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혼자서 밥 먹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

오마이뉴스 | 입력 2009.12.25 12:01 | 수정 2009.12.25 12:29 | 누가 봤을까? 20대 여성, 부산

 

 




 

[오마이뉴스 박예슬 기자]"저 오늘 혼자 < 아바타 > 보고 왔어요. 극장에 온통 커플밖에 없더군요. 흑흑." "뭐 어때요. 저는 혼자 아웃백도 다녀 왔는데요."

"윗분, 그 정도 가지고… 저는 혼자 삼겹살에 소주도 먹는답니다." "다들 별 거 아니시네요. 전 놀이공원 갔다 왔습니다. 혼자."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 흔히 보는 대화들이다. 주로 혼자서는 선뜻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냈다는 '무용담'들이 경쟁하듯 속속 나오곤 한다. 개인 블로그의 경우 혼자서 패밀리레스토랑을 다녀왔다는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유저들도 있다.

사실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우리 사회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에 관대해진 편이기는 하다. 아웃백 등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싱글' 고객들을 위한 바(bar) 형 좌석을 마련하고 있다. 신촌의 일본라면 전문점 '이찌멘'에서는 혼자 오는 고객들이 중심이고, 2인석 이상은 '부수적'이다.

이곳에서는 무인 자판기로 주문을 하고, 독서실 좌석을 연상시키는 '칸막이형' 1인실에서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식사를 할 수 있다. 번화가 식당에서는 예전에 비해 혼자 밥 먹는 사람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칸막이'까지 쳐야 할까?





'혼자'인 고객들에게는 식당보다는 비교적 문턱이 낮은 카페. 바(bar)형 자리에는 싱글 고객들이 주로 앉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책'과 '휴대폰'은 필수.

 
ⓒ 박예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혼자 밥 먹는 것'을 포함한 혼자 '밖에서'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사라지지 않는 선입견이 있다.

일전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동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동기는 날 보자마자, "널 만나서 오늘은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점심을 안 먹는다는 건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 혼자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더라는 것이다. 그 후로 동기는 '절대로' 밖에서 밥을 혼자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얼마 전 '혼자 밥 먹기 매뉴얼'까지 등장했다. 매뉴얼에는,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사람이 많은 '러시 아워'를 피하고, 맛이 '검증된' 곳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뜩이나 혼자 밥 먹어서 우울한데 맛까지 없으면 얼마나 암울하겠냐는 것이다. 또 휴대폰으로 친구와 통화를 하며 식당에 들어서라고 한다. 가능한 한 '큰 목소리'로 '불가피하게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팁까지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만반의 준비'를 거쳐도, 싱글 손님은 아무 메뉴나 선택할 수 없다. 닭볶음탕이나 부대찌개 등 많은 한식 메뉴들은 '2인분 이상'만 주문을 받기 때문이다.





찜이나 탕, 볶음 등을 파는 한식당은 최소 2인분 이상부터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오는 손님들은 주문조차 어렵다.

 
ⓒ 박예슬


 
 
물론 모든 식당이 의무적으로 1인용 메뉴를 구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무리지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놀기를 특이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는 모름지기 ~해야 한다'는 담론이 지배하는 '피곤함'을 나타내는 일면인지도 모른다.

'보이기 위한' 삶보다 '나'의 즐거움을 찾아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고작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애인이나 친구'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곧 '언제나 어디서나 남에게 초라하게 보이기 싫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이 얼마나 '나 자신의 즐거움'보다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잘 보일지'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다른 사람의 시선'은 확고하게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식당이나, 영화관에서 내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동행인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심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거의 신경쓰지 않는다. 사실 '혼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로 남의 '지탄'이 두려워서라기보단 스스로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신경쓰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혼자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면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어' 보일까봐 두려운 것이다.

이제는 타인의, 그리고 나 자신의 '혼자놀기'에 대한 과장된 선입견과 두려움을 깨야 할 것이다. 혼자 노는 것은 '자랑스러운 무용담'도, '부끄러워 숨겨야 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독립된 사람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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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6:01 2009/12/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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