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100331 터키

미류님의 [걷다 -100330 터키] 에 관련된 글.

# 히에라폴리스라는, 역시나 고대 도시 유적지를 둘러보고 유네스코가 사람들에게 개방한 파묵칼레 온천의 일부 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족욕. 예전에 호텔이 있었던 자리는 거무튀튀하게 변해있었고, 가이드의 말로는 죽은 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인간의 자연 파괴를 매우 우려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 히에라폴리스를 따라 걸으며 가이드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적지 인근의 산자락에 고급 별장처럼 보이는 곳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헬기장까지 있는 고급 별장이 맞다며, "있는 것들은" 그렇게 산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 여행 다니면 힘들겠다고 말을 걸었더니 "이건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에요."라고 한다.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사는 모습이 그렇게 다른 것도, 가이드라는 직업이 노동인 것도 모두 맞는 말이다. 그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운동은 그이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얻으며 다가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아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터키의 정치현실을 얘기해주면서 한국에서는 60~70년대에나 민주주의를 위한 '데모'가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는 걸 보며, 아마 운동은 그이에게 멀고 먼 '다른' 현실인 듯했다. 운동이 뭔가 잘 못하고 있는 거지.)

 

# 파묵칼레 온천 근처의 한 가게에서 쇼핑을 시켰다. 직원들이 한국말을 참 잘 한다. 전날 들렀던, 실크 양가죽(어린 양의 목덜미 부근의 가죽만을 이용해 실크처럼 얇고 부드럽게 만든 거라고)을 파는 곳도 그랬다. 이런 쇼핑을 해야 하는 건 떨떠름하다. 여행사와 모종의 커넥션도 있을 테고, 차분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조건도 아니다 보니, 충동 구매도 제법 있을 테고, 제품의 질도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후회도 남을 게다. 전날 들렀던 가게에서 눈에 확 꽂히는 가죽 자켓이 있어서 입어보기까지 했는데, 다행히도 가격이 꽤나 비싸서 안 샀다. 버스에 올라탈 때까지 고민이 되기는 했는데 버스가 막상 출발하니 안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표에 없지만, 미리 준비된 이런 일정은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보다가 사는 이들도 있기는 했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할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를 일.

 

# 숙소가 있는 악사라이까지 다시 줄곧 버스. 이번 이동 시간 중에는 이슬람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터키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 중에 매우 개방적인 곳이고 이런 데서 이슬람교를 충분히 이해하고 체험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과 함께. 이슬람교의 성립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 중 하나는 '오조육신', 다섯 가지 해야 할 것과 여섯 가지 믿어야 할 것이었다. 다섯 가지 해야 할 것은, 신앙 고백, 하루에 다섯 번 기도, 헌금, 금식, 성지순례다.

신앙고백은 고해성사 같은 건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알라 신과 그의 사도인 무함마드를 믿는다는 기도문 같은 걸 읊조리는 걸 말하는 듯하다. 예배를 하루 다섯 번 하는 건 많이 알려졌는데 그걸 알려주는 것이 아잔 소리. 동네마다 있는 사원의 확성기를 통해 사제가 뭐라 소리를 낸다. 한국의 창 비슷하기도. 아잔 소리가 들리고 다음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만 기도를 하면 된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해안가와 산길만 달리다 보니 별로 들어보지는 못했는데, 좀 괴롭지 않을까? 매일같이 어디에서나 다섯 번이나 그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도, 익숙해지면 그냥, 그냥 그런 거겠지? 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카트라고 말하는 헌금에 대한 것. 의무는 아니라는데, 일종의 사회보장기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교회처럼 목사 월급이나 교회 증축하는 돈으로는 절대 사용 안한다고. 뭐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모인 돈으로 빈곤층 의료비 지원이나 교육비 지원 등을 한다고 한다. 사원은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해서 짓거나 돈 많은 갑부가 지어서 기부하거나 그러고, 자카트위원회 같은 것이 있어서 지원금의 사용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스탄불에 있는 슐레이마니에 사원은 여전히 판자촌들이 밀집한 동네에서 사원의 원래 정신을 살리고 있다는 말도 슬쩍 덧붙인다. 괜히 끌린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가까이에서 직접 느끼지 않고는 잘 못 믿겠다.

금식은 라마단이라고 역시 많이 알려진 것인 듯. 재미있었던 건, 금식 기간에는 새벽 두세시쯤 동네마다 크게 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해 뜨기 전에 얼른 음식을 챙겨먹으라고 알려주는 거다. 그렇게 한달의 금식 기간이 끝나면 동네 사람들에게 돈을 조금씩 걷어간단다.

성지순례는 평생 동안 한 번은 다녀와야 하는 거라는데, 돈도 많이 들고 시간을 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 가족 중 한 명이 성지순례를 떠나고 돌아오는 일이 집안의 엄청 큰 경사라고 한다. 그래서 공항이 북새통이 된다고 한다. 여섯 가지 믿을 것은, 알라 신, 무함마드, 천사, 꾸란, 인샬라, 내세인데, 천사를 믿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영 감이 안 온다.

다른 종교들도 비슷한 기준들이 있을 텐데 잘 모르고, 지켜지는지도 제각각이겠지만, 이슬람교만 놓고 보면, 이슬람 문화권이 아닌 곳에서, 믿고 싶어서 믿는 건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도 이슬람교도들이 많다는데 그이들은 어떻게 신자가 됐을까.

 

# 점심은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곳에서 먹었다. 지역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아편가루를 뿌린 요거트가 유명한 지역이래. 3달러 내고 먹어봤다. 뿌듯한 군것질. 큭.

 

# 악사라이 가는 길에 지나친 콘야라는 도시는 이슬람교의 한 분파인 메블라나 교단이 자리잡은 곳. 세마라는 종교적 춤(춤이라기보다는 수도행위의 일종이기도 할테고)이 유명한 교단. <터키의 유혹>에는 가만히 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숙연해지고 환희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궁금. 하지만 지나치는 길. 흑흑. 다닐수록, 터키는 너무 넓고 일정은 너무 빠듯하다는 아쉬움이. 춤을 출 때 오른손은 하늘로, 왼손은 땅을 향하는 동작은 타로카드의 메이저 아르카나 중 마법사 카드와 같은 동작.

 

# 부르카, 차도르, 히잡, 니캅. 여성들이 사용하는 베일의 종류. 터키의 초대 대통령은 공직에 있는 여성들의 종교적 의상 착용을 금지했다고. 그리고 저항을 위해 히잡을 착용하는 여성들도 있다고 한다. 미나레, 미흐랍, 밈베르, ?(흐르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들). 이슬람 사원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 첨탑은 보통 한 두개, 성지 메카의 최고 사원 하나만 첨탑이 일곱 개. 블루모스크는 여섯 개. 그외 네 개인 곳도 꽤 있다. 지붕은 꼭 돔 형태가 아니어도 되나 보다. 이슬람 사원들은 모두 지붕이 돔 모양일 줄 알았는데, 교회는 뾰족 지붕이고, 그런데 전혀 아닌 듯.

 

# 악사라이의 호텔은 꽤나 괜찮아서 일행들이 모두 반가워했다. 그 전 숙소들도 모두 묵을 만했는데. 숙소에 대한 비난들이 약간의 위화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이 곳에서는 인근의 작은 도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는데 높은 건물이 없고 아기자기한 집들에서 소박하게 새어나오는 불빛들로 야경이 매우 좋았다. 어떤 사람은 이걸 두고, 야경은 서울만한 데가 없다며 아쉬워했지만, 서울의 그 정신 사나운 불빛이 정말 좋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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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22:13 2010/04/0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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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걷다 -100401 터키

    2010/04/06 23:26

    미류님의 [걷다 -100331 터키] 에 관련된 글. # 아침 기상 시간이 조금 여유로웠다. 평소대로 일어난 엄마랑 나는 호텔 뒷편의 공사장(아마도)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걸었다. 나긋나긋한 느낌의 땅. 푹신푹신했다. 이럴 때 엄마 팔짱 꼭 끼고 이쁘게 산책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카파도키아로 가는 날이다. 터키의 관광 명소 3위 안에 꼽히는, 보통 1위인 곳이라고 한다. 매우 넓은 내륙의 지대인데, 바다속에서 쌓인 사암층 위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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