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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척하는 오징어!'

어제는 제가 결혼한 지 만 12년이 되는 결혼기념일이었답니다.
다들 그럴 테지만, 신혼 때는 꽃도 사오고 화분도 선물하고 카드도 쓰고 남들 한다는건 대~충 한 편이었지요. 그러다가 애들 머리가 굵어지고는 그 녀석들 성화에 케이크 사서 먹는걸로 대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답니다.


▲ 우리 두 딸내미의 수다는 달력에서도 계속된다. 11월 21일에 쓰여진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축하 축하' 메시지가 요란하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안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다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하면서 결혼을 기념하는 방법도 바꿔보기로 했지요. 당연하게도 함께 등산하는걸로 하루를 보내기로 한 거지요.
올해는 그리 멀리 떠나지는 못하고, 가까운 강화도 마니산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강화도 마니산은 우리 집에서 불과 한 시간도 안 걸리지만 바다도 볼 수 있고 오밀조밀한 바위도 탈 수 있어서 무척 아끼는 산 중에 하나랍니다.
일반 사람들은 '계단로'로 올라가서 그리로 다시 내려오는 코스를 많이들 택하더군요. 그래선지 지겹게 이어지는 계단에 대한 끔찍한 기억과 함께 지겹고 볼꺼리 없는 산으로 많이들 얘기하더군요.
그러나 마니산은 계단로로 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빠지는 '단군로'를 타는게 좋지요. 단군로를 타면 10분도 안돼서 바다 전망이 트이기 시작해, 참성단이 있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점점 넓게 열리고 갖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이어지는게 참으로 맛깔스러운 산행을 할 수 있답니다. 그리 힘들지도 않지요.


▲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서 함허동천 쪽으로 바라본 마루금과 그 너머에 펼쳐진 강화도 갯벌. 폰카로 찍어서 이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강화 갯벌 너머에는 영종도와 인천국제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날 산행 역시 마니산 입구에서 단군로로 올라서 참성단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길로 올라갔답니다. 마니산에 올 때면 항상 차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내려갈 때는 늘상 계단로를 따라 다시 마니산 입구로 가는 길을 택하곤 했지요.
그러나 이날은 정상에 오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그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한 함허동천 방향으로 가보고 싶더군요.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마니산 입구로 이동할 작정으로 반대편인 함허동천 쪽으로 내려갔답니다.





함허동천으로 내려가는 길은 마루금을 따라 가는 곳곳마다 바위들이 마치 성곽을 쌓아놓은 것처럼 이어져 있고, 이따금씩 소나무가 어울어져 있어 운치를 더하지요. 봉우리 봉우리 넘을 때마다 감탄하느라 따분하고 힘겨울 겨를이 없더군요.



함허동천에 다다르니 버스가 막 떠나고, 다음 버스는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디다. 에고, 어쩌나 망설이다가 일단 슈퍼에 들어가 컵라면 하나씩 먹으며 몸을 녹였지요. 슈퍼 아저씨가 일러주는 말씀이, 2시간 기다릴 바에야 쉬엄쉬엄 걸어가면 마니산 입구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릴 꺼라고 하시더군요. 둘이 얘기하면서 걸으면 금방 갈 꺼라고...
그 말에 힘 얻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덕포리 쪽으로 씩씩하게 걸어갔답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뉘엇뉘엇 기울고 바람이 점점 차가와오면서, 길게 이어진 농로길이 멀게 느껴질 즈음, 한 인심 좋은 봉고차가 옆에 서서 행선지를 묻더군요. 역시 등산하러 오신 봉고차 주인 부부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로 가볍게 마니산 입구로 올 수 있었답니다.


▲ 함허동천 입구에 한 줄로 주차해 놓은 리어커들. 아마도 낙엽을 쓸어담을 덤프 트럭이 아닐런지...


집에 오는 길에 저녁 만찬꺼리를 사러 오정동 시장에 들렀지요. 메뉴는 해물탕~
새우랑 꽃게랑 푸짐하게 덤으로 끼워넣은 해물꺼리를 주워담고 있다가, 한 팻말을 보고 안해와 저는 그 자리에서 뒤집어졌답니다.
   '죽은 척하는 오징어!'
냉동 상태의 오징어가 죽지 않을 리 없을 터, 그래도 싱싱하니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그 집 주인은 '죽은척 하는 오징어'라는 위트로 표현한 것이려니... 이런 재치 있는 해물가게 주인이 있어 우리는 그렇게 또 한번 활짝 웃을 수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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