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모르겠다. 정의기억연대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할 때는 이렇게 어렵지 않았다.
후원계좌가 문제될 때에도 그랬다. 여러 단체가 모여 대책위를 꾸리거나, 긴급하게 돈을 모아야 하는 일들이 생기면 개인이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계좌를 맡게 되는 건 오히려 귀찮은 일이다. 입출금도 맡아야 하고 뭔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수고스러운 일을 맡아주면 나는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이해했지만 굳이 변명을 보탤 이유도 없었다. 정의연이 재정을 운용하는 규모나 역사에 비추어볼 때, 회계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확립되어온 더욱 효율적인 형식이나 기준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더 투명하게 재정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언론에서 뭘 캐내고 어떻게 소란을 떨든, 정의연이 ‘문제’를 재정의하고 스스로 과제를 찾을 단체라는 믿음이 있었다. 
문제가 피해자와 활동가의 관계로, 조금 더 의미있는 문제제기로 이어질 때에는, 조금 마음이 복잡했다. 정답이 없는 숙제를 나도 늘 부딪치며 살기 때문이다. (‘위안부 운동’에 보탬이 되어본 적 없는 언론이나 정당이 이용수 님의 주장을 ‘존중’하는 듯 자기 주장의 근거로 가져다 쓰는 건 일단 무시하자. ‘존중’이 받아쓰기가 아니라는 건 많은 이들이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피해자로서 세상에 등장할 때 그가 피해를 알리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피해를 남긴(자신의 존엄을 훼손한) 부정의를 고발하려는 것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피해자’는 이미 어느 정도 활동가기도 한데, 나는 피해자와 활동가의 역할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피해자이면서 활동가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런 이들을 보며 존경을 거두기는 어렵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는 걸 이상적이라 여기지 않는다. 숨어서 도움을 구할 곳도 있어야 하지 않나, 대신 나서서 해결하는 곳도 있어야 하지 않나. 문제는 오히려 피해자의 도움 없이 활동가의 힘만으로 그걸 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되는 건 지극히 현실적이다.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틀어지는 건 그만큼 또 현실적이다. 누구도 수단이 되고 싶지는 않으며, 그걸 알아차리기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 이번 일이, 정의연이 피해자를 수단화했기 때문이거나, 피해자가 정의연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한두 해 만난 관계라면 모를까, 수십 년 함께 해온 관계에서 어느 쪽도 일방적이기란 쉽지 않다. 정의연 활동가들에게 이용수 님의 말이 상처가 됐을 거라 짐작하지만 그런 갈등과 상처를 겪으면서도 운동을 일으켜온 역량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이용수 님이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할 때는, 활동가들을 비난하고 싶기만 한 게 아니라 또다른 관계에 도전하고 싶은 오랜 고민이 있었을 거라 믿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제 몫의 숙제를 꾸준히 풀어갈 분들이라는 믿음. 그래서 마음이 복잡하면서도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어려운 건 그 다음이다. 위의 쟁점들은, 결이 다를지언정 정의연이 잘 풀어갈 것이다. 그러나 정의연이 ‘위안부 운동’의 전부이다시피 한 상황도 정의연이 풀 수 있을까? 나는 정의연이 흔들리면 ‘위안부 운동’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걱정되는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이 정의연과 함께 처한 문제도, 회계 문제나 피해자와의 관계가 아닌, 바로 이것이다. 
한 활동가의 행보가, 한 단체의 회계가 운동 전체를 흔들 정도의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는 상황은 헌신과 수고로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아니더라도, 우리 단체가 아니더라도, 운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모든 단체와 활동가의 사명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용수 님이 (인권운동가로서) 운동의 분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읽는다. 그가 촉발한 쟁점을 사회운동의 과제로 이해하며 다른/다양한/많은 운동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야말로 사회운동이 함께 져야 할 책임 아닐까? 사회운동이 의미 있는 논쟁의 장을 열 때, 의미 없고 시끄럽기만 한 보수언론이나 정당의 소리도 사그라들지 않을까? 어렵지만 에둘러 갈 수는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20/05/30 13:28 2020/05/30 13:28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107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