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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쑤신다

어제 새벽 2시에 술 마시러 나갔다가 (이렇게 해본 적이 어언 얼마만인가...?)

4시에 잠을 잔 관계로

모자란 잠을 벌충하려고

삼실 생활방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전화가 온다.

'오늘 약속 잊지 않았지?'

'어? 낼 아니야?'

'그때 오늘이라고 했잖아!'

'그래? 알았어. 이따 봐.'

 

그렇게 전화를 끊고 2시간 남짓 잤다.

렌즈를 낀 눈이 뻑뻑하여

인공눈물 떨어뜨려도 시력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것도 나이 드는 신호인가?

 

부랴부랴 약속에서 쓰일 것들을 준비하고

만나서 얘기하고 헤어지다.

 

광장으로 떠날 즈음에 이미 행진을 시작했단다.

지하철로 움직이는 이 길이 왜 이리 긴거야?

실시간 문자질로 위치를 파악하고

헤매이다가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니며

이제는 전화질을 해대며

위치를 파악하려 했으나

결국 자리에 앉고 나서야 사람들을 찾았다.

 

방송차가 눈에 띄어 좀 놀라긴 했으나

날이 날이니만큼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마자

뒤에선 '마이크 꺼라', '우리는 관리 받으려 여기 온 게 아니다'

순간 분위기 험악해지고

서로들 마이크를 붙잡고 얘기했다고 아수라장이 됐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냥 마이크 주면 알아서 순서 정해 얘기가 될 건데 왜 저러나 싶었다.

하여간

모여 있던 사람들은 울라송을 부르기도

심지어 애국가도 부르고

앞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으나

 

진정되지 않고 앉았던 사람들이 일어나 다시 행진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방송차를 둘러싸고 프락치 여부를 확인하려 든다.

대오를 이끌었던 '대책위'의 한 여성이 결국 마이크를 꺼버린채 사라지고

대책위에 빌려주기만 했던 방송차가 빠져나오는데

이런 일이 생긴거다.

전후 상황을 설명하자 분노한 사람들은 대책위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이고

여전히 어떤 이는 프락치 아니냐며 방송차를 놓아주지 않았단다.

 

다시 뒤로 돌아 조계사 쪽으로 가다 mbc 라디오 인터뷰를 했다.

어리버리...

 

그렇게 방향 없는 행진을 하다가

대오를 멈추는 순간 프락치로 몰리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면서

걷다가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아~

욱신욱신 내 두 무릎...

어제 문득 어 무릎 통증이 좀 가셨네 싶었는데

어제의 걷기로 다시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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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2월 7일 카트만두/포카라 도착

심한 기류 변화로 약간의 어지럼증과

갑작스럽게 나를 덥친 숨 막히는 더위가 한편의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고작 10여분 거리에 있는 국내선까지 100루피나 주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게 다 기회비용이려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포카라행 고르카에어는 무려 1시간 반을 넘겨 출발했고,

내가 탄 비행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후진 비행기였다.

가는 도중 멀리 안나푸르나가 보였다.

사진을 찍을까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여기 온다고 내 생애 최초의 디카를 구입했건만...

물론 이 소형비행기를 타기 전, 큰 비행기로 네팔 국경을 넘을 때 히말라야도 봤다.

근데 감흥은 예전에 안데스 산맥을 넘어 가던 감동과는 사뭇 다르다.

왜 별 감흥이 없는 걸까?

묵힌 숙제를 제대로 못해서... 뭔가 하려고 해도 손뼉이 부딪혀야 하는 것을...

포카라에 도착하니 세자매 게스트 하우스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팁을 주지 못한 게 걸린다.

나름 괜찮은 방을 배정받고, 햇볕이 직접 드는 방은 아니었지만...

짐을 풀고, 다음 날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트레킹을 하루 연기했다.

저녁을 먹고 뭐했더라? 아마도 책을 보다가 잠을 잔 것 같다.  / 여기까지가 수첩에 적힌 일기



지금 일기를 옮기는 순간 생각해보니,

'어지럼증, 짜증 등'이 네팔에 들어온 나이 첫 감흥이라니...

새삼 나의 까탈에 웃음이 나오고 만다.

이날 서울의 새벽부터 설날 차례도 못 지내고,

(비록 직항이긴하지만) 비행기에서 시달리며 먼 길을 가는 것이 언젠가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2006년 12월 30시간 넘는 비행시간과 3차례 이상의 경유 경험이 큰 이유인 듯...

나의 형편없는 심리상태가 여행이 주는 미세한 떨림과 기대 앞에서도

맥없이 무너지는 그런 경험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비껴가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졌다.

아들 없는 집의 큰 딸이라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기대와 의존...

한편으론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즐기는 마초적 경향을 가진 나

또 한편으론 일을 핑계로 적당히 뭉게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

여러 개의 나가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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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안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니까

자주 안 들어와지게 된다.

 

왜 내가 만든 블로그에서도 억압을 느끼는 거야?!

에잇!

자유롭게...

그러든가 말든가...

 

지난 2월 9일부터 18일까지 '쉬엄쉬엄' 걸으면서 썼던 

안나푸르나 생츄어리 트레킹 일지를 올려야겠다.

뭔가 사적이고 음흉한 얘기를 끄적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건 알아서 자체 검열하고ㅋ

나름 맘에 드는 사진 몇장 곁들여서리...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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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한국의 산하에선 '남한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산 중턱까지 버스로 올랐으니 등산이라 하기엔 쪼까 거시기한 측면이 있다.

중턱에서 조금 오르니 산성을 잇는 문이 하나 나오고

옆 길로 해서 수어장대까지 산성을 따라 평이하게 걸었다.

숲이 우거진 산 중턱의 산성길은 길도 무난하고 

간혹 소나무 냄새와 아카시 꽃 향기가 좋은 길이다.

길이 대체로 포장되어 있어서 산행하는 맛이 좀 떨어진다는 것과 

어디 높은델 올라가도 멀리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없이 그것이 좀 안타까웠다.

이 산은 한적한 숲 그늘에 돗자리 펴놓고 시원한 막걸리나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기에 좋은 곳이다.

 

언젠가부터 없어진 관악산 막걸리 상인들이 이곳에 진을 친 것일까? (아니겠지.)

여기 저기 난장을 펼치고 있다.

막걸리 한잔에 서비스로 주는 안주를 이것 저것 집어 먹으며 마지막을 배추로 입가심했다.

 

둘러쳐진 산성의 세 개 문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하산했다.

하산길이 밋밋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허무해

샛길로 빠져나와 내려왔더니 무슨 비밀의 화원 같은 곳에 도착했다.

 

대문을 마주보며 그곳 계단에 앉아 참외 하나 깍아먹었다. (아니 깍아놓은 걸 먹기만 했다.)

제철 참외라 그런지 완전 설탕 친 맛이 제법 좋더구만.

 

그곳 화원-민족도장-의 닫힌 대문을 어찌할 수 없어 월담을 했다.

하산 마무리치고는 것도 괜찮았다.

 

하나 더 쓰자면...

지난 번 북한산에 함께 갔던 까칠한 자에 비하면

이번의 산행 동행자는 완전 상 양반이었다. 비교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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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삼실 내 뒤켠-파티션 벽-에 세계지도를 붙여놨다.

몇년 전에 친구로부터 지구본도 선물 받았다.

나름 여행을 하기 위한 나의 준비라고나 할까...

스스로 다짐한다.

늦어도 2011년 , 내 나이 마흔에 접어들기 전에 내 인생의 긴 여행을 해볼까 한다.

대충 루트도 정했다.

지구가 더 망가지기 전에...

물론 더 망가지지 않도록 눈 크게 뜨고 덤빌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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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다

어제는 죙일 소설책 한권 붙잡고 디립따 읽었다.

토요일 야학 교사회의 갔다가 복도 한켠에 가득 꽂힌 책을 훑어보다가 한권 집어 들었다.

(책들이 가득 있는 걸 보면 마치 내가 다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이 온다. 왜 그럴까?)

2주간 대여가 가능한데 오늘 반납하게 생겼다.ㅋ

 

아내를 사랑한 여자(히가시노 게이고)

나로서는 첨보는 작가 이름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그냥 한번 읽어보면 뭔가 느낌이 온다는 그런 투다.

번역자가 자기 작업물에 대해 이렇게 가볍게도 쓸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제목이 주는 무게보다는 호기심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전 여성영화제에서 '여자를 사랑한 트렌스젠더'를 본 감흥도 남아 있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바로 어제 밤에 다 읽었지만 말로 줄거리를 쓰라고 하면 못한다.

그냥 잔영, 그때의 감상만 나에게 남았을 뿐...

 

우리는 왜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여성, 남성으로 나눠 여성은 이렇게(또는 이래야) 남성은 이렇게 해야한다(이래야 된다)는 것에

사로잡혀 사는 것일까?

남성의 마음을 가진 남성 / 여성의 마음을 가진 여성

남성의 마음을 가진 여성 / 여성의 마음을 가진 남성

여성의 마음과 남성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성/남성

 

트렌스젠더조차 전통/사회적인 성구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고 소설의 한 인물은 말한다.

그 인물은 인간의 남성/여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확실히 구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뫼비우스의 띠 처럼 안이었던 것이 어느순간 밖이 되버리고 그 반대도 되는, 결국 인간은 그 위에서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과 다른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 육체를 일치시키려는 사람을 만나면 도와준다고 했다.

 

평소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추리가 가미된 이 소설의 얼개가 다른 작품에 비해 허술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제 집에서 혼자 읽으며 나름 등골이 오싹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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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스러움

북한산에 갔다.

2월 큰 산에 오르기 전, 1월 워밍업으로 북한산에 올랐었다.

그때랑 이번에랑 출발은 같은 곳이었다.

하산 지점은 달랐지만...

 

아침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른 하늘이 상쾌했다.

1월에 눈이 쌓여 미끄러운 그 길이

5월엔 길의 흙과 돌이 다 드러나 무난하게 열렸다.

 

푸른 하늘과 푸른 숲 사이로

숨 한번 고르고 그렇게 올랐고

 

산성을 따라 열린 능선 어드메서 사방으로 트인 바위에 앉아

숨 한번 고르고 사방을 돌아보며 좋다고 웃었다.

 

함께 올라간 사람의 별 감흥없어 하는 모습에

나의 좋음은 배가되지 못했지만...

 

어느순간 산행에 동행한 이의 투덜거림에 나의 기분마저 잡쳐버렸다.

반면, 동행인의 까탈스런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럴까란 생각에 다시 웃어버렸다.

 

북한산을 내려오면서

아주 오랜만에 지리산에 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중간중간 책도 읽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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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블로그를 만들었다.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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