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게 있 수다!

HIV/AIDS 감염인 인권 증언대회 준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아마 시작할 때 나는 증언이라는 말부터 너무 비감염인 중심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늘 말해왔고 말하려고 했던 그/녀들에게 '증언'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걱정꺼리를 털어놓듯이,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이야, 여행가려는데 기차 탈까 버스 탈까, 낼모레 친구 애 돌잔친데 돈은 얼마나 넣어가야 하나, ... 이런 이야기들이 아닌 '특별한', 언론이 그렇듯 '선정적인' 증언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준비모임을 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와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한 명 두 명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적어온다. 꺼내면서 그/녀들은 이렇게 말한다. "난 별로 인권침해 같은 거 당하지 않았는데...이런 얘기도 괜찮나?"

 

물론 그/녀들은 이마에 뿔이 달렸다거나 팔이 네 개인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그저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을, 더군다나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를 필요로 하는 사실을 말할 수 없다는 것, 말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인 것은 아닐까. 쪼개진 정체성들로는 인간의 존엄을 되찾을 수 없으니까.

 

준비모임을 하는 동안 나도 조금씩 생각이 바뀐다. 선정적인 증언을 은연중에 기대했던 어리석은 마음도 조금씩 깨달아간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오늘도 누가 증언을 할 수 있을지, 하게 될 지 불투명하다. 증언을 하겠다고 나섰던 한 사람이 연락을 끊으며 발길을 돌렸을 때 정말 이대로 계속할 것인지를 논의에 부쳤다. 자신이 없었다. 우리가 하기로 했던 이 자리가 정말 감염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리인 것인지,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증언'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때 또다른 감염인이 증언을 하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증언대회는 예정대로 이번주 일요일에 열린다. 몇 명이 그 자리에 함께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대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은 객석에서 조용히 먼저 나온 이들을 바라볼 것이다. 그렇게 함께 가기 시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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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1 22:46 2006/09/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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