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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5
    2008/03/15
    ninita
  2.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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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n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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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랑 통화하고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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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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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쫄면에 대한 얘긴가? (.. )(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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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2/23
    우연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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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2/18
    2008/02/18(3)
    ninita

2008/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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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 뒤로 소설책이 넘어갔다. 아직 10장 밖에 안 읽은 닉 혼비 소설. 1월에, 오빠가 책 3권으로 나를 꼬드겨냈었다.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지 말라면서. 그 때 얻은 새 책인데. 아아아악. 세탁기가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책아, 미안해. -> 어군이 와서 꺼내줬다. 고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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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처방에는 의존성이 없다고 해서 항우울제를 타왔다. 스트레스가 시작되기 전에 먹으라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지만, 그냥 버텨보려고 안 먹고 있었는데 먹어야겠다. 가만 앉아 있는데도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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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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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살다 보니...

집에 좀 늦게 들어가게 되면, 술기운이 얼굴에 발그레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술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술에 과하게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다른 이유보다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건 실은, 아이를 싫어하는 이유와도 같다.

 

오늘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죄다 발그레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얼굴들이 어딘가 애틋해 보이기도,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그 얼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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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새 황사 때문이라지만, 난 봄하늘이 이렇게 칙칙한 줄 모르고 살아왔다.

차라리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차가운 겨울하늘이 그리울 정도다.

스모그로 가득한 크리스탈에 갇힌 기분이다.

오전의 사무실 느낌도 그랬고, 거리를 걸을 때도 그랬고,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그랬다.

 

요즘 나의 화두는 나를 어떻게 책임지지? 하는 건데,

머릿 속 마저 황사로 가득한 것 같다.

문제점도 빤히 들여다 보이는 사보험에, 더 나이 들기 전에 가입해야만 하는 것인지, 일전에 본 카드배달 할아버지가 나의 미래는 아닐지, 그러다가 심지어 나는 자살을 하게 될까 사고사 하게 될까 병사하게 될까,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사람에게든 세상에든 애정이 많은 사람이고, 아마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은 그것일텐데... 나는 내가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건강하고 밝게 살고 싶은데, 사실 지금 활동하는 공간을 택한 이유도 그래서인데... 참 쉽지 않은 조건투성이다. 살면서 점점 뭔가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하는 게 보이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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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잘 잤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새벽에 깨지도 않고, 그래서 피로도 쌓이지 않고 그랬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계속 이럴 수만 있다면, 아프지도 않을 텐데. 꾸준히 일할 수도 있을 텐데. 약봉지에 눈길을 줘야 하나. 오늘따라 자신이 없어진다.

 

돈 많이 안 벌어도, 결혼 안 한 여자라도,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난 이명박 정권이 무섭다.

그래서 당장, 보험을 들어 말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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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통화하고선.

엄마가 심심한 모양이다. 하긴 아기가 제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대략 밤 8시 이후, 자유시간이긴 하지만 TV 말고는 벗이 없으니 심심하기도 할 거다. 이제야 내 여행사진을 찾는다.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 주려 하니, 엄마 그런 거 할 줄 몰라! 하고 딱 자른다. 주소창에 주소만 치면 된다니까, 라고 말하고 나니 그제서야 엄마가 그걸 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10분 정도 자판 위치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했고,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한글이라면 좀 쉬웠으려나. 그나저나 지금쯤 실컷 사진을 보고 있겠군. '섹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포스트가 하나 있는데,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걍 뒀다. 안 읽겠지 뭐. 혹은, 읽어도 괜찮겠지 뭐. 이미 엄마랑 난 5년쯤 전 콘돔 얘길 했던 사이잖아? ㅋ 물론, 다만 콘돔 얘기일 뿐이었지만. ㅡ.ㅡ 요는 피임이 아주 중요하다는 거지, 경험 유무에 대한 확인은 주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엄마들이 재미있는 건, 예를 들어 자기 딸이 담배를 피우지 않길 바란다면, 가방 속에서 담뱃갑을 발견해도 그게 딸래미 물건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거다. 아직도 엄만 내 자취방이 금남의 집이길 바라고 있을까? 한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의 언니가 연애질하느라 밥 먹듯 외박을 하는데, 정말 이틀 건너 한 번씩 야근한다고 믿었단다. 결혼할 때까지도.

 

우리 엄마도 그러려나? 엄마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엄마도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구나.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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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8

1.

서울에 올라온 후로 토요일 오전은 청소하는 날이다. 빨래, 설겆이, 방청소, 쓰레기통 치우기 등등.. 빨래 널고 앉으니 벌써 12시가 다 되었다. 적당하다. 좀 있다가 점심 차려 먹으면 되겠다. 근데 10분에 한 번씩 배가 아프다. 이런. 일어나자마자 만들어 먹은 딸기쉐이크가 또 속을 뒤집어놨나 보다.

 

2.

참 오랜만에 세 시간 짜리 회의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안 해도 될 소리는 왜 했는지. ㅡ.ㅡ 뭐, 사무실 사람들은 내가 소심하고 자신감 없어 하고 애가 좀 어리고, 그런 거 대충 다 아니까 별로 창피할 것 까지야 없지만, 회의는 최대한 냉정하고 건조하게, 라는 기조를 잡고 있었는데, 이게 뭐란 말이냐. 역시 말도 안 되는 기조를 잡았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노력은 해 보련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내 자신감 없음이 나는 물론이거니와 누군가들의 기운을 빼놓게 될까봐.. 여리여리하고 물렁물렁한 내가 쫌 많이 싫다.

 

3.

이음아트에 들러서 신간만 잠깐 둘러봤다. 천운영 소설이 있었는데, 긴축재정 중이라 사지는 못 했다. 하긴 아직 읽고 있는 소설도 여러 권이다. 계산대 앞에 보리랑 녹색평론에서 나온 책들이 있길래 제목을 훑다가 보라색 표지를 한 소설을 보게 되었는데, 제목이 <라일락 와인>이었다. 음, 음. 이거 몇 년 전에 파일로 읽었던 모 선생님의 소설이랑 제목이 같네? 하고 책날개를 펴 보니 활짝 웃고 있는 선생님 얼굴이 콕 박혀 있다. 음. 아주 활짝은 아니었던가?

 

4.

나는 동숭동에서, 아빠는 개포동에서 각각 자취를 한다. 엄마의 명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생각은 하긴 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아빠랑 데이트를 해야 한다. 이런. ㅡ.ㅡ 하늘공원 같은데 나들이 한 번씩 가고 밥 한 끼 얻어먹고 때로는 아빠네 건넌방에서 하루 자고 오고 그래야 하는데, 많이 귀찮다. 머릿 속이 안 바쁘면 좀 나을 텐데, 여러 가지 나의 조건과 주변의 조건과 모든 것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라 어제 아빠 전화에도 간다 만다 제대로 답을 못 했다. 우욱. 아무튼 멀찌감치 떨어져 사는 게 장땡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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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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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과 낮>을 보러 들어가다가 우연히 후배를 만났다. 3일 연속 10년 전 기억들과 대면했다. 사람들과 소원해지면서 자연히 영화판 이야기들과 멀어지는 듯하다가도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자리에서 흠뻑 빠져들게 된다. 영화 하고 싶어지면 다시 돌아오세요.. 그 '다시'라는 말이 어색했다. 내겐 단지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뿐이니까. 그 시절과 결부된 그리움이 있을 따름이지 미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단 3일만 선택을 미뤘어도 영화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2004년 3월 초가 떠오르는 정도? 참 많이 달라졌겠지만, 궁핍하고 힘든 건 마찬가지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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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던져준 초대권을 가지고 반 고흐전을 보러 갔다. 예상했지만, 이건 뭐 전시장이 아니라 도떼기 시장이다. 애초에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는. 심지어 앞에 선 사람들에 가려 작품의 아우라가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고흐의 작품에서 강렬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니. 12000원 입장료에 값하는 감상을 위해서는 하루 입장객 수 제한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여러가지 의미에서 유난히 규모에 집착하는 이 땅의 척박함에 대해서도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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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메일을 쓰지 못 한 건, 바빠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피차 마음 편한 일이므로 부정하지 않을 뿐. 다만 익숙한, 그의 움츠린 어깨가 떠올라 미안한 마음은 든다. 일주일에 한 번 메일 쓰기, 라는 공식에 누구도 길들여지지 않기를 바랬다. 그건 한계가 명확했던 그 한 달 반이면 족했다. 한 때, 지금은 켜지도 않는 엠에센 메신저에 결박되어 버린 적이 있었다. 거기서 겨우겨우 벗어났을 때 나는 살 것 같았다. 다시 그런 류의 습관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 언제라도 받아줄 마음이 있었던 내 대화명이 화석처럼 굳어버리고, 그의 대화명은 점 하나로 바뀌어 사라져 버린 뒤, 내 가슴에 불던 스산한 바람을 기억한다. 며칠 간 계속 되던 배앓이에 당신 어머니가 했다는 말. 네 머리 위로 나쁜 바람이 불고 있구나. 그 바람이 당신에게 향하길 원치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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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를 조용한 새벽에 봤다. 그리스 비극과 닮았다. 사랑과 질투와 복수와 파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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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에는 눈이 시원한 샷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밤인데도 낮 같은 파리의 여름은 불면의 세계였다. 경계가 없는, 그리하여 애초에 탈출이 불가능한... 관계란 그렇게 답답하고 또 답답한 것이었던가? 그 수컷과 암컷들을 보고 있으니, 일요일 한낮의 주주클럽과 뭐가 다를까 싶어졌다. 덩달아, 지나가는 개들마다 쫓아가 똥꼬 냄새를 맡던 발정난 수캐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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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좀 써보고 싶은데, 말이 실뭉치처럼 뭉쳐서 목에 걸렸다. 머리에 걸렸나?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기들과 꽤 오랫동안 수다를 떨고서, 한 시절을 공유했다는 기억만으로도 누군가를 이렇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구나, 다시금 확인. 공유할 수 없는 현재 속에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어도 말이다. (암튼 르누아르 회고전 소식을 모두들 알고 있고, 더글라스 서크와 줄리안 무어의 영화에 대해 부연설명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연애를 했거나, 연애 가까운 관계였던 이들과는 또 얼마나...

미워했건 원망을 했건 어쨌건 간에 당신과 나의 현재가 문득문득 애처로워지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거다.

 

이제 곧 일을 시작한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고, 나는 그대로다. 게다가 과연 내가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일을 새롭게 해나가야 하는 지경. 돌아오면 아무튼 바빠지는 게 좋겠다 생각했으므로, 나쁘진 않지만 부담감은 어쩔 수가 없다.

 

첫 해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구나. 덜컥 일하러 오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나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확신은 아무 것도 없었고. 그래서 무턱대고 열심히 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몰랐던 때와는 다르길 바라지만, 모르겠다. 어떨지.. 무턱대고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이젠 좀 잘 하고 싶기도 한데 말이지.

 

내일은 오랜만에 병원에 간다. 많이 건강해졌지만, 언제 또 아플지 모르니 점검 차원에서. 출근하기 시작하면, 걷는 시간을 늘일 거다. 따로 운동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일 듯. 집안일을 좀더 열심히 하고, 몸관리를 좀더 하고, 정말 내가 나를 책임지기. 시 - 작!

 

p.s 2월 29일은 지금은 연락이 끊긴 은영이의 생일이다. 4년마다 한 번씩 생일을 맞는 은영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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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쫄면에 대한 얘긴가? (.. )( ..)

학창시절 중에서도, 중 2 때와 고 2 때가 참 재밌었다. 

유난히 젊은 or 좋은 선생 복이 있었던 우리 학년은, 독특한 수업도 많이 받았다.

그 때.... 그냥 연극도 했고, 역사 연극도 했고, 드라마 각본도 썼고 그걸 바탕으로 말도 안 되는 영화도 찍었고, 방송도 했고, 슬라이드도 찍었고, 시낭송 녹음도 했고, 소설도 썼고, 뭐.. 암튼 재밌는 과제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시험지가 기대되는 과목들도 있었다...  

 

아마 한 대여섯 분이 열정을 갖고 새로운 수업들을 준비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중 두 분은 우리 학교를 떠나, 대안교육을 시작했다.

하자센터며 간디학교며 이우학교, 하는 이름들을

그래서 종종 관심있게 지켜보곤 했었다.

그 후 한 분은 신촌에 까페를 차렸다 하고,

다른 한 분은 여전히 대안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다.

 

생각나서 이우학교에 계셨던 선생님 근황을 찾아보니..

지금은 기독교 계열 대안학교에 계시나 본데,

그의 지난 날에 내가 다녔던 학교 이름은 없다.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지도 모르겠다.

 

전교조 사태 때 학교를 나와 농사를 지었던 사람.

그러다 우리 학교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던 그 땐, 그도 무척 젊었다.

어렸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그를 무척 좋아하면서도 그의 우리 학교에 대한 애정없음을 간파하고는, 이해도 하고 섭섭해도 하고 한편으로는 애정을 갈구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암튼 2학년 4반은 매번 과학 꼴찌라서 관심을 받기도 했던가? 그의 딸 이름이 '다의'인데, 전라도 애들이라 '의' 발음을 못 하고 '다으'라고 한다고 막 놀리기도 했는데....

 

뭐, 그건 그렇고....

중간 고사 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한답시고 나왔다가 공부는 뒷전이고, 삼삼오오 빈 교실에서 시켜 먹던 쫄면의 맛이 유난히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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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게임을 하다 받은 탓이기도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 했다.

체취 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던 사람인데,

목소리를 단박에 알아듣지 못 하니,

좋은 세월이 흐른 모양이다.

 

'서울에 올라가면 연락할께'라는 말을, 참 여러 사람에게 했다.

하나둘,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

그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왜 진작 연락 안 했냐는 질문에, '아웅, 바빴어, 미안.' 하면서

어쩐지 반가운 기분이 든다.

 

한밤 중이건 새벽이건, 나는 잘도 신촌을 향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지금 대학로야'라고 말할 것 같은 그가,

정말 그 말을 할까봐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졸리니까.

다른 이유 없다.

 

껐던 컴퓨터를 다시 켜고 자리에 앉았으니,

아무래도 좋은 세월이 조금은 더 흘러야 할 모양이다.

아니, 그것과는 상관없을 지도 모른다.

함께 했던 그 모든 처음들이 나를 어지럽히지는 않으나,

놓아주지도 않을 것이므로.

 

지금까지 나는 같은 집에 살고,

그는 더이상 신촌에 살지 않는다.

강남의 새집에 놀러가 본 적 없이 몇 년이 흘렀고,

새벽에 작게 울리는 계단 소리에 더이상 잠이 깨지 않는다.

 

괜찮지 않은 나에게 괜찮다, 괜찮다 했던 기억까지도,

이제는 괜찮다.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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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순간.

반 숟갈 남은 김치볶음밥 그릇을 닥닥 긁으며, 나는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라는 사진 에세이집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6년 1월 이후 벽장에서 꺼내지 않았던 필름을 이제야 꺼냈다는 부분을 눈으로 따라가는데,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온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노래하는 김광석의 음성은 여전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던 나는 이제 서른이다.

 

- 책장 정리하면서 나온 헌책들을 이음아트에 갖다드렸다. 사장 아저씨가 작가 사인이 들어간 김광석 사진 에세이집을 선물로 주셨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 종종 서너 개의 세상이 겹친 것 같은 순간이 있다. 폴 오스터를 좋아하던 한 선배는, 학교 정문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를 세워두고, 우리의 '우연한 순간'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했었다. 그는 마흔이 넘으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고, 누이의 피아노 학원, 피아노들 사이에서 잔다고 했다.

 

- 우연한 순간, 은 에서 잭 니콜슨을 파국으로 몰고 갔고, 에서도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주요한 동력이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것에 나는 언제나 매료되곤 했다.

 

김치볶음밥과 김광석과 서른 즈음에가 함께 하는 우연한 순간.

백석이 노래한 하얀 얼굴의 시인과 하얀 쌀밥과 하얀 생선 반찬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 안에도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어느 날 피아노가 있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선배를 만난다거나, 선배의 소설을 들고 피아노 학원을 지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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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어제까지만 해도 다음 주 월요일이 출근인 줄 알고 상당히 우울해져 있었다.

아직 출근 전이지만, 앞으로 담당해야 할 새로운 업무 때문에 머리도 좀 복잡하고 가끔은 사무실도 나간다. 그 정도는 괜찮지만 막상 복직이 다음 주라는 건....

근데 어제 자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번 주 토요일은 23일이다. 그럼 월요일은 25일. 그럼 다음 주 출근이 아니라는 거.

급행복해졌다. 지금도 컴 앞에 앉아 할 일은 안 하고 방황하고 있지만.... 일주일의 여유가 더 있다는 건.... 음.... 좋구나. 하기로 했던 일, 다 하고.. 깔끔한 컴백을.

 

TV를 치웠다. 아빠가 다시 광양에 내려가면 나한테 돌아오겠지만... 일단 아빠 방으로 옮겼다. 대신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라디오를 멀리 한 지 벌써 10년은 되었는데. 반갑다, 라디오.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된다. 책장 정리며 서랍 정리며 가스렌지 청소에 방바닥 걸레질에.. 여행 다니면서 좋은 버릇이 든 건, 먹고 나서 설거지는 바로바로 한다는 거다. 가사일은 원래 대충 하는 편인데, 나이 들어서 그런가.. 자꾸 집안을 살피게 된다. 예전처럼 귀찮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방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뭔가 좀 불안한 걸까? 걸레를 빨고 있으면 기분이 하염없어 진다. 슬프고 우울한 거랑은 다르다. 그건 뭐랄까......

 

사진이 왔다. 약간의 사정이 있긴 했지만, 안 뽑아도 될 걸 뽑고 뽑고 싶었던 건 안 뽑고 했더라. 사진정리 하는 동안 토가 나올 지경이었는데, 인화된 걸 보니 또 기분이 다르다. 사진 속의 나는 이를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겨울 정도로 밝기만 한 표정들이다. 참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난 아주 잘 웃는다. 울기도 잘 운다.

2008년.. 기대 반 걱정 반..

나는 많이 웃게 될까, 많이 울게 될까?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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