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대해

분류없음 2013/12/30 01:31

* 차별에 대해 (1) - 인종 차별에 대한 짧은 생각

 

짧은 동향 - 무슨 일이 있었나

 

크리스마스 휴가 주간이 시작됐다 (12월 23일). 그리고 12월 22일 일요일 새벽, 갑자기 정전. 아침 나절에 춥다는 기운을 느꼈지만 메트리스에서 개기다가 약속한 자원활동을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칠흙같은 암흑이 아파트 복도에 가득. 얼마전 친구가 선물해준 레고 열쇠고리에 달린 플래시라이트를 비추며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젠장, 나는 14층에 산다고!). 이 때까지만 해도 잠깐 정전일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교회에 들러 자원활동과 서비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암흑. 건물 메니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짝과 함께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대피 결정.

살고 있는 도시 곳곳이 지난 밤 덮친 얼음폭풍 탓에 정전 사태를 겪고 있다. 거의 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기없이 -이 말은 난방, 뜨거운 물, 찬 물 모두 쓸 수 없다는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나야 할 지경인 것이다. 더구나 짝은 다행히 오프를 받았지만 나는 23일부터 줄줄줄 워킹 스케쥴이 잡혀 있어 몹시 당황했다. 결국 아파트 건물과 동네의 전기는 24일 오후에 복구됐다. 그러나 여전히 (29일 현재) 만오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나라와 도시의 비상사태 대응력과 사회안전망에 대해 다시 한 번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물리적 재난이 덮칠 때마다 삶의 평화, 살아있다는 증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이 차별적 언사를 자행할 때 -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http://www.spectraspeaks.com/2012/12/queer-people-of-color-holiday-christmassurvival-tip-give-the-gift-of-media-storytelling-psychology-empathy/

어떤 분께서 페이스북에 링크해주신 아티클을 읽었다 (고맙습니다). 일부 백인들은 명절에 자기들끼리 모이면 비백인들을 까는 농담(이라 쓰고 인종차별적 언사라 읽는다) 혹은 이른바 소수자들을 놀리는 농담을 곧잘 하는 모양이다. 백인들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 부모님 친척들도 곧잘 그러셨다. 주로 일부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과 '운동권' '빨갱이'들을 일컬어 몹쓸 말씀들을 하셨고 나중에는 이주노동자들까지 그 몹쓸 도마에 오르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너무 불편하고 밥을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급히 화장실에 달려가 토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내 감정을 표현할 궁리는 하지 못했다. 이른바 '가족' 들에게 나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예'에 어긋하는 것이라 배운 탓도 있고 어차피 이들과 사회에서 엮일 일은 없으니 이 순간을 모면하자-피하자는 것이 지론이기도 했으리라.

아마 나만이 아닌 많은 다수의 한국인들이, 비한국인들이 나처럼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면'의 축적은 갈등해결 (conflict resolution) 의 훈련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논쟁을 해야 했어, 당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아, 뭐 이런 후회나 반성이 아니다. 저는 지금 불편해요, 그 이야기를 듣자니 너무 힘들어요!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의 후회와 반성이다. 결국 한다는 게, 했다는 게 급히 자리를 피해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것 정도였으니 -- 아, 가여운 인생이여!

 

 

어글리 차이니스 고잉 홈!

 

이 도시에 왔던 초창기에 들었던 말이다. 짝과 다운타운 거리를 걷는데 일군의 백인들이 모여 있다가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ugly chinese, fucking smelly japanese going home" 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가가서 "i'm sorry, i'm not a chinese or japanese [이 때는 either, neither, nor 를 전혀 쓰지 못했다]  i'm a korean. you know korea?"라고 응수를 해줬지만 억울한 심정은 가시지 않았다. 몇 달이고 그 때 들었던 그 말이 귓전에 웅웅거려서 조금만 누가 뭐라고 하면 움츠러드는 일이 많았다. 이 반응은 여전히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툭툭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문제는 대단히 교묘하고 맥락과 상황을 이용한 인종차별이다. 차라리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응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은밀하고 내밀하게 전달되는 차별은 참으로 고역이다.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 (교양) 수준이 낮거나 경제적인 계급이 낮은 계층이다. 치밀대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지나가는 약자에게 퍼붓는 저런 폭력은 차라리 양반이다. 겉으로는 온갖 화려한 언사로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 교묘한 차별을 일삼는 그런 무리들은 대부분 학식이 높고, 가방끈이 길거나, 스스로 교양있다고 믿는 무리들이다.

결론은,

한국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2013/12/30 01:31 2013/12/30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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