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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5
    50. 관객으로 돌아갑니다(2)
    토닥
  2. 2008/11/10
    49. 공연과 공연 사이
    토닥
  3. 2008/06/20
    48. 촬영 이어갑니다(2)
    토닥
  4. 2008/06/05
    [SHOUT-47]만나러 갑니다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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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토닥
  6. 2007/04/13
    다녀오겠습니다(4)
    토닥
  7. 2006/11/01
    토닥 토닥(6)
    토닥
  8. 2006/10/19
    [SHOUT-46]일단 정지(3)
    토닥
  9. 2006/08/31
    [SHOUT-45]9월 계획(2)
    토닥
  10. 2006/08/30
    향촌 시사회(5)
    토닥

50. 관객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작업하던 나루입니다

 

2007년 봄에 한국을 떠난 뒤로 기쁠 때도, 서글플 때도

가끔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지난 글들을 읽어보곤 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이 두번째 다큐멘터리를 부족하나마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 

이제 정말 그만하자는 마음이 절반이었던 거 같습니다

2010년 2월 25일 오늘,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건강이 계속 회복되지 않네요

두번째는, 제가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가기에는

여러 면에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인 듯 합니다

그 자격이라는 것이 제 마음대로 정해둔 것이라 자세히 밝히기는 좀 부끄럽고

첫 작업을 시작했던 1999년부터 10년 이상 계속 고민하던 것이라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은 그만하고

이제 관객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언젠가는...이라는 표현으로 여지를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단, 저는 관객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좋은 관객이 되기도 참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 담긴 여러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일도 필요하고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고민이나 한계를 냉철하게 짚어내는 일도 필요하고

그 다음 영화를 위해서, 그리고 제작진과 관객이 같이 성장하기 위해서 관객도 할 일이 있는데

영화를 한 편 보고나서 그 날 품었던 단상을 몇 줄로 정리하는 것 마저도

얼마나 게을렀던가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나, 싶습니다

 

이 작업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 보니

최근 2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제 관객들 앞에 공개하는 다큐멘터리들이라도 열심히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제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업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가끔 제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에서 안부인사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이라도 이 공간을 찾아주셨던 모든 분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늘 나를 믿고 격려해줬던 재원아, 늘 고마워 하고 있단다, 보고 싶구나.

 

제가 이 작업을 더 이상 못한다고 해서

할 말을 안하고 쓸 글을 안쓰고 스스로 소외되거나

그저 죽은 듯 누워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정권이 물러가는 날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 다음 정권도 함부로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면

그 정권 역시도 어서 물러나라고

서명도 하고 후원금도 보내고 포스팅도 하고 댓글도 달고...

멀리서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조금이라도 제 힘을 보탤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아래에, 작년에 쓰다 말았던 포스팅을 연결해두었습니다

재미없는 변명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해서 마무리도 못하고 얼른 페이지를 닫았던 기억이 나네요

변명 따위는 집어치우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라도 성실하게 하루 하루 채우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모두 건강하세요

 

 

* * *

 

2009/02/21 19:33:34 에 작성하다가 

미완으로 남아있던 포스팅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다음달이면 이 블로그를 연 지 꼭 3년이 됩니다

 

편집을 완료했다거나 가편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작업은 세상에 나갈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그동안 말없이 기다렸을 많은 분들, 출연했던 분들, 같이 작업했던 재원에게도

너무 죄송합니다

 

2003년부터 최근까지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나치게 소모하며 살아왔습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작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참여했고

지인의 소개로 어느 대학에서 다큐멘터리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수시로 홍보영상물이나 교육용 비디오를 제작하는 일도 병행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최선을 다 하기는 어려웠고

체력의 한계와 시간에 쫓기면서 해치웠던 그 많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혹시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늘 걱정입니다

이미 여러번 탈락했던 독립영화 제작지원공모에 계속 응하기 보다는

그 어떤 단체나 기관의 사전심사나 후원없이 스스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싶었고

그전보다 더 무리하게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고 한동안 일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2006년 겨울 내내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완전히 단념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2007년 봄이 되었을 때

딱 1년만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고 난 뒤에 결정하자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한국을 떠나서 낯선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날은 저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하게 생활하는 친구들을 통해

희망을 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을 소외감과 차별이 어떤 것인지 체득하면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건강을 되찾는 일도, 낯선 말을 익히고 배우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2008년 봄이 왔고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한 친구의 주선으로 취업비자를 취득할 수 있었고

제작비 마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하고 싶은 사람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면서 작업할 수는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한국을 오가면서 더디더라도 마무리는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귀국해서 2008년 4월부터 6월까지 서울에 머무는 동안

예상과 달리 꼭 만나야할 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했습니다

어렵게 만난 한 출연자의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뀐 이후 독립영화의 제작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몇 년 동안 분신처럼 사용하던 카메라와 컴퓨터, 편집관련 장비들이 완전히 망가져서

수리하거나 새로 장만해야하는 일도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단지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주지를 비롯한 제 삶에 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강이 다시 악화되지 않는다면 제작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하나씩 천천히 필요한 장비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최근에는 온국민의 지지와 언론의 호응속에서 한 독립영화가 빠른 속도로 흥행하고 있고

오랫동안 외면당해왔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듯 보여서

어쩌면 걱정하던 것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작업을 완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돈이나 장비나 관련정책이나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훨씬 좋은 장비로,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과 같이 영상작업을 할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작업하고 있나, 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답을 조금씩 만들어가면 된다고 믿었고

같은 길을 가는 모든 분들의 경험과 결과물을 통해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으로, 가슴에서 손가락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그 답이

언제부턴가 희미해져갑니다


제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고 저를 너무 혹사한 탓도 있겠지요

그 외에도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제가 '자격이 부족한 사람'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겉으로만 좋아보이는 그 환경, 그 장비, 그 전문가들의 조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매듭짓지 못한 그 해답은 계속 가슴 속에 남겨둘 생각입니다

앞으로 보게 될 선 후배들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더디더라도 조금씩 그 해답이 명확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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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공연과 공연 사이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 모습 말고

무대와 일상 사이

공연과 공연 사이에 놓인 얼굴을 보고 싶은데

지금으로서는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많은 것들을 놏치고 지나간다

아쉽고 미안하다

 

2008년 상반기에 금예, 연수의 공연이 하나 있었고

11월 7일에도 공연이 있었다

이번 공연은 인천에서 해마다 열리는 '황해연극제'에 참여한 것으로

지난 3년동안 인천 민예총에서 연극수업을 받았던 전문배우들과 초보배우들이

함께 만들었다(창작극이라는 뜻)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오는 동안

지금까지 촬영을 맡고 있는 재원이가 계속 수고를 했다

지난 토요일 촬영이 올해 마지막 작업이다

정말 고생많았다, 고마운 재원

 

이번 공연에 대한 간단한 소감이나 사진은 다음에...

지금 몹시 숨이 찬다, 바빠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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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촬영 이어갑니다

18일 낮12시 인천 동암역

약속 시간과 장소를 받아놓고 며칠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출국을 조금 미루더라도

단 며칠이라도 이 친구들을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과

지금은, 아마도 앞으로 1년 이상은 더, 모두 충분히 쉬어야할 시기니까

이번엔 가볍게 만나고나서 다음을 계획하자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했다

 

연수와 금예는 계속 연극을 하고 있고

향미는 이런 저런 일로 마음 고생을 제법 한 듯

오랫동안 중단했던 노래를 촛불집회 덕분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는데

올해부터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앞으로 3-4년간 방학이나 되어야 공연을 할 수 있겠다

이왕 시작한 공부, 부지런히 해서 얼른 마치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무대에 서면 좋겠다

 

일년 반 만에 만난 W, 부디 지금처럼만 남아주시오

자주 만나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만날 때 마다 촬영을 할거고,

10년이 걸리더라도 드문드문 조금씩 쫓아다닐거라고 말했으니

각오 하시고

 

각자 열심히 달리는 거야

또 만날 때까지 건강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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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47]만나러 갑니다

다들 어찌나 바쁘신지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을 잡기 어렵군요

연수와 금예가 학산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날 한번 만나긴 했는데

향미가 최근 집중해서 하는 일이 있다보니 아직 못만나고 있습니다

 

4월에 처음 통화하고

서로 계속 엇갈리다가

6월 18일 향미를 만나러 갑니다

 

자세한 소식은 그 후에 다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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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일년이 넘는 일탈여행(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을 마치고

4월 초순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사도 해야하고 작업공간도 새로 마련하느라 5월까지는 분주하겠지만

준비를 마치는 대로 촬영과 편집을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향미와 금예와 연수와 란희와 푸른살이를 비롯해서

인천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생각나네요

다들 별탈없이 건강하신지요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

곧 밝은 얼굴로 만나뵙겠습니다

 

오늘 Youtube에 지금까지 공개되었던 예고편을 올렸고

앞으로 이 블로그와 유튜브에서 동시에

작업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계획입니다

느리고 게으른 이 사람이 과연

온라인 작업일지를 얼마나 열심히 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또 달아난다고 해도 마음을 고쳐잡으면서

다시 또 다시, 작업을 마치는 날까지 애써보겠습니다

 

그럼, 서울에서 다시 인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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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편집을 하다가 큰 벽을 만난 뒤로

글도 자주 못올렸네요

제가 4월 27일에 여행을 떠나서

1년 뒤에 돌아옵니다

그 뒤에 또 시작해볼께요

가끔 찾아오셨던 분들 고마워요

 

오늘 이 블로그의 방명록을 감추고

모든 글에 대해 트랙백이 안되도록 했습니다

상업적 광고나 당황스런 단어가 담긴 영어 블로거들이

너무 자주 링크를 걸거나 방명록에 글을 남겨서요

오랫동안 비워둘텐데 혹시 안부인사 남기시려면

덧글로 달아주세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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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 토닥

작업용 블로그를 만들면서

아이디를 '토닥'으로 지었던 건

이 작업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탓도 있고

출연자들도 나도 스탭도 다독거리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급시동 급정거하지 않고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토닥토닥

 

그런데 처음 기획했을 때나

기획안을 수정했을 때나

이 블로그를 방문했던 지인들 가운데 여럿이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는 '의미'는 있는데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있는데 '의미'를 알 수 없다고도 했다

때문에 나는 또 엉거주춤, 혹은 망연자실했었나 보다

토닥토닥해야하는 결정적 순간에 급좌절,

그리고 역시나 잽싸게 내뺄 구멍을 찾고 있고나

내가 그렇지 머...흑흑

 

첫 작업도 5년만에 간신히 완성했다

물론 이 작업이 5년이나 시간을 끌면 곤란하지만

오늘, 갑자기, '설마 그렇게까지 되진 않겠지' 하면서 느긋해졌다

연말 연시에 인터뷰도 더 해보고 네 사람이 따로 진행하는 일도 좀 찍어보고

예고편 3탄이나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간만에 조언 듬뿍 해주고 간 지은언니도 고맙고

새 글도 없는 블로그를 자주 자주 찾아주는 친구들도 고맙고

말없이 배너를 매달고 기다려주는 블로거들도 고마워서

기운을 차리는 중

다들 미안한데, 이왕 기다린 거 아주 맘 푹 놓고 팍팍 기다리시오

다 잊어갈 때쯤 뭔가 나오긴 나올 것이오

여기서 새글이 없으면 나루 블로그로 놀러오시면 되고...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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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46]일단 정지

우물은 서늘하면서도 따뜻하다

내려갈수록 평화롭다

그러나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믿을 때만 그렇다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하면

그만한 지옥도 없다

팔을 휘저을수록 호흡은 고통스럽고

물은 차가와지면서 결국 온 몸이 바닥에 내려앉을 때

눈을 감아버리면 죽을 수도 있다

그 무엇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눈과 귀와 입를 열어서

숨을 쉬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산다

나는 살아서 기어이 이 밖으로 나갈 것이다

 

 



꼬박 석 달동안 매달렸던 일을 일단 정지하기로 한다

숨을 쉬어야겠다

 

부산에서 사흘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모조리 매진이었고

딱히 만날 사람도 해야할 일도 없었다

바다를 원없이 보고 추리문학관에서 녹차를 마시다가

시장에 들어가 국밥을 먹거나

지하철을 타고 끝에서 끝까지 가보기도 했다

 

많이 쉬고 많이 느긋해졌다고 믿었는데

아닌가 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담담하게 요리하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책도 읽고 바람도 쐬고 음악도 들으면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하려고 했던 내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자

 

재원이가 편집한 향촌사람들에 관한 영상은

지난 9월 KBS 열린채널 심사에서 선정되었다

예정대로라면 12월에 방영될테지만

출연하신 철거대책위 주민들 가운데 공개를 원하지 않는 분이 계셨다

처음 완성본을 시사할 때는 흔쾌히 허락하셨던 분들이

왜 최근에 마음을 바꾸셨을까

월요일 저녁에 재원이와 함께 찾아 갔다가

그 사이 달라진 상황을 알게 되었다

이 영상이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공개될 경우

오히려 사태수습에 걸림돌이 되거나

주민들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분들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분들은 내게 자꾸만 죄송하다고 했고

우리가 들어야할 말이 아니기에 마음이 아팠다

이런 과정도 공부다

우리가 뭔가를 설득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지금 가장 힘든 건 주민들이고 결정도 주민들이 해야한다

우리는 잃을 것이 없지만 이 분들은 생존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너무 늦게 완성해서 오히려 우리가 죄송하게 생각해야한다고

재원에게는 담담하게 타이르고 돌아왔는데

부디 향촌 주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또 그 곳에서 차갑게 보내지 않기를

서로 상하고 다친 마음들을 잘 보살펴서 환하게 웃게 되시길

공동임대주택이면 더 좋고 최소한 이주보상금만이라도 제대로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향촌에 관한 부분은

지난 8월부터 내가 편집하고 있는 <우리의 노래...>에도 제법 많이 들어가 있어서

상당한 분량을 덜어내야한다

집에 와서 편집용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나흘 째 안켜고 있다

켜고 싶을 때 켤거야

약한 사람들을 더 약하게 만드는

아니, 충분히 씩씩하지만 그 용기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듯

그녀와 나를 비웃는 듯한 이 세상에 화가 나서

간신히 벗어난 우울증이 도질까 무섭다, 젠장

 

<우리의 노래...>는 즐겁고 신나는 영화이길 바란다

내가 즐거워야 영화도 관객도 즐거워진다

기분 좋게 다시 시작하려면 월동준비부터 해야겠다

돈이 될만한 일거리도 다시 찾아보고

김치도 담그고 밑반찬도 몇 가지 만들어놔야지

밥도 제 시간에 먹고 잠도 제시간에 자고

다시 규칙적인 생활을 해보려고 한다

잘 될까? 잘 되겠지, 안되면 어쩔거야!

잘 될때까지 덤비는 거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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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45]9월 계획

재원이는 이제 향촌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상영할 것인지 조금 더 고민해봤으면 좋겠고

나는 편집을 다시 시작했다. 편집하는 동안 보충촬영이나 인터뷰같은 것은 나 혼자 해도 되니까

재원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어떤 내용인지 글의 흐름을 따라갈 필요는 없고 그 글을 쓰던 당시의 상황, 나나 재원이의 마음

그런 것을 다시 더듬어봤으면 싶다, 아주 멀리 왔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까

성수동 철거현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가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촬영하기 시작하면서

대중음악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도움이 될 사람에게 부탁도 했었지만

결국 내 게으름 탓에, 그리고 벌여놓은 다른 일정들에 쫓겨 시작하지 못했다, 부끄럽고 아쉽다

7월말까지 1차 가편집, 8월말에 2차 가편집, 그리고 9월말이면 마무리 편집을 하겠다고

처음에 세웠던 계획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건 6월말부터였다, 불타는 여파(?)가 오래갔다

 

그 여파는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해서 늦어도 주말까지는 영문자막을 넣어야 한다

난자에 관해 편집하던 것이 엊그제같은데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디비디도 곧 나온다고 하고 평가모임도 해야하고 몇 가지 더 정리할 일이 남아있다

예정대로 진행했더라면 9월부터는 대추리에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의 마무리 편집을 하고 싶었는데 불가능해졌다, 역시 내 게으름 탓이다

 

해마다 여름이 버겁고 길다. 점점 더 길어지는 여름, 그래도 가을이 온다

사람들이 결과를 궁금해할 때 마다 '잘하면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봄'이라고 느슨하게 말했으니

(기사도 그렇게 나갔고) 조급해하지 않고 느릿느릿하게, 하지만 조금 더 긴장하면서 일하려고 한다

기획을 작년 12월에 했고 촬영을 6개월 정도 했나, 그리고 아직 일년이 되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

아주 한심해졌을 때, 그래서 내가 이것 말고는 다른 할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느낄 때

그런 때가 되어야 슬슬 집중하는 성격이라서 시간을 많이 흘려보냈다, 지금이 그 때다

 

알바를 하나 마칠 때 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집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 마다 몸살이 나지만

어디 큰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치지 못할 결함이 생긴 것도 아니니까 금세 나을 것이다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을 겪으면서 내 머리에 슬었던 녹을 닦아내느라 아픈 것이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녹이 스니까 가끔 주저앉았다가 한참 쉬어야 한다

적절한 순간 컴퓨터까지 몸살이 나서 덕분에 아주 오래 쉬었다

 

1차 편집이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신나게 글 올려야지, 그 때까지는 일단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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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 시사회

비오는 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누구는 연락이 제대로 안 되었다며 다른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 원망이라는 것이 꼭 연락체계에 대한 원망만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너무나 긴 싸움이라서 그런 것 같다. 원망 받은 이 나중에 와서 여차 저차 하지 않았냐는 말 끝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다. 그것도 원망을 한 사람을 향한 눈물이 아니었다.

 

모두들 지쳐간다.

이 영화가 힘을 가졌으면 좋으련만 시사회 하면서도 궁색할 따름이었다.

왜 그랬을까?

좀 더 쉽게 다가가질 못했을까?

 

그래도 알려야 한다.

검색창에 "주거환경개선지구"를 치면 쭉 뜨는 내용이 엄청나게 많다.

전국 방방 곡곡에서 억울한 사연들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방송국은 주거환경개선지구에 대한 맹점과 허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방송국에서 보도하는 시기는 아마 이 문제가 불거질대로 불거졌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붉거질 대로 붉어졌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귀한 한 생명이 철거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잠잠한건 방송국과 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첫 장면부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저건 그래도 아직 건물이 남아있을 때 아니었냐며..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라고 허망하게 웃는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해한다. 좋은 일로 나가는 것도 자신이 나오면 왠지 어색한 것인데 슬픈현실에 놓인 자신을 보는 것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그냥 내보내라고 허락해 주셨다. 아직 그곳 주민들이 다 보신 게 아니라서 테잎을 놓고 왔다. 시간 나시는대로 보시고 문제될만한 부분 있으면 연락주시라고.

 

주거환경개선지구 투쟁에 향촌이 시발점이란 생각이 든다.

그 싸움이 길고 쉽게 끝나지 않는 것은 개발을 하는 이들이 이곳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면 다른 곳 의견도 수렴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인 것 같다. 도대체 그 생각들은 누구 생각인지...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도 이젠 그럴 때가 되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둘이 살아도 수없이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이 긴 싸움에 이제껏 원칙을 지키며 서로를 보듬고 산 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저들은 이곳에 내분이 생기면 생길수록 기뻐할 것이라는 것도 잊지말았으면 합니다. 긴 싸움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누군가 다른 사람을 욕하더라도 욕한이가 많이 지쳐있음을 잊지 말고 부둥켜 세워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겨울 준비 하셔야지요.

 

13년 전 공정선거감시단을 하면서 동두천 일대에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생활하시던 분들을 잠깐 스치고 지나간 것이 생각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나무로 대강 만든 방들이 있었고 통로에는 연탄난로가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어디 다른곳에서 철거를 당해 온 분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생활의 여유가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사셨겠지요. 그래도 그 분들이 해맑게 웃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의 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본을 제일로 생각하는 이들은 절대 깨우칠 수 없는 철학입니다. 그 철학은 인간 가족 내부 아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힘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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