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SHOUT-3]첫 만남

 

'w-불현듯'의 홈페이지  http://www.icgaia.net/

 

그 때 박향미는 동해에 살았다

준하는 갓 백일(돌이 아니라 백일이었다고 한다...크...)을 넘겼고

허리가 많이 아팠던 향미는

외풍이 적지 않은 집에서 동생들과 같이 지내고 있었다



손님이 내고 싶은만큼 돈을 내고나서 

마음대로 차를 타 마시고 내키는 대로 쉴 수 있는 

희안한 無人카페를 운영하다가 중단하고서

노래강습을 하고 있었다

공연도 한다고 했다

 

유명한 독립다큐멘터리 전문 작곡가(흐흐...)가 된 지은 언니가

같이 가보자고 해서 낯선 길을 따라나섰다가

우연히 선물받은 한 장의 시디가 없었더라면

그 때 만난 박향미라는 사람은 내게

'특이하다'라는 이미지만 남기고 서서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돌 속에 갇힌 말>은 징그러운 작업이었고

편집이라는 걸 하는 동안 몇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고

낯선 프로그램들은 손에 익지 않아서 밤마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동해에서 받아온 그 시디가 생각났고

박향미가 부르는 '주저앉지 마라'라는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가 주저앉기 직전의 나를 일으켰고

나는 간신히 한 작품을 완성했다

 

2003년 12월 17일

'좋은 인연 만들었네요'라고 박향미가 사인해준 시디 한 장

이것이 인연이다

그리고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여름, 나는 이 나라에서 달아나려고 했다

달아나고 싶은 마음은 사실 해마다 감기처럼 옮아왔지만

학교를 물색하고 캐나다에 사는 막내에게 얹혀살 궁리도 하면서

구체적으로 계략을 짜기 시작한 건 올 여름이었다

유학이건 어학연수건 배낭여행이건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으니

무작정 그냥 떠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장비를 다 팔고 전세금을 받아서 뜨면

최소한 3년은 굶지 않겠지

기본적인 외국말만 배우고 나면 무슨 일이건 할 수 있겠지 

어느 나라에서 뭘하고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떠나지 못했다

 

유학을 하건 어학연수를 하건 간에

나라 밖으로 나가려면 준비할 것이 만만찮은데

용기와 돈과 시간이 하나같이 부족한 것도 문제였지만

나가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면 할수록

'달아난다'는 게 너무 명확해져서 낯짝이 간지러웠다

어쩐지 찜찜했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보자, 하고

이런 저런 절차를 밟아갔고 서류접수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무심코 그 노래를 들었다

'주저앉지 마라'였다

 

그 노래가 내게 말했다

지금 떠나는 게 용기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아니야, 지금 가면 주저앉는거야

그러자 내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몰라

 

하여간...이 노래가 문제야, 정말 문제야

박향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확실해졌다

나, 완.전.히, 코, 뀄다

 

며칠 전 슈아가 물었다

'노래하는 그녀들, 언제까지 작업할거야?'

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빨리 끝내고 싶어'

그래, 정말, 그렇다

 

10분짜리도 좋고 20분짜리도 좋다

한 두어달 만에 후다닥 작업해서 빨리 완성해놓고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1편을 아무리 빨리 완성한다고 해도

2편을 하려고 벼를 것이고

2편을 마치고 나면

또 3편을 만들겠다고 설칠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박향미와

W에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 난, 도망가야 하는데...

이것이 인연이다

그런데 나는 나라는 인간을 조금은 알고 있어서

뭘 한다고 해놓고 쉽게 포기할 가능성이 높기에

이거 하다 말고 또 도망가고 싶은 바람이 들까봐

허겁지겁 예고편이랍시고 올려놓고 마음을 다독이는 중이다

도망갈 때 가더라도 1편은 만들어놓고 가야되지 않겠나

 

불현듯,

그래 불현듯이였지

만나는 것도 사는 것도...

거 공연제목 한번 잘 지었다.

아마 공연도 엄청 잘 될거야

내가 아직은 양심이 쪼꼼 남아있으니

내 인생 책임지라는 말은 절대 안할께, 췟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