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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든 생각

 오늘 집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가 하신 전화인데, 정년퇴직 후에도 '촉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하고 계셨던 아버지의 계약기간이 더이상 연장되지 않아 일을 그만두실 것 같답니다. 오늘 확정통보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사측에서 3개월전에 알려주긴 했으나, 과히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일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는 늘 집, 회사, 간간이 술집이 전부였거든요. 휴일에도 공장에 들러서 기계를 보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그런다고 월급이 더 나오냐”며 욕도 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버지가 일하는 걸 좋아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직장에 다니는 저도 매일 느끼는 것이지만 직장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 돈 좀 모아서 여길 뜨고 싶다”는 생각을 하쟎아요. 제 생각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할 줄 아는 건 이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아버지는 공고를 졸업하고 20살에 공장에 들어갔답니다. 그때 들어간 회사에서 올해까지 약 40년을 보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간 회사에서 돈을 조금 모아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돈을 벌었던 거지요. 그게 관성이 되어서 지금까지 달려왔던 거에요.

어머니는 아직 형들이 학생인 것에 부담감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듯 해요. ‘니네 아버지가 한 2년정도만 더 일하다 퇴직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40년동안 가족을 위해 일했으면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여름이 지나면 형들은 취직을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알아볼테니 아버지로서 해주실 것은 다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제 마음속에 있는 소박한 꿈처럼, 아버지도 젊은 시절의 꿈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그 꿈을 기억할까요? 제가 7살정도 되었을 때 아버지가 당시로서는 비쌌던 카세트리코더에 뽕짝을 틀어놓고 누워서 쉬시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어머니는 시끄러운 뽕짝테이프를 돈주고 사는 것에 대해서 질색을 하셨지만, 아버지가 사왔던 테이프들은 제가 어린이날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과자상자를 한가득 채울 정도였지요. 전 아버지가 젊은 시절의 꿈까지는 아니래도 지금‘좋아하는 것’을 잘 알게되기를 바랍니다.

몇일후 설을 쇠기 위해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실 겁니다. 아버지에게 이제 좀 쉬면서 머리도 식힐 겸 지방에 여행이라도 다녀오라고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어머니가 “한평생 살면서 남은 건 키워놓은 아이들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하실만큼 모아놓은 돈도 없지만 바로 내일 뭘 먹어야하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참, 저는 오늘부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일하게 되었답니다. 이전에 드렸던 말씀처럼 하는 일, 분위기, 그리고 노동강도까지 상당히 황당한 부서라서, 앞으로는 블로그에 예전만큼 들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틈틈이 들르더라도 블로거 여러분들의 좋은 글들을 많이 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설에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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