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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가자

술발은 물론이거니와 약발도 잘 받아 약기운이 남아있는 동안은 살만 하다. 코감기가 번져 목감기와 몸살로 이어져 왔던 저 번주의 나의 몸의 생각하면 이렇게 맥주 한잔 걸치며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 동전 양면인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한미FTA저지를 위해 서울로 향했다. 그나마 안정되었던 학원생활을 내팽게치고서 뒷수습 안 되는 특유의 무책임한 잠적으로 이어지는 생활인 줄 알면서도 가고 말았다. 어쩔수 없다고 말해야 하나, 이런 투쟁 국면을 통해 도피를 하는 건지 내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된다.

 

비를 맞으며 뜀박질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한미FTA를 저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막지 못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근데 이건 분명했다. 땅과자유에서 배웠고, 며칠 전에 땅과자유 학교에서 확신했던 애먼 헤나시의 말 "아니오,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걷고, 뛰는 대열 속에서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뛰었다. 청와대 인간 띠잇기를 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지만, 결국 미대사관앞에서 우왕좌왕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부실한 안주와 소주 몇 잔으로 한숨 돌리며 좌석에 앉았지만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불편케 만들었다.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고, 내 속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말 무뇌아처럼 살 수 밖에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난 진정 내 속에서 나오는 나의 분노, 용기, 기풍을 제대로 느끼며 표출하는 건지 그저 그 분위기에 나를 잊고 살아가는지 묻고 싶다.

 

조만간에 평택 대추리에서는 빈집 철거에 나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고 한다. 지난 번의 싸움을 기억한다면 긴급 지침 또는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읽게 될 것이다. 지금 겁이 난다. 결국 유치장, 구치소, 감옥일 텐데. 나는 나를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 체, 뒷걸음 치는 것 같다. 그저 공권력이 무섭다는 이유만으로.

 

박래군은 구속이 되었다. "대추리 병"이라고 명명되어지기 시작한게 박래군의 말에 의해서란다.

나도 한때 그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약기운이 다 떨어진 건지 증상이 들어나지 않는다. 구속과 폭력, 불심검문에 시달고 있는데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느껴지고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적들이 아니라 우리의 안일함이라고 했던가.

나의 병은 분명 잠복기일 것이다. 이 잠복기가 길어 진다면 결국 난 내가 그토록 증오하며 연을 끊었던 친구, 이 절망의 시대를 너무도 잘 사는 이들처럼 되어 간다는 사실. 그 초조함, 남들은 그걸 결벽증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의 증상이 어떤지 진단을 못 내리지만, 병원은 가봐야겠다는 건 분명하다. 그 병의 진원지는 평택이다. 병원간다고 병이 완치되겠냐만은, 병원 안 간지도 오래된 것 같다. 약도 다 떨어진 것 같고.

 

한미FTA체결되면 병원도 제대로 못 간다고 하니, 체결되기 전에 병을 일부러 만들어서 치료를 다 받든지, 물론 돈이 없어 그렇게 하지도 못하지만 어쨌던 지금 제대로 앓고 있지 않는 "대추리 병"에 전염이 제대로 되기 위해 한 번 가야 겠다. 격렬한 전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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