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획 숙제   

 

 ①

순은 내가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충분히 돈을 벌기를 기대한다. (지금같은 세상에 인권운동단체만큼 안정된 직장이 또 있을까마는. ㅋ) 필요한 만큼 벌고 버는 만큼 쓰면서 살겠다고 하면 뭐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순에게 남는 걱정이 두 가지 있다. “니가 평생 살 집 한 채는 마련해야지.”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떡할래?”

 

이번 인터뷰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것이다. 단체 안에서 맡고 있는 영역이 주거권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순은 ‘평생 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상이 다르다.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평생 살 집 한 채’는 보장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나의 노력이라면 순은 ‘평생 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착실히 돈을 모으는 노력을 요구한다. 순이 보기에 나의 노력은 철없는 소리, 기약없는 꿈일 뿐이다.

 

순은 가끔 나에게 이런 말도 한다. “니가 열심히 돈 벌어서 엄마한테 마당 넓은 집 좀 사주라.” 순은 자녀들이 모두 대학 진학을 한 이후로 꾸준히 야생화를 가꿔왔다.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들을 다니면서 조금씩 캐온 야생화들이 좁은 마당을 이중 삼중으로 채우고 있다. 최근 이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한 순은 자주 야생화 이야기를 한다.
“소황금이라는 이름의 남보라빛꽃이 활짝 피었다. 여름날 지겨운 더위를 잘도 견디고 피어난 터라 더욱 사랑스럽구나.”
“패랭이처럼 생긴 패랭이꽃 모양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살아가는 장소따라 키가 큰 놈 덩굴처럼 납작 엎드린 놈, 모두 앙증맞은 모습이 카네이숀 같은 모습, 강인한 생명력과 아름다운 꽃을 뽐내는 장점을 가진 꽃이란다. 아빠 계실 때 학교에서 얻어온 흰색 패랭이까지 몇 송이 자태를 뽐낸다. 이놈들이 환경이 좋으면 화사하게 화분 가득 꽃피우련만.”
나는 순이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가서 넉넉한 공간에 야생화들을 흩어놓고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 메일을 주고받는 요즘은 더욱 그런 바램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나는 순이 마당 넓은 집으로 이사갈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의 몫인 것 같지는 않다. 순이 그런 기대를 내비치는 것은 몇 년 전 준이 죽은 이후다. 나에게 가장, 또는 부양자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순이 훨씬 부자인 걸? ㅜ,ㅜ) 굳이 ‘부양’이 아니더라도 서로 기대고 의지할 수 있도록 나름의 몫이 있을 것이다. 나의 몫은 어떤 것일까.


그런데 준의 죽음은 순이 또다른 집을 얻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외에 임대용 건물을 한 채 더 소유하게 된 것이다. 순의 남매들이 지분(그/녀들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나눠가지고 있는 건물을 위로의 의미를 담아 싸게 팔았던 것. 순은 준의 죽음 이후에 남은 각종 보험, 연금 등으로 그 건물을 샀다. 그리고 그 건물을 통해 수입(다른 누군가에겐 지출일 것)을 얻고 있다.
준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므로 순에게는 다달이 연금이 나오는데 그게 부족한 걸까. 노후가 걱정되는 걸까. 아니면 잘 보관했다가 자녀들에게 넘겨주고 싶은 걸까. 설마 투기 욕심이 있는 걸까. 나는 궁금하다. 1가구 2주택이냐, 1주택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정말 얼마나 부양자 역할(화폐로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건지 가늠하고 싶다. 그리고 화폐로 기여하는 것과는 다른, 나의 몫이 무엇일지 좀더 ‘감’을 잡고 싶다.

 

순이 돈을 벌라고 얘기할 때 나는 적당히 눙치는 방식으로 화제를 바꾼다. 얘기를 나누기 위해 넘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순의 바램, 내가 편안하게, 넉넉하게, 멋지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고 믿음을 얻고 싶은 바램을 나는 존중한다. 존중이라니?! 얼마나 고마운 바램인가. 그러나 그 바램이 ‘돈을 버는’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는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어 조금 진지하게 순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그리고 순과 나의 관계를 깊어지게 하기 위한 나의 몫을 찾아보고 싶다.
 
 ②

순은 나를 낳고 길러준 엄마다. 자녀들의 삶에 크게 간섭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기대가 높은 편이기도 하다. 2년 전 남편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둘은 서로 무척 아끼는 편이었다. 지금도 가끔 무덤 앞에서 울곤 한다. 순은 오름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늘 다니는 곳이어도 늘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야생화를 집에서 키운다. 종류가 매우 많다. 책을 사서 야생화 공부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일(임금노동)을 하지는 않는다. 자원활동을 하는 곳이 두 곳 있다. 생활비는 공무원연금, 건물 임대료로 충분히 쓰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럿 지낼 때는 요리하는 걸 즐겼던 것 같은데 집에 혼자 지내면서는 대강 먹는 날이 많다고 한다. 청소는 꼼꼼히 하는 편이다. 집이 늘 깨끗하길 바란다.(같이 살 때 힘들었다. ㅡ,ㅡ)
나는 대학 졸업 이후 순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단체활동을 시작했고 벌써 3~4년이 됐다. 기대는 조금 옅어진 것도 같지만 여전히 남아있고 가끔 서로 싸우는(내가 짜증낼 때가 많다.)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단체활동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소득이 적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순에게 돈을 보내기엔 빠듯한 것도 사실이다.(그래도 4년째 돈을 보내고 있기는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통화를 하고 일년에 두 번 정도 같이 지낸다. 내가 지금 사는 집은 전세고 전세금은 모두 순이 부담하고 있다. (아, 내가 250만원 맡겨놓은 건 있다 ^^)

 

 ③

이번 추석 연휴에 인터뷰를 해볼까 한다. 내려가기 전에 미리 전화로 인터뷰 의사를 확인한다. 인터뷰라는 ‘형식’을 강조해서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로 해보고 싶다. 조금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 늘 나누던 얘기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알리바이다.(호칭이 고민된다. 이름을 부르면 오히려 ‘진심’을 말할 핑계가 될 수도 있을 듯한데 너무 어색해서 힘들 것도 같다.) 마루에서 녹음기를 앞에 놓고 두 시간 가량 진행한다. 그리고 인터뷰가 더 필요하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한 번 더 진행한다.

 

 ④

# 이사 참 많이 다녔지? 지금 사는 집에서 산 게 그래도 벌써 20년 돼가네? 처음 집 샀을 때 기분이 어땠어?

# 지금 사는 집은 어때? 이런 게 좋다, 이런 건 불편하고 싫다, 이런 얘기. 집에서 하는 일들은 어떤 게 있지? 어떤 걸 하는 시간이 제일 맘에 들어?

# 2년 전에 집을 또 한 채 샀잖어. 그때는 어떤 기분이었어? 지금 사는 집하고 새로 산 집하고 어떻게 다른 것 같어?

# 새로 산 집 빌려주고 임대료는 얼마나 받지? 그건 지금 어떻게 쓰고 있어?

# 마당 넓은 집 가고 싶댔었잖어. 언제쯤 가면 좋겠어? 혹시 이사가보려고 준비하는 거 있어?

# 딸은 집 마련할 준비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잖어.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어? 만약 딸이, 낡고 좁은 집에서 살아도 내버려두라고 하면 어떨 것 같어? 계속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

# 그런데, 집에 기억도 참 많이 숨어있잖어. 지금 생각나는 것들 있어? 집에 있을 때 남편 생각 많이 나?

# 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

 

사전에 찾아봐야할 정보나 자료는 생각나지 않는다.

 

※ 가족구성원에 대한 글을 쓸 때, ‘가족’이라는 조건과 긴밀한 글일수록, 엄마, 아빠와 같은 호칭을 피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그래왔지요. 이름의 한 글자씩을 따서 순, 준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글에서만 그렇지요. 익숙한 것들을 스스로에게 생소하게 함으로써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순간’들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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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2 12:59 2007/09/12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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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님의 [엄마, 집, 나 (숙제3-2)] 와 관련된 글. 인터뷰할 때 '전통'을 염두에 두면서. #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전통적'이라고 생각하는 법칙에 따르면, 신랑 측이 부동산을 가져오고(외부), 신부 측이 가구 등 살림살이(내부)를 가져온다. (215) # 한편 대개의 경우 결혼한 자녀나 독립해 정착하는 자녀가 주택을 마련할 때 부모의 재정적 지원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quot;부모님께서 첫 번째 전세금 2,500만 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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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열띤 슴 2007/09/12 23: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ㅜㅅㅜ 숙제 열심히 하고계시네요.
    2주 넘게 밀린 숙제를 어이할꼬...

  2. 미류 2007/09/13 16:5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제 얼굴 뵜는데 인사 못 나눴네요. 소개 들으면서, 가서 인사해야지, 생각했는데, 강의 들으며 꿍얼꿍얼 혼자 생각 굴리다가, 시간이 다 갔어요. 다음에는 인사 나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