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탕수육

탕수육

 

에어컨도 없는 칠곡 끄트머리 사무실을 들락날락 한지도 두 달이 되었다. 너무 더워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도 아니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시끄럽지 않고 공기가 좋다는 것 빼고는 사무실 조건으로 별로다. 끼니를 때워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1인분은 배달이 잘 안되니, 자장면 아니면 짬봉이다. 외근을 보고 온 선배랑 스페샬 메뉴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다. 항상 그렇지만 느긋하게 먹기보다는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우기 바쁘다. 빨리 먹지 말아야지 하며 먹는데도 그게 잘 안 된다. 어찌 오늘은 조금 느릿하게 먹었다. 그래도 중국집 탕수육은 나름대로의 맛이 있는데 이 집 음식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스무 살 시작을 탕수육으로 했던 그 맛과 똑같았다. 대학 시험을 보기 좋게 떨어지고 난 그 해 겨울은 정말 추웠다. 겨울은 매양 춥기는 마찬가지지만. 갈비집 망하고 몇 년을 쉬다가 엄마는 뭔가를 하기 위해 부산 이모 집에 있었다. 이종사촌 형과 경남여고 근처 시장에 점포를 얻어 천 원짜리 탕수육을 팔았다. 엄마는 그걸 배워 고향에서 장사를 하려고 했다. 엄마는 형한테서 일 배워 돈 벌어서 대학가라고 했다. 시집 몇 권을 챙겨 들고 부산을 찾았다. 옷에는 항상 느끼한 기름 냄새가 묻어 있었다. 손바닥만 한 점포에 이종사촌형, 엄마, 나. 3명이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밥을 먹었고 난 눈치껏 책보는 것이 유일한 낙처럼 지나간 시간이 있었다.

 

천 원짜리 탕수육 맛이 학교 앞 주전부리용이지만, 반짝 장사로 그 해 돈 맛을 볼 수 있는 장사였던 것 같다. 천 원짜리도 배달하기 위해 50cc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를 다녔다. 엄마랑 같이 배달 갔다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어 엄마가 들어갔던 경남여고. 스티커 붙이려고 다니다 헬멧 안 썼다가 의경한테 걸려 벌금 물리 뻔 하다가 눈물 쪽 뺄 만큼 빌었던 적. 참 추웠다. 배짱이라도 있었으면 덜 추웠을 텐데.

 

짧은 봄이지만 봄이 왔다. 동가리 신작로에 천 원짜리 탕수육 점포를 마련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남의 식당 일을 하던 엄마가 드디어 장사를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식당 구정물 묻힌 사람이 식당 여는 게 숨통 트이는 삶일 것이다. 덩달아 설레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짧았다. 탕수육 팔던 분식집이 동네 어른들 술판으로 변해가면서 문을 닫았지만 요기로 탕수육을 솔찮이 먹었다. 문을 닫고 나서 난 한동안 맥주 안주로도 탕수육을 먹지 않았다. 하찮은 것들이 문득 너무도 또렷이 되살아나는 구질구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