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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님의 [채식(주의)]라는 글에 (이 글을 "EM님의 첫번째 글"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내가 [나에게 채식은...]이라는 글을 트랙백했고, (이 글은 "저의 첫번째 글")
다시 EM님이 [다시 채식(주의)]라는 글을 트랙백하셔서 ("EM님의 두번째 글")
내가 [계속 채식 논쟁]이라는 글을 트랙백했고, (이 글은 "저의 두번째 글")
다시 EM님이 [채식: 자투리 생각들]라는 글을 트랙백하셔서 ("EM님의 세번째 글")
또 그에 대한 답변을 쓰는 글입니다.
이제 슬슬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논쟁의 구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EM님의 첫번째 글에서 '취향'이라고 논하면서 뒤에 내린 결론이
"채식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달라"라고 이야기해야 한다였기 때문에,
저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취향'은 (채소에 대한)'선호도'를 의미한다고 이해했다고
저의 두번째 글에서 말씀드렸는데, EM님은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없이
그런 의도로 '취향'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칩시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첫번째 글에서 '취향'이라고 하면서,
'취향'을 선호도의 문제로 이해한 것에서 '취향'이라는 단어를
한발짝도 더 나아가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취향'이라는 말을 선호도의 문제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EM님께서 처음에 그렇게 해석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의미를 기준으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EM님이 굳이 '취향'이 '정치적 취향'을 의미한다고 말한 것에서
스스로 의미를 변화시켰기 때문에, 어이없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두번째 글에서 그렇게 이해한 제 판단이 잘못된 것이냐고 물었으나,
돌아온 이야기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합의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취향'이라는 단어에 대한 저의 견해를 아직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견해를 주장하지도 않았는데, 합의를 할 것도 없는 것이고,
EM님이 '취향'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명확히 밝히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취향'이라는 말을 제가 처음에 이해했던 선호도의 문제로 생각하신다면,
'정치적 취향'이라는 말은 잘못 사용하신 것이고,
'취향'이라는 말을 '정치적 취향'이라는 의미로 생각하신다면,
EM님의 첫번째 글에서 쓰셨던,
"육식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채식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달라"라고 하는 것은
저의 "채식은 육식을 거부하는 실천"이라는
(EM님의 표현대로 따졌을 때의) 정치적 취향을 왜곡하는 것일 뿐입니다.
(EM님의 표현대로 따져서) 저의 정치적 취향은
육식과의 공존이 아니라,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저의 정치적 취향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저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간단해집니다.
EM님의 세번째 글에서
왜 "육식"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명확히 대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는 제 글을 읽고서 생각하는 건지 의심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도살을 반대하기 때문에, 육식을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이 표현이 어디에 나와 있는지 굳이 설명해야할까요?)
저는 명확하게 대답을 했는데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M님이 내세운 기준, 즉 그 논리의 내적 일관성/정합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육식반대"라는 것은 결국 존귀한 다른 생명을 내 이익을 위해 취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대한 일종의 "단계적" 실천이라는 게 저의 설명인 것은 맞습니다.
저는 저의 두번째 글에서 이것이 EM님의 운동론을 기준으로 볼 때,
논리의 내적 일관성/정합성을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설명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그리고 어떠한 논리적인 반박도 없이
저의 논리가 내적 일관성/정합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다고 우기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도 지금처럼 그저 EM님이 우기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EM님이 이렇게 우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EM님의 세번째 글에 나와 있습니다.
"도살반대"니 "육식반대"니 하는 원칙들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하기엔 좀 약하다.
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EM님의 이 생각 자체를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저와 EM님의 생각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이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원칙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이 부분에서 놀라운 것은 "고기"에 대한 현실인식부터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EM님 세번째 글에서 주위를 보면 가난때문에 "고기"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고기"가 귀한 이유는, 가난 때문이 아닙니다. 부자들에게도 "고기"는 귀합니다.
그건, "고기"가 곧 일정정도의 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왜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고 있고,
왜 남성들이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고 있고,
왜 전쟁에 나가는 군인에게는 고기를 주면서,
그때의 (여성을 중심으로 한) 민간인들에게는 고기를 주지 않는지... 등등등
수많은 논의들은 모두 뒤로 넘겨둔 채 (EM님이 동의하시든 아니든),
가난 때문에 "고기"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곧, 고기 자체가 가난 속에서의 생존의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귀하고 비싼 고기지만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채식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고기 자체가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채식의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부르주아적인 사치가 아니며, 많은 비용을 소비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기"가 가진 파괴적인 권력을 해체하는 길에 서는 것입니다.
채식을 함으로써 고기가 결코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채식은 고기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어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누구에게나 어필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채식을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의 문제는 '보편성'입니다.
EM님은 "남녀평등"이라는 가치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EM님의 두번째 글에서 "새마을 운동"도 운동이라고 하신 걸로 봐서는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지만,
"새마을"이라는 가치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채식은 운동이 아니라고 하신 걸로 봐서는
"채식"이라는 가치는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세 가지 정도의 비판을 제기하겠습니다.
첫째, '보편성'과 '운동'의 관계는 결코 '보편성'이 보장되어야 '운동'이 성립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떠한 주장이 '운동'을 통하여,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주장이 보편적이냐 아니냐를 선험적으로 논하는 것은 '운동'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 예로, "남녀평등"이라는 가치가 처음부터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보편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만, 그건 뒤로 하고...) 끊임없는 여성주의 운동을 통해서 "남녀평등"이라는 가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채식"의 경우도 현재 보편성을 가지지 않고 있다면,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것이 보편성을 가지는 것은 그 시대나 사회적인 상황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가 보편성을 가진다고 할 것이고, 한국사회에서의 남성들에게는 '군대를 가는 것'이 보편성을 가진다고 할 것입니다. '보편성'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주류적인 체제에 속하여 연동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일 뿐이고, 그렇지 않는 '운동', 또는 '이론'들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편성'을 기준으로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은, 그것이 '운동'이든, 아니면 EM님의 의견에 따른 '정치적 취향'이든, 주류적인 체제에 대하여 무비판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접근하면, '새마을 운동'은 그 시대에 충분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반자본주의 운동'은 현재의 시대가 자본주의시대라는 이유만으로 보편성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EM님의 논리에 따르면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말 자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건 보편성이 없기 때문에, 운동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일 뿐입니다.
셋째, 결국 보편성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판단하게 되는 EM님의 의견조차도 자의적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EM님은 보편성을 논하는 근거들을 전혀 제시하지 않았고, 또 설령 제시했다고 치더라도, 보편성은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구조를 가진 개념입니다. 모든 경우에 통할 수 있는 이론인지 아닌지는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성의 논쟁으로 '운동'을 논한다면, 저는 더 이상 EM님과 논의할 것이 없게 됩니다. 저는 저의 운동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인데, EM님은 감히 저의 운동을 EM님의 뜻대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편성의 기준으로 (EM님의 운동이 아니라) 저의 운동을 논할 때는 저는 충분히 주관적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여기서 이 운동 논쟁의 구조를 조금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저의 운동으로 '채식'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EM님은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EM님의 운동이 아닌 것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운동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운동이 될 수 없는 근거로 주장의 정당성/보편성의 문제와
논리의 내적 일관성/정합성의 문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각각의 근거에 대하여, 저는 이미 충분한 반박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채식"을 하는 근거를 제시하였고,
어떻게 담론을 만들것인지를 제시하였고,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제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도 없습니다만...)
주장의 정당성의 문제는 EM님과 생각이 다른 부분을 지적하였고,
(이 부분에서 EM님이 근거도 없이 자신의 주장이 맞다고 우기시면 곤란하겠습니다.)
보편성의 문제는 보편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논리의 내적 일관성/정합성의 문제는 저는 저의 두번째 글에서 분명히 설명했는데,
EM님께서는 근거도 없이 무조건 성립하지 않는다고 우겼으므로,
성립하지 않는 근거를 EM님께서 제시하시기 전까지는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p.s.1
"그런 식의 운동의 미래상은 이미 몇몇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다는 거다."
라는 말은 곧 "니네가 채식 해봤자 별 수 있냐?"라는 의미입니다.
"니네가 고민해봤자, 걔들이랑 똑같은 거 아니냐?"라는 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또 다른 누군가는 EM님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어떤 운동들에 대해서도
"그거 해봤자 별 수 있냐?", "그거 예전에 누가 했는데, 이미 망한 거잖아."
라는 식으로 말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p.s.2
그리고, 지각생님의 글을 읽으신 것인지 모르겠으나,
저의 글하고 많이 다른데, 저의 글에 대한 답변으로 대신하기는 무리라고 봅니다.
따로 답변을 하시든, 안하시든 그건 EM님의 자유입니다만,
EM님의 세번째 글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지각생님의 중대한 문제제기를
아무런 생각없이 무시하고 넘어가지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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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간단해진다고 써놓고, 너무 길게 썼네 -_- 많은 사람들을 낚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부가 정보
고래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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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너무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무섭다;;;부가 정보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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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감정이 섞인 논쟁이라 섣불리 껴들기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하에서 육류 대량생산체제에 저항하는 측면, (피터 싱어가 말하듯)고통을 느끼는 동물에 윤리적 원칙을 적용하는 측면에서 채식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님께서 '존귀한 다른 생명을 내 이익을 위해 취하지 않겠다는 원칙'의 측면에서 채식주의를 하신다는 건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유는 생명이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라서 그렇습니다. 정말 우스운 예지만, 님께서 주무시다가 무심결에 손바닥으로 모기를 죽이는 것도 생명을 없애는 것입니다. 진지하게는, 생명근본주의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것일 뿐더러(박테리아, 세균도 생명 아니겠습니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견해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 중, 가장 논박하기 쉬운 주장이 존귀한 생명을 없앴다는 주장이지요. 물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낙태논쟁에서는 존엄성의 기준을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으로 한정하기 때문이죠.그래서 저는 님의 "존귀한 다른 생명을 내 이익을 위해 취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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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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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점입가경입니다? 자고 일나니 좀더 복잡해져 있군요~'객'님의 "생명근본주의" 관련 지적에 동의하는데, 스캔님 생각은 어떠신지 더 들었으면 좋겠어요...
(중구난방에도 채식을 한번 올려봤으면 좋겠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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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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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과 같은 내용을 적게 되면 지금까지 했던 트랙백 논쟁을 '무'로 돌리게 되는 거 아닌가요? 우려했던 논쟁의 '전형'을 보게 되어 아쉽군요. 하지만 기회는 아직 남았습니다. 다음 번 글을 기대해 보겠습니다.부가 정보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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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 잘 봤습니다.보니까 다른 분들도 관심이 많으시고 해서, 굳이 제가 시시콜콜 답을 달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괜히 그랬다가 또 억지나 부릴 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님께서 그런 지적을 해 주셨으니,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억지를 부렸는지, 또 그 밖에 토론에 임하면서 사려깊지 못하게 행동한 점은 없는지 등등에 대해 반성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지각생님 글에 대해 하신 말씀은 좀 너무하시는군요. "아무런 생각없이 무시하고 넘어가지 마십시오"라뇨... 설마 그럴 리도 없겠지만, 제가 그런 지적을 다른 사람한테서 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어쨌든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겠죠.)
끝으로 저도 스캔 님께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논쟁(?)을 정리하는 소회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제가 드리고픈 말씀은, 스캔 님께서는 공부를 좀 더 하셔야 할 것 같다는 겁니다. 이 얘기가 기분 나쁘실 수도 있다는 것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진지하게, 예를 갖춰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일단 저는 스캔 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릅니다. 남성일 거라 짐작은 하지만, 그밖에 것에 대해선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순전히 이번 논쟁 과정에서 들었던 생각에 기반을 둔 겁니다.
제가 여기서 "공부"라고 하는 건 단순히 지식조각들을 머리에 집어넣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저는 스캔님더러 채식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공부하시란 얘길 하고싶진 않습니다. 반대로 제가 말하는 공부란 흔히 "논리력"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사실은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그보단 좀더 폭넓은 것ㅡ철학 분야에서 다루는ㅡ을 뜻합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가 잘나서 그러는 건 결코 아닙니다. (이런 거라고 보셔도 되겠네요. 자기 자신은 야구 못해도, 야구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은 대충 알아볼 수 있는 거.. 말이죠.) 어쨌든 저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님께서 제 주장의 논지전개의 논리 및 기본적인 몇몇 개념들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런 것들은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어렵죠.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몇 가지 사항은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앞서 님께서 "억지"라고 표현하신 것에는 이런 부분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물론 이미 밝힌대로 저는 님의 지적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게 제잘못만은 아닐 것 같군요.
예를 들어보죠. 요 위에 "객"이란 분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이미 제 첫번째 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던 것입니다(객님께서 제시하신 것과 같은 그런 구체적인 실례는 없지만 말이죠). 그러나 제가 보기엔 님께선 그 내용을 결국 파악하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객"님이 이 자리에서 위와 같은 지적을 하신 것 자체가 그 증거라고 볼 수도 있죠.
기분이 상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는 게 좀 길어졌네요. 이만 끝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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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 그런가요 -_-객 // 반갑습니다. 생명이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는 이야기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가 느낀 문제의식은 제가 "채식"을 할 때, 동물에 대한 도살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또 누군가는 "식물도 생명인데, 식물은 왜 먹느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저는 식물도 먹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명근본주의(이 말 자체는 또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서...)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자면, 생명에 '존귀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저의 감수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저는 "식물도 생명인데, 식물은 왜 먹느냐?"라고 하는 채식에 대한 반론이, 생명이 존귀하다는 식의 입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첫 글에서 썼듯이, 생명을 최대한 죽이지 않으면서, "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느냐"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채식을 고민하는 것이, 결코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리우스 // 중구난방에서 채식이라... 그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군요.ㅋㅋ
객2? // ps1.의 이야기를 쓴 제가 논쟁을 '무'로 돌린 게 아니라, ps1.의 이야기에서 제가 지적했던 "그런 식의 운동의 미래상은 이미 몇몇 선진국들에서 볼 수 있다는 거다."는 말이 트랙백 논쟁을 '무'로 돌릴 수 있었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다음번 글은 없을 것 같군요.ㅋ
EM // 공부를 더 하라는 지적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지각생님의 글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건 제가 조금 실수한 것 같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위에 "객"이란 분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EM님의 첫번째 글에서부터 제기되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EM님은 그 글에서 동시에 "왜 먹는 것만 가지고 그러느냐?"라는 질문도 던지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후자에 대한 설명에 집중했고, 전자에 대한 설명은 하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이 논쟁을 하게 된 이유도 후자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후자의 질문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일차적인 반론을 제가 제기하지 않았다면, 저의 생각이 근본주의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기까지 이렇게 번져올 리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그렇다고, 질문이 의미가 없었다거나, 그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어쨌든, EM님이 전자의 지적을 주요한 근거로 삼고 싶으셨다면, 제가 거기에 맞춰드리지는 못한 것 같군요.
어쨌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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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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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채식거부를 실천하는 육식주의자입니다.저는 제 자신과 관계된 일을 전복시키는 첫 단계로, 채식거부를 하겠습니다. 내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태적 지향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첫단계로, 식물을 먹지 않겠습니다.
또한 채식은 일정정도의 권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채식은 서구에서 이미 가진 자들의 문화 상징으로 변모하였으며,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웰빙이라는 형태로 도입되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권력에 대한 거부의 의미로, 채식거부를 실천하겠습니다.
또한 곡물의 생산과 유통의 경우, 카길 등 초국적 곡물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반자본주의의 일환으로서, 곡물을 소비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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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꾸로 육식거부에 대해서도 완전히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 육식주의가 타인에게 당당히 요구할만큼의 정당성과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따라서 저는,
1) 위와 같은 생태주의, 반권력주의, 반자본주의 등의 대의들과 정치적 지향들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고, 내 실천을 통해 그런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도,
2) 육식거부냐 채식거부냐,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또는 둘 다 선택하지 않느냐만큼은 타인에게 요구할 수 없는/타인으로부터 요구받을 수 없는 제 취향일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 나의 "육식주의" 그 자체로서는 운동이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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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저는 둘 다 먹습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의 대의에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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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채식을 거부하려면 이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일단 쌀밥은 안됩니다.
다른 어떤 곡물로 된 것들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육식만을 하는 데 주의할 점은
고기집에서 가서 먹든,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든, 국에 넣어 먹든
상추를 함께 먹어서도 안되고, 마늘을 함께 먹어서도 안되고,
고추를 함께 먹어서도 안됩니다.
국을 끓일 때, 무를 넣고 끓여도 안되고,
된장을 넣고 끓여도 안되고, 고추장을 넣고 끓여도 곤란합니다.
심지어 고춧가루도 안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식용유는 대체로 콩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은 멀리하시고,
오직 동물성 기름 100%로 만든 것만 사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0.1%의 식물성 기름도 섞여있다면, 다시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과자도 먹어서는 안되고, 빵, 떡, 케ㅤㅇㅣㅋ 등등을 먹어서도 안됩니다.
녹차나 홍차도 먹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커피도 안되겠죠.
불고기를 하기 위해, 혹시 간장이라도 쓰실 생각이라면,
간장은 메주로 만들고, 메주는 콩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먹고 있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혹시라도 주 원료에 채소나 과일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런 게 있다면 절대로 먹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술을 마실때, 다른 채식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조차도
안주에 혹시라도 야채나 과일이 들어가는 것이 있다면,
다 빼달라고 하는 거 잊지 마십시오.
물론 술 자체도 곡물이나 과일이 들어간 것은 드셔서는 안됩니다.
이런 경우에 채식을 거부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의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될 가능성도 매우 높으니, 이 점 유의하십시오.
채식을 거부하는 것은 채식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맞서게 될 수 밖에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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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에서 동떨어진 즉흥적이고 지엽적인 반론이 실망스럽다는 것과는 별개로,현실성을 무기로 타인의 정치적 신념을 재단하는 것이 ScanPlease님의 진짜 입장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다소 방어적인 마음이라 그러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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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일 때, 그것이 운동인지 아닌지를 논하느냐 마느냐만 고민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그것이 님의 생각이든 아니든간에, 운동이든 아니든 간에, 소모적인 논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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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태주의, 반자본주의, 반권력주의.. 그리고 육식거부는 현실성 없는 소모적인 논란일 뿐입니다. 채식거부는 실천하기 더욱 어렵다는 것 외에, ScanPlease님이 제시한 육식거부의 근거가 제가 상정한 채식거부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여전히 궁금하지만, 지금 상태론 더이상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이는군요. 여기까지입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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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저는 채식거부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 적 없습니다. 현실성이 없으므로, 근거가 될 수 있느냐 아니냐를 논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넘겨짚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현실성이 없으므로, 운동 논쟁의 사안이 아니라고 한 것이지, 운동이 맞든지 아니라던지의 입장은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다만, 채식은 현실성이 없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현실적으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현실성이 없다고 하면, 그 사람들은 현실속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가진 운동에 대한 입장을 "운동"과 "보편성"의 관계에 대한 언급만을 제외하고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디까지나 EM님의 입장에 대한 반론만을 제시하였을 뿐, 제가 가진 생각을 아직까지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추측하는 것은 이 글에서 "운동"과 "보편성"의 관계에 대하여 논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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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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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오해(오판?)였군요. 안타깝습니다. 다음 번에 혹시 논쟁이나 토론을 하게 되면 이번보다는 발전된 내용과 태도를 기대하겠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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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2? // 무조건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마라는 이야기는 좋지 않습니다. 정말 혹시라도 그런 게 발전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제 글에서는 앞으로도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부가 정보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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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낙태의 문제입니다.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낙태를 옹호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을꺼 같습니다. 그건 채식의 이유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님께서는 <생명을 최대한 죽이지 않으면서, "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채식을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입장이시라면 '임산부의 생명이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낙태를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세워질꺼 같습니다. 혹시 낙태에 대한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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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 저는 낙태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일단 생명의 경계를 어디까지로 규정해야하느냐도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 과연 판단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렇고, 저는 낙태를 논하면서, 태아의 생명성의 문제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를 하든 안하든, 임산부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 이후에 낙태나 출산을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그때그때마다 임산부 자신의 결정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부가 정보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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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수정란도 생명이고, 8개월된 태아도 생명입니다. 생명의 경계가 인간의 경계처럼 모호한건 아닙니다. 심지어 정자도 생명입니다.위의 대답은, 님께서는 채식주의를 옹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대답 같습니다. 채식주의도 채식하는 사람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당사자 자신의 결정이 존중되어야하니깐요.
제가 궁금한 것은 타인의 결정을 존중해야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님께서 개인적으로 낙태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였습니다. 관련해서 고민하신 적이 없다고 하셔서 다소 아쉽습니다.
저는 생명 존중의 관점으로써 택해진 채식주의가 낙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주의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맺게 될꺼라고 생각합니다.
스캔플리즈 님의 채식주의를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지만, <생명을 최대한 죽이지 않으면서, "저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느냐"의 관점>이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과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캔플리즈 님께서 타인의 낙태권이 보장받아야 하신다는 입장이시기 때문에, 님께서 낙태를 옹호하는지 반대하시는지는 개인적인 문제로 그치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채식주의와 낙태반대 간의 연관에 대해서 궁금하기는 합니다.
답변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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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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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다 짚다가는 논의가 산으로 갈테니 핵심만 분명히 하겠습니다. 육식거부와 채식거부가 다른 점이 뭡니까? 채식거부가 더 하기 어렵다는게 지금까지 ScanPlease님 답변의 전부입니다.부가 정보
Scan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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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 // 정자도 생명이라는 이야기는 처음보는데, 또 보고 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네요. 채식주의를 옹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대답을 의도한 것 맞습니다. (이 부분은 제 의도를 너무나 정확하게 해석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그 덧글에서 임산부 자신의 결정을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임산부를 임의의 타인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닙니다. 바로 임산부 자신의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임산부의 결정을 임산부 주위의 존재들(특히 태아의 아빠가 될 지도 모르는 남성, 낙태를 금지하는 법, 등등)의 의견보다 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포함하는 것입니다.저는 생명 존중의 관점으로 봤을 때에도, 낙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적대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이 죽이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육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던 것도, '도살'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도덕적일지도 모르는 판단에 기반한 면도 있지만, '도살'이 상징하는 폭력성에 초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태를 피임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면, 임신을 피하고 싶었으나, 결국 임신이 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기결정권으로 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지금 막 급격하게 들고 있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에서 폭력성을 고려했듯이, 생명이 발생하는 과정에서의 폭력성을 고려한다면,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과 연결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더 생각해봐야겠네요. '객'님하고 이 이야기를 하니까, 저는 점점 낙태를 옹호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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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제가 한 답변은 '하기 어렵다'의 정도가 아니라, '실현이 불가능하다'입니다. 육식거부와 채식거부의 다른 점은 실현가능성의 여부입니다. 실현 불가능한 채식거부에 대해서 그것이 운동인지 등등을 논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육식을 거부하는 것은 실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논쟁에서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채식거부자님께서 계속 논하고 싶다면 논하십시오. 그러나, 저에게 굳이 실현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서, 운동의 의미를 물어보신다면, 저는 절대로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이 가지는 운동의 의미를 채식거부자님께서 고민하시는 것 가지고는 머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저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의미를 고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비록 실현 불가능한 실천이지만,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시다면, 제 블로그에서 자꾸 저한테 묻지 마시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알아서 고민하셨으면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저의 진지한 고민을 원하신다면, 채식거부의 실현가능성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시면 되겠습니다. 증명이 되는 대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겠습니다.부가 정보
채식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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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의 실현가능성이요? 님께서 언급하신 것들을 모두 안먹고, 고기와 생선만 사다 먹으면 되는데요? 그게 어째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고기, 채소, 곡물 모두 안먹고 과일만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불가능할 이유가 뭐죠?게다가 육식거부에도 여러 단계가 존재하죠? 육고기만 안먹되 생선이나 달걀은 먹는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채식거부도 곡물만 안먹되 채소는 먹는다, 혹은 해초만 먹는다,는 식의 단계적 실천이 안될 이유는 없겠죠?
게다가,
저는 육식거부를 실천하고 계신 분께 채식거부의 의미를 고민하라는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 육식거부에 사용된 근거가 똑같이 채식거부에도 사용될 수 있음을 구체적 예시와 함께 반론으로서 제시한 겁니다. 그 예시와 반론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는 고민까지도 필요없고 자신의 논리적 판단으로 즉시 답이 가능한 문제죠.
좀 더 풀어서 말씀드릴까요?
어떤 실천의 정당성을 위해 제시된 근거들이, 정반대의 실천을 정당화하는데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면, 그 근거들은 애초의 실천을 정당화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 아니냐?
전 이걸 묻고 있는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ScanPlease님의 대답은, 정반대의 실천은 실현 불가능하다 실현가능한 걸 증명해봐라 아니면 대답하지 않겠다, 입다물고 저리 가라 였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요구하신 대로 실현가능한 채식거부의 형태를 던져놓았으니, ScanPlease님의 대답이 원래의 반론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또다시 채식거부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것이든, 이만 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할만큼 한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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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물론, 딱 한달만 해보시고 현실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으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니, 그건 그렇다고 치죠. (증명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채식거부자님께서 현실가능성에 실천적으로 도전하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육식거부의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채식거부의 현실성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은 알고 계셔야겠습니다. 제가 상정한 실현 가능성은 채식을 단절하는 것이 가능하냐입니다. 저는 육식을 단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하겠다는 의지를 묻는 것도 아니고, 단계적이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밥상에서 채소나 곡물을 다 빼는 것이 가능하냐의 문제입니다. 단계적인 것들의 존재가 실현가능성을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쟁점들 가지고 한번이라도 고민해보셨다면 잘 알고 계실텐데요. 육고기는 안먹되 생선이나 달걀을 먹는다고 해서, 육식거부의 실현가능성을 생선이나 달걀을 먹는 행위에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육식의 과정에서는 반드시 채소나 곡물이 사용되는데에 비해서(즉, 오직 고기만으로 음식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채식의 과정에서는 고기가 사용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이며, 이 현실을 전복하고, 고기만을 사용하는 음식만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연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때는 채식거부가 현실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수많은 육식동물들도 알고보면 다 풀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르신다면,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다.그리고 논리적인 문제를 지적하자면, 채식거부와 육식거부가 정반대의 실천이 아닙니다. 고기에 대립되는 것으로 채소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육식거부의 정반대의 실천은 육식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지, 채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채식을 거부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육식을 거부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와 상관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나, 직접적으로 대응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배반사건과 여사건의 차이를 구분하고 말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채식거부와 육식거부는 배반사건이지만, 여사건은 아닙니다. 정반대라고 말할라면, 여사건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여전히 제가 고민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실현불가능한 것까지 고민할만큼 저는 그렇게 여유가 없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사회체제가 "고대 노예제"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 저는 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주장이 정치적으로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어차피 그렇게 돌아갈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고민해봤자 머하냐 이겁니다. 이런 실현불가능한 문제제기를 해 놓고는 저더러 고민하라고 하시니, 제가 그렇게 한가해보였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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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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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nPlease님께 채식거부에 대해 고민하라고 한 적 없답니다. 방어를 위해 구축한 틀에 갖혀서 전혀 사고를 확장하지 못하시는 걸 보니 안타깝네요. 수고하셨습니다.부가 정보
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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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웅. 길어서 다 못봤는데. 채식거부자님이 최초에 묻고자 한 의도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제가 하고 싶은말.. 육식을 하려면 채식을 한 동물을 잡아 먹는 것이므로,결국 채식 완전 거부 하는것은 아니게 될거에요..그래서 최소한의 살해/ 혹은 소비를 통해서 환경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겠다는 의미에서 육식을 거부하는 거죠. 내가 직접 채소를 안먹는다고 해서 채소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거든요. 현실성의 문제라기 보단, 암튼 채소를 줄이는 것보다 육식을 줄이는게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택한거랄까? 그냥 이말이 하고 싶었어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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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사고를 확장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고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논의를 그쪽으로 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저는 채식거부자님이 현실성 없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이 소모적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오히려 안타깝답니다. 저에게 채식거부에 대해 고민해보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육식거부의 근거가 채식거부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왜 물어보셨습니까? 그것도 제가 몇번이고 고민하지 않겠다고 똑같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답변을 얻고 싶어서 이렇게 달라붙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채식거부자님께서 굳이 채식거부의 실현가능성을 증명하려고 애쓰셨던 것도 다 제가 고민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요? 저는 어차피 현실성이 없으므로 고민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만을 계속 되풀이했을 뿐입니다. 고민하라고 한 적도 없다면서, 저의 고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는지요. 가슴에 손을 얹고 제가 채식거부에 대해 고민하기를 바란 것이 아닐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사고를 확장하고 싶은 생각이 안드는 건, 남이 자의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 맘대로 자의적이지 않은 척 하면서 운동이 아니라고 까버리겠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내가 동조하는 꼴을 보일까봐 그렇습니다.
달군 // 앗, 그건 또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였군요. 보통 과학시간에 많이 이야기하던 먹이사슬 같은 문제. 육식거부와 채식거부를 동등한 위치에 놓을 수 없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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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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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제 첫 댓글이 하고 싶었던 말일 뿐, 채식거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던 게 아니니까요. 어쩌다보니 쓸데없이 길어졌네요.ScanPlease// 휴.. 제 첫 댓글을 다시 읽어보시고, 제가 님의 실천을 "운동이 아니라고 까버리려고" 했는지 아닌지, 굵게 강조한 부분에 유의해서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그것 때문에 이리도 길게 고집을 부리신거군요. 어쨌든 저 역시 길게 고집을 부려서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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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거부자 // 그렇게 이해하셨다니, 그건 죄송하군요. 채식거부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제가 "운동이 아니라고 까버리겠다"라고 쓴 것은 제가 다른 사람의 운동을 비하할까봐라는 의미였습니다. 더군다나 현실성이 없어보였기 때문에, 실제 채식거부자님의 의도가 그렇든 아니든간에,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현실속의 사람들을 비하하게 될 우려를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표현을 적절하게 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 표현의 부족으로 인하여 채식거부자님의 의도를 본의와는 다르게 곡해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