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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우리의노래를들어라

나루 감독의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촬영현장

돈도 빽도 없는 여자들은 어떻게 예술을 하는가

6월의 마지막 일요일. 부천 송내역 앞에서 나루 감독을 만났다. 그의 뒤를 따라 인천 만수동 종합시장을 통과하니, 시장통 끝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엉클어져 있는 거대한 폐허가 나타난다. 바로 지난 3월, 이곳 향촌을 휩쓸고 간 강제철거의 흔적이다. 그 콘크리트 흙산 바로 옆, 철거집행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물인 향촌 철거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가 서 있다. 입구를 굳게 감싼 타이어 바리케이드를 통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계단마다 쪼그려 앉아 벽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새 페인트 냄새에 코가 아릿해지려 하는데, 이내 “나루 언니 왔네” 시원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하는 그는 박향미씨. 나루 감독이 현재 제작 중인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인 여성문화단체 ‘W’의 멤버다.

 

3층 철대위 사무실에 들어서자 위원장인 조영숙씨가 수박과 삶은 감자를 내온다. 나루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시작한다. “향미씨나 금예씨나 자주 오잖아요. 어떠세요?” “어른들은 둘째치고 애들이 너무너무 좋아해요. 이곳 분위기가 그렇잖아요. 가정적이지도 못하고, 낯설고. 그런데 문화학교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큰 힘이 되죠.” 박향미씨를 비롯해 W의 송연수씨, 최금예씨, 이란희씨는 이곳 향촌 신나라 문화학교에 선생님으로 참여 중이다. 하지만 이들을 W라는 이름으로 묶는 것은 좀더 순수한 의미에서의, 창작 활동이다. 영화, 연극, 노래, 인형극 등 각자 자신이 담당한 분야의 작품을 창작해 하나의 종합극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 지난해 겨울을 시작으로 벌써 몇 차례의 공연이 있었다. 박향미씨를 제외한 세 사람은 이날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흔적은 철대위 곳곳에 있다. 옷조각과 양말로 만든 손인형, 찰흙 공작, 소원을 담은 솟대 등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벽화 작업 취재를 하려는 듯 나루 감독이 계단 끝에 카메라를 들고 올라선다. 복도 곳곳에 색색의 그림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을 때마다 나루 감독의 카메라도 덩달아 바쁘게 돌아간다. 제 손보다 큰 페인트 붓을 집어든 아이들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났다는 자원봉사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붉은 스프레이로 얼룩졌던 공간에 꽃과 집을 그려넣는다. 벽화를 제안한 것은 박향미씨. “무조건 막아서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아니라 이곳을 개방하고, 문화 일꾼들을 모아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이 건물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헐지 말자, 서명을 하는 꿈을 꿔요.” 그의 말에 나루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CD 한장에서 시작됐다. 5년이라는 작업기간과 천정부지로 늘어나는 제작비, 손에 익지 않는 편집 프로그램과 1천 시간 분량의 테이프. 첫 번째 작품이었던 <돌 속에 갇힌 말>을 작업하며 수없이 좌절의 순간을 맛보았던 나루 감독은 “울고 싶어질 때마다” 박향미씨가 만들고 부른 노래 <주저앉지 마라>를 들으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렇게 자신의 첫 작품을 ‘빚진’ 나루 감독은 박향미씨를 차기작의 대상으로 점찍었고, 그를 통해 W를 알게 됐다. “이 나라에서 예술을, 그것도 돈도 빽도 없는 여자들이 예술을 한다는 게”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4명의 여성이 모두 8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치며 ‘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이고, 결혼과 출산의 고비를 넘기며 아픔을 겪었다는 점도 감독과의 접점을 형성했다. 사회변혁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다큐멘터리를 택했지만, 결혼이라는 의례를 거치며 가정과 일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감독에게, 그녀들의 노래는 바로 우리의 노래였다.

 

이튿날, 나루 감독의 발걸음은 광화문을 향했다.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를 막 배우기 시작한 이란희씨의 모습을 담는 것이 오늘 나루 감독의 첫 목표.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각기 흩어져 자신의 일상을 걷고 있는 이 시간들을 감독이 굳이 담고 싶어하는 까닭은 뭘까. “물론 가장 짜릿한 건 공연을 하는 순간이죠. 카메라를 던지고 같이 춤추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일상은 ‘밑불’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모닥불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장작으로 밑불을 계속 지펴줘야 하잖아요. 그처럼 일상 속에서 쌓인 것들이 모여서 공연이란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 거죠.” 극단 ‘한강’ 출신으로 W에서 영화를 담당하고 있는 이란희씨는 한창 편집 작업에 몰두 중이다. “편집실이 워낙 작아서 앵글이 잘 안 나온다”면서도 능숙한 동선으로 움직이며 스케치를 마친 감독은 이내 인터뷰를 시작한다.

 

“다큐를 배우면서 참 오랫동안 사회 돌아가는 데 무심했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란희씨. 그는 지금 인천 미추홀 사회복지관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선물할 ‘이미지 자서전’을 준비 중이다. 배우에서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다시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드는 그에게 예술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일상 속의 작은 실천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찍는 사람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고,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나루 감독의 시선과도 일치한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원래 우리 생활과 독립되어 있는 다른 영역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많이 멀어져버렸어요. 이 친구들은 조금 느릴지는 모르지만, 각자의 목소리로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은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민예총에서 극작 수업을 받는 최금례씨와 송연수씨를 만나기 위해 나루 감독은 다시 한번 인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미처 충분한 양해를 구하지 못해서였을까. 강사의 표정이 밝지 않다 싶더니, 최금례씨와 송연수씨가 작은 목소리로 촬영이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강의 시작 전 5분 정도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루 감독은 곧장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장비를 챙기며 계단을 향하는 그는 그저 담담하다.

 

“2, 3번 오다보면 찍게 돼요. 전에는 찍다가 도강하고 종강 파티까지 같이 한 적도 있어요. (웃음)” 상황을 만들고 통제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선 밥을 짓듯 넉넉히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나루 감독의 여유는 그렇게 해야만이 비로소 ‘진짜배기’를 얻어낼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의 결과가 아닐까. “다큐멘터리가 가장 좋은 건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곧 나를 완성시켜가는 과정이죠. 전 지금 3차 성징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지난해 겨울 시작되어 어느새 촬영 분량만 테이프 100개를 넘어선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는 7월 내로 촬영을 마무리지을 예정이지만, 완성되기 위해선 지금까지보다 더 힘든 과정이 남아 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엮는 작업이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의 시점은 네명의 여자가 W로 만나기 훨씬 전, 사회운동의 최전선에 서서 활동하던 그때와 지금을 교차할 예정이다. 당시의 극단과 노래패가 보관하는 사진, 유인물, 비디오 기록들을 시점의 이동 장치로 이용해 감독은 네 여성들 개인의 역사와 함께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의 역사를 여성의 시선으로 성찰해보고자 한다. “지금 찍어놓은 분량부터 천천히 모니터링하는 중이에요. 워낙 수습해야 할 일들을 많이 벌여놔서, 올해 안에 끝나면 다행이죠. (웃음)” 이르면 올 겨울, 늦으면 내년 봄 소식과 함께 W의, 나루 감독의 노래가 찾아온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안에 잠들었던 각자의 목소리를 일깨우기 위해.



“우리 공연이 하나의 여성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꽃다지 가수 출신 박향미 인터뷰


꽃다지 가수 출신인 박향미씨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운동을 했던 많은 이들 사이에서 ‘스타’다.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굵직한 집회 현장에 빠지지 않는 그가 불현듯 3명의 여자들과 W라는 단체를 결성했고, 투쟁가가 아닌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비로소 “진짜 여성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그를 만나 W에 대해 물었다.

-W의 다른 멤버들과는 언제, 어떻게 만나서 함께 작업하게 됐나.
=2001년에 연극 <전태일>을 하면서 금예, 연수, 란희와 함께 작품을 올리게 됐다. 그때 인연이 됐는데, 내가 아이를 낳고 쉬는 동안 그들도 다 쉬었더라. 서로가 공백이 있었고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혼자 하기는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었다. 금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다들 서로 ‘삼각대’가 되어주자고 했다.

-W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W는 여성의 가슴을 상징한다. 당당하게 여성의 신체를 보여주자는 의도다. 동시에 W는 발뒤꿈치다. 발을 딱 짚고 서서 멀리 보려고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좋은 의미들이 많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인 것 같다.

-각기 다른 분야의 작품들을 모아 하나의 공연으로 묶는 형식이 독특하다.
=사실 큰 주제가 있다기보다는 각자가 만든 공연을 조금씩 잘라내서 보여준 것인데, 사람들은 거기서 연결된 주제를 찾더라. 멤버들이 다 여자고, 엄마다 보니까 결국 이야기들이 다 여자 이야기, 엄마 이야기가 된다. 그래선지 여성 관객의 호응이 높다. 자기 이야기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셨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일단 계획은 일년에 한번, 새 작품으로 공연을 하는 거다. 궁극적으로는 W의 공연이 하나의 여성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이건 내 꿈인데, 2박3일 동안 축제를 하는 거다.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만들기도 하고. 이런 상상을 하면서 우리끼리 “또 일이 커진다~수습해야 돼”라며 농담도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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