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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메솟을 떠나며

원래는 밤차를 타고 늦게 메솟을 출발하려 했지만, 어젯저녁 부찌에게 아침 일찍 떠나겠노라고 말했다. 부찌는 방콕에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아쉽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어젯밤에 그렇게 말해 놓고서 부찌에게 편지를 썼다. 여기서 지낸 3일동안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힘들었다고, 나는 정말로 평범한 한국에서 온 젊은이라서 당신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썼다. 그리고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당신이 하고 있는 활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훌륭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썼다.

 

솔직히 3일동안의 메솟에서의 생활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그곳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슬픔을 모아놓은 곳 같았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음에도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참담함이라니... 그래서인지 메솟에 있는 내내 나는 두통에 시달렸다. 마치 뒷골에 심장이 있는 것 마냥 머리가 두근거렸고, 사흘째 되던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나겠노라고 말했던 것이다.

 

밤차로는 메솟에서 방콕으로 가는 직행편이 있지만, 아침에는 직행편이 없어서 인근 대도시인 탁(Tak)으로 가서 방콕행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부찌가 오토바이로 터미널까지 바래다 주었다. 차를 기다리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내가 출발일정을 앞당긴 것에 뭔가 안 좋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걱정하는 눈치다. 어젯밤에 당신에게 편지를 썼다고 하면서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가 나중에 사무실에 가서 꼭 읽어보겠다며 나를 향해 웃는다. 그렇게 악수를 하고 그와 헤어졌다. 이런 전쟁터가 아닌 평화로운 곳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보았다.

 

메솟이 고원과 같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메솟에서 탁으로 나오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많다. 탁으로 가는 도중 3번의 검문을 받았다. 2번은 군인이, 1번은 경찰이 버스를 세웠다. 그들은 탑승승객 전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나서야 출발사인을 보냈다. 그만큼 버마 난민의 유입은 태국정부로서도 골치 아픈 일인 것이다. 내 여권을 보더니 "Korean?... why..."라고 얼버무리더니만 내 여권을 돌려준다. 검문은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끔찍히 하기 싫은 경험이다.

 

탁에서 방콕으로 가는 버스에서 '청계천8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마지막으로 들어본지도 오래, 마지막으로 불러본지는 더 오래된 노래인데, 왜 갑자기 콧노래로 흥얼거렸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이라는 대목의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떤 상황에서건 자신의 인생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다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정말로 위대한 것이다.

 

[탁에서 방콕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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