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의 예의

분류없음 2014/01/08 01:20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연휴가 끝났다. 1월 6일 2014년을 기점으로 홀리데이 시즌은 끝났다. 보름여 간 홀리데이 시즌을 막는 (?) 스케쥴에 동원된 뒤로 다시 노말모드 (?) 로 전환. 후유증은 길다.

 

이란, 인디아, 방글라데쉬, 소말리아, 르완다, 트리니다드 토바고, 에티오피아, 이탈리아, 남한.

보름여 스케쥴동안 같이 일했거나 근무교대를 했던 파트너들의 출신국가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나만 빼고 모두들 이 나라의 '시민'이다. 각각 태어난 나라에서는 이른바 상류층 출신들인지라 자부심도, 교육수준도 높고 -상대적으로- 타국의 사람들을 깔보는 수준도 높은 편이다. 이들은 모두 나만 빼고 자가용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 도요타, 현대, 폭스바겐, 쉐보레 등의 브랜드를 이용한다. 서넛을 빼면 모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를 현란하게 구사하고 불어나 기타 제3언어도 구사한다. 인도-아리안 계통 혹은 다른 유러피안 계통의 코캐시언도 있고 아프리카 동, 서, 남 출신의 흑인도 있다. 남한 출신은 아시안이다.

 

나고 자란 나라가 어디인지, 나고 자란 문화가 어떤지에 따라 사람마다 특성과 기질이 다르다. 나라별로 구별하기에는 무척 힘들다. 가령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온 흑인 파트너는 상당히 복잡한 백그라운드를 지녔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게 '예사'다. 그이의 아빠는 서아프리카 백그라운드, 엄마는 20세기 초에 유행처럼 번졌던 중국인-인디안들의 집단 이주 붐의 시기에 캐리비안 지역으로 이주한 중국인. 그이는 홀홀단신 이 나라로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일을 구하고 영주권을 얻고 '시민'이 되었다. 그이는 엄마의 백그라운드 탓인지 동아시안 음식을 즐기고 상대적으로 동아시안에 대해 너그럽지만 "중국인-아시안-들이 돈만 밝히고 남을 짓밟기를 우습지도 않게 여긴다"는 일종의 낙인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처음엔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친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같은 인디아에서 왔다고 한통속으로 묶을 수 있는 건 국적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두 이는 모두 인디아에서 왔지만 인종도, 모국어도, 종교도 다르다. 무엇보다 '매너'가 다르다. 보름여 일하는 동안 이 둘 가운데 한 명과 일하는 동안 아주 죽는 줄 알았다. 이들 가운데 한 명과 오버나이트를 하는데 이 아저씨는 인디아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정신건강 분야 (mental health) 전문가다. 아들은 컴퓨터공학 박사, 딸은 의사 (MD). 이것이 이 아저씨에겐 자랑이며 삶의 낙이다. 그러나 이 아저씨, 이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매너에서는 "빵점"이다.

가령 사람의 면전에서 트름을 하고 방귀를 뀌고 허공에 대고 재채기나 기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실례한다고 말하면 좋았잖아", "제발 좀 기침할 땐 네 입 좀 가리고 해. 난 네가 내뿜는 균에 관심이 일절 없거든" (직역을 하니 별로네..흠흠... you'd say 'excuse me' / please, cover your mouth when you cough. actually, i'm not interested in your germ at all.) 다른 워커에게 들으니 화장실에 들어갈 때 노크를 안하고 문을 벌컥벌컥 연다고 한다. 아무래도 언어의 차이, 어려움 탓도 있겠지만 주로 명령어로 얘기한다. 영어에도 존대말이 있는데 would you 혹은 please를 절대 쓰지 않고 동사원형으로 시작하는 말만 어쩌다가 가끔 하고 이유를 설명해달라 would you explain the reason for me? 고 하면 대답이 '없다'. 나는 이 아저씨의 심상이 못됐고 막돼먹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아저씨의 캐릭터와 평판은 이미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심지어 당사자만 모르는 이 사람의 별명은 '좀비'다. 한마디로 사람같지 않다는 거다. 어떤 워커는 '세상에 어떤 정신나간 여자가 저런 남자랑 사는지 궁금하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봐, 세상엔 정신나간 여자들이 정신나간 남자들만큼이나 많다고). 나는 많은 한국 아저씨들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공장소에서 트름을 하고 방귀를 뀌고 큰소리로 이야기하고 기침하며 침을 튀긴다. 화장실에 들어갈 땐 자기만 급하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다같이 쓰는 -물론 세탁을 해서 쓰겠지만- 물수건으로 겨드랑이나 얼굴, 목을 마구 닦는다. 물론 미안하다거나 실례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왜? 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니까. 나는 그런 문화가 주류인 나라에서-사회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래서 그 이른바 '좀비' 워커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양반이 계속 이 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살 거라면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여긴다.

 

기침할 때에는, 재채기를 할 때에는 위쪽 팔뚝 부분을 입에 대고 가리고 했으면 좋겠고 - 이 문화가 한국사회에도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균 - 그 균이 좋든 나쁘든 - 은 스스로 회수하라는 말씀이다. 나처럼 의료보험도 받을 수 없는 어여쁜 이주노동자가 그 균에 휘말려 감기에라도 걸린다면 좀 많이 불쌍하지 않나?

 

기침을 하고 방귀를 뀌고 트름이 나오면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는 말은 했으면 좋겠다. 공공장소에서 말이다.

 

타인에게 무엇무엇을 하라고 얘기할 때에는 명령조보다는 부탁과 의향을 묻는 방향으로 먼저 말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너의 하인이 아니질 않는가. 아무도 어느 누구도 너를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고 자란 곳에서 어렴풋이 고민하거나 들었다가 이 나라에 와서 몸으로 배운 좋은 교훈 가운데 하나.

2014/01/08 01:20 2014/01/08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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