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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교수의 문제있는 인식

이단적인 자유관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무차별하게 모든 이데올로기에 관용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른 바 볼테르의 <관용>을 잘못 이해하여 사상의 자유시장에 아무런 진입장벽이 없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잘못된 관용론이요 볼테르의 진의의 와전이다.  볼테르는 파시즘이나 나찌즘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공중도덕등 관용의 한계를 얘기하고 있다. 국민의 결단 혹은 총의인 대한민국 헌법에도 무채색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소제목의 "이단"은 우리헌법과 인류의 보편적인 자유관에 이단이라는 이중적 의미로 썼다.)

 

미분화된 관념들의 파편들

 

김정란은 강정구나 조갑제의 관련 발언들을 보면 마치 자유가 부정된 것인양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자유의 본질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상호의존성에서 그 한계를 또한 인식할 수 있으며 일정한 절차에 의해 제정된 규범-이것은 공동체 구성원의 (일반)의사이기도 함-에 의해 혹은 다른 기본권주체의 자유와의 경쟁으로 자유가 조정되는 경우가 있다.  조정의 근거로서 우리 헌법이 들고 있는 것은 질서유지, 공공복리, 국가안전등이다. 그럼에도 김정란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어떤 발언이라도 관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김정란표 헌법>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김정란='유태인인 파시스트', 필자=나찌스, 갑돌이='공산주의자'인 단순한 공동체가 있다 할 때 누가 헤게모니를 잡느냐에 따라 가스실로 가거나 입에 재갈이 물리거나 타율적인 세계변혁의 대상이 될 것임은 속성상 운명이요 필연이다. 이들 이데올로기는 애초에 똘레랑스친화적인 것들이 아니다. - 노파심에서 여기서 상정하는 공산주의자는 폭력노선을 맹종하는 유형의 공산주의에 한정한다. - 이들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사상의 주체는 반사회적일게 명백하다.

 

관용뒤에 은폐된 김정란의 차별의식

 

김정란은 마치 스스로가 모든 사상에 무차별적인 관용은 베푼다는 듯 치장한다. 정말 그러한 지 인용하여 살펴보자.

 

"강정구 교수의 정치적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조갑제...지만원...한승조 교수 등...어처구니가 없고 가슴이 턱턱 막히.."
"학문적인 견해조차 개진할 수 없다면"/"아무리 험한 말이라도" "허무맹랑한 정치 공세..."
/ 앞은 강정구관련된 표현이고 / 뒤는 극우세력관련 발언이다.

 

이런 발언의 이면에는 등거리가 아닌 가치우열이라는 위계가 전제되어 있다. 똘레랑스뒤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이 입장은 결국은 이데올로기차별 혹은 사상차별로서 결과적으로 맹목적 관용이 아니라는 자기 고백인 셈이다.  그리하여,  오히려 인류역사에서 검증된 앵똘레랑스(예; 파시즘, 나찌즘, 공산주의)를 배제하는 진입장벽있는 사상의 자유시장론이 일관된 인식임을 알 수 있다.

 

신연좌제거론하면서 연좌제적 비난 자행


 

김정란은 강정구교수 청강생들에 대한 경제단체 인사의 발언을 신연좌제라고 규정하고 비난한다.  그리고는 바로 박근혜를 "그녀 아버지(박정희)"와 관련시켜 비난한다. 이것 또한  바로 연좌제로서 형사상의 개인책임의 원칙에 반하는 전근대적인 잔재이다.  

 

박근혜의 자유민주주의관의 문제점을 친절하게 지적하며 비판하는 것이라야 제대로이다. 필자 안목으로 보아,  김정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곡해하는 마당에 박근혜를 비판하는 관점이 바를 리가 없다.


 

김정란의 부당한 성차별의 편린


 

"남성들의 투쟁 일색의 정치와 달리 사랑과 관용을 덕목으로 삼고 정치해야 할 여성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이라는 문장을 보자.
이것은 부당한 일반화이며 지성인이라면 피해야할 금기이다. 전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 녀에 대한 고정관념에 입각해 있거나 여성우월적인 차별의식이 내재해 있다 할 수 있다.  여권(남여평등)을 위한 글에도 이와 유사한 문제있는 인식들이 흔하다.

 

이오십보 오백보

 

김정란은 "지구상에 이데올로기 투쟁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는 이제 거의 하나도 없다"라고 한다. 친노세력의 수구딱지붙이기  일상화는  '민주화운동'의 위상을 그들의 입장을 제고하기 위해 부당하게 독점.참칭하고 있음은 주지사실이다. 과거에 한나라당이 색깔론으로 민주인사의 인권을 유린한 것이라면,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무차별적이며 맹목적인 수구딱지붙이기는 우리사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새로운 부정적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다른 입장에 대한 배타적 태도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동급인 이념사냥인 것이다. 

 

이번 참여정부의 국정운영미숙은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교훈을 준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역량과 정치인으로서의 역량은 별개라는 점이다.

 

노빠인 김정란은 국민의 적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중 하나가 권력자를 맹목적으로 비호하는 먹물들의 해악이다.  우리 헌법은  부정적권력관을 토대로 하는  권력분립제도를 채택하였다.  김정란이 노무현의 대연정제안을 "상상적 정치행위"라는 둥 살아있는 권력을 미화한 것은 국민의 (일반)의지인 헌법과는 어울릴 수 않는 행태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한다. 


조갑제나 강정구나 ‘말할 권리’ 있다
강정구 견해 온당하지 않으면 합리적 논쟁 통해 부당함 밝히면 그만
이에 일전을 치르려는 박근혜는 혹시 박정희시대를 자유민주체제로 아나?
세설

나는 강정구 교수의 정치적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발언할 수 있는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선일보>의 조갑제씨나 시스템 클럽의 지만원씨, 고려대학교 한승조 교수 등 극우세력의 발언에 어처구니가 없고 가슴이 턱턱 막히지만, 그들을 법적으로 억압하는 데는 반대한다. 조갑제씨는 국군을 상대로 쿠데타를 선동하는 발언마저 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는 한, 그를 구속할 수 없으며, 논리도 이치도 닿지 않는 말이라 하더라도 강제로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강정구 교수 역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상과 발언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다. 조갑제씨 등에게 말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강 교수에게도 말할 권리가 있다. 어떤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말이라도 해도 괜찮고, 다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은 학문적인 견해조차 개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다.

그런데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둘러싸고 최근에 한나라당은 나라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요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교수의 견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할 뿐이며, 대중은 물론 학계의 호응도 받지 못하는 특이한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아무도 북한체제를 동경하지 않는다. 나는 구속이고 불구속이고 학문적 견해가 수사대상이 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견해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합리적인 논쟁을 통해 그 견해의 부당함을 밝히면 그만이다.

강정구 교수의 구속수사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이나 정부가 강 교수를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은 허무맹랑한 정치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도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법적 절차일 뿐이다. 가능하면 인신을 구속하지 말고 수사하라는 원칙적 입장 천명에 불과한 것이다. 공안사범의 경우, 일반 사범의 거의 6배에 가까운 구속율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이 온당한 일인가? 우리 나라가 혐의만 있으면 무조건 잡아 가두고 보는 인권 후진국인가? 대학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대체 어디로 도망을 갈 것이며, 엄연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어떤 증거를 어떻게 인멸한다고 반드시 잡아 가두어야겠다는 것인가? 천정배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집단 항명 움직임마저 보이는 검찰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오히려 구속수사를 지휘받았다 하더라도 불구속 입장을 견지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인권을 가볍게 보는 검찰이라면 그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강 교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은 취업시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을 공식석상에서 내뱉는 경제관련 단체 인사의 멘털리티는 야만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 중세인가? 어떻게 취업을 빌미로 실제적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신연좌제일 뿐만 아니라, 돈의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지극히 천박한 태도다.

박근혜 대표는 강 교수 건을 재보선 선거에 알뜰히 이용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나라가 붉은 세력에게 점령당하기라도 한 듯, 노골적인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방문해서 단독 면담을 한 적도 있고, 그에게 선물도 했으며, 그에 관해 호의적인 발언도 한 바 있다. 이건 박 대표가 몸을 던져 막겠다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박 대표는 여러 차례 방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적성국가의 우두머리를 만나 비밀회합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 만날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박 대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아닌가? 박 대표는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초법적 존재라도 된다는 말인가?

박근혜 대표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는 그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대였다. 박 대표는 아버지가 유지했던 독재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독재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이던 시대의 정치제도를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툭하면 정체성을 들고 나와 정통성 100%의 현정권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박 대표의 확신인 것 같다. 박 대표 아버님이 운영하셨던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 일인독재체제이며,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시행하고 있는 정치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반공을 앞세운 전체주의였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어떤 발언이라도 관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는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시민의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 조갑제씨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구속 수사하겠다고 검찰이 나선다면, 나는 강정구 교수의 구속에 반대하는 것과 똑같이 반대할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나라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그 숱한 세월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지새우며 좌/우 공히 숱한 상처를 입었던 공동체 안에 다시 이데올로기 망령을 불러들이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다. 남성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더라도, 나서서 말려야 하는 것이 남성들의 투쟁 일색의 정치와 달리 사랑과 관용을 덕목으로 삼고 정치해야 할 여성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다.

▲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그런데 박 대표는 앞장서서 증오에 기반한 철지난 색깔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버지 시절처럼 다시 사상을 빌미로 한 피바람이 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이것이 그간 박 대표가 부르짖어 왔던 상생의 정치이며, 민생을 걱정하는 정치인가? 이제 제발 메뉴 바꾸고 미래로 걸어가자. 지구상에 이데올로기 투쟁을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정치인을 가진 나라는 이제 거의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좀 유지하자. 21세기 복판에 아직도 색깔통을 들고 난리법석이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김정란 상지대학교 교수(문화콘텐츠학과)가 ‘세설’의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지금까지 깊고 날카로운 글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문화평론가 남재일씨는 여러 사정으로 잠시 글쓰기를 쉬고 싶다는 뜻을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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