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 등록일
    2006/08/22 04:37
  • 수정일
    2006/08/22 04:37

술을 마실 때에는 그런 생각을 별로 못하다가

술에 쩔어서 일어난 그 다음날의 두통이 사라져 갈 때 쯤이 되면,

내가 살아왔던 길, 내가 꿈꿔왔던 것. 이런 것을 기억의 저편에서 잠시 가져와 봅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라고 할 때마다

항상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 내내 '과학자'였습니다.

물론, 말로는 대통령도 할 수 있는 나이이므로 머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 시절의 나의 꿈이 실제로 '과학자'는 아니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생님들이 볼 것이고, 생활기록부 같은데에도 기록될 내용인데,

차마, 보드게임을 만드는 업종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 '부루마불'을 비롯한 몇몇 천원짜리 보드게임에 열광했었고,

또, 내 나름대로 그런 정도 되는 규모의 게임을 몇 가지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걸 장래희망으로 말하기에는, 꿈이 거창하지 않아서 문제가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과학자'라고 얼버무린 것입니다.

우리 형도 맨날 '과학자'라고 써내는 것을 또 어찌 보고는,

그걸 따라한 것입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그 꿈은 '수학자'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그때는 정말 수학이 좋았습니다. 나에게도 수학이 너무너무 재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가 이때입니다.

그러나, 선생님들의 평가는 냉정했습니다.

"수학만 해서 멀 해 먹고 살 것이냐?", "다른 과목도 다 잘해야지, 수학만 하면 되냐?"

아니, 초등학교 때 '과학자'라고 적었을 때는 그런 비판이 없었는데,

중학교 가서 '수학자'라고 적으니까, 선생님들이 내 생각을 좀 바꿔보려고 시도를 하더군요.

나는 이때부터 학교가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학도 재미 없습니다.

(그때는 사실 학교에서 나의 '천재성'을 묵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학이 재밌다는 것만으로도 '천재성'을 논했으니...)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들과 방과후에 오락실을 자주 갔습니다.

내가 주로 하는 게임은 'The King Of Fighters'. 이 게임만큼은 동네를 주름잡았죠.

나는 오락실이 너무 좋았습니다. 담배연기만 없다면 완벽했을텐데, 그건 좀 아쉬웠죠.

그래서 이때부터는 나의 꿈은 오락실을 차리는 것으로 바뀝니다. 물론 금연 오락실이죠.

이때부터는 나도 한창 겁없던 시기라,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할 때,

선생님들이 머라고 하든지 말든지, 대놓고 '오락실 주인'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적은 것을 떠올리면서,

가끔씩 ㅋㄷㅋㄷ 거리면서 오락실 차렸냐고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물론 '오락실 주인'이라는 꿈은, 어이없게도 PC방의 등장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대학을 간 뒤로는, 이 때부터는 내 꿈이 무엇이었나 곰곰히 생각해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런 거 생각도 못하면서 살았다는 겁니다.

육체적으로 바빴던 것도 아닌 주제에, 꿈을 꿀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겠습니다.

난 대학에 와서, 과연 무엇을 한 것일까요?

무슨 생각으로 집회를 나갔고, 무슨 생각으로 동아리나 학생회 운동을 고민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어떤 느낌으로 다가와도 그게 그때 내 생각이었나... 이런 의문이 듭니다.

 

근데, 나는 대학에서의 다른 친구들처럼, 취직을 하려고 용쓰지도 않고 있고,

학점을 잘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이제 1년후면 졸업인데도 그렇습니다.

물론 학교를 빨리 떠나고 싶습니다. 지긋지긋합니다.

돈을 벌고 싶습니다. 돈이 많으면 내 생활이 좀 더 풍요로워 질테니까요.

다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다른 게 있습니다.

근데, 그게 먼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왜 지킴이가 되었나를 고민합니다.

같은 시각에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합니다.

나는 참... 꼭꼭 숨어있는 것 같아서, 자신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난 누구냐?"

 

 

 

그나마 내가... 한가지 위안을 삼고 있는 것은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