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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 2007/03/27 00:12

1. 자아 // Id -- Ego -- Super Ego
2. 그림자 // '나 Ich' 의 어두운 면 (무의식적 측면)
3. 의식과 무의식 // 유동적인 환경에서 똑같은 유형을 유지하며, 
순간적인 내용에서 완전히 독립해 있는 일정한 유형의 심리적 활동
4. 상징 // 귀에 익은 용어나 이름, 그림이지만 그것의 관습적이고, 잘 알려진 의미뿐 아니라 아직
표현 안된 어떤 특수한 의미를 내포
5. 아니마와 아니무스 // 아니마: 남성의 무의식적 여성성   아니무스: 여성의 무의식적 남성성
6. 외적인격과 내적 인격 // 사회적 동물: 다른 사람의 마음(외부)와 반응 → 외적 태도(persona)

                                         정신적 존재: 자신의 마음(내부)와 반응 → 내적 태도(seele)
7. 원형 // 심리요소를 일정한 이미지로 배열시켜 원형적 성격을 부여하는 요인 및 동기들.

                의식의 발달 이전에 존재하며, 심리의 구조적 우성(the structural dominants)을 형성.

                선험적 조절인자(prioriconditioning factors)로서, 생물학적 '행동양식'의 특수한

                심리학적 사례를 나타내며, 모든 것에 자신의 특수한 성질을 부여
8. 무의식 // 집단 무의식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심리 내용) :

                   무의식의 표층에 있는 개인적 무의식은 체험된 자극들의 억압된 심리 내용으로,

                   흔히 감정으로 채색된 복합체(complex)를 이루며, 기억에 의해 상기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심층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

                   집단적 무의식은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태고적이고 신화적인 사고형식.

                   이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적인 심리적 기체다.

                   집단 무의식의 내용은 태고적이고 시원적인 상징적 표상이며, 보편적 전형으로 원형
9. Persona // 고대 그리스인 연극인들이 쓰던 가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 '페르조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해 얻은 결과
0. 개성화 // 개성,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개별화를 통해 그는 하나의 개인이 되는 동시에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개별화과정은 의식의 지도 아래에서,

                   성실하게 내면의 심리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인 것

 


1. 자아


자아는 자기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의식의 세계는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왜냐하면 그 세계는, 의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식으로서의 자아는 무의식으로서의 자기를 지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꿈이다. 꿈은 무의식의 활동이 우리의 인식 속에 지각되는 현상이다. 자기는 끊임없이 자아에게 꿈의 상징들을 통하여 자신의 메세지를 전하려고 한다. 이제 꿈은 자기와 자아가 만나는 접촉점이다. 나를 넘어선 세계와 나의 세계는 꿈을 통하여 이어진다. 그래서 융은, 꿈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이고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길이 저 심연에서 고요히 놓여있는 자기를 올바로 이해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자기와 자아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사건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한 등산가가 융을 찾아왔다. 그 등산가는 어느 날 밤 높은 산의 정상에서 허공으로 발을 내딛는 자신의 꿈에 대하여 말해주었다. 융은 그 꿈을 다 듣고 등산가의 앞에 닥쳐올 위험을 알았다. 그리고 융은 꿈이 주는 경고를 강조하여 그에게 스스로 등산을 자제하도록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허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결국 등산 중에 발을 헛디뎌 "허공으로" 낙하하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아의 미래를 감지하고 그것은 꿈으로 전달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등산가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융은 의식적인 이성이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두컴컴한 순간일 지라도, 인간의 무의식은 정확히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융에게 있어서 <자기실현>이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자아>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 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원형의 세계에서 뿜어내는 진실한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 그 것이 융이 말한 자기실현의 역사이다. 융에게 있어서 삶은 자아가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은 바다 위에서 출렁거리는 파도와 같은 자아가 수 천 해리 깊이를 가진 마음의 중심인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중심으로 향해 가는 과정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다. 특히 상징과 신화의 언어를 상실한 현대 일 수록 자아가 자기를 찾는 여정은 그만큼 힘겨워진다. 왜냐하면 분화된 의식으로서의 자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기의 세계를 내동댕이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징과 신화의 상실은 자기 상실이다. 이러한 상실의 시대를 가로질러 어둠의 세계인 자기의 세계를 빛의 세계인 자아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과정 이 깨달음의 과정, 즉 <자기실현>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의식의 중심을 자아(나)라고 한다. 감각적 신경계와 환경의 자극에너지 사이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여 내적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자아(ego)는 의식의 모든 인격적 작용들의 주체이자 의식내용들이 의존하는 준거점이다. 그것은 체험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주체이자, 의식 안에 재현되는 모든 것을 의식하고 지향하는 주체이다. 주체는 작용하는 한, 무한히 의식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제한된 의식내용들을 갖는다. 외부에 존재하지만 아직 체험되지 않은 것은 모르는 것으로 남는다. 그런데 내부의 심리적 작용 안에도 자아와 연결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것들이 있다. 이 무의식적 심리작용들도 우리 인격의 총체성을 구성하므로, 나의 총체적 인격은 내가 아는 나, 즉 자아보다 더 큰 어떤 전체성이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기 위해서는 무의식적 심리영역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의식에 의해 완전히 파악될 수는 없지만 언제나 현실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총체적 인격성을 자기(self)라고 부르자. 의식적 자아의 자유의지는 외적 세계의 필연성들과만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자기의 현실과도 충돌한다. 더구나 자기의 작용은 무의식적이므로, 자아가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자아의 자유의지는 자기의 도전에 응전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많은 행동들이 자유 선택에 근거한 것이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심적 충동에 의한 것이 된다. 그리고도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나는 내 인격의 부분이지 전체가 아니다. 의식적인 자아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매우 큰 정도로 무의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융은 의식적 마음의 구성을 가리키기 위해 '자아'라는 말을 쓴다. 자아는 의식적인 자각, 기억,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 전체 속에서 자아는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의식에 대한 문지기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아는 퍼스낼리티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보증한다. 오늘의 자기가 어제의 자기와 동일한 사람으로 느끼는 것은 자아 덕분이다. 또한 개성화와 자아는 긴밀히 협력해서, 항상 전진하는 개별적 퍼스낼리티를 발달시키고 있다. 인간은 자아가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안에서만 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
자기는 집합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이며, 질서, 조직, 통일의 퇴고유형이다. 자기는 모든 퇴고유형들과 콤플렉스 및 의식 속의 표현형태를 끌어당겨서 조화시키며, 퍼스낼리티를 통일하여 그것에 일체성과 불변성의 감각을 준다. 또한 자기란 의식적인 마음이고, 동시에 전체 심리의 중심이 되며, 우리들이 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내용은 자아이다.
우리는 자기를 어떤 개념으로서 규정하기는 힘들고 단지 경험으로 이해될 수 있는 어떤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는 자기, 즉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지점에 대해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자기인식은 자기실현에 이르는 길이며, 완전한 자기의 실현을 이룩하기보다는 자기를 인식하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융은 강조한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더욱 조화를 이룬 생활을 누릴 수가 있고 초조와 욕구불만을 느끼는 경우도 적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 속의 그 기원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무의식을 모르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남들에게 투사한다. 즉, 자기 자신의 결점을 자각하지 않고, 그것을 남들에게 전가시켜 남들을 비난하고 힐난한다.

 

 

2. 그림자 (The Shadow)

 

그림자 : '나 Ich' 의 어두운 면 (무의식적 측면)    ex) 지킬박사와 하이드, 흥부와 놀부, 콩쥐와 팥쥐,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텔레스, 영화 "Face Off"의 트로이와 숀
'나'는 다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못 살게 군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결점을 못 보는 장님이 된다. 무의식 속에는 나도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어 나도 모르게 나로 하여금 실수를 하게 해서 내가 지향하고 내가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혀 자기가 모순을 감행하는지를 모르고 자기는 늘 정당하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되면 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지게 마련이다. 선한 나를 주장하면 할수록 악한 것이 그 뒤에서 짙게 도사리게 되며 선한 의지를 뚫고 나올 때 나는 느닷없이 악한 충동의 제물이 됨으로써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1) 그림자의 속성
① 의식의 바로 뒷면에 위치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 내용
② 의식화 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미분화된 채로 남아있는 원시적인 심리적 경향, 심리적 특징
③ 외계에 투사되거나 자아가 의식하는 경우 자아가 자기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 꺼리게 된다.
④ 그러나 그림자는 악하고 부정적이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버려져 있었을 뿐
⑤ 따라서 의식이 되면 그 내용들은 곧 창조적이며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⑥ 그림자의 존재는 그림자가 외계에 투사됨으로써 알 기회를 갖게 된다.

2) 그림자의 투사
① 투사는 자아가 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되는 것이어서 자아는 단지 투사된 대상에 감정적으로 집착함으로써 무의식적 내용이 투사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② 이 경우 강렬한 감정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투사대상에 대하여 집착하게 된다.
③ 감정 : 긍정적 - 미혹, 감동 / 부정적 - 혐오감, 불쾌감 -- 그림자의 경우에는 부정적 감정반응이 많다.
④ 현상 - "왜 그런지 모르게", "공연히" 특정 대상에 대해 부정적 감정반응을 일으킨다.
⑤ 상당히 자아의식의 특징과 닮았으면서도 전혀 예기치 못하게 열등한 경향을 띤다.
⑥ 그림자의 투사는 곧잘 자아와 비슷한 대상에 향하는 것이 보통 : 동성의 친구, 형제 자매, 동료, 상사, 시누이와 올케
⑦ 비슷한 부류의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개 그림자의 투사에 의한 오해 때문
⑧ 반대로 그림자가 긍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 공연히 좋아지게 된다. : 중고시절의 '짝'은 대개 이렇게 형성된다.

3) 집단적 그림자 Collective shadow
① 그림자 : 개인적 성향
② 집단에 공통된 그림자 : 가치판단의 기준이 그 무리에 공통된다면 이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그 집단 구성원 모두에서 의식에서 빼돌리게 되어 공통된 그림자를 무의식 속에 형성
                          → 집단적 그림자의 형성 → 집단적 편견을 강화시켜 집단의 결속과 타 집단과의 경쟁을 만들게 된다.
③ 비슷한 성격의 집단에서 발생 : 지역감정 (영호남), 한국인과 일본인, 연고전
④ 민족적 또는 인종간의 갈등
⑤ 이념이나 주의주장간의 그림자 :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유물론과 유신론
                                  ex)사도 바울, 성 어거스틴 등이 그리스도의 환영을 본 뒤 기독교인이 된 사건. 정치적 지도자가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를 받기도(김대중)

4) 그림자 원형 Archetypal shadow(근원적 유형 Archetype으로서의 그림자)
① 개인적 그림자와 달리 투사 대상에 심각한 감정반응이 일어난다.
② 파괴적 본능 - 카인과 아벨 이후부터 인류의 근원적 그림자상
③ 전쟁과 대량 학살의 현상 : 근원적 그림자상의 집단적 투사를 바탕으로 실시되었다.
④ 인간이 귀신이나 마귀, 괴물로 보이는 경우 : 자아는 마치 정의의 화신, 가장 인간다운 자유의 투사로 생각(그림자 원형의 투사)
   ? 중세의 마녀사냥 - 정신질환자를 원형적 그림자에 투사하여 마녀로 몰아 학살함
   인간이 하잘 것 없는 파리 새끼 정도로 보이는 경우 : 스스로가 초인이나 신의 권력과 동일시 (그림자 원형과의 동일시) ? 네로황제의 로마시내 방화사건
⑤ 정신분열증 환자의 피해망상 : persecutor의 내용은 달라지나, 피해망상이 항상 존재해 온 것은 마음 속 초인의 위치에까지 극대화된 그림자가 여러 탈을 쓰고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⑥ 초인적 속성 : 파괴와 정복, 승리를 지향하는 근원적 그림자 ? 007, 헤르메스, 이카로스
⑦ 근원적 그림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개체의 의식을 어느 정도 지배하고 있으며 의식이 그것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⑧ 프로이드의 죽음의 본능 (Thanatos)과 유사 - 상당히 비관적인 개념으로 타나토스가 생의 본능을 파괴하려 든다고 생각함.
   이에 비해 그림자 원형은 타나토스와 같은 개념이 아니며 선의 기능에 대응한 악의 기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기능or창조적 기능으로 바뀔 수 있는 요소로 파악
   → 창조적 기능이 억압될 때 파괴적 성격을 띤다.
⑨ 자아의식이 무의식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고자 노력하느냐에 따라 파괴적, 위험하고 부정적인 작용을 나타내는 표면적 그림자가 창조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

5) 그림자의 의미
① 원시민족 - 그림자는 생명력의 일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 그림자가 희미하거나 없어진다는 것은 생명력이 약해지거나 죽음을 의미.
② 분석심리학 - 그림자는 인간 정신의 분화의 산물이며 인격발전의 필연적인 소산.
③ 의식이 미분화된 유아기의 그림자는 상대적으로 희미하며 자아의 의식성이 뚜렷해질수록 그림자가 확실해진다.
④ 청소년기 - 나와 너를 구별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기 시작하는 시기로 자아의 도덕적인 순수성에의 지향과 병행하여 짙어지게 된다.
⑤ 그림자가 외계에 투사됨으로써 인격의 전체성을 실현하기 어려워지므로 외계에 투사된 그림자를 다시금 자아에게 되돌려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

인격의 열등한 부분. 모든 개인적, 집단적, 심리적 요인의 총화로서 의식적으로 선택된 생활형태와 맞지 않기 때문에 살릴 수 없었고, 의식과는 대조적인 경향을 갖추고 무의식에 내포된 비교적 자율적인 인격의 부분이다. 그림자는 의식에 대해 대상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작용은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꿈의 상으로서는 그림자는 꿈꾼 사람과 샅은 性의 상이다. 개인적 무의식의 부분으로는 그림자는 자아에 속한다. 그러나 원형으로는 집단적 무의식에 대한 "반항자"의 원형이다. 그림자의 의식화는 분석의 시초의 작업이다. 그림자를 간과하거나 억압하는 것, 이와 마찬가지로 자아의 그림자와의 동일시는 위험한 정신의 해를 유도할 수 있다. 그림자는 본능의 세계에 근접하고 있으므로 그것의 지속적인 고려는 필수적인 것이다
융:"그림자 상은 주체가 인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에게 항상 되풀이해서-직접 간접으로-들이 닥치는 모든 것을 인격화한다. 그러니까 예컨대 그것은 열등한 성격 경향과 그 밖의 상용될 수 없는 경향들이다."
"그림자는 ... 저 감추어진, 억압된, 대개 열등한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인격이며 그 마지막 分枝가 동물의 조상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하여 무의식의 전역사적 측면을 포괄하고 있다. ... 인간의 그림자가 모든 악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무의식적인 인간, 즉 그림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성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일련의 좋은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를테면 정상적인 본능, 합목적적 반응, 현실에 충실한 지각, 창조적 충동 등이 그것이다. "
그림자는 집단 무의식의 불변적 원형이지만 대부분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접근하기 쉽고 체험하기 쉽다. 그림자는 인격성의 어두운 측면이므로 자신을 언제나 정당한 존재로 생각하려는 자아에게 윤리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따라서 먼저 내 안에 어두운 인격적 측면이 실존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아는 그림자에게 심하게 저항한다. 자아가 형성될 당시 아기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수동성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환경의 도전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한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갖게 된다. 무력감과 열등감은 수치심과 비하감으로 연결되어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인격 안에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림자는 본래 환경에 대한 적응실패에서 형성되지만, 선을 지향하는 자아는 적응에 실패한 자신이 악하다고 비난받을까봐 두려워서 실패한 자신을 억압한다. 무력한 죄로 억압된 자신은 어둠으로 밀려나가 분개심을 키우고, 자아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 올라 그 분개심을 상황에게 투사한다.
우리의 실수, 잘못, 부적응, 악의, 죄, 나쁜 습관들은 그림자와 연결되어 인격 안에 어둠의 세력을 형성한다. 그것은 열등감으로 인해 초래되었으므로, 자신에게 경쟁심이나 열등감을 유발하는 사람들에게 투사되어 그들에게 원인 모를 분개심을 느끼게 한다. 웬지 거북하고 긴장되고 보기 싫고 화가 나는 대상은 내 그림자의 투사를 받은 것이다. 분개심, 질투심, 적대감, 원한, 분노의 원인은 자신의 그림자에 있지만, 의식적 자아는 그 원인이 상대방의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 투사가 발생한 것이다.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심적 에너지는 무조건 방출되고자 원하기 때문에 적당한 대상에게 자신의 감정적 에너지를 내던지는 것이 바로 투사이다. 투사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초래한 환상이다. 무의식은 현실세계에 환상들을 내던지고, 의식적 자아는 그것을 현실로 해석하여 스스로를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킨다. 현실은 점점 더 냉혹하고 악의적인 것으로 해석되므로 주체는 점점 더 자기연민적이고 자폐적이 된다. 그 결과 그는 자신과 다른 이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러한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투사는 무의식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투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격 안에는 자신이 흔쾌히 인정하기가 아주 힘든 어둠의 세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분개심과 적대감이 일어나는 경우마다 투사된 대상으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분리시켜 무력감을 느끼는 자신의 심리적 맹점부분에로 연결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여 드러나는 자신의 편견들과 비열성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아를 분발시켜 선한 양심 안에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돌이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래 그림자는 그 자체가 악하고 열등한 것이 아니라 미처 의식적으로 세분화되지 못한 채 무시된 것이므로, 그림자를 의식하여 개성화하면 그것은 의식에 대해 상보적이고 보완적인 적극적 기능을 수행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어떠한 것이 되는가는,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에 의해 결정되는데 반해, 당사자 자신의 성을 대표하며, 동성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태고유형을 ' 그림자 '라 한다. '그림자'는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본능을 포함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소용되는 현실적 통찰과 적절한 반응의 원천이다. 그림자는 다른 어떤 태고유형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모든 태고유형 중에서도 아마 가장 강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할 것이다.
자기 본성의 동물적 측면을 억누르는 사람은 문명인이 되겠지만, 그때에는 자발성, 창조성, 강한 정서, 깊은 통찰력의 원동력을 줄여야 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나쁜 요소를 의식에서 내쫓기만 하면, 일단은 처리되어 버린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쁜 의식은 무의식 속으로 억지로 물러났을 뿐 의식적 자아 속에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는 한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데, 만일 개인이 위기나 어려운 생활장면에 부딪치면 그림자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자아에 힘을 뻗치고자 한다.

융은 세계사에서 기독교 국가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그 예로 들며, 그림자가 사회에 의해 호되게 억압되거나, 그 배출구가 적당치 않거나 하면 종종 비참한 결과를 불러 일으킴을 지적하며, "우리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은 억압되면 더욱 포악하게 될 뿐이다."라고 말한다.

 

 

3. 의식과 무의식

 

1) 심리적인 기능
유동적인 환경에서 똑같은 유형을 유지하며, 순간적인 내용에서 완전히 독립해 있는 일정한 유형의 심리적 활동이다.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외면세계(또는 내면세계)로부터 나타내는 내용을 이해하고, 자세히 설명하는 데 있어서 직관적인 기능보다 지적인 기능을 사용한다. 우리의 중요한 관심사는 내용에 관계없이 심리적인 자료를 이해하고 소화시키는 양식이다.

(1) 이성적 기능 - 평가, 판단.
행위를 결정짓는 요소로서, 어떤 주어진 시간에 서로 배타적이며, 어느 것도 다른 것을 지배하지 못한다. ? 정치인이 이성이 아닌 감성의 바탕 위에서 결정을 내림.
① 사유 : 사고 또는 인식하는 행위, 즉 논리적인 추리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하려는 기능.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인식을 통하여 판단함.
② 감성 : 유쾌함, 불쾌함, 수락이나 거절의 기능에 기초를 둔 평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함. '유쾌-불쾌'의 관점에서 감성을 통해 평가함.

(2) 비이성적인 기능
이성을 방해하며, 판단력으로 움직이지 않고, 평가도 못 받고 해석되지 못한 단순한 지각작용과 함께 움직인다.
① 지각 : 의식적인 감각을 통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감지한다. 현실적인 감각.
          어떤 역사적인 사건의 세부적인 사항을 주의 깊게 보는 반면, 그것이 처해 있는 일반적인 문맥은 무시함. ex)봄풍경 - 세부적인 모든 것(꽃, 나무, 하늘빛)을 주의 깊게 봄.
② 직관 : 사물의 유전적인 잠재적인 내용을 탐지하는 무의식적이고, 내면적인 지각을 함.
          사건의 내면적인 의미와 그것이 지닌 말 이상의 의미 및 효과를 식별함.  ex) 봄풍경 - 일반적인 분위기, 색채를 주의 깊게 봄.


무의식의 정의, 존재 여부 - 심리학설에 따라 견해의 차이가 있음.
1) 프로이드 : 히스테리 환자의 전환증상을 말치료로 해결되는 경험을 통해서 무의식의 내용이 되어 버린 체험군이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신체에 발현. 무의식화한 체험내용은 대개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에 억압된 것이며, 그것은 성적인 욕망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 무의식의 존재에 대한 증거로 말실수, 망각, 공상, 꿈, 정신장애의 증상에서 찾았다.

2) 융 : 프로이드가 강조한 성적인 행동에서 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도덕적인 갈등이나 그 밖의 많은 것이 무의식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모르고 있는 우리의 정신의 모든 것. (미지의 정신계)"

3) 무의식에 대한 증거
노이로제의 증상 - phobia, OC symptom 등 의식적으로는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이끌리는 듯한 기분'을 경험한다. -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정신계 너머의 또하나의 무엇이 존재한다. 이에 대하여 '귀신의 조화'라든가 '신의 권능의 결과', '조상 탓', '마귀의 장난'이라고 미루어 버린다. 이러한 의식의 한계를 넘는 초월적인 힘의 실체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내용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온 생각인 만큼 우리 마음속에 그 생각과 비길 만한 내용이나 그 생각을 낳게 하는 원천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4) 무의식의 두 가지 층
① 개인적 무의식 personal unconsciousness, das pers nliche Unberwu te
- 개인생활에서의 체험 내용 가운데서 무슨 이유에서든 잊어버린 것
- 현실세계의 도덕관이나 가치관 때문에 현실에 어울리지 않아 억압된 여러 가지 내용
- 반드시 성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은 그것을 포함한 모든 그 밖의 심리적 경향, 희구, 생각들, 고의로 눌러버린 괴로운 생각이나 감정, 의식에 도달하기에는 자극의 강도가 미약한 역하지각
- 개인의 특수한 생활체험과 관련되고 개인의 성격상의 특성을 이루는 것
개인무의식 : 의식은 무의식의 내용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무의식의 내용물은 밀려나온다. 그 이유는 의식이 단지 매우 적은 양만을 동시에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라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며, 혹은 불쾌하기 때문에 억압된 무의식의 내용물이다. 즉, 잊혀지거나 억압되어서 잠재의식으로만 지각되는 생각과 모든 느낌이다.
② 집단적 무의식 das kollektive Unberwu te
-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사람이면 누구에게서나 발견되는 보편적인 내용
- 지리적 차이, 문화나 인종의 차이와 관련 없이 존재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 유형으로 인류 일반의 특성을 부여하는 요소
- 인간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의 근원적 유형 (원형) Archetype들에 의하여 구성
- 신화를 산출하는 그릇이며 우리 마음 속의 종교적 원천
집단무의식 : 개인적인 자아에 특유한 개인적인 요소를 내포하지 않고 다만 유전이 가능한 심리적인 기능에서 비롯된다. 즉, 두뇌 구조에서 비롯된 내용만을 내포한다. 이러한 생리적인 유산은 인류를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다.

5) 무의식의 특성
① '샘물' 같은 것 - 무한한 가능성으로 향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다.
                    방어 할 위험한 충동이기보다 체험하여 의식의 것으로 동화해야 할 것들이다. 이때 자아의 태도는 무의식이 지닌 지향적 의미를 찾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진다.
② 자율성autonomy - 자율신경과 유사하게 의식작용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잇다.
                    그러나 무의식은 의식을 그 자율적인 힘으로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게 여러 가지 미래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6)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 代償的
무의식은 의식에 결여된 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그럼으로써 그 개체의 정신적인 통합을 꾀한다. 의식이 너무 일방적으로 지적이면 무의식은 정적인 특징을 띠며, 의식이 지나치게 외향적이면 무의식은 내향적인 경향을 띤다.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분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며 정신세계의 설명을 위한 편의적인 것이라고 봄이 옳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개념, 뜻을 설정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의식과 의식은 칼로 무 베듯 나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 무의식이란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의식내부로 들어와 잊혀진 내용들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습성화된 작용들과 그 대상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인적 무의식은 기억과 상기, 자기반성과 타인의 지적에 의해 의식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여 모든 이에게 공통된 작용양식을 갖는 집단적 무의식이 있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인간 수정란이 인간으로 성장하면서 의식적 자아가 형성되기 전까지 전체로서 작용해온 모든 전의식적 심리작용들로 구성된다. 인격의 완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인류와 공통된 집단 무의식의 작용형식을 의식적으로 인지하여 의식작용에 대해 보완적으로 작용하도록 동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4. 상징

 

가. 상징(象徵)의 의미와 형태
상징(象徵)이란 일상에서 늘 귀에 익은 용어나 이름, 또는 그림이지만 그것의 관습적이고, 잘 알려진 의미뿐만 아니라 아직 표현 안된 어떤 특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떤 말이나 이미지가 그것의 명백하고도 직접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 그 말이나 상(像)은 상징적(象徵的)일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정확하게 정의되거나 또는 남김없이 설명될 수 없는, 보다 넓은 "무의식(無意識)적"인 측면을 갖는다. 그 것은 꿈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실의 무의식적인 면은 합리적인 사고로서가 아니고 象徵적인 상(像)으로 나타난다.
기호는 항상 그것이 표현하는 개념 이하(以下)의 것이고, 반면에 상징은 항상 그것의 명백하고도 직접적인 의미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나타낸다. 게다가 상징들은 자연발생적인 산물이다. 아무도 논리적 결론이나 계획적인 의도에 의해 도달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생각에다 "상징적(象徵的)" 형태를 부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런 종류의 생각에 아무리 환상적인 장식을 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직 모르는 것을 암시하는 상징이 아니라 그 뒤에 의식적인 생각과 연결되어, 여전히 기호인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꿈에서 상징(象徵)은 저절로 생겨난다. 왜냐하면 꿈은 생기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꿈은 상징(象徵)성에 관한 우리의 모든 지식의 주된 원천이다.
또한 상징(象徵)은 꿈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징(象徵)적인 생각이나 감정, 상징(象徵)적 행위와 상징적 상황이 존재한다. 흔히 무생물조차도 무의식과 협동하여 상징적 양식(樣式)을 배열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누가 죽었을 때 거울이 깨지거나, 걸려있는 그림이 떨어진다거나, 시계가 멈춘다거나하는 일들이 예(例)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항상 생겨나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의 심리학적 중요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많은 상징들이 그 성질이나 기원에서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集團的)인 것들이다. 이것은 주로 종교적인 상(像)으로 이 종교적인 상징과 개념은 태고의 꿈과 창조적 환상으로부터 생긴 "집단적(集團的) 표상(表象)"이다. 이와 같이 이들 상(像)들은 모르는 순간에 저절로 생겨난 현상이지 결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나. 꿈의 해석
앞의 내용은 꿈을 해석하는데 직접적이고 중요한 내용이다. 만일 꿈이 상징적(象徵的)이라고 믿는 사람은, 충동성을 지닌 근본적인 생각이나 정동(情動)은 이미 알려진 것이고 단지 꿈에 의해서 '위장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과는 다르게 꿈을 해석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꿈을 해석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 C. C. Jung "상징(象徵)성에 관해서 가능한 한 많이 공부해라. 그러나 꿈을 분석할 때는 그것을 모두 잊어버려라."
정신적인 안정과 심지어는 건강을 위해서도 무의식과 의식은 서로 통합적으로 결합되어야하고, 따라서 평행적으로 작용하여야 한다. 만일 이것들이 떨어져 나가거나, 또는 "해리(解離)" 된다면, 심리적 장애가 따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의 상징은 사람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에서 합리적인 부분에 보내는 필수 불가결한 전령들이고, 그것을 해석함으로써 의식의 빈곤함을 풍부하게 하고, 그리하여 의식은 잊혀진 본능의 언어(言語)를 다시금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꿈의 상징(象徵)은 너무나 흔히 간과되거나 이해 받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꿈의 기능에 의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참고서(參考書)를 사서 특정의 상징(象徵)의 의미를 간단히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꿈의 해석에 관한 기성(旣成)의 체계적인 해설서를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떤 꿈의 상징도 그 꿈을 꾼 개인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고, 어떠한 꿈에 대해서도 고정된 단순한 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각 개인은 그의 무의식이 의식의 마음을 보충하거나 보상하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꿈과 그것의 상징이 어느 정도까지 분류되는가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 문화적(文化的)인 상징과 자연적(自然的)인 상징의 변천
자연적(自然的)인 상징에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다. 이 상징들은 무의식적인 정신에서 유래되기 때문에 근원적인 원형(原型)의 상(像)을 무수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이나 원시사회에서 볼 수 있는 관념이나 이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반면에 문화적(文化的)상징들은 영원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어 왔으며, 아직도 많은 종교에서 사용되고 있고 이 상징은 많은 변환을 거치고, 어느 정도 의식적인 발달을 이루는 장구한 과정도 거쳐서, 여러 문명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상(像)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상징들은 본래의 '신성(神聖)력' 과 '마력(魔力)'을 상당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황당무계해 보인다고 해서 무시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상징들은 우리들 정신 구조에 중요한 구성 요소이고 인간 사회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이 것들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면 무의식으로 들어가 버려 잠재적 파괴력이 지닌 '그림자'를 우리 의식의 마음에 대항하여 형성이 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 유익한 이익을 줄 경향들이 억압되어 귀신과 같은 상징으로 변한다.
본능적인 개념이 인간의 마음속에 샘솟았던 그 옛날, 인간의 의식은 그 사회를 일관성 있는 정신적 유형으로 통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문명인(文明人)의 진보된 의식은 본능이나 무의식이 참여 할 수 있는 기회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통합이 불가능하다.
과학적 이해가 발달함에 따라 인간(人間)은 더 이상 자연과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자연현상들과의 그의 정동적(情動的)인 "무의식의 동일성"을 상실해 버렸다 예를 들어 천둥은 더 이상 성난 신(神)의 음성이 아니고, 번개는 그의 복수의 화살이 아니다. 영혼을 가진 강(江), 지혜의 화신인 뱀은 이제 없다. 바윗돌, 식물, 짐승들이 인간에게 말하는 음성도 없고 , 인간도 역시 그들이 들을 수 있으리라 믿거나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자연과의 접촉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이 상징(象徵)적 연관성이 공급해오던 심오한 정동적 에너지 또한 사라져 버렸다. 이 막대한 손실은 꿈의 상징을 통해 보상받고 있다. 꿈의 상징(象徵)은 우리의 본래의 특질, 즉 본능과 특이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에게는 낯설고 이해 불가능한 자연(自然)의 언어(言語)로 그 내용을 표현한다. 현대에서 이것을 합리적인 언어와 개념으로 해석함으로써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요소를 깨끗이 없앤 듯하게 보였으나 현대인 마음속에도 여전히 원시적인 경향과 유물{13이라는 숫자(우리나라에서는 4라는 숫자)가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금기이다}이 존재한다.
상징과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표상(表象)이 순전히 개인적 체험인지 또는 저장되어 있던 일반적인 의식적 지식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해 선택되어졌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13이라는 숫자가 나타난 꿈을 예로 들어보면 꿈을 꾼 사람이 미신적(迷信的)이라면 그는 여전히 13이라는 숫자의 마력(魔力)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는 13이라는 숫자에서 그것이 본래 지니고 있던 정동적(情動的)인 강조점을 벗겨 버릴 것이다.

라. 상징(象徵)의 이해와 해석
'꿈이 왜 그 내용과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와 같이 꿈의 내용이 상징적(象徵的)이고 따라서 한 개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꿈을 해석하는데 혼란을 느낀다. 상징은 우리들이 의식의 마음으로 파악하는 것과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것은 무의식적인 것, 혹은 적어도 완전히 의식적인 것이 아닌 어떤 것과 연관되어져 있다. 상징적인 관념과 같은 현상들은 과학적인 사고의 지성(知性)과 논리(論理)를 만족시킬 만한 방법으로 체계적인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꿈의 경우만이 아니라 감정(感情)이나 정동(情動)의 현상도 심리학자가 아무리 결정적인 정의를 내려 그것을 확실히 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파악될 수 없는 사실을 다루는 것만큼 힘들 일이 없다. 꿈에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적인 용어로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동(情動)이나 상징적(象徵的)인 개념을 만드는 것은 생명(生命)이기 때문에 생명(生命) 자체를 파악하도록 노력하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정서적인 갈등과 무의식의 개입은 분석심리학의 전형적인 대상(對象)이기 때문에 치료자는 주의를 기울려야 한다. 환자를 치료할 때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이 심리학이란 과학자의 연구실에서의 조용한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모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다. 상징(象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언어로 구체화할 수 없지만 심리학자 스스로가 오로지 실제 경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십자가(十字架)는 다양한 여러 측면, 관념, 그리고 정동(情動)을 표현하고 있는 의미 깊은 상징(象徵)이다. 명단(名單)의 성명(姓名) 위에 인쇄된 十字架는 단지 그 사람이 사망하였다는 것을 표시할 뿐이다. 남근(男根) phallus은 힌두교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만일 거리의 장난의 장난꾸러기가 그것을 벽에 그렸다면, 그것은 단지 그의 성기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상징의 해석은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꿈 꾼 사람의 성숙도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꿈과 상징의 해석은 지성(知性)을 필요로 한다. 그 것은 꿈을 꾼 사람의 개성에 관한 보다 많은 지식을 요하고 해석하는 사람의 쪽에서도 보다 많은 자기인식을 요구되어진다. 예를 들면 꿈의 해석에서 올바른 모든 규칙들을 따르고서도, 조금만 더 나은 지성을 가져서도 놓치지 않았을 대단치 않아 보이는 아주 작은 부분을 못 본 나머지, 끔직하게 엉뚱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상징(象徵)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개개인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된다. 개인의 문화적인 배경도 살펴보아야 되고 항상 개개인마다 새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된다. 그래서 상징(象徵)의 표면만 다루는 동안은 일상적인 반응이 실제적이며 유용할 줄 모르나, 조금이라도 우리가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생명 그 자체가 이에 개입하면서 가장 훌륭한 이론적 전제도 효과 없는 언어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또 상징(象徵)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으로 상상(想像)과 직관(直觀)이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이 것이 주로 시인이나 예술가들에게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제적으로 보다 고도의 모든 과학에서도 똑같이 필수적이다. 상상과 직관은 '합리적(合理的)'인 지성의 역할과 특정 문제에 대한 지성의 적용을 보충하는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관(直觀)은 상징(象徵)의 해석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꿈을 꾼 사람에 의해서 상징이 즉각 이해되는 경우를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이 운이 좋은 직감(直感)은 주관적인 확신을 줄지는 모르나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도 쉽게 그릇된 안정감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것은 분석가나 꿈 꾼 사람 모두를 편안하고 비교적 안이한 관계를 지속하도록 유혹할 수 있고 결국 두 사람이 다 공통의 꿈을 꾸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만일 직감(直感)으로 이해한 것에 막연히 만족하고 안심하면 진정한 지성적 지식과 도덕적 이해의 건전한 토대는 상실된다. 우리가 직관(直觀)을 여러 가지 사실의 정확한 지식과 서로의 논리적인 관련성으로 환원(還元)해 낼 때만이 상징을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정직한 연구가는 그가 항상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시인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항상 명심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불성실한 것이다. 과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라고 알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착각이다. 과학적 이론보다 취약한 것은 없고, 그리고 그것은 사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시도일 뿐, 그 자체가 영구한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 전형적인 융 학파의 분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꿈은 사적(私的)이고 개인적 의사소통이고 , 어떤 꿈도 무의식의 상징(象徵)을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형적(典型的)인 분석(分析)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융 학파의 분석은 개별적인 특유성을 지니고 있다.
*무의식(無意識)의 언어(言語)와 내용(內容)은 상징(象徵)이고 의사소통 수단은 꿈이다.
*분석심리학에서 꿈은 상징(象徵)의 의미를 해설한 용어사전에 의해 해독(解讀)될 수 있는 표준화(標準化)된 암호(暗號)문의 일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무의식의 통합적이며
 의의 있는 그리고 개인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어떤 다른 현상과 똑같이 현실적(現實的)인 것이다. 꿈을 꾸는 개인의 무의식은 그 사람 혼자하고서만 교신(交信)을 하며 ,
 또 다른 사람 누구도 아닌 바로 그 꿈꾸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갖는 그런 상징(象徵)을 선택한다. 따라서 분석(分析)심리학자에게 꿈의 해석이란 전적으로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최고로 중요한 것이고 또 꿈은 자주 그에게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충언(忠言)과 지도(指導)를 해준다.

 


5. 아니마와 아니무스 (The Anima / Animus)

 

남성과는 그렇게 다른 심리를 지니고 있는 여성은 남성이 전혀 눈뜨지 못한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실들을 가리켜 주는 원천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영감 Inspiration을 의미한다. 남성을 훨씬 능가하는 여성의 예감능력 Ahnungsverm gen은 남성에게 유익한 경고를 주며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둔 여성의 감정은 남성에게 그가 지니고 있는 별로 개인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감정으로는 찾기 힘든 길들을 가리켜 줄 수 있다.

①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특성 남성 : 능동적. 사회적 지위, 권위와 법, 명예를 존중. 정치, 기업, 국가, 학문과의 관계 합리적 사고와 판단, 이념이나 사상, 철학을 추구. 창조적 기풍, 입김, 기 Pneuma, 아트만 Atman, 혼 Geist '아버지' 인간, 법, 국가, 이성과 정신에 대한 관계 결정, 동적인 힘, 바람, 폭 풍, 뇌성, 번개 여성 : 수용적, 느낌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 가정, 개인적 감정 '대지' 생명을 잉태하고 죽음을 포용 이러한 남녀의 관계는 외계와 관계를 맺으며 남성 혹은 여성의 페르조나를 형성하여 그 차이점이 두드러지지만 이러한 차이점은 의식적인 문제이며 무의식에는 다른 요소가 숨어있다. 예) 평소에 호기 있고 용기 있는 남성적인 사람이 정작 위기에 처해 안절부절하고 불안해 하 는 경우, 평소에는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조용한 부인이 극한 상황에서 용단과 담력과 이성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

② 정의
* 아니마 :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 (남성의 무의식적 여성성)
* 아니무스 : 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여성의 무의식적 남성성)
→ 의식의 외적 인격으로서의 남성과 여성은 각기 다른 내적 인격의 특성을 갖추어 이것 이 전인격에 보충되어 하나의 개체를 형성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외적 인격으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체험하게 준비된 원형에 해 당 동양의 음양설이나 기독교의 신지학파와 유사하지만 이론적인 이해라기 보다는 경험적 인 관념이므로 경험적으로 이해하기를 강조

③ 아니마, 아니무스의 경험 '사랑의 느낌' : 이성에게서 강렬한 황홀감을 경험할 때 (첫눈에 반한다?) 상대방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선녀, 현자, 영웅으로 인식할 때 여기에는 아니마, 아니 무스 원형의 일방적 혹은 상호 투사가 발생한 것 상대성에게 현실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에서 투사된 이성상을 보 는 것 (제눈에 안경?) 항상 황홀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불쾌감이나 공포감일 수 있다. 원형의 투사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감정은 일상적인 부정적 감정보다 더욱 강렬하고 강박적이며 마력적이다. 이는 반드시 인물에만 투사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아니마, 아니무스를 작 품속에 형상화. 또한 이념, 물질에도 투사된다. 예) '님' 우리 민족에 잇어서 말에 내포되는 개인적인 감정의 성질과 척도는 다르다 하더라도 단순한 애인의 의미를 넘어선 종교적 의미를 내포 성주님, 장군님, 대감님 이러한 샤머니즘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은 단순한 아버지에 대한 근친상간적 욕망의 표현을 넘어선 종교적 신성력에의 강렬한 희구에 의해 매개. 무녀에 있어서 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아니무스가 투사된 상징적 표현.

④ 아니마, 아니무스의 투사 괴팍한 인물이 집단의 각광을 받는 현상 :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이 거기에 적합한 범 상하지 않은 인물이 나타났을 때 사람의 무의식을 자극하여 집단적인 마음의 상을 투사 예) 히틀러 신흥종교의 형성, 오빠부대 : 여성들의 아니무스 원형 (영웅원형, 구제자 원형)의 집단 적 투사. 이는 단순한 성적인 매력이나 호기심을 넘어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초인과 영웅에 대한 열정과 희구 물질에 대한 투사 : 아니마 예) 돈, 알코올 (주정 : spiritus alcoholicus) 등. 병리현상 : 애정망상 (아니마, 아니무스의 원형의 투사) 참고) 남녀신의 쌍의 주제 Syzygienmotives, Paarungsmotive

⑤ 원형상의 발생과 상실 4세 이전 : 의식의 단절적 불연속성
+- 부모의 상 Elternimago는 현실적인 상이 아니라 풍부한 환상에 의해서 채색된 부모상
+- 신의 쌍 주제에 반영되는 부모 원형
+- 부모의 현실성이 신성 G ttlichkeit 으로 덧입혀진 상
+- 신의 관념과 연관되는 강렬한 내용을 포함.
결국 성장하고 의식이 강화됨에 다라 이러한 원형적 체험은 사라지고 현실적 부모상을 : 원형적 부모상과 구별 (상실), 원형적 부모상은 그대로 무의식에 남아 있어 다른 이성 에 투사되거나 투사될 준비를 한다. 이러한 '마음의 상실' 상태는 중년 이전의 젊은 사람 (35세 이하)에서는 특별한 상처없이 견딜 수 있다. 중년 이후의 지속적인 아니마의 상실은 생동감을 희생시킨다.
→ 결국, 조로하여 성격상의 경직, 단조, 부질없는 원칙의 나열, 완고에 사로잡히거나 (나이를 먹으면 고집이 세어진다?) 반대로 체념, 피로, 쇠약, 소아적 경화, 책임감 상실에 빠진다. 투사를 통해 무의식의 자율적 대상기능 발생 :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이 외계에 투사대상을 찾았을 때 이해가 가능함을 체험. 심상이 투사되지 못하고 주체에 머물러 있는 경우
→ 자아는 심상과 동화되어 자아와 심상이 동일시되어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병적인 분화상태 → 남성이 여성적인 인격과, 여성이 남성적인 인격과 동화되어 외계와의 관계가 상실되고 본래 자기가 태어난 성의 특징과 페르조나는 무의식에 남는다. → 투사는 마음의 원형이 아닌 페르조나이며 결국 동성에게 투사되어 동성애 적 관계가 형성 "아니마나 아니무스는 인류가 조상 대대로 이성에 관해서 경험한 모든 것의 침전물이다." 남성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경험의 총화이며 여성에서 남성에 대한 경험을 통튼 것.> 아니마 '기분', '정동' / 아니무스 '생각', '의견'

⑥ 내용과 성격
* 아니마 : 의식화하기 쉽지 않은 내용.
·꿈속에 나타나는 황홀한 감동을 주는 이름 모를 여인, 어둠의 베일에 싸인 귀신같은 노파, 청순한 소녀의 상
·영원으로 향하는 이념에의 열정, 개인적인 성겨
·미분화 상태 : 폭발적 분노, 여성화된 요변스럽고 변덕스러운 남자
·분방한 추측과 질투로 부인을 괴롭히는 남자의 경우 완전무결한 호남의 페르조나 소유자가 많다.
·잘 분화된 아니마는 창조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 아니무스 : 복수의 성격, 다수의 재판관, 권위자들의 집회
·굽힐 수 없는 당당한 이성적인 판단
·미분화 상태 : 따지는 버릇. 자기 생각이 정당하다는 것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의논으로 아무도 이론을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 확고부동한 의견의 형태. 자기의 의견을 증명하기 위한 궤변.
·잘 분화된 아니무스는 지혜의 원천
·이러한 부정적 아니무스는 남성의 아니마를 유혹해서 토론장으로 끌어들이나 남성은 자기의 미분화된 아니마에 사로잡혀 화를 내고 여성은 '무엇이나 바르게 아는 신'으로서의 아니무스로
  하여금 '미안하지만 내가 또 옳았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파장 → 결국 아니마는 비합리적인 감정이며 아니무스는 비합리적인 의견

⑦ 역사성
- 아니마 : 역사적 감정이 일어남. 영원불멸성과 신성성의 문제
- 아니무스 : 현재와 미래에 대해 더 많이 생각 (역사성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생각지 않은 판단 ungedachtes Gedanken 영웅원형이 주변의 남성 (아버지, 남편, 아들)에 투사되어 그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조종됨 → 역사성의 의미

⑧ 관계기능 :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으로 눈을 돌리게 하며 깊은 층으로 인도함.

⑨ 인식과 객관화
- 아니마의 객관화 : 융은 자기의 내부에 있는 아니마와의 사적인 대화를 통하여 마음 속에 있는 아니마 성향의 배경을 알수 있었다고 하였다.
- 아니무스의 인식 : 외향화를 경계. 아니무스 의견은 곧잘 외계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일가견을 말하려고 한다.
  → 아니무스에 사로잡힌 여성 : 여성다움을 잃어버릴 수 있다. (안으로 향할 것이 밖으로)
  → 착상기능 Einfallsfunktion 으로서 안으로 향하여 무의식의 내용을 머리에 떠오르게 해야 한다.

⑩ 원형의 예
- 샤만 Shaman (영혼의 인도자, 동자, 신의 사자) : 아니무스 원형
- 성오거스틴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 율곡의 어머니 : 아니마 원형에 해당

남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성질과 여성의 무의식 속의 남성적 성질이 인격화된 것, 이와 같은 정신의 양성성은 생물학적 사실에 필적한다. 즉, 남성(여서)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남성(여성)유전자의 상대적인 다수이다. 이성적 유전자는 이성의 성격을 형성하는 듯한데 그것이 열세에 있기 때문에 보통은 무의식 속에 머물러 있다.
융 : "모든 남성은 여성의 상을 아득한 옛날부터 지니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여성의 상이 아니고 어떤 한 여성의 상을 말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상은 무의식적인,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생명체계에 파묻힌 유전소질, 조상의 여성적 존재에서 겪은 모든 경험의 형(Typus, 원형), 여자에 관한 모든 인상의 침전, 하나의 계승된 정신적 적응체계..., 마찬가지로 여성도 선천적인 남성상을 가지고 있다. 경험에 의하면 좀더 명확하게 남성들의 상이라고 말하는 게 좋다. 반면에 남성에서는 그 여성의 상이라 부르는 게 좋다. 이런 상이 무의식에 있으므로 언제나 사랑하는 像에 무의식중에 투사되고 그 상에 대한 열정적인 매력을 느끼거나, 혹은 그 반대가 될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아니무스의 본래의 기능은 개인적인 의식과 집단적 무의식 사이를 연결하는 데 있다. 이에 상응하게 페르조나는 자아의식과 외부세계의 객체 사이에 있는 영역을 표현한다. 아니무스와 아니마는 집단적 무의식의 상들에 이르는 다리, 또는 입구이며 페르조나는 이 세계로 향한 하나의 다리를 표현한다."
모든 원형적 발견, 그러니까 아니마, 아니무스의 출현은 부정적이면서, 긍정적인, 원시적이면서도, 분화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융:"아니무스의 최초의 무의식적 형태는 저절로 일어나는 의도적이 아닌 의견형성이며 감정 생활에 영향을 주어 이를 지배한다. 이에 반해서 아니마는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형성으로 그것은 뒤이어 이성을 왜곡하거나 그 밖의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아니무스는 곧잘 정신적인 권위자나 그 밖의 영웅(테너가수, 예술가, 스포츠 챔피언)에 투사된다. 아니마는 즐겨 여성의 무의식, 그 二重意味性, 어두운 것, 관계상실, 절망, 불감증, 공허함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남성에서는 (개성화 과정에서) 자아의식을 향하여 올라오는 심령(Seele)은 여성적 징후를 가지고 있고, 여성에서는 남성적 징후를 지닌다. 남성의 아니마는 하나로 합치고 통일되고자 하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구별하고 인식하고자 한다. 이것은 엄격한 대극이다. ...그것은 비록 두 개체의 의식적인 관계가 조화되어 있다 하더라도 의식의 현실에서는 갈등의 상황을 의미한다. "
"아니마는 삶의 원형이다...왜냐하면 삶은 남성에게 아니마에 의하여 체험되는 까닭이다. 남자는 삶의 오성을 통해서 온다는 견해이지만-그는 오성으로 그의 삶을 다스리지만 삶은 그의 마음속에서 아니마로서 살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신비는 삶이 아니무스의 정신적인 형상을 통하여 그녀에게 체험된다는데 있다. 그녀자신은 그녀에게 삶을 부여하는 것이 에로스라고 가정하고 있지만-그녀는 삶을 다스린다. 그녀는 이를테면 습관적으로 에로스를 통하여 살고 있지만 그녀자신이 그것의 희생이기도 한 진정한 삶은 여성에게 오성을 통하여 겪어지고 오성은 그녀의 마음속에 아니무스를 통해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
아니마란 '남성 속의 여성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니무스 즉 '여성 속의 남성성'을 뜻하는 단어도 있다. 그러나 F to M(여성->남성) M to F(남성->여성)를 포함하는 상징적 개념으로 쓰인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 구조도 다르고 생리적 기능도 다르므로 심리적인 특징도 본질적으로 상이하다. 남성은 능동적이며 사회 지향적이고 추상적,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좋아하는 반면, 여성은 수용적이고, 가정 지향적이며, 합리적 추상적 사고보다는 구체적인 감정을 가지고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의식이 이완되는 상황에서는 남자는 유약하고 감상적이고 소심하며 여자는 폭력적이고 흥분적일 수 있다. 남녀의 의식적 심리와는 달리 전체성의 입장에서 남녀의식을 보상하는 무의식적 심리가 존재하는 것이며, 이를 남성의 경우에는 아니마, 여성의 경우에는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4살 이전의 어린이는 불연속적인 몽롱한 의식상태에서 원형적으로 채색된 부모상을 가지며, 여기에는 전능전지하고 사랑으로 가득찬 무한한 존재의 관념이 투사된다. 어린이의 의식이 실제 부모와 그 원형을 구별하게 되면, 남자에게 아버지는 페르소나의 표본이 되고 어머니는 이상적 여성의 표본이 된다.
그림자가 주로 동성에게 투사되는 반면에, 반대의 성적 대상을 향한 투사가 있다. 이런 경우 투사를 유발하는 요인은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적 세력이라기 보다는 아니마나 아니무스의 작용으로 생각된다. 남녀를 구별하는 의식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작동하고 있던 무의식적 영혼이, 남자의 경우, 남성적 능력을 자아가 의식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여성적 능력을 간직하게 되고, 여성의 경우, 자아가 여성적 능력을 발전시키는 데에 대한 보상작용으로 남성적 능력을 간직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적 특성을 지닌 남성혼을 아니마라고 부르고, 남성적 특성을 지닌 여성혼을 아니무스라고 부른다.
인간의 심성은 사물에 대한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와 형상을 제공한다. 형상은 언어적 전통을 통해 전달된 관념들인데, 이는 원형적 사고에 그 기원이 있다. 신화적 주제들의 보편적 유사성에서 증시되는 원형적 사고 안에는 신적 남녀쌍, 대극적 접속체가 제시된다. 이 신화적 투사를 주체적으로 섭취하면 아니마라는 원형이 간취된다. 부모의 이미지는 너무나 의식적이어서 가장 투사되기 어려운 것인데도, 신화, 종교, 전이에서 이러한 투사는 가장 빈번하다. 신화 속의 신적인 남녀쌍은 본래 신적인 특성을 지니는 인간 영혼이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신에게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갓 태어난 어린이는 유전적 본능과 선험적인 패턴, 그리고 본능에 기초한 통각(공통감각)의 형식적 조건들을 갖고 있다. 통각의 형식적 조건들이 바로 원형인데, 이것은 꿈, 정신분열증의 망상, 그리고 신화에서 매우 유사하게 나타난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신인동형적으로 파악하게 하며, 의식이 증가하여 부모를 분별하게 되면 부모의 이미지가 이에 동화되게 된다.
부모의 이미지가 신성화된 채 자녀가 성장하면서, 서로 간의 실망에 의해 거세컴플렉스가 발생할 수 있다. 거세공포는 실생활에 대한 공포이며, 그가 더 이상 신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공포이며, 삶이 무신적이라는 현실에서 오는 공포이다. 한 아기의 탄생은, 무의식적 의미에 있어, 인간이자 신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유아기에 실제 어머니에게 투사된 아니마는 자라나면서 어머니, 딸, 누이, 애인, 천사, 여신, 지옥의 여왕이 혼합된 신비로운 여성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사춘기의 고통 속에 어머니가 비신화화되면, 아니마는 모성 콤플렉스 가 되어 무의식 속에 가라앉지만, 비범한 인상을 자아내는 여인을 만나게 되면 그녀에게 투사된다. 남자는 매혹, 과대평가, 사로잡힘, 여자혐오증의 형태로 아니마를 투사한다. 모성 콤플렉스를 상실하면 심적 공항이 야기된다. 아니마가 투사되면, 감정과 애정의 문맥을 타고, 모든 이성들에 대한 감정적 관계들을 강화하고 과장하고 허위화하고 신화화한다. 그리하여 남녀간의 환상적인 얽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니마가 강렬하게 집결되면 그 사람은 부드럽고 감상적이고 질투적이고 부적응적이 된다. 중년기 이전의 젊은 남자는 아니마의 전적 상실을 견딜 수 있다. 이 시기는 남자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아니마적 유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나 예술가는 더욱 그 안으로 들어간다. 반면에 중년기 이후의 아니마 상실은 생명력, 유연성을 축소시킨다. 그는 경직되고 고집스럽고 선입관적이고 지치고 느리고 무책임한 어린아이 같아진다. 따라서 중년 이후 아니마와의 재정립은 매우 중요하다. 아니마를 자아와 구별하고,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통해 그녀를 알아갈 수 있다.

아니무스
남성이 여성적인 요소에 의해서 보상받듯이, 여성도 남성적인 요소에 의해서 보상받는다. 남성의 여성혼인 아니마가 주로 인간적 관계에서 매혹을 유발하는 모성적 에로스의 작용이듯이, 여성의 남성혼인 아니무스는 사실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부성적 로고스의 작용인 듯하다. 남자들은 친밀한 인간관계를 낳는 에로스보다는 이성적인 로고스가 더 발달하므로 보상적으로 아니마는 에로스적인 모습을 가지며 투사를 통해 정열적인 관계로 나아간다. 한편 여자들은 로고스보다는 친근한 에로스가 발달하므로 아니무스는 판단적이고 결단적인 로고스의 모습을 가지며, 투사에 의해 남자를 심판하는 판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니무스는 의식적 자아의 반성을 결핍하고 있는 무의식적 실재이므로, 그것은 주로 진부한 의견들, 판에 박힌 경구들, 맛이 간 상투어들을 가지고 논쟁을 야기한다. 여자의 아니무스가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논쟁을 걸어오면, 남자는 아니마에 사로잡혀 열정적이 된다. 이런 경우 남자는 마치 여자인 것처럼 개인적인 허영과 민감성이 문제시되고, 여자는 마치 남자인 것처럼 권력이 문제시된다. 평소에 여성의 의식적 에로스가 아무리 친절하고 친근하다 해도 일단 그녀가 아니무스에 사로잡히면 세상의 어떤 논리도 그녀를 동요시킬 수 없다. 그녀의 확신은 권력자의 권위 있는 최종판단이기 때문이다.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만날 때면 언제나 상호적인 증오심이 발생하므로 그들은 꼭 싸운다. 남자의 앙심은 자기연민과 분개심으로 구성되는 반면, 여성의 앙심은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고집스러운 관점들로 구성된다.
실제적인 아버지는 딸의 아니무스 투사를 유발하는 첫 번째 대상이기가 쉽다. 아버지의 모상을 통하여 아니무스는 철학적인 성찰이나 종교적인 태도로 승화될 수 있다. 개성화과정을 통해 아니무스가 의식에 통합되면, 여성은 뛰어난 로고스를 갖게 되어, 반성, 숙고, 자기지식의 능력을 드러낸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의식적 자아에게 원인 모를 자기정당감을 제공한다. 남자는 비합리적인 정서상태 속에서 자기가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여자는 비합리적 의견을 고집하면서 자기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때, 그들은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홀려 있는 것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투사를 해소하려면, 각자가 자신의 어머니,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는 전체적 심상이 실제적 부모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관적으로 첨가한 신화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딸이 생각하는 아버지의 전체적인 심상은 실제적 아버지 그대로는 아니다. 거기에는 보다 전능하고 전지한 신적 심상이 겹쳐져 있다. 투사를 해소하고 보면, 딸은 자신이 아버지에 의해 상처받고, 오해받고, 배신당했다고 느낄 이유가 거의 없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만날 때, 여자에 대한 남자의 관계에는 초월적인 아니마가 개입하고, 남자에 대한 여자의 관계에는 초월적인 아니무스가 개입한다. 남자가 개성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여성혼인 아니마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늙은 현자의 원형이 작용해야 하며, 여자가 자신의 무의식적 남성혼인 아니무스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대지의 모신의 원형이 작용해야 한다. 남자는 여자와의 성숙한 인간관계 안에서 자신의 아니마를 늙은 현자의 총체성 안에 통합하고, 여자는 남자와의 성숙한 인간관계 안에서 자신의 아니무스를 대지의 모신의 총체성 안에 통합함으로써, 인간적인 남녀의 결합은 개성화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결합을 통해 하늘과 땅의 우주적 결합으로 신성화된다.
융은 페르소나를 정신의 '겉면'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세계를 향해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내면'을 남성의 경우는 '아니마'라고 불렀다. 아나마의 태고유형은 남성적인 정신에서의 남성적인 한 측면이며,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여성적인 정신에서의 남성적인 한 측면이다. 모든 사람은 남성도 여성도, 남성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생물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이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제법 남자답게 보이며, 남자답게 행동하고 있는 남성이 내면에서는 약하고 복종적인 점이 많음과 외적 생활에서 지나치게 여자다운 여성은 남성의 외적 행동에서 자주 보게 되는 완강함과 고집의 성질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퍼스낼리티가 곧잘 적응하며 조화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면, 남성의 퍼스낼리티늬 여성적 측면과 여성의 퍼스낼리티의 남성적 측면은 의식과 행동에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이 남성적 측면만을 나타내고 있으면, 그의 여성적 특성은 무의식에 머물고, 따라서 미발달이며 원시적인 채로 된다. 그래서 무의식은 허약하며 과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6.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

 

인간
+- 사회적 동물 : 다른 사람의 마음(외부)와 반응 → 외적 태도 (persona)
+- 정신적 존재 : 자신의 마음(내부)와 반응 → 내적 태도 (seele)

 

 

7. 원형

 

원형은 심리요소를 일정한 이미지로 배열시켜 원형적 성격을 부여하는 요인 및 동기들이다. 이것은 의식의 발달 이전에 존재하며, 심리의 구조적 우성(the structural dominants)을 형성한다. 이것은 선험적 조절인자(prioriconditioning factors)로서, 생물학적 '행동양식'의 특수한 심리학적 사례를 나타내며, 모든 것에 그들 자신의 특수한 성질을 부여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기초 안의 표현들이 그 발달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듯이 원형의 표현들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원형은 결코 신체조직활동의 한 현상으로 존재한 적은 없으며, 어디까지나 활동 그 자체와 함께 영상화된 것이다. 생물학적 요인, 역사적 요인과 마찬가지로, 잠재능력의 형태 속에서 원형적 내용물은 개인의 정신구조의 일부분을 이룬다. 의식적 마음의 카메라 앞에서 실제화 되고 나타나는, 개인의 내적 외적 생활에 부응하는 원형은 '표상'되는 것이다.
인식될 수 없고, 다만 잠재적으로 나타나는 원형과, 인식될 수 있고 실제로 나타나는 '표상 되는' 원형은 구별이 필요하다. 즉, 원형과 원형으로 표현되는 '원형적 이미지'를 구별해야 한다. 원형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보이지 않는 중심점'이며, 개인적 심리적 자질에 의해 표현되고 형태를 취했을 때만 심리적인 것이 되고, 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결국 원형은 그 표현이 잠재적이고 인식될 수 없는 원형 그 자체이냐, 아니면 이미 나타난 원형 즉, 의식 속에서의 심리적 자질로, 이미 '이미지'가 된 것이냐라는 판단을 잘해야 할 것이다.
 원형적 이미지(primordial image)는 본능이 자신을 인식하는 것, 또는 본능의 자화상으로 묘사되며, 심리에 독특하게 주어진 어떤 구조적 성질이나 상태이다. 이것은 그 이전에는 어떤 것도 생각되지 아니할 때부터 존재한 무의식적 정신의 자율적 요소이다. 그들은 그것의 실재가 의식적 마음에 부여되는 결정적인 영향력에 의해 증명된 정신세계의 변함 없는 구조를 표상한다.

융:"원형의 개념은 ...여러 번 반복된 관찰에서 나온 것이다. 예컨대 세계문학의 신화와 민담이 어떤 일정한 언제나 어디서나 반복적으로 다루어진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의 관찰에서 유도된 것이다. 이와 똑같은 주제들을 우리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환상, 꿈, 섬망상태의 헛소리와 망상에서 목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형적인 상들과 상호관련은 원형적 관념이라고 규정된다. 이런 관념들은 그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특히 생생한 감정적 색조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것들은 깊은 감명을 주며 큰 영향력을 끼치고 또한 매력적이다. 그것들은 볼래 관조될 수 없는 원형, 즉 무의식적인 선행형에서 나온다. 그것은 정신의 상속된 구조에 속하는 듯하고 이에 따라 어디서나 자연발생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
"나는 늘 원형이 내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즉 일종의 무의식적인 관념들이라는 오해에 부닥친다. 그러므로 원형이 결코 내용적으로가 아니라 단지 形으로 결정되어 있고, 후자는 매우 제약된 정도에 있어서만 그렇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겠다. 내용적으로 결정되기로는 한 原像이 의식적으로, 그러니까 의식적인 경험의 자료로 채워지고 있을 때만이 증명될 수 있다. 이에 비하여 그 형은 한 결정의 軸系에 비교될 만한데 이것은 母液속에서 이미 결정형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택된 것으로 스스로는 아무런 물질적인 존재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다. 물질적인 존재란 이온들과 분자의 접속 방식에서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원형이란 하나의, 본래는 비어있는 형식적 요소로서 선재적 가능성, 관념형의 선험적으로 주어진 가능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상속되는 것은 관념이 아니라 형이며 이것은 이런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로 형적으로 결정된 본능에 해당된다. 원형 그 자체의 존재나 본능이나 모두 그것이 구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증명되기 어렵다."
"원형 고유의 본체는 의식 불가능한 것, 측 초월적인 것이라고 내게는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정신양(精神樣)이라고 규정짓는다. "
"원형이 결국 설명되고 설명됨으로써 해결될 수 잇는 것 같은 착각에 결코 잠시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아무리 최선의 설명시도도 얼마간 성공된 다른 표상언어로의 번역에 불과하다."

 


8. 집단 무의식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심리 내용이다. 무의식의 표층에 있는 개인적 무의식은 체험된 자극들의 억압된 심리 내용으로, 흔히 감정으로 채색된 복합체(complex)를 이루고 있으며, 기억에 의해 상기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심층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집단 무의식이 존재한다. 집단적 무의식은 모든 이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태고적이고 신화적인 사고형식이다. 이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적인 심리적 기체이다. 집단 무의식의 내용은 태고적이고 시원적인 상징적 표상이며, 보편적 전형으로 원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진화하여 비의전승이나 신화나 설화의 형식으로 전달되며, 그 직접적인 원천(원형)은 개인적 의식에 반영된 꿈이나 환상에서 원형적 관념으로 출현한다. 정상의 경우 무의식은 의식과 협력하므로 사람들은 무의식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본능적 기초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면 무의식적 힘들이 상실된 균형을 복원하기 위하여 지성적이고 목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원시인은 외부의 감각적 체험을 내면의 심리적 사건과 동화시키는 경향을 갖는다. 이에 따라 내면적, 무의식적 드라마는 원시수준의 유비적 투사에 의해 우주의 자연 과정에 상징적으로 신화화된다. 성스러운 예감을 동반한 상징적 이미지는 인간의 관심을 끌고, 확신을 주며, 매혹시키고 압도하여 신에게 굴복시킨다. 그러나 전율적인 신성 체험은 너무나 위협적이므로, 교의적 상징은 그 의미의 심원성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정식화한다. 그런데 원초적인 종교체험이 정식화되어 전통으로 전승될수록 그것은 개인의 체험과 유리된다. 한편 문명의 발달은 신화화된 자연을 과학적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종교적 세계관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진부하고 피상적인 것이 됨으로써 더 이상 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는다. 근대인은 자연과 내면성의 동화를 통해 유지되는 심적 보호원(만달라)이 분열되어 혼란된 상태에 처해 있다. 교회의 안정성이 파괴된 시대의 내적 갈등을 반영하며, 루터를 통해 '사랑과 분노'가 공존하는 구약적 하느님의 이미지가 부활한다. 가톨릭은 집단 무의식의 전 생명력을 교의와 신조, 상징과 제의 속에 통합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기존의 원형적 틀과 잘 상응하였으므로 수세기를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의 성상 파괴에 의해 신성한 이미지의 보호벽이 파괴됨으로써, 한편으론 이성에 의한 신의 죽음이 고백되고, 다른 한편으론 조절되지 않은 집단 무의식의 분출로 심리적 분열을 체험하게 된다. 인간이 독창적인 신성 체험을 통해 영원한 이미지에게 굴복하는 것은 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과학 시대에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상징의 빈곤이라는 현대 문화의 문제는 심층 심리학을 형성시킨다.
상징의 결핍은 영혼의 빈곤을 초래한다. 무의식을 조절하던 지혜의 유산이 산실 되자, 지성은 영의 옥좌를 찬탈한다. 불타는 영(Spirit)은 인간적 혼(soul)의 창조주 아버지이지만, 지성은 영혼의 한 능력이므로, 영혼을 돌볼 수가 없다.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영혼은 심성의 어두운 심층 물가를 헤매게 된다. 영혼이 무거워져 물(심적 흐름)로 화할 때, 영은 천상으로부터 물가로 내려와 치유력을 지닌 바람(영의 숨결, pneuma)이 된다.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숨결의 바람에 무시무시해져 전율한다. 신적 선물은 물 속에 잠기어 있고, 이를 찾으려면, 우리는 밝은 언덕으로부터 어두운 골짜기를 내려가 신비스런 물가로 가야한다. 구세주의 상징은 물고기였다. 물은 무의식의 일반적인 상징이다. 물의 본성은 음(-) 안에 간직된 양(+), 즉 무의식이 된 영을 의미한다. 영혼은 영을 찾아 심연에로 하강해야 하며, 물 안에서 영은 천상에로의 상승을 갈망한다. 영은 항상 천상에만 군림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심연 위를 솟구치는 최고의 자유이자, 강금된 지옥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영을 찾아 하강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의 대결이라는 위험에 직면한다. 의식적인 자아는 인격적 전체성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의식은 스스로를 총체라고 생각함으로써 의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의식에 떠오르는 것을 억압한다. 흔히 우리가 자신이나 어떤 사람의 개성이라고 보는 것이 단지 집단적 무의식의 가면일 수가 있다. 사회집단과의 적응에 필요한 여러 가지 행동양식이나 문화적 특수성이 체면, 본분, 도리라는 이름 아래 습성화되어 자기와 동일시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마다의 무대장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여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성공적인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에 대하여 자신이 표피적으로 드러내는 타협적인 가식일 뿐이다. 자기 무의식의 속삭임을 완전히 거부하면 자아는 페르소나(가면)와 동일시된다. 있는 나보다 남에게 보이는 나가 더 중요시되는 것이다. 가령 학자는 언제 어디서나 전형적인 학자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결벽적이고 강박적이고 규칙준수적이지만 우울하고 권위적이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내면적 세계가 약화되어 개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무의식의 심적 흐름은 의식이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미화된 가면(페르소나)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그림자로 덮여있는 자신의 개인적 무의식을 불러낸다. 그림자는 자아가 정당화한 자신의 모습이 실상에 있어서는 무력함, 무능력, 비열함과 분개심으로 가득 찬 열등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선악의 피안에 있는 영웅인 것은 아니다. 주체가 자신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 덩어리요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집단 무의식은 의식에 대해 보상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집단 무의식의 세계는 심적인 현실세계이지만, 의식적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전도된 모습을 갖는다. 거기에서 나는 타자(요인들, 정령들)를 체험하고, 타자는 나를 체험한다. 거기에서 나는 주체로서의 타자들의 객체가 된다. 세계는 나와 일심동체가 되고, 나는 몰아경에 빠진다. 무의식이 나를 건드리면, 나는 무의식이 된다. 그래서 원시인은 무의식을 두려워하여 마법과 주문, 제의나 교의를 통해 의식을 공고화한다. 종교적 상징들은 무의식이 의식을 급습하여 현실세계가 미친 세계가 되는 것을 막는 방벽이다. 신앙이 소실되어 상징이 빈곤화된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과거의 신들이란 바로 무의식의 심적인 요인들, 집단 무의식의 원형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영은 육화된 상징들을 통해서만 천상에 존재한다. 상징이 해체되면 영은 무의식에 내려와 물이 되고, 그 흐름과 숨결로 인해 우리 존재의 심연은 불안에 신음한다.
물 속의 영을 낚아 상승하려고 물에 내려가는 낚시꾼은, 자신의 의식을 보호하면서 무의식에로 내려가야 한다. 물에 들어가 잠기면 미치게 되므로, 그는 물가에서 낚시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숨김없는 이미지들이 보이지만, 잠시 후 살아있는 괴물들이 나타난다. 아니마는 남성 안에 숨겨져 있는 마술적인 여성의 본능적 형태이다. 그녀는 남자를 매혹시켜 그 생기를 다 빨아먹는 애욕적인 매력의 화신이기도 하고, 악마와 같은 공포의 화신이기도 하며, 우울과 황홀, 환상과 환멸,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장난꾸러기 꼬마 요정이기도 하다. 그녀는 음모와 기만 속에 속이고 또 속이며 죽음의 미약을 젓는다. 아니마는 남자의 여성적 영혼이다. 그녀는 남성적 생명의 마술적인 숨결, 남자를 불태우는 정열의 불꽃이다. 아니마의 도발과 찬탄스러움으로 인해 남자는 생기를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아니마는 생명의 수호신이며, 삶을 원하기 때문에 선과 악을 동시에 원한다. 따라서 그녀로 인해 천국과 지옥은 운명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생명 그 자체일 뿐 어떤 윤리적인 의식이 아니므로, 그녀에게는 선과 악 같은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의 기분과 반응, 충동 등 모든 자발적인 생명활동의 선험적인 요소이다. 그녀는 스스로 살아가는 생명 자체이며, 의식은 그녀로부터 솟아오른다. 남자의 자아는 자신 안에 있는 아니마를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아니마의 이미지는 여성에게 투사된다. 종교는 이 투사를 섭취하여 여신이나 마녀, 성모나 교회라는 상징을 낳는다. 상징이 해체된 시대에는 선악의 피안에 있는 생명의 충동을 인정하기에는 도덕적인 갈등이 너무 크므로 이혼의 증가, 성적 장애, 그리고 성 자체의 신성화가 추세화된다.
자신의 개인적 내면성 안에 은밀하게 작용하는 무의식에 주목하고 그것을 개성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면, 아니마에는 생명의 법칙에 대한 초월적 지식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아니마의 변덕과 혼돈은 사실상 매우 심오한 의미를 계시하고 있다. 상징을 되살려 혼돈에 방벽을 놓고, 의미와 무의미를 분리하기 시작하면, 의미를 통하여 새로운 질서가 드러난다. 처음엔 광기처럼 보이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의미있게 된다. 모든 혼돈과 무질서는 부단히 운동하고 있는 것이며, 모든 운동은 대립물에 정초하고 있다. 따라서 만사를 이율배반적으로 판단하는 분별적 이해가 필요하다. 이렇게 개성화과정을 통하여 삶의 원형인 아니마의 배후에 의미의 원형이 드러난다.
의미의 원형은 역사의 원천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이해와 해석의 원형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 중에서 궁극적으로 의미심장한 것들은 모두 무의식이 사고하지 않고 내면적으로 지각하던 시절에 형성된 시원적인 원형적 형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내적 직관에 의해 형성된 생각들은 원시적 자아의식에 선행한다. 이것이 바로 원초적 의미세계이며 태고적 사고방식이다. 아니마는 바로 이 야생의 격정이며, 지배적 상징들이 작용할 때는 잠자는 미녀가 되었다가, 그 상징들이 노후화 되면 다시 깨어나 황무지로 달려가는 야생마이다. 이 말을 붸아 사막으로 가는 사람은 낙원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낙원이란 삶과 지식이 공존하는 곳이며, 진정한 개성화를 통하여 달성할 수 있는 인격적 상태이다. 그것은 아니마가 신의 딸이 되는 곳에서 달성된다. 신에 대한 관념, 즉 영의 원형은 지혜로운 늙은 현자이며, 그는 선악의 피안에 있는 존재, 즉 흑마술사이자 백마술사이다. 영은 혼(아니마)의 아버지이면서도, 그녀(동정녀)의 아들이다. 의미의 원형 안에서 선과 악은 상호 대립적일 뿐만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이며, 조화를 통한 갈등해소에 의해서만 서로 결합되어 자유롭게 된다.
그림자, 아니마, 의미의 원형은 개성화 과정에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무수한 상징들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 나타남 자체가 변형의 과정이며, 이를 변형의 원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재생이나 부활은 변형의 한 상징이다. 일반적으로 인격성의 변형은 축소나 팽창으로 나타난다. 인격의 축소는 넋 나간 상태, 영혼의 상실, 돌연한 전반적 침체를 의미한다. 현대인의 의식적이고 지향적인 작용은 의지력을 통제하여 정신상태를 굳건하게 결합하지만, 때로 신체적, 정신적 피로나 질병, 충격과 격한 감정으로 인해, 의식의 긴장이 풀려 정신력이 저하될 수 있다. 그는 활기를 잃고 침체되어 활력을 상실한다. 의지박약으로 의식이 통일성을 상실하면 인격의 개별적 요소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의식의 통제로부터 이탈한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이 된다. 그는 자기직면을 통하여, 자기신뢰감을 되찾고 창의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한편 인생의 초반기부터 인격성이 팽창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외부의 모든 것을 내부로 채워서 자신을 팽창시킨다. 그러나 정신의 풍요성은 외부로부터의 축적이 내적 원천의 광대함을 통해 수용되어야만 달성된다. 불멸을 향한 내적 갈망은 외적인 부와 명예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내적인 화해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변형은 내적 구조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개인은 인격 안의 어떤 이념에 홀려 그것에게 지배될 수 있다. 홀림에 의해 콤플렉스가 에고와 동일시된다. 가령 세계에 대한 개인의 적응체계인 페르소나가 그러하다. 전문직의 사람들은 세상의 기대에 맞춰 행동함으로써 현세적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자신의 그림자에 홀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타인의 적대감을 자극하고 인생의 불행을 향해 스스로를 극화한다. 남자가 아니마에 홀리면 변덕스럽고, 제멋 대로이고, 무드에 사로잡혀 감적적이며, 냉혹하고 악의적이고 거짓되고 심술궂고 양면적이고 신비롭다. 여자가 아니무스에 홀리면 고집스럽고 교조적이고 이론적이고 이상적이고 논쟁적이고 지배적이 된다. 한편 죽은 조상과의 동일시가 망자에의 홀림을 초래하는데, 이는 흔히 윤회의 문맥으로 해석된다. 대중 안에서 공통의 감정을 공유할 때, 집단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개인이 자신을 집단으로 파악하는 수도 있다. 집단의 총체적 심리는 거의 동물의 심리와 유사해지기 쉬우므로 개인적 의식보다 낮은 의식수준을 초래한다. 대중의 현존은 서로에게 강한 암시력을 행사하여 선동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 집단의 심리적 퇴행은 종교적 예식에 의해서 상쇄될 수 있다. 많은 예식들이 신이나 영웅과의 동일시를 가져온다. 여기서 예식은 개인의 변형을 위한 외부로부터의 기적적인 수단, 혹은 요가와 같은 기술이 된다. 삶 안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변형도 있다. 그것은 재생의 상징을 가지며, 주로 꿈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성숙하는 타자의 위대한 인격성과 교제하는 것이다. 자기 내면 속의 타자의 실존을 인정하고 그의 불멸적인 목소리에 귀기울여 그와 교제하는 명상 안에서 내적 생명은 불멸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9. 페르조나 (The Persona)

 

① Persona :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 → 인간이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여러 개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가 하면서 살고 있다는 뜻.
             예) 영화 '마스크'에서도 주인공이 가면을 쓰면 다른 성격의 소유자로 급변한다.

② 엄밀히 말해서 '페르조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하여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다.
   그는 어떤 이름을 받아들이고 칭호를 얻고 지위라든가 또 이것저것을 남에게 내보인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이기는 하나 그 사람의 개성에 비추어 보아서는 2차적인 현실,
   그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이 더 많이 참여한 타협형성에 불과한 것이다. '페르조나'는 하나의 가상 Schein, 농담 삼아 규정하자면 2차원적 현실이다.

③ 많은 집단 정신 가운데 그 사람이 무엇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에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가 받아들인 것이 집단정신의 일부라는 것은 틀림없다.
→ '페르조나'는 집단 정신의 단면. 사람들이 생각, 신념,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이 아닌 남들의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따라서 페르조나에 입각한 태도는 주위의 일반적 기대에 맞추어 주는 태도이며 외계와의 적응에서 편의상 생긴 기능 콤플렉스이다. "집단적인 일반적 윤리를 대변" - 모름지기, ...란

④ 페르조나와의 동일시 : 집단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자아는 차츰 자기도 모르게 집단 정신에 동화되어 그것이 진정한 자기의 개성인 것으로 착각
→ 집단이 요구하는 역할에 충실히 맞추어 주는 사람이 된다.
→ 심해지면 내적인 정신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여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존재를 잃게 된다. 페르조나와의 동일시는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숨기고 그것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페르조나는 주변의 가치관이나 부모의 생각이 은연중에 주입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페르조나는 제거의 대상인가? - 그렇지 않다.

⑤ 관계기능 Beziehungsfunktion : 자아로 하여금 외계와 관계를 맺게 해주는 기능
→ 페르조나는 가상이지만 없애야 할 것이라기 보다 구별되어야 한다. 페르조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외계, 즉 그 사회에 걸맞는 기능을 못하고 자기의 기분에 의해 행동하는
   완고하고 무자비한 인격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도덕적인 혼란을 유발한다. ? 박한상 사건

⑥ 사회적 역할과 페르조나
- 페르조나의 상실 → 사회에 부적응, 범죄
- 성역할과 페르조나 : 남자가 남자다운 페르조나를 갖지 못함. → 성도착·성주체성 장애
-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거나 직업을 천직으로 삼는 경우 - 페르조나와의 맹목적 동일시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 사람에 있어 개성화란 그렇게 사는 것 (동일시 <자각된 선택)

⑦ 개성화가 나에게 씌인 모든 칭호, 지위, 출신, 배경을 벗어 던지고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 어 전체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페르조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될 수 없는 것.

융:"페르조나는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는 적응체계 혹은 태도, 그러므로 거의 모든 직업이 거기에 특징적인 페르조나를 가지고 있다. ... 위험한 것은 다만 사람들이 페르조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교수가 그의 교과서와 동일시하고 혹은 테너가수가 그의 목소리와 동일시하는 것과 같이 ..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페르조나는 본래의 그가 아닌 것인데, 그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공적으로 보이는 탈 내지는 겉보기이며,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좋은 인상을 주기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페르소나에 지배되어 있는 생활과, 심리적 욕구들을 채우고 있는 생활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페르소나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서 소외당하게 되며, 지나치게 발달한 페르소나와 퍼스낼리티의 미발달 부분의 갈등 때문에 긴장상태 속에서 살게 된다.
자아가 페르소나와 동일화하는 것은 '팽창'이라고 불린다. 또 한편, 그는 훌륭히 제구실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만심을 가진다. 그는 강요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때때로 이 구실을 남에게 투사하여, 같은 구실을 하도록 요구한다. 개인의 행위에 관한 풍습과 법률은 집단적인 페르소나의 표현이며, 이것은 개인의 욕구를 무시하고 획일적인 행동기준을 집단 전체에 강요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 페르소나가 팽창한 사람은 기대되어 있는 수준에 합치하지 못할 경우, 열등감과 자책감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 그 결과 공동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며, 고독감과 소외감을 가진다. 따라서 정신건강에 페르소나의 팽창의 위험은 명백하다.
당사자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무의식적 위선자이기보다는 의식적 위선자인 편이 나으며, 자기를 속이는 편보다는 남을 속이는 편이 낫다.
이상적인 것은 어떤 종류의 위선도, 속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무튼 페르소나는 인간 존재에 있어서 하나의 사실이며, 그 어떤 형식으로든지 표현으로든지 표현되어야 한다. 물론 신중하게 표현하는 편이 바람직하겠다.

 

 

10. 개성화

 

융:"나는 개성화라는 말을 심리학적인 개체 즉 하나의 선별된 별개로 나눌 수 없는 단일한 것, 하나의 전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뜻에서 사용한다."
"개성화란 단일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개성이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 궁극적인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비의 것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개성화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성화를 자기화 혹은 자기 실현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개성화 과정이 자아의 의식화와 혼동되고 그래서 자아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때문에 구제할 길 없는 개념의 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로써 개성화는 단순한 자기 중심주의와 자기애에 빠진다. 그러나 자기란 단순한 자아보다도 끝없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잇다 ....자기는 자아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 또는 다른 사람들이다. 개성화는 세계를 배제하지 않고 수용한다."

개별화란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며,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개성 있게 만든다. 개성,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별화를 통해 그는 하나의 개인이 되는 동시에 집단의 구성원이 된다. 이렇게 본다면 개별화과정은 의식의 지도 아래에서, 성실하게 내면의 심리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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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7 00:12 2007/03/27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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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 2007/03/27 00:05

[감각 경험하기 : ENFP, ENTP / INFJ, INTJ]


감각 기능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은 그 순간 속에 존재하면서 실재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직관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직관적 인식을 꺼놓는 일이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결론을 도출하지 말라. 설명을 찾아라. 자신이 예전에 이를 경험했던 때를 생각하라. 아니면 가능성을 숙고해 보라. 가능한 한 많은 감각들을 지닌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 현재의 순간에 머물러라. 그리고 당면한 현실에 초점을 두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확장시키도록 계속적으로 노력하라.


1. 내향적 감각에 대한 경험 : ENFP, ENTP

(1) 날마다의 신체적인 경험을 확인하고 그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라. 자신의 감각을 이용하여 어떻게 느껴지는지 경험하도록 노력하라. - 위, 식도, 입, 어디든

(2) 좋아하는 음식을 천천히 먹어라. 음식을 씹을 때의 질감을 느껴보고 맛을 음미하라. 냄새도 맡아보고 씹을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어 보라.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똑같이 해보라.

(3) 자신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장소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머리 속으로 조용히 재구성하라. 물질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온도는 어떠한가? 그 온도를 느낄 수 있는가?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도록 노력하라.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거나 다른 유사 사건과 결부시키려 하지 말라. 대신에, 특정한 사건을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 내적으로 재현하고 다시 체험하도록 노력하라.

(4) 할 일이 생기면,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그 일을 마치기 위해 취해야 할 단계들을 기록하라. 각 단계들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조직하고 각각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인지 가늠하라. 일을 할 때, 작성된 목록을 사용하고 자신이 실제로 한 것을 반영하기 위해 필요하면 수정하라.

(5) 하루 종일 자신에게 유용할 수도 있으나 대개는 놓칠 수 있는 특정한 정보를 주시하라. 예를 들어, 새로운 곳(혹은 잘 아는 곳이라도)으로 가고 있는 차를 타고 있을 때 거리들의 이름에 주의를 기울이라. 자료 상점에서 앞으로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세 가지 물건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라. 개개인의 외모, 행동, 몸짓언어, 얼굴표정 등을 참작하라. 혼자 있을 때 정보의 조각들을 살펴보고 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억 속에 저장하기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라.

 
2. 외향적 감각에 대한 경험 : INFJ, INTJ

(1) 현재의 순간과 외부 현실에 집중해야 하는 취미를 가져보거나 기술 게임을 하라. - 가령, 공 가지고 재주 부리기

(2) 감각 정보만을 사용하여 여름 폭풍이나 가을 나뭇잎과 같이 일상적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묘사하라. - 그 냄새와 색깔, 질감, 맛, 피부에 닿는 감촉이 어떠한지. “그것은 ...와 비슷해”라거나 “그것은 마치 ...인 것 같아”와 같은 표현은 사용하지 말라. 만일 ESTP나 ESFP의 말을 들어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3) 감각 경험으로써 사과를 하나 먹어 보라. 우선 사과를 보고 모양, 색깔, 울퉁불퉁한 정도를 살펴보라. 향기를 맡아라. 감촉을 느껴라. 한 입 깨물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어라. 입, 식도, 위에서의 감각을 느껴보라. 말로 자신에게 표현하려 하지 말고 단지 감지하기만 하라.

(4) 얼마가 되었든 “현명하지 못하게 ”써도 마음이 편안할 만큼의 현금을 가지고 나가라. 평소에는 가지 않는 상가나 상점(아마도 장난감 가게, 미술품이나 수공예품 상점)에 가라. 관심을 끄는 첫 번째 물건 중 가져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사라. “어디에 놓을까?”,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와 같은 자문은 하지 말라. 모든 것을 다 훑어 볼 때까지 기다리지도 말고, 가장 마음에 들고 가장 쓸모가 있어 보이는 것을 사려하지 말라. 산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서 가지고 놀다가 그저 보이는 곳에 두어라. 괜찮으면, 친구나 자선단체에 주어라.

(5) 직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생각해보라. 매우 중요한 마감기한이 다 되었을 때 장비가 고장 났다거나, 자료실에 화재가 발생했다거나, 아니면 고용인에게 사고가 생겼다고 생각해보라. 물리적인 상황과 관련된 중요한 요인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나타낼 수 있는 반응들을 2분 동안 나열해 보라. 이 정보에 근거하여, 더 깊게 생각하지 말고, 당장 취할 수 있는 행동단계들을 신속히 결정하라. 간과했을지도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라.

 


 [직관 경험하기 : ESFP, ESTP / ISFJ, ISTJ]

 

모든 사람들에게는 직관, 늘 마음에 머물러 있는 감각, 자조적인 감정이 있다. 지관 기능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은 그러한 자조적인 감정들이 설명되거나 정당화되어질 수 없는 때조차도, 그러한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감각 유형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음번에 “육감”을 경험하게 될 때에는 육감에 귀를 기울여라. 그 육감에 대해 가능한 한 선명한 심상을 갖도록 하라. 그런 후 이를 탐색하라.

 
1. 내향적 지관에 대한 경험 : ESFP, ESTP

(1) 마치 만화경을 통해 보고 있는 것처럼 “현실”을 보려고 노력하라. 사물의 위와 아래를 바꿔 보라.(상이한 방향에서 바라보라.) 당신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이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라면 어떻게 될까? 들판이 파란색이고 하늘이 녹색이라면 어떨까?

(2) 마음속에 번번이 떠오르는 그림이나 자주 사용하게 되는 비유와 같은 내적 심상을 골라 보라. 혼자 있을 때, 이 심상과 대화를 나누라. 심상을 시각화시킨 후, “너에 대해 내게 말해 봐”라고 말하라. 무엇을 말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 보라. 마음속에 있는 그림들과 이야기들을 인식한 후 분명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질문을 해 보라.

(3) 명상 과목을 수강하고(아니면 명상 방법론을 읽고), 명상을 위한 규칙적인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라. 그저 짜여진 계획 속의 시간이 되지 않게 하라.

(4) 일상적인 대상이나 사건(가을 나뭇잎이나 여름 폭풍)을 고른 후, 물리적인 묘사나 세부사항을 나타내려 하지 말고 단지 그것에 대해 써 보라. 어떤 기분이 들게 하는가? 어떤 것을 보다 더 큰 의미로 함축하고 있는가? 삶과 죽음의 순환이나 세계적인 양상에 대해 생각하라.

(5) 상대적으로 세부정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대상을 선택하여 보다 튼 사건과 연관지어 주는 가설을 설정하라. 가령, 정원에 있는 꽃 한 송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들어 가고 있다. 가능한 원인들을 추측하라. 그 원인들이 정원의 미래에 관해 무엇을 암시하는지 질문하라. 어떤 해결방안이 떠오르는가?


2. 외향적 직관에 대한 경험 : ISFJ, ISTJ

(1) 시 한편을 일고 그 시로 인해 생겨난 기분을 그림으로 그려보라. 잘 그릴 필요도 없으며 누군가에게 전달할 만한 무언가를 담을 필요도 없다. 단지 색과 모양으로 당신의 기분을 표현하라.

(2) 단일한 감각 세부사항이나 실제로 직접 표현해주는 구체적인 사실을 아용하지 말고 일상적인 대상 하나를 다른 이에게 묘사해 보라. “그것은 ...와 비슷해”라거나 “그것은 마치 ...인 것 같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라.

(3) 결정을 내리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있을 때, 전혀 관련 없는 사람에게서 조언과 정보를 구하고 “그래, 하지만...”이라는 반응은 잊어라. 직장에서 새로운 컴퓨터 시스템 구입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컴맹인 친구에게 만일 너라면 어떤 컴퓨터를 살 것인지 물어 보라. 집안 예산을 결정해야 할 때, 돈의 가치를 모르는 아이에게 조언을 구하라. 그리고 나서 그 조언에 따르는 것을 상상하라.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결과가 생길까?

(4) 어떤 문제나 결정으로 당항하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을 포함하여 당신이 만나는 다섯 명의 사람에게 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 보라. 각각의 제안이나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후,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의 패턴을 찾도록 노력하라.

(5) 토요일에 사람들이 할 것 같은 모든 가능한 것들을 생각해본 후 평소 하려고 생각지도 않는 것을 선택하라. 새로운 활동이나 장소, 보통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웃, 새로운 동료)을 함께 하자고 초대하고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열정을 가지고 그 활동에 대해 설명하라. 그런 후 에너지를 가지고 그 일을 하라. 후에, 평소의 자신과 어떻게 같거나 달랐는지 생각해보고 앞으로도 시도할만한 또 다른 새로운 일들을 떠올려보라.

 
 

[사고 경험하기 : ESFJ, ENFJ / ISFP, INFP]

 
사고 기능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은 찬반과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의사결정 상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면서, 공평한 견해를 취하는 것이다. 결정이 마치 수학 공식인 것처럼 바라보려고 노력하라. 업무와 관련된 정보에만 초점을 두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라.


1. 내향적 사고에 대한 경험 : ESFJ, ENFJ

(1) 가령 직장에서의 보고서와 같이 자신이 이미 작성한 글 한편을 가지고 관계없는 단어를 모두 지우면서 훑어보라. 형용사가 있다면, 그 형용사 대신에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명사를 찾아보라. 부사가 있다면, 그 내용을 포함하는 동사를 찾아보라. 필요하다면 유의어 사전을 사용하라.

(2)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다양한 선택방안들을 적어보고 각각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라. 만일 어떤 선택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찬반이 있겠는가? 단기적인 결과와 장기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알아보기 어려울 지도 모르는 접해있는 쟁점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확실히 해두라. 가령, 직장에서 주간 팀 회의를 하고자 한다면, 회의 시간을 내기 위해 사람들이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혹은, 새로 들어올 장비의 비용을 고려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해서 드는 비용은 얼마인가?

(3) 장기나 컴퓨터게임과 같은 게임을 해보라. 전략을 연구하고, 이후에 취할 십여 가지의 동작과 있을 법한 반대동작을 포함하여 마음속에 계획을 가지고 접근하라. - “만일-그러면”사고

(4) 당신의 관심을 끌거나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현재의 사회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를 밝혀보라.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찾아보고, 기록하고, 사실과 이론들을 수집하라. 이러한 과정동안에는 판단을 잠시 보류하라. 그런 후 찾은 정보들을 가지고 각기 반대 관점을 지지하는 두 가지 논리적인 주장을 약술하라. 이때, 각각의 관점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들을 포함시켜라.

(5) 회의에서, 조용히 앉아 논의의 기저에 있는 주된 요점과 쟁점에 열중하여 들어라.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찾아보라. 정확하고 분명하게 구성된 요약을 조직적으로 세우라.(필요하다면 적어두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세우는 방법으로서 이 요약본을 그룹에 제시하라.


2. 외향적 사고에 대한 경험 : ISFP, INFP

(1) 자신과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찾아서 함께 논의할 것을 요청하라. 당신이 문제로 여기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논리적으로 말한 후 그들에게도 그렇게 해 줄 것을 부탁하라. 이들 문제해결 활동으로 보도록 노력하고 공평한 관점을 유지하라.

(2) 차고 청소와 같이 미뤄두었던 일을 찾아내라. 이를 끝내기 위한 가장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라. 이를 끝내기 위한 가장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보라.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목록을 만들고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라. 각각의 사람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일이 완수될 때마다 체크를 할 수도 있다.

(3) 회의를 주관하게 될 때, 논의와 실행 사항에 대한 쟁점을 명확하게 하는 분명하고 논리적인 의사일정을 구성하라.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이 업무 지향적이 되도록 집중하라. 의사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쟁점들이 명확히 규명되었는지 확실히 하며, 가능한 방안들과 수단을 고려하라. 실행가능성, 효율성, 그리고 결과 면에서 각각의 문제해결을 논하라. 집단원들로 하여금 실행 사항들에 대해 표결할 것을 요청하라. 다수의 결정을 가지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실행 계획을 수립하라. 어떤 부분에 대해 누가 책임을 맡을 것인가? 최종기한은 언제인가?

(4) 한동안 당신을 찾아온 적이 없는 소중한 친구를 며칠 초대할 계획을 세우라. 그 친구가 무엇을 즐기며 좋아하는지, 만나면 재미있을 만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당신의 영역에 있는 많은 자원들 중 어느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지 생각해보라. 이러한 활동들을 위해 임시계획과 스케줄을 세우고 준비물과 대안을 마련해두고 모든 것을 준비하라. 친구가 도착하면, 대안들을 함께 논의하고 임시계획을 행동으로 옮겨라.

(5) 어떤 쟁점에 관해 대통령이나 지사에게 편지를 써라. 결론(그 지사에게 바라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하고 이를 지지해주는 주장을 약술하라. 직접적이며 명료하고 논리적이며 간결한 편지가 되도록 하라. 정확한 진술문과 언어를 사용하라. 고쳐 써보고 외향적 사고 유형인 사람에게 부탁하여 읽고서 평하게 하라.


 

[감정 경험하기 : ESTJ, ENTJ / ISTP, INTP]

 
감정 기능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은 각각의 개인이 가진 경험과 관점에 가치를 두면서 이를 의사결정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고 유형인 사람들에게는 “비논리적”이고 적절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함께 포함하여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한 가지 요령은 관여된 개인들의 경험, 관점, 감정들이 - 논리적이든 아니든 - 적절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1. 내향적 감정에 대한 경험 : ESTJ, ENTJ

(1)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관 즉, 정체감의 중심을 이루는 가치관들의 목록을 만들라. 가치관을 명료화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CPP의 Rokeach Values Survey와 같은 것을 사용하여 도움을 얻어라.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있는지, 당신이 믿고 있으며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인생을 조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이 목록을 사용하여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평가하라. 아니면 가치관의 견지에서, 당신의 삶을 규칙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일지를 작성하라.

(2) 당신이 매우 소중히 여기는 어떤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있는지 생각한 후, 그것이 무엇이며 당신에게 왜 중요한지를 일대일로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라. 그것의 질적인 면이 당신에게 어떻게 더 나은 인생을 가져다주는 지도 포함시켜라.

(3) 소중한 동료나 배우자, 자녀와 같이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 상황을 평가하기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이 관계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관계의 조화를 향상시키기 위해 올바르기를 포기할 수 있는가? 어떤 기분이 들까?”에 대해 자문하라. 그리고 나서, 그 사람 함께 정직하게, 숨김없이, 직접적으로, 당신의 생각을 탐구하라.

(4) 집단 회의에서, 토의와 다양한 관점들에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라. 일반적인 맥락, 기저에 있는 공동의 가치, 상이한 관점들을 통합해 줄 수 있는 사물을 보는 다른 방식을 찾아내도록 노력하라. 집단 내의 일치를 위한 기반으로서 이러한 점들을 요약하여 표현하도록 하라.

(5) 집단상황에서는 관찰자의 역할을 택하여, 어떤 특정인이 거북해 하거나 제외된 듯이 느끼고 있다는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를 포착하라. 자신이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느낄 것인지를 생각해보라. 그 사람의 불편함을 덜어주도록 당신이 말하거나 행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 - 그 옆에 가서 앉아 그 사람의 전문지식분야 내에서 질문을 던져보라.

 
2. 외향적 감정에 대한 경험 : ISTP, INTP

(1) 당신이 더 잘 알기를 원하는 사람을 두 명 이상 확인하라. 그리고 나서, 일과 관련 없는 편안한 환경에서(가령, 점심식사를 하며), 업무와 관련된 측면은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아는데 도움이 될만한 질문들을 해보라. 개개인의 경험과 몸짓언어를 파악하고 그 사람이 느끼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에 자신의 반응을 맞춰라.

(2) 결정을 내려야할 때, 잠시 멈추고 이 결정에 의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나열해보라. 당신에게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락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라. 이 결정이 개인에게 감정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생각하며 각각의 사람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려하라. 그 중 몇 명에게 가서 그들의 관점을 제시할 것을 요청하여 당신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해냈는지를 확인하라. 이 정보도 또한 당신의 결정에 포함시켜라.

(3) 당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서 갈등의 발생할 때, 문제점에 초점을 두거나 해결하려 하기 전에 우선 당신이 동의하는 부분에 대하여 논의하도록 하라. 일치에 도달하기 위하여 당신이 조절하거나 수정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점을 말하면서 상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들어라.

(4) 회의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나서, 개개인의 입장에 당신이 동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말하도록 노력하라. 동의할 수 있는 점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참여에 대하여 실재적이고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두도록 하라.

(5) 편지 세트와 우표를 사서 가까이 두어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줄 때마다 - 그것이 그 사람의 업무의 일부였을지라도 - 감사함을 전하며 그 일로 인해 얼마나 수월해졌는지에 대한 짧은 편지를 써라. 겉봉을 쓰고 우표를 붙여 즉시 보내도록 하라.

 
출처 : “심리 유형의 역동과 발달” (한국심리검사연구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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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7 00:05 2007/03/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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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26 23:50

내가 좋아하는 사람 - 오철수

 

항상 웃으면서
나를 대해주는 그가
나는 좋다
똑같이 어려운 세상살이 하면서도
언제나 나를 생각했다는 듯
마음 속
깊이 내려놓는 눈길

 

항상 단정하게 보일려는
그의 외모에도
마음이 끌린다
볼 때마다 같은 단벌 바지이지만
깨끗이 하고
궂은 일은 미리 나서서
팔을 걷어부치는 그
언제나 꼿꼿하게 보이는
그가 나는 좋다

 

그는 늘 생각하고
항상 책을 놓지 않는다
‘우리에게 밑천이라고 몸뚱이 밖에 더 있어,
몸뚱이는 일하는 데 쓰고
공부는 일단
잠잘 시간 까먹는 거지‘하며
그가 말할 때는
참 운동이라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나를 만나면
어쩌면 그렇게 기억을 다 하는지
일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가까운 예를 들어
세상을 보게 해주는
그가 나는 좋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요즘 바쁘나 봐’하며
씽긋이 웃으며
대신 말이 빨라지는 그
나무라지는 않지만
매사에
지켜야 될 것을 꼭 지켜
그라면
믿지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그가 나는 좋다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묻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생각하는 듯
마주하고 있던 눈을 잠시 떨구고 있다가
‘정말, 그럴 수도 있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뭐가 달라지는 걸까‘하며
대화를 풀어가는 그
함께 있으면
함께 있는 것이
든든해지는
그가 나는 좋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끔
화를 내는 대목에서도
그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가 화를 내는 대목은 꼭 하나
우리가 가야 할 나라에 대해
의심하는 듯하면
그것은 영락없이
야단을 한다
무엇이든지 다 들어 줄 것 같은 그지만
꼭 한 가지
타협하지 않는 것을 가진 그가
나는 좋다

 

가끔
내 말꼬리에
‘노동자 계급의 자유가 아닌
모든 자유는 슬픈 거야‘하고
말해주는 그가
나는 정말 좋다
언젠가 한 번
‘이렇게 우울한 날은 옛사람을 만나
뒤돌아볼 시간이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니까
‘그것 시적인데,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하며
생맥주 한 잔 할까
웃어주던 그

 

그와 함께 있으면
마치 어린날 시골 초등학교 교실
그것도 주번이라고
남들보다 먼저 가서
문을 열 때
교실에서 풍겨나던 나무 냄새를 맡고 있는 듯
푸근해진다

 

오늘 처음으로
그가 15분 늦었다
눈이 와서 일부러 30분이나 빨리 출발했는데...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를 볼 때
이 세상에
분명히 다른 세계가 있구나
자랑스럽게 느껴지며
정말
그가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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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23:50 2007/03/26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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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3/26 23:47

최후의 동지 - 오철수

 

최후의 동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죽음에서도 같이하고
기쁨에서도 같이한다
함께 길을 가고
눈길 시린 갈볕 뚝뚝 따먹으며 오르는
붉은 접시꽃 대궁처럼 항상
최선에
피 도는 한 토막
육신을 눕힌다, 함께라면
주어진 일을 계급의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운다
그것을 임무로 아는 그것밖에 모르는 가장 순박한
최후의 동지는
이 세상에서 딱 하나
무명 전사

 

최후의 동지는
민중의 이름으로 낳아
민중의 이름으로
민중의 길을 간다
마치 제 밥그릇이 제 근거지가 되고 혁명의
젖줄이 되고
파괴와 건설이 되는
내리친 자본의 채찍을 전신으로 감아
일어나는 노동의 역사와 같은
원칙!
두 개의 길이 될 수 없는 믿음으로
항상 곁에 한다

 

희망하는 것이 같다
항상 진취적으로 이 세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 세상 보다 먼저 세상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살게 한다

 

봄에는
알종아리 맨발의 아이들을 들꽃으로 널어놓고
여름에는 장대비 주룩주룩
산맥을 달리게 한다
가을에는
총을 든 전사들에게 바싹 마른 입 적시는
산머루 천지사방으로 열게 하고
겨울은
가장 강한
민주주의 민중 공화국을 준다

 

최후의 동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하루하루가
산고를 줄이는 지혜로 남으며
죽음을 막는 원칙!
그래서 그들에게는 지난날은 지혜
내일은 전술로 기록되며
그가 서 있는 곳이
당이 된다
정치적 순결성이 생명이 된다 그의 걸음 하나 하나
민중의 큰 걸음

 

사유하는 것이 없으므로 최후의 동지는
담백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민중의 것으로 하기 때문에
최후의 동지는 사심이 없다
항상 모든 일을 계획하므로
최선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며
반성을 보다 나은
인간화에 복무시킨다
하여 최후의 동지는
서로에게 거울이다

 

서로에게 적극적이고 가차없고
하면서도 인정적이어서
달기만 하고
돌아서면 칼을 들이대는
부르조아 강도놈과 다르다
최후의 동지는
그것이 어디에 있든
부르조아의 목통을 움켜쥐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후의 동지는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리고 농담일지라도
정치적 도덕적 순결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피티의 몸을 걸고
혹은 자신의 정치성을 걸고
맹세할 수 없다
그의 모든 것들 중에 자신의 것이라곤
절대 없다
민중의 것!
전 인류의 몫이기 때문에
최후의 동지는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사랑과 기쁨을 전한다

 

그가 걷는 길에서는
인간의 향취가 난다
그가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는
성장 변화가 생긴다
죽음의 시대 속에
굵은 눈물을 흘리며 한 사내를 가게 하며
용접 불꽃으로
진군의 불꽃 놀이를 벌이게 한다
그가 나누는 대화에서는
열망이 솟고
그의 맘 씀씀이에서는
인간이 영근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앞산이 색동으로 울다가 머리를 묶고
전사로 나아간다

 

최후의 동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가 꼬옥 잡아주는 손에서는
모든 영혼이
새 것으로 다시 쓰웽 - 돌아가는 기계 기름냄새가 난다
마치 민중의 바다가 일렁이고
새벽을 몰고 가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듯

최후의 동지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북인 듯
아침을 알리고 전쟁을 알리고 해방을 알려준다
그 빛나는 눈 속에는
내가 디뎌야만 하는
새벽
출정이 살아
나를 불러준다
민중의 이름으로 너는 민중의 바다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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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6 23:47 2007/03/2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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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기 - 2007/03/24 18:01

[Life Style]펜션은 지금 ‘테마’로 통한다
 
[동아일보]《“에세이 책을 즐기는 ‘페퍼민트 숲’, 영국 정원 느낌이 나는 ‘로즈힙 가든’ 등 네 개의 방에는 저마다 테마가 있습니다. 대화 시간을 뺏는 TV와 인터넷은 아예 없죠.” (강원 홍천군의 ‘오렌지 페코’ 펜션)

“요즘 테마를 앞세우는 펜션이 많은데 우리는 ‘무(無)테마’가 테마입니다. 방문객들에게 여기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빈둥빈둥 보내라고 권하죠.”(경북 청송군 ‘송소고택’)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새로운 휴식공간으로 각광받는 펜션이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농가형 소규모 펜션부터 기업형 리조트급 펜션까지 각양각색의 펜션이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특한 테마로 무장한 펜션이 대거 등장하면서 여행객들은 취향이나 여행 목적에 맞는 펜션을 고를 수 있게 됐다.》

○ 체험을 원한다면

최근 문을 연 대부분의 펜션은 특정 테마에 집중해 방문객들이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삼성전자 입사 동기로 퇴직 후 강원 홍천군에서 펜션을 운영 중인 김소현(30) 한규환(32) 씨 부부의 ‘오렌지 페코’(033-434-3013)도 이색 테마펜션으로 입소문이 난 곳. 오렌지 페코는 홍차의 한 종류로 이들 부부는 티 문화를 펜션의 테마로 삼았다.

이들이 펜션을 지은 동기도 독특하다.

“신혼여행지인 몰디브에서 독서와 잠자기, 선탠, 수영, 대화를 즐기면서 ‘휴식 체험’의 소중함을 절감했지요.”

이후 남편은 목공일을 배웠고 아내는 인테리어와 마케팅을 익힌 뒤 4개의 테마 방을 탄생시켰다. ‘페퍼민트 숲’ ‘로즈힙 가든’ 외에 한식의 맛을 아기자기하게 전하는 ‘끽다거 초당’, 판타지의 꿈을 자극하는 ‘앨리스 자몽’이 방문객을 맞는다.

방마다 주제에 맞는 차와 책, 음악, 인테리어로 장식된 이곳에선 휴식과 성찰, 대화, 삶의 기쁨이라는 테마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제주 서귀포시의 ‘재즈마을’(064-738-9300)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펜션 공동체다.

3600여 평의 용지에 4개 동, 25개 객실을 갖춘 재즈마을은 ‘음악이 있는 풍경-더 왈츠’ ‘문학이 있는 풍경-노래하는 산호’ ‘영화가 있는 풍경-재즈시네마’ ‘미술이 있는 풍경-푸른 지붕’ 등 동별로 테마가 있다.

오스트리아풍의 객실인 ‘더 왈츠’에서는 고급 오디오시스템을 갖추고 음악 CD를 무료로 대여한다. ‘노래하는 산호’에 투숙하면 책을 무료로 읽고. ‘재즈시네마’의 객실에선 DVD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경북 경주시 동방동의 ‘펜션600’(054-777-0600)은 차 예절 교실, 도예체험, 활쏘기체험 등의 기회를 제공한다. 경기 양평군의 ‘캐슬빌’(031-775-3940)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전문 강사에게 승마를 배울 수 있다. 경기 이천시의 ‘도자펜션’(031-638-8359)엔 가족들이 직접 도자기를 만드는 체험 코스가 있다.

○ 독특한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강원 강릉시 경포대 부근에 있는 ‘객주 휴심’(033-642-5075)은 530평의 대지에 소나무와 황토만을 이용해 지은 전통 한옥펜션이다. 13개의 객실 이름은 방해정, 상영정, 홍장암 등 경포호수 주변에 있는 정자에서 따왔다.

가장 인기 있는 객실은 홍장암이라는 이름이 붙은 초가집.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하는 전통 구들방이다. 벽은 소나무와 황토, 바닥은 두꺼운 돌 구들장으로 돼 있다. 장작 아궁이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가마솥에 직접 지은 밥과 누룽지를 맛볼 수 있다.

양평군의 대명비발디파크 입구 변에 있는 ‘생각속의 집’(031-773-2210)은 건축가 민규암 씨가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6개의 숙소를 보유한 이 펜션은 전원 속의 일급호텔을 표방한다. 특급호텔 수준의 실내 마감과 내부 구조를 갖췄고 외부는 콘크리트 블록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외관이 독특한 펜션을 원한다면 버섯집 모양의 스머프 마을 형태를 띤 ‘해피하우스’(031-357-3909), 제주도에 있는 ‘UFO’(064-713-6555) 등도 괜찮다.

○ 역사와 문화를 찾는다면

경북 청송군의 ‘송소고택’(松韶古宅·054-873-0234)은 경주 최부잣집과 함께 경북지방의 대표적 부호인 심부잣집의 전통가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고택이 일반인에게 개방된 것은 2003년 초 일부 방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유교문화권 개발사업 덕택에 오랫동안 빈집을 수리해 옛 모습을 복원했다. 행랑채, 안채, 사랑채, 별채 등 아흔아홉 칸에 이르는 이 고택에서는 조선시대 상류계층 주택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현대식 펜션 개념으로 보자면 불편할 수도 있다. 주방이나 침실, 화장실 같은 현대식 설비가 없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별도의 공동시설을 이용해야 하고, 그 흔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도 없다. 적막한 곳이다.

하지만 문을 열면 넓은 마당과 아름드리 감나무가 반기고 뒷산 울창한 참나무 숲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130년이 넘은 고택의 마루와 창살, 기둥에서 독특한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편의시설이 부족하지만 방문객의 반응은 매우 좋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선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말수도 줄어듭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멋과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박경진 사장)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펜션은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대교를 지나 서산 나들목까지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백제의 미소’(041-663-0890).

황토로 지은 벽 두께가 30∼40cm에 이르는 초가집과 기와집, 80년은 족히 된 안면도 해송을 다듬어 지은 건물에 들어서면 백제시대의 마을 어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펜션 주변에는 수덕사, 한국고건축박물관, 해미읍성, 마애삼존불상, 보원사, 개심사, 용현자연휴양림 등 사적지와 휴양지가 30분 거리에 있다.

○ 좀 더 이색적인 곳을 원한다면

강원 양양군에 있는 ‘더그힐’(033-671-6603)은 대부분의 펜션에서 금지된 애완견 동반이 가능하다. 경기 포천시에서 노부부가 2개의 객실만으로 운영하는 ‘마당 예쁜 집’(031-532-7722)도 펜션 애호가들이 추천하는 곳이다. 경기 가평군의 ‘취옹예술관’(031-585-8649)에 가면 그림 가옥 등 다양한 전통문화를 즐기면서 숙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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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8:01 2007/03/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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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 2007/03/24 16:42

우선 첫번째에 참가하지 못하셨던 분들을 위해

오전에 첫번째 워크샵, 오후에 두번째 워크샵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두번째 워크샵만 듣는 분들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소개와 말하기 부분이 정말로 중요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4월 7일(토요일)

장소는 콩님의 사무실?

- 자세히 알려주실거지요?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1시까지

기린언어에 대한 소개와 말하기, 간단 실습.

1시부터 2시까지는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것?

2시부터 5시까지는

듣기와 실습.

5시 이후

저녁식사 + 알파(술자리, 노는 자리...)

 

준비물은

도시락, 저녁식사와 알파를 위한 자금, 필기구.

 

1차 워크샵에 참석하신 분들은 오후 일정만 들으셔도 좋습니다.

2차 워크샵만 참석하시는 경우는 가능하면 없었으면 합니다.

단, 다른 곳에서 접했던 분들이나 책을 정말 열심히 읽었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은 가능합니다.

(제가 듣기에서 소개와 말하기 부분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장소 : http://blog.jinbo.net/kong/?pid=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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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4 16:42 2007/03/2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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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7/03/18 23:37

  

 

“이 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

 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

 ……

 나는 국민들이 보여준 신뢰에 대해서 내 목숨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

 나는 여러분께 단언합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명의 칠레인들의 양심 속에 뿌린 씨앗들은 결코 완전히 뿌리 뽑힐 수 없을 것입니다.

 ……

 어떤 범죄행위나 강권도 사회적인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반역이 지배하려고 하는 이 어둡고 모진 순간을 극복할 것입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

이것이 제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이것이 적어도 중죄, 비겁, 반역을 처벌할 도덕적 교훈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 살바도르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피노체트의 제안을 거부하고 대통령궁에서 경호원들과 함께 반자동소총을 들고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어간 아옌데의 마지막 방송연설.  다큐멘터리 '칠레전투'에는 이 마지막 라디오방송연설이 나온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연설로 기억되어야 마땅할... 자신을 지지해준 민중의 믿음을 기꺼이 자신의 목숨으로 지켜낸 사람...

 

 

* 원문

los trabajadores: ¡No voy a renunciar!

Colocado en un tránsito histórico, pagaré con mi vida la lealtad al pueblo.  Y les digo que tengo la certeza de que la semilla que hemos entregado a la conciencia digna de miles y miles de chilenos, no podrá ser segada definitivamente.  Tienen la fuerza, podrán avasallarnos, pero no se detienen los procesos sociales ni con el crimen ni con la fuerza.  La historia es nuestra y la hacen los pueblos.

 

Trabajadores de mi Patria: quiero agradecerles la lealtad que siempre tuvieron, la confianza que depositaron en un hombre que sólo fue intérprete de grandes anhelos de justicia, que empeño su palabra en que respetaría la Constitución y la ley, y así lo hizo.  En este momento definitivo, el último en que yo pueda dirigirme a ustedes, quiero que aprovechen la lección: el capital foráneo, el imperialismo, unidos a la reacción crearon el clima para que las Fuerzas Armadas rompieran su tradición, la que les enseñara el general schneider y reafirmara el comandante Araya, victimas del mismo sector social que hoy estará esperando con mano ajena, reconquistar el poder para seguir defendiendo sus granjerías y sus privilegios.

Me dirijo a ustedes, sobre todo a la modesta mujer de nuestra tierra, a la campesina que creyó en nosotros, a la madre que supo de nuestra preocupación por los niños.  Me dirijo a los profesionales de la Patria, a los profesionales patriotas que siguieron trabajando contra la sedición auspiciada por los colegios profesionales, colegios clasistas que defendieron también las ventajas de una sociedad capitalista.

Me dirijo a la juventud, a aquellos que cantaron y entregaron su alegría y su espíritu de lucha.  Me dirijo al hombre de Chile, al obrero, al campesino, al intelectual, a aquellos que serán perseguidos, porque en nuestro país el fascismo ya estuvo hace muchas horas presente; en los atentados terroristas, volando los puentes, cortando las vías férreas, destruyendo lo oleoductos y los gaseoductos, frente al silencio de quienes tenían la obligación de proceder.

Estaban comprometidos.  La historia los juzgará.

Seguramente Radio Magallanes será acallada y el metal tranquilo de mi voz ya no llegará a ustedes.  No importa.  La seguirán oyendo.  Siempre estaré junto a ustedes.  Por lo menos mi recuerdo será el de un hombre digno que fue leal con la Patria.

El pueblo debe defenderse, pero no sacrificarse.  El pueblo no debe dejarse arrasar ni acribillar, pero tampoco puede humillarse.

Trabajadores de mi Patria, tengo fe en Chile y su destino.  Superarán otros hombres este momento gris y amargo en el que la traición pretende imponerse.  Sigan ustedes sabiendo que, mucho más temprano que tarde, de nuevo se abrirán las grandes alamedas por donde pase el hombre libre, para construir una sociedad mejor.

¡Viva Chile! ¡Viva el pueblo! ¡Vivan los trabajadores!

Estas son mis últimas palabras y tengo la certeza de que mi sacrificio no será en vano, tengo la certeza de que, por lo menos, será una lección moral que castigará la felonía, la cobardía y la traición.

Santiago de Chile,
11 de septiembre de 1973

 

* 영어

say to workers: I am not going to resign!

Placed in a historic transition, I will pay for loyalty to the people with my life.  And I say to them that I am certain that the seeds which we have planted in the good conscience of thousands and thousands of Chileans will not be shriveled forever.  They have force and will be able to dominate us, but social processes can be arrested by neither crime nor force.  History is ours, and people make history.

Workers of my country: I want to thank you for the loyalty that you always had, the confidence that you deposited in a man who was only an interpreter of great yearnings for justice, who gave his word that he would respect the Constitution and the law and did just that.  At this definitive moment, the last moment when I can address you, I wish you to take advantage of the lesson: foreign capital, imperialism, together with the reaction, created the climate in which the Armed Forces broke their tradition, the tradition taught by General Schneider and reaffirmed by Commander Araya, victims of the same social sector who today are hoping, with foreign assistance, to re-conquer the power to continue defending their profits and their privileges.

I address you, above all, the modest woman of our land, the campesina who believed in us, the mother who knew our concern for children.  I address professionals of Chile, patriotic professionals who continued working against the sedition that was supported by professional associations, classist associations that also defended the advantages of capitalist society.

I address the youth, those who sang and gave us their joy and their spirit of struggle.  I address the man of Chile, the worker, the farmer, the intellectual, those who will be persecuted, because in our country fascism has been already present for many hours -- in terrorist attacks, blowing up the bridges, cutting the railroad tracks, destroying the oil and gas pipelines, in the face of the silence of those who had the obligation to act.

They were committed.  History will judge them.

Surely, Radio Magallanes will be silenced, and the calm metal instrument of my voice will no longer reach you.  It does not matter.  You will continue hearing it.  I will always be next to you.  At least my memory will be that of a man of dignity who was loyal to his country.

The people must defend themselves, but they must not sacrifice themselves.  The people must not let themselves be destroyed or riddled with bullets, but they cannot be humiliated either.

Workers of my country, I have faith in Chile and its destiny.  Other men will overcome this dark and bitter moment when treason seeks to prevail.  Keep in mind that, much sooner than later, great avenues will again be opened, through which will pass the free man, to construct a better society.

Long live Chile!  Long live the people!  Long live the workers!

These are my last words, and I am certain that my sacrifice will not be in vain, I am certain that, at the very least, it will be a moral lesson that will punish felony, cowardice, and treason.

Santiago de Chile,
11 September 1973

 

 

동지 여러분께 조용히,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사도도 메시아도 아닙니다. 저는 순교자가 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인민이 부여한 과업을 완수하고 싶은 한 명의 투사에 불과합니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자들, 인민 절대다수의 뜻을 무시하는 자들이 분명히 깨닫도록 합시다. 비록 순교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저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인민이 부여한 과업을 완수한 뒤에야 라 모네다 대통령궁에서 물러날 것임을 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 인민의 정부를 방어해내겠습니다. 그게 바로 인민들이 제게 부여해준 과업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제게 총탄을 퍼붓지 않고는, 인민의 과업을 완수하고자 하는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71년 12월 4일 산티아고, 쿠바 대표단 환송행사,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118~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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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3:37 2007/03/1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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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7/03/18 23:32

다시 돌아보거니와 명백히 난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가 반드시 그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으나 그보다 더 분명하게 자부할 수 있다. 옳은 길을 걸어왔노라고. 내게 주어진 삶을 온 순간마다 사랑했노라고. 주어진 한계속에서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 한계는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 무너질 것을 확신하노라고. - 손석춘 '아름다운 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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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3:32 2007/03/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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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7/03/18 23:29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 님 웨일즈 '아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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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3:29 2007/03/1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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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둘 글 - 2007/03/18 23:06

“우리는 건설하지 않는다. 우리는 파괴한다. 우리는 새로운 진리를 선언하지 않는다. 우리는 낡은 허위를 폐지한다. 현대인은 그저 다리를 놓을 뿐이다. 다른, 아직 누구인지 모르는 미래의 사람이 그 다리를 건너갈 것이다. 너는 그것을 볼지 모르겠다. 이쪽 강변에 언제까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오점없는 반동으로 구원받기보다는 혁명과 더불어 사라지는 것이 낫다. 혁명의, 위대한 사회변혁의 종교만이 내가 너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종교다. …너의 세대가 되면 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것을 얘기하라. 거기에서는 일찌기 사람들이 내 얘기를 사랑했으니 아마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이성과 개인의 자유, 우애와 맹세하고 너의 여행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노라!”  - E, H 카 <낭만적 망명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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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23:06 2007/03/1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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