

마지막 서열 3위는 당연하게도 나다. 고양이 배고프면 밥 차려주고, 오줌 똥 싸면 오줌 똥 다 치워주고, 심심하면 놀아주고, 잘 때는 옆에서 난로역할 해주는 고양이의 종, 고양이의 노예, 바퀴벌레의 압제로부터 해방해주는 댓가로 고양이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한 바로 나다. 덕분에 여전히 바퀴벌레에게 쫓기면서도 요즘은 비교적 맘 편하게 지내고 있다. 아아. 바퀴벌레가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쾌적한 한경이라니.

 

하여튼 걷는 모습에서도 서열의 표가 확연히 드러난다. 고양이 놈들은 항상 자세를 꼿꼿이 세우고, 꼬리마저 치켜들고 걸어다닌다. 나는 주머니가 빈 티를 팍팍 내며 어깨를 구부정하니 숙이고 다니고. 바퀴벌레는? 여전히 빨빨거리며 잘도 쏘다닌다. 누가 보더라도 이 방의 실세가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고양이가 내 이불에 오줌을 싸도 한 대 때리지 못했겠는가? 고양이가 똥을 싸는 바람에 가방을 빨아야 했음에도 웃으며 넘어갔겠는가? 밥을 주지 않는다고 얼굴을 핥으며 맛을 볼 때는 발발 떨면서 재빨리 고양이밥을 차려 앞에다 대령했겠는가? 고양이가 내 애완동물인 게 아니라 내가 고양이의 애완동물이 된 기분이다.

 

하긴 이런 맛에 고양이를 기르기는 한다. 말 잘 듣는 고양이면 고양이가 아니다. 고양이는 항상 주인 알기를 애완동물 알 듯 해야 한다. 항상 자기가 방 주인인 줄 알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오만과 건방이 털 오라기 하나하나마다 뚝뚝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고양이다. 그래야 고양이를 기르는 맛이 있는 것이고.

 

어쨌거나 예전에는 쥐를 잡으려 고양이를 길렀는데, 이제는 바퀴벌레 잡이용으로 고양이를 기르게 되었다. 쥐를 보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때문일까? 아니면 바퀴벌레 보기가 쥐를 보기 만큼이나 흔해졌기 때문일까? 예나 지금이나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이 일생에 도움이 되는 동물이 고양이다. 그러니 충성을 맹세하지.

 

지크 고양이! 지크 쭈그리! 지크 꼬맹이! 우야뜬둥 고양이 만세! 반자이! 비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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