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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그루'라는 한그루

경험에 의해 체득된 공식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가령 주사바늘은 너무 너무 아프고 무섭다라는 것처럼.ㅠㅠ(정말 넘넘 무서워~)

 

안타깝게도 나에게도 몇 가지 사고의 공식이 존재한다.

'40대남성=멀리 해야하는 인간' 이라던가

'50대이상부부=섹스리스 혹은 ≠불타는섹스' 라던가

 

일편향적인 부분만 잡아본 것이지만, 참 다 쓰고 보니 내가 오랫동안 연애 안하긴 했나보다 하필 골라도 저런 것만 골랐나 싶다 ㅠㅠ

 

그래서 나의 편견이 나를 지배하느냐. 정말 안타깝지만 그렇다.

20대 중반을 넘기니깐 추근대는 남성이 어째 죄다 40대인지...그 뒤로부터 40대 남성은 대체로 피한다. 물론 그들의 나이가 나를 정녕 피하게 만들었던 것인지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나이가 공교롭게도 40대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그들은 피하고 보자는 주의다. (이런 편견은 정말 없애야 하는데)   

 

50대이상부부의 섹스에 대한 경험은 없으나, 뭐..티비 등을 통해 어떻게 주입된 모양이다. 어느 날 지인들과 수다떨다가 'L'의 "자기 엄마 아빠 요즘 섹스를 안하나봐"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진짜. 섹스도 하셔?"라고 반응한 것을 보면서 내가 참 왜곡됐구나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서론이 길어졌다. 본론으로 넘어오면.

 

수능날이던 15일 수능을 거부하고 1인 시위에 나선 고3학생을 만났다. 물론 취재차였다.

취재진들이 꽤 왔었다.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등에서 와서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대체로 내가 질문할 거라고 적어온 것들과 내용이 흡사했다.

옆에서 조용히 들으면서 받아적었다. 이런 걸 거저먹는다고 하는 거다.

그런데 듣다보니 거슬린다. 내가 직접 질문했으면 별 문제의식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자들이 원래 의심이 많아야 되는 직업이긴 하지만, 의심 자체가 왜곡되어있다는 그것처럼 무서운게 없다.

 

"대안학교 다녀요?"

아마 일반학교에서 수능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니까 이런 질문이 날아올 수도 있었겠지만서도 수능을 거부한 학생한테는 어떤 학교냐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학벌사회에서 어디 학교에 다니건 수능을 거부한다는 것은 굉장한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기자들은 이 학생이 '간디학교'학생이라는  사실을 캐갔다. 결국 '대안학교'가 이날의 결단의 중요한 결정요소 내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환경으로 이해하게 된 셈이다.

 

"무슨활동했었어요?"

"대학 원래 안가려던 것은 아니예요?" 등도 위와 유사하다.

 

기자들이야 원체 세련되게 포장하는데 귀재라고 하지만, 내 기사 밑에 달린 덧글은 보다 노골적이다. 대체로 우호적인 덧글이 달려서 유독 튀는 덧글이기도 했는데, '불가능한 세상이다.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대충 그렇다.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 속단해서 미안한 얘기지만

난 이들이 이 고3 학생의 결단을 상대적일지언정 '낮은 수준의 결단'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것도 편견일까.

뭐 여러가지 기제들이 작동했을 수 있다. 아직 고3이라서 라던가. 사회 경험이 없다던가 하는 등의.

 

그러나 우문의 현답이라고 이 학생의 대답은 퍽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학을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못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일로 도달하는 그 과정과 방식은 다양해야 한다"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교과들이 좋았다. 옷을 만들거나 밭을 일구는 일 등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학교 근교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기도 하고 직접 옷을 만들어 입어보는 교과가 있었다. 이런 교과들이 사회에 나가면 쓸모없어져 버리는 과학이나 수학보다 좋았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야 한다. 시간을 투자한 12년 간의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것이 결국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뭐하러 학교에 다니냐"

 

교육운동을 한다는 사람이라도 '배우는 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야 한다'고 사고 하기 쉽지 않다.

 

이 학생은 시민사회단체에서 학생(청소년/녀)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한다. 

 

수능 거부 라는 이슈가 언론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자체로 시사하는 바는 크다.  이 학생의 결단이 한낱 '어린 학생의 철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 학생의 이름은 허그루다. 간디학교 3학년인  허그루 군은 '허그루 요. 한그루 할 때 그룹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한그루 허그루 군,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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