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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5
    50. 관객으로 돌아갑니다(3)
    토닥

50. 관객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를 작업하던 나루입니다

 

2007년 봄에 한국을 떠난 뒤로 기쁠 때도, 서글플 때도

가끔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지난 글들을 읽어보곤 했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이 두번째 다큐멘터리를 부족하나마 마무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 

이제 정말 그만하자는 마음이 절반이었던 거 같습니다

2010년 2월 25일 오늘,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건강이 계속 회복되지 않네요

두번째는, 제가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살아가기에는

여러 면에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인 듯 합니다

그 자격이라는 것이 제 마음대로 정해둔 것이라 자세히 밝히기는 좀 부끄럽고

첫 작업을 시작했던 1999년부터 10년 이상 계속 고민하던 것이라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은 그만하고

이제 관객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언젠가는...이라는 표현으로 여지를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단, 저는 관객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좋은 관객이 되기도 참 어렵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속에 담긴 여러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일도 필요하고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고민이나 한계를 냉철하게 짚어내는 일도 필요하고

그 다음 영화를 위해서, 그리고 제작진과 관객이 같이 성장하기 위해서 관객도 할 일이 있는데

영화를 한 편 보고나서 그 날 품었던 단상을 몇 줄로 정리하는 것 마저도

얼마나 게을렀던가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나, 싶습니다

 

이 작업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 보니

최근 2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제 관객들 앞에 공개하는 다큐멘터리들이라도 열심히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제 이 블로그는 더 이상 업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가끔 제 블로그 http://blog.jinbo.net/hyunhyun/에서 안부인사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이라도 이 공간을 찾아주셨던 모든 분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늘 나를 믿고 격려해줬던 재원아, 늘 고마워 하고 있단다, 보고 싶구나.

 

제가 이 작업을 더 이상 못한다고 해서

할 말을 안하고 쓸 글을 안쓰고 스스로 소외되거나

그저 죽은 듯 누워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번 정권이 물러가는 날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그 다음 정권도 함부로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면

그 정권 역시도 어서 물러나라고

서명도 하고 후원금도 보내고 포스팅도 하고 댓글도 달고...

멀리서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겠습니다

그러니 혹시 조금이라도 제 힘을 보탤만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아래에, 작년에 쓰다 말았던 포스팅을 연결해두었습니다

재미없는 변명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해서 마무리도 못하고 얼른 페이지를 닫았던 기억이 나네요

변명 따위는 집어치우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라도 성실하게 하루 하루 채우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모두 건강하세요

 

 

* * *

 

2009/02/21 19:33:34 에 작성하다가 

미완으로 남아있던 포스팅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다음달이면 이 블로그를 연 지 꼭 3년이 됩니다

 

편집을 완료했다거나 가편 시사회를 한다는 소식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작업은 세상에 나갈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그동안 말없이 기다렸을 많은 분들, 출연했던 분들, 같이 작업했던 재원에게도

너무 죄송합니다

 

2003년부터 최근까지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나치게 소모하며 살아왔습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작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참여했고

지인의 소개로 어느 대학에서 다큐멘터리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수시로 홍보영상물이나 교육용 비디오를 제작하는 일도 병행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최선을 다 하기는 어려웠고

체력의 한계와 시간에 쫓기면서 해치웠던 그 많은 일들이

좋은 결과를 기대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혹시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늘 걱정입니다

이미 여러번 탈락했던 독립영화 제작지원공모에 계속 응하기 보다는

그 어떤 단체나 기관의 사전심사나 후원없이 스스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싶었고

그전보다 더 무리하게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고 한동안 일손을 놓아야 했습니다

 

2006년 겨울 내내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완전히 단념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2007년 봄이 되었을 때

딱 1년만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고 난 뒤에 결정하자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한국을 떠나서 낯선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날은 저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실하게 생활하는 친구들을 통해

희망을 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겪을 소외감과 차별이 어떤 것인지 체득하면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건강을 되찾는 일도, 낯선 말을 익히고 배우는 일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2008년 봄이 왔고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한 친구의 주선으로 취업비자를 취득할 수 있었고

제작비 마련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촬영하고 싶은 사람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면서 작업할 수는 없겠지만

틈나는 대로 한국을 오가면서 더디더라도 마무리는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귀국해서 2008년 4월부터 6월까지 서울에 머무는 동안

예상과 달리 꼭 만나야할 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했습니다

어렵게 만난 한 출연자의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뀐 이후 독립영화의 제작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몇 년 동안 분신처럼 사용하던 카메라와 컴퓨터, 편집관련 장비들이 완전히 망가져서

수리하거나 새로 장만해야하는 일도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단지 이 영화를 완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거주지를 비롯한 제 삶에 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강이 다시 악화되지 않는다면 제작비를 스스로 마련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하나씩 천천히 필요한 장비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최근에는 온국민의 지지와 언론의 호응속에서 한 독립영화가 빠른 속도로 흥행하고 있고

오랫동안 외면당해왔던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듯 보여서

어쩌면 걱정하던 것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작업을 완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돈이나 장비나 관련정책이나 독립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눈 한번 질끈 감으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훨씬 좋은 장비로, 오랜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과 같이 영상작업을 할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작업하고 있나, 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답을 조금씩 만들어가면 된다고 믿었고

같은 길을 가는 모든 분들의 경험과 결과물을 통해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으로, 가슴에서 손가락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그 답이

언제부턴가 희미해져갑니다


제 의지가 부족한 탓도 있고 저를 너무 혹사한 탓도 있겠지요

그 외에도 이유를 들자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은 제가 '자격이 부족한 사람'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겉으로만 좋아보이는 그 환경, 그 장비, 그 전문가들의 조직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매듭짓지 못한 그 해답은 계속 가슴 속에 남겨둘 생각입니다

앞으로 보게 될 선 후배들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더디더라도 조금씩 그 해답이 명확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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