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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5

밤의 평화는 순식간에 새벽의 전투로 바뀌었다.

 

처음 거리의 맛을 느낀 사람들은 한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새벽 4시까지 그러했다.

그러나 그 후 두 시간 동안 공권력의 공포 앞에 처음으로 내던져진 그들은,

참 많이 울먹이고 있었다.

방패 앞에 스크럼 짜고 있는 사람들에게 초컬릿을 하나씩 쥐어주던 한 여성은

전경들이 순간적으로 압박해 들어오자 그 자리에 얼어붙어 비명을 질렀다.

움직이지 못 하는 그 사람을,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 인도 쪽으로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2008년에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거의 매년 공권력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간 것을 몰랐던 이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순수한 시민'

이들이 집시법 개정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놀랍고, 약간은 설레는 일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 하고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사람들은 뛰쳐나오고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 '역사'인가 싶은 요즘이다.

 

+ 현장을 놓쳤다. 예측할 수 없으면 끝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또 이렇게 확인한다.

역시 체력 싸움이다. 죽어라 해도 우린 게으르다는 소리나 듣는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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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4

코엑스에서 세계인형전 같은 걸 하고 있나 보다.

가 보라고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 얘길 들으니 문득 생각난 건데,

중 3 여름방학 때 엄마랑 오빠랑 셋이서 서울이랑 대전구경을 갔었다.

원래 엄마 예산으로는 서울만 가거나 대전만 갔어야 하는 건데,

대학 구경도 시켜줘야겠고, 엑스포 구경도 시켜줘야겠고 해서

엄마 딴에는 무리를 했던 것 같다.

그 때 셋이서 지도 펼쳐 들고 서울 시내를 누비고 그랬었다. ㅎ

 

대전엑스포에 가서는 국제관만 구경했었다.

정말 신기한 것도 많고 재밌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엑스포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엄마랑 같이 우수아이아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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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3

 

1년 전의 나는 에콰도르 로하로 넘어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모린이 더는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면서.

안에서 열 수 없는 문바깥의 운전사와 얘기하고 싶으면

노크하는 것보다 동전으로 톡톡톡 치는 게 낫다는 것도 그 날 배웠다.

 

유난히 빛이 좋은 계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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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8

세 군데 발품 팔았다. 두 군데 들렀을 때부터 허리가 아프더니, 두 군데에서 세 군데 째로 가는 동안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나간 길이라 심지어 시청 역안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한 20분 잠을 청했다. 올록볼록한 부분만 없었으면 아예 드러누워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울고 싶은 거랑 비슷한 심정이다. 오가면서 간혹 고갯짓으로 인사하거나 눈짓으로 인사하거나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내어 한 인사까지 얼추 열 번? 그 중 몇 번은 안 해도 되었을 인사였고 몇 번은 상대가 나를 알아보지 못 했다. 전에는 사람 기억하는데 재주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재주가 있다. 것도 남들보다 훨씬. 심지어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도 잘 한다. 그리고 나를 어쩌면 알 지도 모를 사람인 걸 알더라도 사실은 나를 모르길 바라면서 모르는 척 한다. 다 겁이 많은 탓이다. 말을 하게 될까봐. 나는 때로 누가 말만 붙여도 얼굴이 빨개진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오늘, 역시 나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약간 뒤쪽에 떨어져 있거나 앞쪽을 오가거나 옆에서 서성인다.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 관한 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대학 시절 이후부터,

똑바로 다가가 코가 닿아도 괜찮을 만큼 알게 된 건 딱 세 사람이다.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사람이 채 안 된다.

 

섭섭할 것 없는 한 철이 지나고 또 오고 있다.

 

피곤하면 잠이 안 온다.

하루 뒤에 잠이 쏟아진다.

 

재작년엔가 죽었대.. 하고 두세 다리 건너 두서없이 건네지는 소식, 이 내 것이었으면 한다.

명랑.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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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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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스킨스 시즌 1을 다운 받아놓고 5편까지 내리 시청.

즉각 시드의 팬이 되어버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수위'가 한참 낮았다.

래리 클라크의 '키즈'를 떠올리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스킨스의 명성을 듣고도 지금껏 보지 않았던 건, '키즈'를 시리즈물로 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드라마가 사랑스러운 건,

시드의 아버지가 아들한테 개같이 욕먹고 난 후,

압수해갔던 텔레비전을 쭈삣쭈삣 챙겨 들어오는 장면 같은 게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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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웨하스 의자> 다 읽었다.

개포동 아빠 자취방을 세 번 오간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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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아임 낫 데어>는 <포이즌><벨벳 골드마인> 이후 참 오랜만에 보는 그의 영화였는데... 아, 참 짚을 구석이 많은 영화다. <포이즌>의 흔적이 남아 있어 반갑기도 했고, 그의 음악적 스승을 흑인 소년 역할로 표현한 것이나, 그가 음악적으로 변절했다며 공격받던 시기를 케이트 블란쳇에게 맡긴 것 역시 놀라운 발상. 그녀는 역시 경이로운 배우였고... 그런 상상력은 대체 어디서? 게이로서의 정체성과 감수성이 분명 작용했을 터. 미셸 공드리의 영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영화적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독창적인 전기영화. 아,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히스 레저도 좋았다.

 



광우병을 다룬 PD수첩을 유튜브에서 봤다. 2년 전 한미FTA 반대 국민여론을 불러일으킨 게 나프타 이후 멕시코 상황을 다룬 KBS 스페셜이었다면, 졸속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쇠고기 협상에 대해 분개한 '일반 시민' 1만 3천이 모인 촛불집회를 가능케 한 건 MBC PD 수첩이다. 다시 느끼는 거지만 지상파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대중의 운동성은 가늠하기도, 예측하기도 어렵다. 특히 이번 참가자들 중에는 10대, 20대가 많았다고 하는데... 사회를 바꿔내는 역사로 이어질 지..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감성적인 거리의 이벤트로 그칠 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안에서 좌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해야 할까,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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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니 즐거워진다. 몇 해 전,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조촐했던 만민공동회가 생각나면서.... 음.. 그리고 이성과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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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미친 소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가엾은 소... 소가 미치게 되는 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축산업이 배경에 있는 것이고, 그러한 산업을 가능케 했던 인간의 탐욕이 있는 것이고....

촛불문화제를 보면서 즐거울 수만은 없는 건.. 그러니까 대중의 광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미친 소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라던가...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해 짚었을 때....

과연 받아들이고 고민하고 바꾸는 길로 함께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대중의 힘으로 깔아뭉갤 것인가.. 하는 건데.... 그 부분은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대중이 거대한 힘을 가지고 움직일 때, 그 안에는 건강한 에너지 못지 않게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도 농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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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지켜보는 중. 경찰이 주최자 사법처리 운운하면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는데.. 6일 이후 어떻게 일이 진행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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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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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가 너무 많다.

가까운 시일 안에, 노동자 허세욱 아저씨.. 장애인 최옥란 언니.. 청소년 동성애자 육우당, 오세인의 추모제가 있었다.. 그리고 내일은 전세계의 산재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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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는, 촬영할 때도 슬프고.. 편집할 때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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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 추모제에 갔을 때, 10대 동성애자들의 발언이 있었다.

내가 나이기를 받아들이는 일이 참 어려웠다는 앳된 목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지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서로 다독이며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라고,

그 애는 진심으로 오세인과 육우당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발언하러 나오기 전에 참가자들 틈에 있던 그 아이를 촬영했었다.

렌즈가 자신을 향하자 고개를 들어 이 쪽을 바라보던 아이의 표정은 알 듯 말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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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은 열아홉에 자살했다. 추모집에는 죽기 전 얼마 간의 일기가 들어 있다.

 

'난 몇 살 쯤 죽을 것 같니? 정말 궁금해.'

 

며칠 뒤,

 

'나 결심했어. 목매달아 죽을 거야.'

 

며칠 뒤,

그 애는 정말 목매달아 죽었다.

 

그 밤, 혹은 새벽. 외롭진 않았을까. 외로워 하다 죽었을까, 그게 참 마음 아프다.  

 

'아, 홀가분해요. 죽은 뒤엔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000은 동성애자다'라구요.'

 

그 애의 바람과는 달리, 죽은 뒤에도 그 애 이름은 추모제 플랑 위에도 쓰여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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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정도로 정리하려고 한다.

마음은 바빴는데.. 월요일이 되면 더 그럴 거라서, 이 작업은 그냥 여기까지.

놓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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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5

다들 애쓰고 있다. 누구랄 것 없이. 편한 맘 가진 사람 아무도 없다.

나는 나도 안쓰럽고, 당신도, 당신도, 당신들 모두가 안쓰럽다.

 

앞이 안 보이고 숨이 턱 막히지만

그래도 길을 만들자고 힘든 자리 힘들게 버티어 주는 모두가

내게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둘이나 또 떠나보내야 하는 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프지만.

한 걸음 나아가기가 이토록 힘든 시간들만이

지겹게 이어지고 있지만.

 

너무 외로워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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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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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듣는다. 매일 밤마다, 아침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90년대가 리메이크 되어 매일 찾아온다.

2000년 하고도 8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슬슬 불려올 때도 된 것일까.

오리지널보다 특별히 나아보이지 않는 리메이크들은 시대를 말해주는 것일까.

 

그 시절의 토이 유희열이 라디오로 돌아왔다.

이적도 방송을 한다.

유희열 방송에 이적이 나오고, 이적 방송에 이승환과 유영석이 나온다.

 

그들의 수다에 더이상 깔깔거리며 웃지 않는다.

미소만 짓다가 잡고 있던 책이나 시사잡지에 다시 집중한다.

라디오는 더이상 온 신경을 기울여 듣던 그 무엇이 아니다.

녹음해서 두고두고 들었던 소중함도 더이상 없다.

 

그건 더이상 설레지 않는, 이제는 귀찮기까지 한 입맞춤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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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 그러니까... 기억할 꺼리가 급속도로 늘어난 이후,

과거에 대한 원근감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먼 기억이 가깝게, 가까운 기억이 한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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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큼의 내가 요만큼의 내게 손을 내밀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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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투명한 눈빛이 부담스러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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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없는 낙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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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3

열심히 편집을 해도, 헐렁한 성격 누가 아니랄까봐, 꼭 걸리는 부분이 남는다.

그리 꼼꼼하지 못 한 편이라는 것과 적당히 게으르다는 것, 다 표가 난다.

하긴 촬영할 때부터 그런다. 할 때는 무지 열심히 하는데, 나중에 하나하나 떠오르는 식이다.

그 상황에서는 그 샷을 찍을 걸, 이렇게 하면 나았을 텐데, 하는 식의...

사실 대세에는 그닥 지장을 주지 못 하는 샷인데 나한테는 껄끄럽게 남는 거다..

고질적인 호흡 조절 실패 같은 것. 대체로 빠르고, 신경을 쓰면 너무 느려지거나 하는..

자막과 샷의 길이, 그리고 사운드의 호흡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 마음에 들 정도가 되면, 그 땐 정말 선수일텐데.

알아도 못 하는 건 왜인지. 진짜로는 모르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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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