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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혁명가의 죽음/이시영

노 혁명가의 죽음

노 혁명가 김학철 옹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
자 아들 내외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 죽거들랑
부고를 내지 말고 추도식도 하지 말며 여기 적은 열두 사
람 에게만 알려라. 시신은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든 뒤 두만
강에 뿌려라. 남은 것이 조금 있거든 골회함 대신 우체국
의 종이우편박스를 사서 거기에 담아 '원산 앞바다 행/
김학철(홍성걸)의 고향/가족 친우 보내드림'이라고 적은
뒤 강물에 띄워라. 바람이 나를 고향에 데려다줄 것이다.
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조선의용군추도가와 황포군관학
교 교가를 불러달라. 내 일생을 통해 가장 경계해온 것이
남에게 쓸데없이 폐를 끼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번거
로움이니 며느리 너는 나 죽은 날에도 울지 말고 그냥 학
교에 가라. 가서 평사시처럼 아이들을 가르쳐라".
위엄있는 삶도 어렵지만 사람이 한명(限命)을 알고 자
신의 죽음을 위엄있게 맞기가 쉽지 않거늘, 그러나 선생
은 그렇게 했다. 더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일체의
병원 치료와 주사를 거부하고 꼬박 스무하루를 굶은 뒤
소년처럼 머리를 면도로 깨끗이 밀고 간호사 불러 관
장하고 중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남들이 다 잠자는 새
벽 두시 반에 조용히 식구들을 깨워 병원으로 갔다. 그리
고 평소의 모습처럼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하시
다가 그만 깜빡 저세상으로 가시었다. 입가엔 행복했던
날 손녀와 함께 짓던 미소 자국이 역력했으며 눈가에선
마지막 매섭고 밝은 빛이 빛났다. 향년 85세. 다음은 항
일 전장에서 그가 쓴 시의 한구절이다. "밤소나기 퍼붓
는 령마루에서/래일 솟을 태양을 우리는 본다."


* 은빛호각, 창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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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을 대하며 과연 의연할 수 있을까?

아니 자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이미 인정하는 것은 체념으로 돌아가고 이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에는 육체적인, 정신적인 기력이

남아있지 않다.

오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비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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