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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가족’에게 배우는 미덕

* 노란리본님의 [이 가족이 사는 법!] 에 관련된 글.

프란체스카를 보고 난 후, 써야겠다고 미뤄뒀던 글을 작성하고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생각하고 샤악 들어왔는데

노란리본님의 비슷한 생각을 담은 글을 발견했어요~

'앗! 선수를 뺏겼다!'는 생각과 함께 엄청 반가움이 느껴지네요~ 흐흐...

이럴 때 블로그가 재밌다고 느끼는 거겠죠?

 

 



“외모는 10대 소녀지만 사실 2000살을 먹은 왕고모 소피아, 어린이들을 울며 도망가게 만드는 섬뜩한 외모에 도끼까지 들고 다니는 프란체스카, 외모에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면서 영원을 함께할 남자를 물색하고 다니는 엘리자베스, 닭피를 먹어 닭대가리가 된 바보 흡혈귀  켠이. 루마니아에서 일본에 가려다 배를 잘못타 한국으로 온 뱀파이어 4인(?). 우연히 만난 인간 두일이를 물어 흡혈귀를 만든 후 기묘한 동거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의 기상천외한 일상이 펼쳐진다.”

 

 

요즘 월요일 늦은 근무를 제쳐두고 나를 TV 앞에 앉게 만드는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의 이야기.

 

나는 평소 TV에서 개그프로그램 외에는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캔디같은 여자 주인공과 현실에는 그리 많지 않지만 TV에서는 길가다 채일 정도로 수두룩한 잘생긴 재벌 2세가 만나 콩볶아 먹는 얘기가 지겹고, 틈만 나면 출생의 비밀에 기억상실증이 난무하는 상황들이 식상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큰딸, 작은 아들 등등이 대가족을 이루고 엄마는 매일 부엌에서 요리하고 빨래하는 장면만 나오지만 ‘우리 가족은 화목해’라고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 가족 드라마는 얼마나 닭살을 돋아나게 만드는가.

 

‘비일상성’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풍자

 

그런 내가 이 ‘안녕, 프란체스카’를 우연히 본 후로는 한편에 천원씩이나 하는 비싼 유료관람료를 내고 VOD 다시보기 버튼을 누르며 재탕 삼탕을 반복해 보고, 나오는 대사 한마디, 터지는 상황 하나에 울고 웃으며 빠져들게 됐다.

 

10%를 약간 웃도는 그리 높지 않은 시청률이지만 꾸준히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 시트콤의 가장 큰 매력은 ‘비일상성’이다.

 

남자 주인공 두일이 근무하는 조명이 환한 백화점에서 시식코너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세풍의 검은 드레스와 검은 머리의 프란체스카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시식하러 나가오던 아주머니들은 나자빠지게 만든다. 또 낯선 한국땅에 온 이국인 프란체스카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고스톱 패를 보며 그 아름다움에 반해 놀음중독까지 빠지게 되는 상황은 있지 않을 법한 존재와 지극히 일상적인 현실의 충돌을 만들며 웃음을 만들어 낸다.

 

초기 설정인 뱀파이어의 존재 자체부터가 일상적이지 않기도 하지만, 시트콤의 주인공들이 내뱉는 한마디, 벌어지는 상황들은 기존 통속적인 드라마의 설정을 묘하게 비틀며 풍자한다.

드라마 매니아인 반장댁 백수아들 용주는 매니아틱하게 드라마 상황을 현실에서 연출하다가, 짝사랑하던 엘리자베스가 ‘사실은 네 이복동생이다’는 엄마의 거짓말을 듣고 ‘우릴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통곡한다. 첫회에서 엘리자베스가 발견한 이상적인 남자 사업가 기주는 음악에 미친 비정상적 인간이고, 10회에 이르러서는 3각, 4각을 넘어 무려 12각 관계의 남녀가 치고 받고 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상가족? 비정상가족

 

비일상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간이었던 두일과 흡혈귀들이 동거생활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비정상적’인 가족형태다.

 

동네사람들에게 최고령자인 2000살 소피아는 귀여운 막내딸이 되고, 두일은 듬직한(!) 가장이고, 프란체스카는 아내이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일반가족에서 최고 서열에 있어야 할 가장은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고, 막내딸 역할의 소피아가 대고모로서 가족의 중대사를 이끌어간다.

 

또 이들은 낯선 이국에서 온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가족의 구성원 역할’을 하고 함께 부대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물론 이 애정도 통속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다툼 후에 화해를 하며 서로를 꼭 껴안고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깔리지만 금새 ‘이런 화목한 분위기 싫어’라며 닭살을 털어내며 흩어진다. 그러나 인간이었을 때는 천애고아에 왕따 분위기를 자아냈던 두일이 흡혈귀들과 함께 살며 ‘가족’을 느끼게 되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면 그 이질적인 가족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시트콤의 연출을 맡은 노도철 PD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녕, 프란체스카>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불법이민자들이 이 사회에서 가족으로 위장하고 적응해나가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불법체류하고 있는 이주가족들의 현실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을 확대시켜보면 불법이주자 뿐만 아니라 이성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 외에 독신자, 동성부부, 한부모가족 등 다양한 가족들이 현존하고 있는 지금, 이들이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정받고 살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혈연으로 운명지어진 형식을 위주로 한 가족이 아니라 낯선 타인이 유대감을 형성하며 만들어 나가는 가족도 엄연한 가족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족으로 이 시트콤의 주목할만한 독특한 인물은 켠이라는 흡혈귀다. 자신이 동성애자인 한 언론사의 기자는, 자기도취적 특징을 보이고, 좋아함에 남녀를 가리지 않는(시트콤 상에서는 단지 바보이기 때문으로 묘사되지만) 켠이라는 인물이 동성애적 코드를 아주 체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드라마에서 곁들이 정도로 출연하는 것 외에 동성애 그 자체로 발언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우리사회는 비정상가족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 혹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제도 및 정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다. 호주제 폐지 후 신분등록제의 문제가 그렇고, 동성애자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활동도 그렇고,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그렇고, 농도인 전북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국제결혼과 그에 따른 이주여성들의 문제가 그러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폭이 넓어지고 발생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 다른 가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개인을 포용할 수 있는 틀은 그리 넓지 못하다.

 

 

여기에서 잠깐 다른 드라마 얘기를 한번 해보자. <안녕, 프란체스카>에 반한 후로 괴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족 드라마가 또 있을까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괴기대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발견하게 됐다. 국내에도 개봉돼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영화 <주온>을 제작했던 감독이 <주온>의 배경이 되는 그 섬뜩한 집에서 전혀 다른 코믹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귀신뿐만 아니라, 좀비, 외계인, 흡혈귀 등 온갖 이세계의 존재들이 총출연하는 이 드라마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강력한 주술을 걸어, 모든 사람들이 귀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음지에서 숨어 지내던 낯선 존재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 모두 함께 사랑하며 공존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자신과 조금은 다른 특징을 가진 존재들을 혐오나 천시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함께 공존하는 세상,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끄집어내고 다소 과장시킨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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