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연속

분류없음 2013/12/18 16:14

#1.

 

온 날은 스스로 정하지 못했지만 갈 날은 스스로 정하리라 다짐하고 사는 탓에 반은 살았나, 절반 넘게 산 게 맞나 그런 질문을 하루하루 던진다. 그런 질문을 하다보니 삶의 굴곡과 그 굴곡에서 만난 사람들, 느작없던 행동들 따위의 기억들이 힘없는 나뭇가지처럼 툭툭 부러지는 그런 때가 있다.

툭툭 털고 일어서기에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치욕들. 누가 나에게 준 치욕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내게 들이민 치욕들. 

 

삶은 정말이지 치욕의 연속이다.

 

#2.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한 모양이다. 즈음해 문재인 의원은 출판기념행사를 가진 모양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나라의 꼴을, 백성의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에는 저치들의 탓이 크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들 아닌가. 나는 이 자들이 노동자 배달호가 자기 목숨을 끊어 열사가 되었을 때,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져 동료들과 가족들을 살리려 몸부림쳤을 때 뭐라고 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 아프간에 파병했을 때, 에푸티에이 밀어부치고, 건강-복지 관련 법안을 개악했을 때 이 자들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명박 5년이 지났고 박근혜 1년이 지나려 한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이 자들이 "저희들은 지난 정부에서 무엇을 잘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 탓이 큽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말했나? 나만 못 들은 건가? 혹시 들은 사람 있으면 제게 좀 알려주세요.

오히려 이들은 이명박근혜를 욕하고 북조선 정권에 빗대어 도매금으로 넘긴다. 분노가 분노를 재생산하고 안티테제만 난무하는 그들의 거리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오히려 이들은 건강한 의식을 드높이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다. 미움과 분노, 반성없는 실천, 잘되면 내탓-안되면 네탓.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정치의 염증과 혐오는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실천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잘못이 큽니다. 민주주의를 이 지경으로 훼손한 것에 잘못이 큽니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을 뿐이다.

 

#3.

 

좌파는 찢어졌다가 합쳤다가 일군의 무리들이 나와서 뭔가를 또 했다가 수면 아래에서 무척 바쁘다. 바쁠 것이다. 지난 여름 기층 민중들의 봉기와 함성이 전세계 곳곳을 달궜을 때에도 전세계 좌파들은 수면 아래에서 무척 바빴다. 월가를 뒤덮은 뒤에 연달아 일어나는 이 봉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분석하는 데에 바빴다. 브라질 민중들이 단돈 200원 때문에 일어났을 때에도 원인이 무엇인지, 민중의 투쟁을 불순한 정치집단이 하이재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 민중의 힘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꾸락을 바라보기에 급급했다.

어쨌든, 어쨌건 -- 바쁜 것과 무관하게 -- 뭘 해도 좋다. 나는 늘 당신들은 응원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이제 그동안 지난 몇십 년 동안 뭘 못했는지, 뭘 잘 못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자. 그래야 뭔가 채울 게 나오지 않겠는가.

 

속이 너무 상한다. 슬프다. 치욕이다.

 

#4.

 

어떤 진보적인 분께서 어떤 개인의 개인정보를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3자에게 노출했다. --채동욱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의 아니게 (?) 새어나간 그 사적 정보는 어떤 개인의 성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른바 아웃팅이다. 뒷담화라고 하나, 한국형 오지랍이라고 하나. 나는 그 진보적인 분의 정치적인 색채,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정치사상적 진보성에는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사실은 그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이가 정치사상적으로 급진적이기 때문에 소수자 이슈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는 단연코 의구심을 갖는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이 노동해방을 지지하지 않듯이 노동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이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같아야 하는 두 문제는 같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 #3의 한계와 그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 공명(resonance)은, 바라마지 않는 이 공명은 이제 논리나 이론 이외의 문제로 되어버렸다. 가방끈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더 이상. --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생각을 덜어내야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이가 어떤 글로벌한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조직의 친구 (allies) 리스트에 떡-하니 이름을 올렸다. 아웃팅당한 그 개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슬프고 고단하고 아프다. 치욕이다. 치욕의 연속이다.

 

 

2013/12/18 16:14 2013/12/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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