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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2004.3]

고백

 

 

2주를 정신없이 준비하고 맞이한 행사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간 동지를 뒤로 하고
골방에 쳐 박혀 깡소주를 마신다


무얼하지
빚쟁이 독촉하듯이
친구는 니 담배 값이라도 벌어야 할 것 아니냐고
거지 선언을 하고 싶을 정도로 닦달한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왜 사는지
지금 누군가를 몰래 애간장 녹이며 좋아하는 이유도


한심하다
나를 미치게 하는 건
솔직히
탄핵도, 반전도, 평화도, 민주주의도 아닌 것 같다
그래, 운동에 모든 걸 걸고 들어 왔지만
일용할 양식이 없어 빌붙어 살지만
미치기 직전의 봄날 앞에,
따스하게 피어있는 개나리가
활짝 핀 목련에 마음을 빼앗겨 땡땡이 쳤다던 준희형의
그런 봄날에
이 무슨 짓인가


아무나 좋다
나를 좋아한다면
뜨겁게 연애하고 싶다
나 같은 놈은 운동 팔아 연애 할 놈이라고
욕해도 좋다


‘사랑은 사치다. 사랑은 없다’
억병에 취해
호언장담 하지만
거짓말인 게 술 깬 다음 날이면
들통 나고 만다


봄 소풍가고 싶다
남녀 구분 없음,
학력 구분 없음,
이력서, 자기소개서, 주민등록본 1통 절대 필요 없음
하지만 뜨겁게 이 봄날을 사랑할 사람이라면 됨


에라, X같은 인생
이것도 안 되면
민중과 격렬하게 연애하리라
이 망할 놈의 봄날을 박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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