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부산했다...

월요일 아침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연맹 산별추진위 회의로

예정되어 있던 상집회의를 못하고...

상집회의를 언제 할 것인가 일정을 맞추고

그러다 이병렬 조합원이 위독하고,

어찌될지 모른다는 이야기에

임원들이 병원으로 급히 갔다...

 

그렇게 오전은 흘러가고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배가 너무 고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렇게 일상은...

 



그러다 곧이어

이병렬 조합원이 돌아가셨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5층에서 정책실 회의를 하고...

6말 7초에 파업을 해야 한다...

어찌 하나...

누가 하나...

필공사업장은 어떻게 하나...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그러고는 내려오는데,

3층에 벌써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동지가 분신하였고...

열사가 되었고...

그러면 분향소를 얼릉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몫인데도...

그냥...

너무 순식간에..

분향소가 설치되고...

장례를 어찌 치뤄야 하나 하는 이야기가 오가고...

나도 발인이 언제인가를 묻고...

 

그러는데 기분은 이상했다...

마치 예정된 일들을 밟아 가듯이...

 

그래...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슬퍼하고.. 애도하고.. 그러기도 하지만...

우리는 또 동지를 보내는 일을 해야 한다...

 

언젠가..

상을 치르면서..

장례라는 것이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상을 치르면서 정말 그/녀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실감하게 하고..

슬픔을 넘어서 잘 가라는 맘속의 말도 하게 되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같았다..

 

예전에 어떤 열사처럼...

이병렬 조합원은 그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 동지들이 많지 않다...

공공노조 조합원인 시간이 길지 않아서일수도 있겠지...

아니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이 곳 서울에 많지 않을수도...

 

외로운 그 길에...

겉으로는 장례를... 또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나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잘 가시라고, 편히 쉬시라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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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03:48 2008/06/10 03:48

사회연대본부 정책차장으로 인사이동을 하고

때마침(?) 삼실이 집에서 팔분거리(자전거로)인

곳에 이사를 하고나서는 토, 일에는 늘 삼실에

출근을 했다.

 

인사이동 후 긴장 백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주에는 큰 맘을 먹고 어제만

삼실에 나갔다.

 

모 동지와 도봉산엘 가기로 약속을 했으나, 새벽 6시쯤

못 간다고 문자가 왔다. 문자 덕분에 일찍 깨서

아침을 냠냠 먹고...

kbs1에서 하는 '영상앨범 산'을 보고..

(늘 보고 싶었으나 일요일 아침 7시에 하는 관계로 첨봤다..)

'~~산' 직후에 하는 '영상포엠 내마음의 여행'에서 담양을

눈으로 여행하고...

주먹밥과 참외와 커피를 넣은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역시 나에게는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



간만에 가는 도봉산...

가슴이 약간 뛰었다...

내가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오르던 산...

고민거리를 결론 내려고 오르다 보면

오히려 엉켜있던 생각들이 사라지고...

(그래서 예전에는 당황했다..뭐야.. 생각하려고

산에 왔는데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나면 이러면서..

그러나 그것은 조급한 나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려와 보면 비어버린 머릿속에

어떤 기운들이 가득차서 좋은 생각들이 들던...

 

도봉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좋았다~~ 워낙 비를 좋아하고 비맞는 건

오히려 더 좋아하니...히히

 

그런데 바위가 미끄럽고, 추운 건 좋지 않았다...

앉아서 하염없이 수다를 떨던 그곳도 추워서

그냥 지나치고..

점심도 후다닥 해치워야 했다..

 

등산갈 때마다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늘 가다보면 아쉬워서 정상에 오르고 만다.

오늘도 역시...

작은 붓으로 밝은 연두색, 좀 더 짙은 연두색,

약간 남색을 섞은 연두색을 콕콕 찍어놓은 듯한

나무들... 역시 봄산에서 보는 능선은 폭신폭신해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집에 오면서 사 온 호박전, 고추전, 깻잎전, 버섯전,

녹두전을(많이도 먹었군..쩝..) 막걸리 홀짝홀짝거리며 먹고...

먹고 나니 졸음이...

그러나 지금 왜 일어났냐...

ㅋㅋ

일하러... ㅎㅎ

그러나 내일 회의 때 낼 문서들은 뒤로 밀쳐두고

맘에 드는 블로그 두 개를 찾아내서 오호~~~하며

블로그 글만 읽고 있다는...

하나는 만화를 소개하는 블로그이고, 하나는 일본소설을

소개하는 블로그인데, 볼 책들을 메모하고 있다~~

호호... 너희들을 읽어주마~~~

 

나 이제 사회연대본부에, 정책기획실에 적응됬나부다~~~

이렇게 일요일을 보냈다니~~~ 추카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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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7 22:23 2008/04/27 22:23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노조 지역본부에는 상근자가 한명이다.

본부마다 비상근 집행부를 두는 곳이 있거나, 임원이 상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그래서 지역본부

조직국장의 역할은 조직상담, 비정규투쟁, 연대투쟁, 정책생산,

조직관리, 임원비서역할(?) 등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충북본부에 그렇게 혼자 북치고 장구칠 사람이 병가 한달

들어갔으니, 본부 사업이 지장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파업에 들어가는 사업장이 있고, 자잘한 문제가 있는 사업장

들도 있어서 조직실에서 내가 한달간 지원을 가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3주간 거기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거기서 회의하고, 그냥 이야기하고, 술먹고, 교섭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우진환경분회...

 

처음에 너무 웃겼던 건 사측의 태도나 경찰, 근로감독관의 말에 잔뜩 화가 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느리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증말 열받더구만유~"

라고 하는데 너무 웃긴거다.. 참 웃을 수도 없고..

 

그런데 이 동지들.. 말투만큼이나 심성은 더 순하디 순해서 교섭 후에 근로감독관

한테 전화가 와서 사측이 잘못하고 있네라는 뜻의 한마디 말만 해도 "어이구~ 그

사람은 우리 편인가벼~~"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렇게 믿게 만드려고 근로감독관이

엉까는 건데도,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악하게 생각할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사측에

대해서도 "아이구~ 그 사람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간디? 그 사람도 노력하고

있는겨~~"라고 하여 나의 복창을 터트린다...

 

어느 날 간부들과 모이기로 했다...청주시, 내수, 증평에 있는 간부들을 돌면서 차에

태워서 청주시에 있는 사무실에 모였다. 그 차에 타고 있다가 조직부장을 데리러

갔는데, 병원에 약을 타러갔었다고 이야기했다. 조직부장이 차에 타기 전 부분회장에게

물으니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순간... 우진환경분회는 지난 10월 17일 공공노조에 가입한 후,

사측은 계속 교섭해태, 노조탈퇴공장, 용역깡패 동원한 분회장 폭행 등등을 일삼았고,

파업에 돌입한 후에도 사측은 이렇다할 진전된 사측안을 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그에게

우울증을 가져온 게 아닌가 가슴이 덜컹 했다... 그런데 그런 우려로 조심스럽게

'노조하고 나서 그렇게 된 거에요?'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들은 웃으며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구.. 노조때문에 요즘 많이 나았어유~~ 그 양반 평생 소원이 노조있는

회사에서 일해보는 거였거든유~~ 요즘 날라다녀유~~~"

 

참.. 노조라는 게 뭐길래 평생 소원이 노조있는 회사에서 일해보는 것인가. 우리는 위기네

뭐네라고 하지만, 그래도 노조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소원이 될 수 있다는게

참 생경하면서도 가슴이 뭐랄까 먹먹해졌다.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허세욱 열사 유서를

들으면서였다. "저멀리 가서도 묵묵히 꾸준히 민주노총과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이라는

유서를 들었을 때,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 때가 공공노조 중앙에 올라간 직후였는데,

그 때 정말 잘 해야겠다, 그냥 예전처럼 민주노총이 그렇지 뭐 이렇게 냉소적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잘 해봐야겠다. 잘 하는게 뭔지 더 열심히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파업한지 4주되었는데, 이 곳은 막판으로 가고 있다.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업체 중 전국 5위인 이 회사는, 처음에 10억으로 시작하여 14년이

지난 지금 1000억이 넘는 자산규모가 되었다. 폐기물을 다루는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속성장을 한 것은 불법으로 폐기물을 매립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 폐기물을 실은 차를 운전하는 노동자였다. 그래서 그 폐기물이 매립해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원래 계약했던 것보다 부풀리는지 아닌지를 알았다. 소각해야 하는 것도

마구 매립하였지만 잘못인 줄 알았지만 짤릴까봐 회사에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회사는 알고 있다. 민주노조 깃발을 세운 이들이 파업을 끝내고 회사로 들어왔을 때,

이전처럼 그렇게 불법적인 매립을 하기도 쉽지 않고, 자신이 싹싹 긁어가야 하는 돈들을

노동자의 댓가라며 내놓으라고 할 것을..(몇 년동안 이 사업장은 매년 임금이 하락해 왔다...) 

그래서 회사는 이들을 회사로 복귀하게 하고, 그 후에 노조를 말살하려고 한다.

길게는 10년 넘게, 짧게는 1년 넘게 이 곳에서 몸을 담았던 조합원들... 운전직이면서도

회사에 고용되어 정규직으로 일하는 곳이 거의 없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이 회사에 미련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당당히 걸어서 회사를 들어갈 수 없다면, 회사를

날려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자신들이 잘못하여 조합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하는 것

같다며 괴로움에 야밤에 문자를 보내는 분회 간부들... 이들의 심정을 내가 모두 알 수 있을까...

그렇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오늘 밤 괜시리 그 문자에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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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7 22:51 2008/03/07 22:51

죄인

사는얘기 2008/02/09 12:30
 

이번 설은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맞는 첫 명절이었다.

 

지난 연말에 혹시라도 부모님집에 안 올 수 없을까 하는 심산으로 부모님을 슬쩍 떠봤다. 겉으로는 조용히 이야기하시지만, ‘설에 집에 안 오고 서울에 있음 어떨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부모님의 속은 요동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득이나 심란하실텐데, 그래도 옆에서 해 주시는 거 따박따박 받아먹고, 잘 쉬고, 잘 자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효도겠다 싶어서 부모님집에서 설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는 차례를 두 개를 지내셔야 한다. 울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한테는 큰 아버지, 나에게는 큰 할아버지 아들로 호적상 되어 있다. 그래서 나에게 큰 할아버지인 할아버지의 차례를 우리집에서 모셔야 한다. 그리고는 대구 큰 (사촌)오빠네에 가서 진짜 할아버지의 차례를 지내야 한다.


아버지 연세가 70을 넘기시고는 대구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어쩌다 한번은 대구를 가지 않으셨다. 그런 게 사촌오빠들한테 마음이 걸렸는지, 설 당일날 둘째오빠가 부모님을 모시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 당일날 아침에 아버지가 나에게 ‘둘째 오빠 오면 언니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있거라.’라고 하셨다. 감기때문에 계속 기침을 하는 것을 엄마는 걱정하셨다. 그러면서 ‘기침도 하면 안되..’라고 하셨다.


새벽부터 일어나 큰 할아버지의 차례를 지내고, 미쳐 다 치우기도 전에 둘째 오빠가 도착하였다. 나는 언니 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조용히 누워 있었다. 부모님은 오빠에게 거짓말을 하셨다. 나와 남편이 경주에서 오는 중이고, 그래서 언니는 대구를 갈 수 없고 우리를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나 더 큰 일은 저녁 때 일어났다.

둘째 오빠가 대구에서 부모님을 다시 울산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나와 남편을 보고 가야 한다고 한 것... 그래서 이번에는 집 밖으로 피신을 했어야 했다. 이번에는 언니도 같이.. 내가 좋아하는 대나무숲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랬다.


맨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 떠올려보던 대나무숲의 소리와 초록빛과 대 숲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 햇살을 보았지만, 기분이 왠지 씁쓸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늘 부모님께 죄만 짓고 산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는 다시 죄인이 되어 집으로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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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9 12:30 2008/02/09 12:30

최근 들어, 엄마의 몸이 않 좋아져서 더 이상 일하기 힘들 지경이 되고 있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두신지는 어언 15년. 그 뒤에는 그나마 엄마가 일을 하여

집안 생계를 이어갔다.

 

이제 엄마도 일을 그만두어야 하고, 나와 우리언니가 부모님을 책임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에게는 구조적으로 저임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딸들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 나는 정규직/고임금 노조상근자이니 한동안은 경제적으로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른 곳에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경제적인 이유로 여기 있는 상황은 지양하고 싶으니,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나는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다른 그 곳이 아마도 지금 있는 곳보다는 수입이 적을 확률이

90%이상이 되지 싶다.

 

그리고 우리언니는 37세의 지방대출신의 친절함, 서비스정신은 비범하게

없는(울 언니의 그런 점이 나는 좋다~) 그리고 성질이 더러운 정말 안 평범한

학원노동자이다.

 

문제는 우리언니가 살고 있는 울산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서울로 와서

살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그럼 울 언니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이다.

모두 알겠지만, 서울에서 지방대출신/ 나이 37세인 여성을 학원강사로

쓸 가능성은 너무도 적다.

 

내가 언니를 책임질 능력도 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자아실현 그런 이야기는 현실과는 정말 맞지 않는 개뼉다구 같은 소리지만

나름 언니도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작게나마 보람이든 자긍심이든 그런

걸 가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살 권리가 언니에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리 둘이 짱돌을 굴려봐도 마땅한 직업이 없다..

 

매일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팔과 목, 등을 두드리고 있을 엄마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가사노동을 하고 혼자 밥을 드실 아빠와

(이것도 정말 우울한 일이다.) 이후 언니의 인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정말 우리 사회는 가족단위에 재생산과 생활을 떠넘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여성노동자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중의 하나인 노동권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나날이다..

 

도대체 37세 여성은 어떤 일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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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0 23:51 2008/01/20 23:51

금요일 저녁에 빈곤사회연대 후원의 밤에 갔었다.

철도웨딩홀에서 했는데, 부페를 보고 기쁜 나머지

좋아하는 크림소스양송이볶음 등 느끼한 것들을

너무 많이 먹었었다부다. 여성운동네트워크(준)에서

하는 월례포럼을 갔다가 집에 간 후에도 속이 너무

거북했다. 자다보면 어찌 되겠지 하고 누웠지만

결국은 새벽 내내 토하고, 토욜에도 저녁에

밥 끓인 것 조금만 먹고 내내 굶어야했다.

 

오늘도 영 속이 편하지 않는데다, 연일까지는 아니어도

몇 끼를 굶었더니 어지러워서 이주집회를 외면하고

누워있었다.

 

참 나도 웃기지.

그렇게 골골거리며 누워있는데, 문득 든 생각이

나이든 후의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 사랑을 하면 어떻게 사랑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체한 게 내려갔나보다, 이런 널널한 생각도 하고켁!)

 

 



나이들어서 하는 사랑에는 낙엽태우는 냄새가 날 것 같다.

 

물론 소유하고 싶고, 늘 보고 싶고, 옆에 있고 싶고 그런 마음은

분명히 생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더 타고 넘어서

다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젊을 때보다는 쉽지 않을까?

 

상대가 잘못을 해도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고,

매일 같이 있지 않아도 포근함이 사라지지 않고,

 

혹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흐흐 이건 내가 늘 꿈꾸던 거다)을

만난다 해도 '그 이가 지구에 살아있는 게 어디야?'라며 그렇게

많이 슬퍼하지 않으면서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30대 초반인데, 열정적인 사랑을 꿈꿔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서도.. 남자와 가까운 관계가 된다는게 조금

싫기도 하고(정말 남자는 좀 싫다. 어젯밤에 잠들었다가

남자가 나오자마자 놀라서 깼다. 무서웠다.. 그런데, 무서워서

남자한테 문자 보냈다. ㅋㅋ), 솔직히 연애란 게 귀찮기도 하고

그렇다..

 

나에게 연애은 너무나 먼 이야기같어~~ 그냥 사랑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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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0 23:23 2008/01/20 23:23

내가 최근에 들었던 감동적인 말은...

 

연금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 이가 그냥 노동자라고 하기에는 의식화(?)가 많이 된 이이지만...

 

요즘 공공부문에서도 고객만족을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교육과

그것을 토대로 한 현장통제가 큰데, 그것에 대하여 그이가 한 말이다.

 

"공단에서 하는 고객만족이라는 건 정말 웃기는 말이다.

어제 남편이 죽은 아줌마를 만났는데, 공단에서 말하는 고객만족은

그 아줌마에게 남편이 죽어서 받게 되는 연금이 얼마고, (정말 살수

없는 액수이다)그럴 수 밖에 없는 제도에 대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고객만족이냐.. 그 사람에게 만족은

살만큼 연금을 받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 주지 않으면서

좋은 말로, 친절한 말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해주는 게

무슨 고객 만족이냐! 공단에서 이야기하는 고객만족은 너무 웃긴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이

나에게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방문하여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도 복잡한 시스템에서 쉴수없이 일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문득 우리 조합원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고맙다...

그리고 이런 조합원과 그냥 노조 틀 안에서 교섭 그런 거 말고,

정말 다른 무언가를 해 보고 싶다...

 

그런 걸 만들어 내기 위한 2008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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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6 02:51 2008/01/16 02:51

까치님의 [뒤늦은 새해 계획] 에 관련된 글.

 

지난 해 5월 30일 글을 마지막으로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다.

 

오늘 새해이고 하여, 다시 블로그를 할까 하는 마음이 생겨서

들어왔다.

 

그리고는 작년 새해계획을 보았다.

 

작년 계획이 세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는 그럭저럭 하지 않았나 하는 스스로의 평가...

 

영어공부는 중간에 포기했었다.

나의 정신적인 상태에 영어공부까지 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많은 미련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했다. 

다시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조건과 기회가 오겠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ㅎㅎ(오호~ 매우 긍정적인 까치!!!)

 

개인재정확충은 이사를 하면서 완전실패했다.

이사를 하면서 빚을 많이 졌다. 
나의 월급과 지출정도를 보았을 때, 월세는 너무 무리라고

판단하여서 무리하여(뭐든 무리군..ㅋㅋ) 전세집을 구했다.

빚도 다 자산이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빚을 갚고있다.

 

마지막 한가지 지혜롭게 살자는 다짐을 했는데,

그래도 이제는 뭔가 나 삶을 중심에 놓고,

고민도 하고, 하나하나 정리도 하고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혜롭게 살되,

 

'활동에 있어서 작년보다 나은 활동가가 되고 싶다.'

개인적인 신상의 변화로 작년에는 힘겹게

정말 버티면서 활동을 이어갔는데,

올해는 내가 머리 속으로 구상하는 것을

하나하나 현실에서 만들어가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나도 성장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들도 성장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ㅎㅎ

또한 주변 동지들에게도 힘이 되는 그런 활동가이고 싶다.

 

작년에 내가 버티면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 동지들이 너무도 고맙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블로그도 하면서 나의 고민들을 나누고 싶다.

맨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던 그 맘으로 ㅋㅋ

 

나의 33살 인생이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아자아자! 올해도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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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1 20:10 2008/01/01 20:10

여행발

사는얘기 2007/05/30 01:37

아는 사람은 알지만 지난 주 수요일에 여행을 떠나서 일요일에 돌아왔다.

사실 여행이란 이름을 버젓이 달고 가본 건 신혼여행이 첨이고, 이렇게

국내를 여행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좋았다.

 

 

그런데,

 

 

여행발이 떨어지는 데에는 집에 도착해서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밖에는 안 든다..

 

 

그래도 사진기 안과 내 다이어리 속에는 그 때의 추억이 남아있다.

 

 

좀 정신이 좋아지면 곧 여기에 옮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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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30 01:37 2007/05/30 01:37

사실 글 분류상 "세상을 바꾸는 건 운동!"에 써야 할 것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찬찬히 정리하고 늘어놓지를 못하겠다.

고맙게도, 아무도 그런 걸 정리하라고 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요즘 들어 나의 책상은 술상으로 종종 변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술먹는 것을 많이 자제하고, 처음에는

자제하다가 그런 자제가 또 삶이 되어서 그렇게 자폐적이지

않게 살았었는데, 다시 또 혼자만의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노조 생활에 적응을 한 건가..

야밤에 이렇게 여유있게 술도 푸고...

밤에는 우울, 절망, 낮에는 활기, 열정 이 이중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건가. ㅋㅋ

 

정말 오래 전 부터 함께 활동하던 사람이 어제 이야기했다.

"연맹 그만두기로 했어"

어제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통보를 한 것이다..

뭐 그 사람에게는 내가 함께 고민을 나눌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운동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만둘까한다도 아니고 그만둘거야 이다...

 

오늘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운영위도 못가고 사회복지지부 임원순회

간담회를 갔다왔다.

가면서, 또 간담회를 하면서, 간담회를 갔다 와서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사회복지지부나 내가 활동을 하던 보육지부나 상황이

이란 게 비슷비슷하게 지질이 궁상, 절망과 좌절 두 제곱이라..

나는 이제는 조직팀. 그래서 조직관리만 하면 되는 사람인데도

 보육과 비슷한 조건의 지부들을 만나면(보육과 비슷하다고 하면

다들 화를 내려나.. ㅋㅌ) 일순간 돌변하여 중앙 간부가 아니라

비슷한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된다.

그 동지들이 고민하는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동지들의

입장에서 어찌보면 중앙이 곤란해할 것들을 제안하곤 한다...

 

어찌보면 이게 공공노조의 강점인가? 산별되면서 조합비가 공공노조로

많은 부분 올라가서 더 이상 상근자를 둘 수 없는 조건이 되어,

상근자를 고용승계해서, 고만고만한 지부들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중앙에서 있게 된게? 휴...

 

암튼 아까 든 생각은 정말 어려운 조건에서 산별로 전환한 지부들이

혼란스런 노조 상황에서 다 깨져나가고 있어서 너무 답답했고,

한편으로는 사회진보연대는 제껴두고(?) 공공노조에 너무 헌신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내가 속한 공간에서 나의 역할

을 하면서 제대로 활동하는 게 다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찝찝한....

 

그런데도... 

그만두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왜, 무엇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들고, 그만두겠다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도 못하는게

너무 답답하다..

 

아마도 이게 나의 공공노조 생활의 첫번째 슬럼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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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8 00:41 2007/05/08 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