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당-형태 비판의 요점은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1970년대 유로공산주의 논쟁인데

일에 쫓기다 보니 마음만 있을 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요새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였다.

틈틈이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을 읽다가

다음 대목을 발견한 것이 첫째였다.

 

"Dans ces conditions, accepter l'idée que la théorie marxiste est ≪finie≫ exclut totalement qu'elle soit une théorie fermée. C'est la philosophie de l'histoire qui est fermée, puisqu'elle enferme d'avance dans sa pensée tout le cours de l'histoire. Seule une théorie ≪finie≫ peut être réellement ouverte aux tendances contradictoires qu'elle décèle dans la société capitaliste, et ouverte sur leur devenir aléatoire, ouverte sur les ≪surprises≫ imprévisibles qui n'ont cessé de marquer l'histoire du mouvement ouvrier, ouverte donc attentive, et capable de prendre au sérieux et compt à temps l'incorrigible imagination de l'histoire." (이탤릭은 원문, 굵은 글씨는 인용자)

- Louis Althusser, "Le marxisme comme théorie ≪finie≫", Solitude de Machiavel, PUF, 1998, p.286.

 

국역본에서는 내가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어쨌든 1978년 대담에 나타난 'aléatoire'라는 낱말은,

70년대 말 유로공산주의 논쟁에 개입한 알튀세르의 정치적 입장을

'우발성의 유물론'이라는 철학적 견지에서 읽을 수 있다는, 또는 역으로

'우발성의 유물론'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새삼 갖게 했다. 알튀세르의 유고가 발표된 후 분명해진 것이지만

알튀세르는 늦어도 1966년 시점에 '마주침'(rencontre)을

강한 의미에서 '개념'으로서 체계적으로 사용하지만

'우발(성)'(aléa) 개념에 관해서는 훗날까지 망설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개념은 사후에 출간된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특히 전면화되는데

유고 편집자인 마트롱에 따르면 이 원고는 1972년 즈음에 사실상 마무리되었으나

최초 판본에서는 '우발(성)' 개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즉 최초 판본과 최종 판본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이 개념의 전면화인 셈이다.)

이 개념이 1978년이라는 시점, 그것도 가장 정치적인 성격의 대담에서

등장했다는 데 큰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나 개인의 정치적.이론적 의식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업이

이 시기 알튀세르의 개입이었던 까닭으로

이 작업들을 반성하는 것은 나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

나로 하여금 이 문제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게 한다.

 

이와 연결되어 있는 두 번째 문제가 이른바 '당-형태' 비판이다.

나에게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작업은 무엇보다 당-형태 비판이었으나

고백컨대 나는 지금까지도 이 비판의 요점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한다.

당-형태 비판의 일차적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나키즘적 경향을 북돋는 것이었다.

발리바르가 알튀세르와의 '결별'을 무릅쓰면서까지 제기한

'이론적 아나키즘 비판'이라는 테제 때문에

이 경향은 어느 정도 중화되었지만, 그렇게 되니 이제

당-형태 비판의 요점이 더욱 묘연하게 느껴졌으며

아직까지 그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최근 나에게 떠오른 착상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발리바르가 몰두한

'맑스주의 전화'의 핵심 명제 중 하나이고,

그가 마키아벨리를 말하면서 한층 부각된 문제,

곧 '비대칭성'이라는 관념이 당-형태 비판의 요점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비대칭성을 양보하지 않지만 아나키즘으로 흡수되지 않는 방식,

알튀세르의 '국가 외부의 당' 테제에 담겨 있는 이론적.정치적 고민을

비아나키즘적인 방식으로 반성하고 상속하는 방식,

그런 고민이 부지불식간에 자라나고 있다.

 

당장 밀린 일들 때문에 언제 이 문제를 제대로 고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잊지 않기 위해 일단 거친 생각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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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11/02/13 19:41 2011/02/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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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슴츠레 2011/02/23 17:43 # M/D Reply Permalink

    좀 편하게 말을 풀어보자면 이론적 아나키즘 비판이 관성적 '저항'의 안일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면, 때로는 역으로 이 부분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좌파의 제도 히스테리 비판'의 안일함에 빠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맥락에서 진범님의 고민에 공감 내지는 자기맥락화를 해보게 되네요 ㅎㅎ 잘 지내시는지요? 이번에 궤도에 오르게 된 최장집 세미나에 제가 아는 사람들도 좀더 가더군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세미나 내용 전해 들을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ㅎㅎ

  2. 아포리아 2011/02/23 22:09 # M/D Reply Permalink

    예, 저는 잘 지냅니다. 조만간에 뵙길 저도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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