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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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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3/17
    그 할머니.(1)
    ninita

2008/04/20

그냥 생각들을 너절하게 늘어놓고 있는 중이다.

 

일을 계속 하는 거, 그만 두는 거, 카메라를 다시는 들지 않는 거, 카메라를 계속 붙잡고 있는 거, 떠나는 거, 떠나지 않는 거, 멈추는 거, 멈추지 않는 거, 사는 거, 죽는 거, 맨날 허접한 거, 어떻게든 하는 거, 이제 그건 지겨운 거, 바라는 것도 없는 거, 여전히 하루하루가 연습인 거, 이해력은 점점 떨어지는 거, 바보 되는 것 같은 거, 원래 바보였다는 거, 세상이 무서운 거, 뭘 해도 의지 없는 거, 다 시시한 거,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거, 그냥 곁에 오래 머물면 그게 사랑이라는 말이 맞는 걸까 싶은 거, 그러길래 진심은 드러내지 않을 것을 미련했던 거, 미련한 거, 미련할 거,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게 더 무서운 거...

 

내일 결혼식에는 못 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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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7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를 보았다.

전동휠체어 깊숙히 들어앉은, 참 작은 사람인데 존재감은 큰.

 

그냥 알은 체 눈인사를 해도 나쁘지 않을 텐데,

나는 언제나 그 사람이 어려워 얼마 전에도 옆얼굴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아마 인사인 줄도 몰랐을 거다. 하긴,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알지 못 할 테고.

 

어제 그는 모자를 쓰지 않고 있었고, 잘 빗어넘긴 머리에..

웃고... 있었다..

 

몇 년 째 거리에서 마주치곤 하는 그의 얼굴은 늘 무표정했다.

여러 해 전에, 그 무표정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청했고...

그는 인터뷰 내내, 그 후로도 늘 무표정했다.

그래서 그렇게 어려워했던 것 같기도 한데...

 

웃는 얼굴은 그에게 참 잘 어울렸다.

스치는 순간, 무심결에 표정이 먼저 들어오고,

지나치고 나서야 그가 누구인지 떠올렸건만..

무척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다행이었다.

마음이 놓이는, 그런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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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5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왔다.

허세욱 열사 1주기.

 

 

민주택시연맹 소속의 늙은 노동자가 분신했다고 했다.

나중에 그의 영정을 봤을 때.... 아, 하고 짧은 외마디 소리를 냈던 건....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분 생전에, 나는 카메라를 들고 무심결에 그 곁을 몇 번이고 지나갔겠구나...

아마도 외롭고 남루한 생을 거리에서의 투쟁으로 따스하게 채웠던 분일 거다.  



봄날은 따가웠고, 맨 앞줄에 나란히 선 민노당과 진보신당 후보들의 표정은 공히 어두웠다.

한미FTA 반대한다고 1년을 분주하게 뛰었고,

그 사이에 소중한 사람 하나 저 세상으로 보냈는데,

진보정당들의 상황은 좋지 않고, 총선 직후 이례적인 임시국회로 FTA 비준이 처리될 가능성은 농후하고..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은 분당에 대해 개탄하는 발언을 했고,

진보신당 노회찬 의원은 마치 그에 화답하듯, 낡은 것과의 결별을 말했다.

 

모두가 떠나 새소리만 들려올 때까지,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위에서부터 훑었다.

전태일 열사의 묘 곁에 한참을 머물렀다.

추모제에 참석한 이소선 어머니도 아들에게 잠시 걸음하셨겠지.

 

나는 아무 것도 다짐하지 못 한 채

생의 공간으로 돌아나왔다.

 

22세의, 26세의, 34세의, 55세의,

저 열사들의 빨간 띠 둘러맨 비석을 뒤로 하고.

제비꽃 외롭게 피어 있는 묘들을 뒤로 하고.

 

4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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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2

 

la cause du peuple (인민의 대의)를 배부? 판매? 하고 있는 사르트르란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8번으로 나선 김상봉 교수에 대해 學運不異의 자세라 칭한 박노자의 글이 떠오른다. 

 

다만 진심을 가지고 정직할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소소한 것들로 이렇게 마음 어지럽힐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남들보다 한참은 초라한 나의 서른을 되돌아 볼 때...

지금의 버티기에 불과한 일상도.... 느린 성장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줄 아는 건....

그냥 타박... 타박... 타박... 타박.....

 

그러니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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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매주 마감이 있는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초치기라는 게 이런 건가?

 

사실 이번 주 일정은 그리 빡빡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변수가 몰고 온 스트레스 때문에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니 아프다.

뭔가 준비할 여유없이 밭은 일정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나로써는,

지금의 상황이 참 견디기 힘든 게 사실이다.

 

빼트는 수요일마다 녹화 이브 증후군으로 폭식을 하곤 했다.

폭식의 양도 엄청나고 해치우는 일의 양도 엄청나고 아무튼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난 지난 주에 매일 밤마다 과자를 한 봉지씩 먹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정도로는 새 발의 피.

 

위기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확인한 요 며칠이다.

나 혼자 소소하게는 뭐든 하겠지만..

어울려서 하는 일이란 참 어렵다.

어쨌거나 the show must go on 이니, keep going 해야 한다는 건데...

스페인어 학원이나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어째.

 

스튜디오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다.

친해질 수 있을까 싶은 기술팀장님과도..

스튜디오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부담없이 말을 섞고 있겠지.

시간이 오버해도 침착할 수 있겠지.

 

몇 번만 더 울고 나면.

 

p.s 월요일엔가.. 시청 역을 지나다가....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를 흥얼거렸는데.. 라디오에서 나온다.. 세상에는... 그냥 처음 들을 때부터 아련한 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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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1930년대 타자기. 사용도 가능하단다. 턱 하니 갖다 놓으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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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6

.

엉...

엉...

엉...

엉...

엉...

 

.

언니는, 왜 얼마나 버티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하느냐면서

문제가 있으면 개선을 해야할 문제 아니냐, 라는 말을 했다.

요즘 가뜩이나 힘들어 보이는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이 참 가슴 아팠다..

동시에, 나는 왜 버텨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눈 앞이 깜깜하다는 게 참 비참했다.

 

그러니까 나는 믿지 않는 것이다.

늘 사람은 부족할 거고, 돈도 부족할 거고, 그러니 제작은 늘 제자리를 맴돌 것이고, 얼굴 화끈거리는 작업물을 매주 꾸역꾸역 만들어 내며 다시 자괴감을 느낄 것이고, 프로그램의 운명이 어찌될 지 알 수 없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처럼 겨우 몇 달 허덕대며 채우다 폐지되고 나면, 재정 논의 나올 때마다 마치 내가 죄지은 것 같은 미안한 마음 갖기 싫어도 저절로 들테고...

 

.

큰맘 먹고 내려간 길이었는데, 성과가 좋았으면 괜찮았을걸....

그게 아니니 마음이 또 한없이 가라앉는다..

 

참 반가웠는데... 오랜만에 보는 하이텍 조합원들...

옹색한 탑차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가 들어서는 나를 보며 반색해 주는데...

예전보다 다들 낯빛이 안 좋아서 맘이 그랬다..

벌써 그렇게 농성한 지도 한 달 반이 지났으니 몸이 또 얼마나 축났을지...

지회장의 허청이는 뒷모습은, 지부장 말처럼 단식 30일 한 사람 같아 울컥했다..

7년 째 길바닥에 나앉길 주저하지 않는 그이들의 분노와... 끈기와... 동지애와... 절망과... 희망과... 허허벌판에서 농성하는 50 넘은 딸에게 안부전화 하는 노모의 안타까움과.... 40줄 들어선 동생 곁에 찾아내려와 깊은 밤을 아리게 보내다 가는 언니의 속상함과....

 

그 마음을... 하나하나 담고 싶은데....

난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에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심지어 요즘 촬영하며 느끼는 건,

자꾸 뒷모습만 찍으려고 한다는 거다.

찍을 때는 의식하지 못 하다가, 나중에 촬영분을 보면서 아차하는 일이 잦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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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확신이 필요하다. 믿음이라는 것..

나에 대해서도..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해서도.. 내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도..

 

네가 서른이 넘어서도 그 곳에 있다면, 너의 진정성을 진짜 인정하게 될 거야..

4년 전 집앞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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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9

.

가끔은 순전히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현장을 찾는다.

그럴 때 카메라는, 혼자 가기 쑥스러운 발길에 든든한 친구인 셈이다.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그런 마음으로 찾아간 곳은,

중국의 티베트 시위 무력 진압에 항의하는 촛불 문화제.

 

바람이 많이 불었고 참 추웠다. 덜덜 떠느라 카메라도 함께 떨어 촬영은 엉망이다. 하지만 거리에 처음 나와 본 듯한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작은 촛불 문화제가 마음에 들었다. 제각기 손으로 써 온 피켓들이 정겨웠고, 카메라가 향하면 어김없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참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그랬다. 5분은 족히 계속 된 티벳인 참가자의 구호와 열심히 따라하던 사람들의 표정도 내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티벳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왔는데,

그 분들이 자유발언에서 한 이야기들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매주 벌이던 화요캠페인에서 하던 이야기와 같았고...

5년 전 자이툰 부대 앞에 드러눕고 신새벽에 서울공항 앞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와 같았다...

티벳의 친구가 되고 싶다며 평화를 이야기 하고...

억압 받는 자들에 대한 미디어의 왜곡에 대해 분노하고...

경제가 이 모양인데 티벳이 다 뭐냐, 며 지나가는 행인을 규탄하고...

국경을 넘는 연대에 대한 호소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제 거리에 나온 그 분들의 시작이....

다른 운동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티벳의 여행자로 시작된 연대였건, 불교도로 시작된 연대였건,

시작의 이유가 무엇이었건 간에.

 

.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티벳인들에 대해 기억한다....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여행자의 마음을 간단하게 녹여버린 그 미소들을..

그 바람에 난, 티벳인들은 죄다 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라싸의 사원에 모여 있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올림픽'이라는 허울이라도 그들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오늘밤엔 어쩐지, 안경 벗고 눈물 닦는 달라이 라마 할아버지 꿈을 꾸게 될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어울리는 건 끼끼끼끼 하는 웃음 소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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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8

사무실 앞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건물 같은데, 좀 특이하게 생겨서 내맘대로 일제시대 때 지었나부다, 생각하길 몇 해.

어젠가 담벼락 앞에 파이프가 놓여져 있길래 여기도 철거하려나, 갸웃했는데...

오늘 출근길에 보니 건물은 이미 형체를 잃어버렸다.

 

잘 가, 하고 인사도 못 했는데 어제오늘 사이에 마치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건물이라는 생명체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뒤꼍의 나무들도 곧 베어질까...

도서관을 찾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그 자리엔 멋대가리 없는 5층 짜리 새 건물이 올라오게 될까...

그 건물엔 빈틈없이 작은 방이 들어차 갈 곳 없는 청춘들을 가두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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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머니.

나는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도, 라며 지난 2주 동안 부지런 떨기도 하고 애를 쓰기도 했다.

그 미약한 노력이 한 순간의 게으름, 혹은 판단 실수로 물거품이 되어 버리니

지칠까 말까 하던 몸은 완전히 늘어져 버리고

버틸까 말까 하던 마음도 다 달아나 버렸다.

 

무거운 카메라와 무거운 트라이포드를 이고 지고

버스 안에서 시달리다 마로니에에서 내렸다.

허깨비처럼 휘청이며 걷는데, 내 앞에 가던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한 할머니가 까만 주머니를 흔들며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옆으로 피했다가 한 걸음 떼는 순간,

말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그 할머니가 주머니를 흔들며 구걸을 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엔 천 원짜리가 쥐어져 있었다.

속이 쓰려서 오뎅이라도 하나 먹고 들어가려고 꺼내든 지폐다.

되돌아가 그 주머니에 천 원짜리를 넣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길 옆에 가 앉으려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동전 몇 개랑 주머니를 양 손에 든 할머니.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돌아가서 주머니를 채워드릴 생각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타이밍이.... 그랬다.

 

결국 오뎅집은 그냥 지나쳤다.

속이 많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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