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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울

  • 등록일
    2006/10/05 03:20
  • 수정일
    2006/10/05 03:20

원래 오늘 과외를 세군데 하고 나서,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려고 했으나,

마지막 과외가 끝날 무렵 먼저 고향에 가 있는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이 새벽에 온다니까, 새벽에 다 나와서 술마시자."

그래서 이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이 친구 말하기를...

○○이 심야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도착하는데, 다음날 가야한단다.

 

이에 나는 ○○에게 전화를 걸었고, 고속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5일 아침의 표 2장을 끊고, ○○이 가지고 있던 표는 환불해버렸다.

○○의 차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다가,

○○의 일터 근처에서 내려서 밥을 먹고, 공을 굴렸다.

그리고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은 3년전쯤에 한 9개월 정도, 나와 같이 살았던 동성친구이다.

주로 업소에서 종업원같은 일을 하면서 지낸다. 같이 살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과 같이 살던 때에, 매일 새벽 5~6시쯤에 퇴근하는 ○○와 같이 밥을 먹기 위해,

매일같이 ○○를 기다리면서 스타를 하면서 밤을 샜고, 그러다가 학교도 안가고, 등등등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과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

 

1년반만에 만났다. 외형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늘 그렇듯이, ○○는 내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잘 들어주고,

종종, 뜬금없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냐는 둥... 정치적으로 나름대로 민감한 사안들을

나에게 신기가 내려야 명확한 대답을 할만한 질문의 형식으로 던진다.

그래도 진지한 건 사실이다.

 

오늘 본 ○○에게는 삶의 무게가 조금 느껴졌다.

예전같으면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던 ○○이

지금은 스스로 한달에 열흘밖에 일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

어쩌면 ○○도 자신의 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전에 나와 같이 살 때의 그의 꿈은 영화배우였다. 지금도 그 꿈은 그대로일까?

 

은근히 '괴물'을 봤냐고 물어봤다.

사실 봤을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물어봤는데,

○○는 딱 한마디의 평을 던졌다. "스토리만 예술이다."

그리고 나에게 한가지 질문을 했다. "미군이 독극물을 방류했던 거는 진짜라며?"

내 질문의 의도를 알았던 거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 거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갔다. 공을 굴리러...

 

○○는 나에게 당구계에서는 스승격인 존재다.

내가 절대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실력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가 평소처럼 150을 놓고 치면, 자기는 200만 놓는다.

(진짜 실력대로 친다면, 이정도 차이로는 내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도, 평소에는 내가 더 많이 이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한번 기를 쓰고 졌다. 물론 졌으므로 당구비를 내야했다.

 

나보고 혼자 택시타고 집에 가란다.

○○가 피곤해서 차로 못 데려다주겠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았다고 해버렸다.

나는 ○○가 업소로 돌아가서 아침이 될때까지 일하려는 의도임을 눈치챘다.

유난히도 이런 손님이 없을만한 날짜에 그 업소에는 오늘따라 손님이 너무 많아서

아까부터 그에게 업소쪽에서 계속 전화가 왔던 것이다.

 

 

아침이 되면, 고속터미널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고향에 가겠지만, 그 동안은 둘다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저녁에 다른 고향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로 했는데,

우리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전역후에 지난 한달 반 정도의 시간동안 내가 연락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차라리 질타를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기대 반, 긴장감 반을 가지고 이 시간은 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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