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를 통해 풀고싶었던 혹은 헤아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1. 

 

작년 한해 복지국가 논쟁이 펼쳐지면서 '사회권'이라는 말이 유행. 하지만 지금까지 인권담론에서 만들어져온 내용들이 충분히 녹아있지 않은 듯한 아쉬움 또는 그 정도에 머물고 있는 인권운동의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 사회권과 관련된 교육을 하거나 투쟁에 함께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의 공허함. 권리라고 주장하는 말이 어디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가늠되지 않고 결국 선언이나 규약으로 회귀(그래서 권리라는 되뇌임과 침해의 현실 사이를 동어반복으로 오가는)할 때, 권리로 여겨지지 않는 뻔한 이유(그래서 흔히 당사자로 불리는 집단에게조차 인권은 경찰폭력에 대한 분노 정도에 그치는)에 본격적으로 도전하지 못한 채 겉돌 때, 인권담론이 현실에 끼어들지 못한 채 존중보호실현의 의무, 권리에 기반을 둔 접근 등을 설명하는 것에 그칠 때, 느낄 수밖에 없는 갑갑함. 담론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이기보다 현실에 개입하는 힘의 문제인 듯. 그런 면에서 '사회권'은 여전히 빈곤과 불안정노동이 심화되는 현재에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듯.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개입 또는 기여하면 좋을지 찬찬히 찾아가기.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지향으로, 인권을 끊임없이 체제의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는 의지는 있음. 인권선언 역시 체제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권'은 -아마도 위와 같은 이유로- 체제의 현실과 진공 상태에서의 권리 주장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듯. 체제와의 연관 속에서 사회권을 말할 수 있는 담론이 필요. 또한 체제는 단순히 이념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되고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다는 점에서 구체성을 띨 필요가 있음. 일단 사회권에서는 대표적인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을 듯. 물론 상호의존적이며 불가분의 인권은 권리 영역과 정책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방식으로 살피기 어려움. 그래서 더욱 인권적 접근의 다양한 방식들을 시도할 필요가 있음. 이것은 사회권이 권리가 아니라고 내쳐지는 실제에 접근하는 것이기도. 

 

인권이 이론적 근거로부터 발원한 것이 아닌 만큼 '사회권' 세미나를 통해 이를 곳이 이론은 아닐 듯. 많은 공부를 거쳐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쩌면 결국,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지 상상하고 사유하고 호소하고 선동하기 위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지금까지 세미나 한 내용 중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싶은 것들 1. 

 

한국에서 사회권의 역사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사회'권'이, 인권이 그러하듯, 저항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은 분명. 적어도 유럽을 중심으로 한 근대의 역사에서는 확인되어왔다. 그런데 한국은? 사회권이 이렇게나 권리로 여겨지지 않는(물론 권리로 여겨지는 지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인권 전반이 그런 듯.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일부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중심으로 인권담론이 형성. 그러나 사회권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사회주의 운동이 한국전쟁과 분단을 전후로 단절되고, 수십 년 동안 지극한 반공주의가 이어진 탓도 있는 듯. 그러면서 오히려 사회권과 관련된 헌법 조항이나 법률 제정, 제도 정비 등이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시도된 점. 사회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더라도 이어져온 다양한 투쟁들의 역사를 복원하되 맥락을 드러내야. 

(이런 역사가 현재의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후에 살펴보면 좋을 듯. 이를테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권리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압도적인 배경이 경제위기로 인한 실업의 급증이었다는 점에서, 이전부터 생활보호의 '대상자'였던 사람들이 권리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는 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음. 혹은 여러 운동들에서 사회'권'이 어떻게 이해되고 쟁점이 되고 투쟁의 계기가 되는지 또는 그렇지 못한지도 살펴보면 좋을 듯.)

 

사회권과 빈곤. 빈곤의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 자유와 평등,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일부러 빈곤 철폐나 해소, 맞선다 등의 표현을 쓰지 않고 있음)가 사회권 세미나를 하는 궁극적 목표일 듯. 그런 만큼 풀어야 할 것도 많겠지만, 일단 개인책임-근로의무-발전주의에 대해 사회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혹은 사회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리해보면 좋을 듯.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끊임없이 돌려보내는 것은 사회권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논리. 자기가 먹고 사는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리고 특히 일을 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리고 저마다 잘먹고 잘살려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국가/사회가 발전한다는(덧붙이면, 발전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잘먹고 잘살게 된다는) 논리 혹은 맹신의 풍경. 이것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 논리들과 인권과의 긴장도 살피면서. 빈곤에 대해서 사회권은 무엇을 지향하는 담론이 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 

 

불평등이라는 스펙트럼과 최저/기본/적정선이 만들어내는 이분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사민주의 국가들이 건강수준(특정 지표로 평가)은 높지만 건강불평등을 따지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불평등과 기준선은 개념적으로도 다르다. 기준선은 다양한 의미로(권리의 실현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제도의 구체적 설계로서, 국가의 구체적 의무를 강제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등등) 인권에서 의미를 가짐. 그러나 인권은 객관적 지표로 환원될 수 없음. 최저선이 아니라 적정선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고, 맞지만, 어떤 선이 그 자체로 인권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우며, 사회권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자원과 전 지구적 정의 등을 고려할 때 어떤 선 자체를 뒷받침하기는 어려울 듯. 그러나 기준선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함. 평등에 대한 지향만으로는 추상성을 극복하기 어려움. 이 관계에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사회권에 늘 따라붙는 의문들과 관련이 높다. 인권'침해'가 암시하는 바 때문에 국가에 의무가 있는가, 있더라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가, 또한 과연 실현될 수나 있는가, 라는 의문들)

 

소득보장과 노동의 관계. 흔히 복지 정책은 기초생활보장으로 대표됨. 전 세계적으로도 복지정책은 소득보장 정책(현금급여 중심)을 중심으로 논의됨. 소득은 주거, 교육, 건강 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침. 노동은 소득의 원천으로 설명됨. 이 관계에서는 노동을 의무화하는 담론을 벗어나기 어려움. 노동을 그 자체로서 권리로 다룰 필요가 있음. (물론 노동권은 오랜 역사를 가졌고 각종 규약에 명시됐을 뿐만 아니라 영향력 있는 국제기구, 구속력 있는 법 제도 등을 갖췄으나, 후자로 올수록 노동을 의무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연관성이 커짐)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소득보장의 의미를 인권적으로 설명할 '다른' 프레임 필요.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대부분 시장에서 상품으로 구매해야 하는 현실에서, 소득보장은 중요할 수밖에. 그러나 그 체제를 승인할 수는 없는. 

(아무래도 사회권 영역 전반을 살피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노동/소득-교육-주거-건강을 중심으로 이후 세미나를 진행하면 좋을 듯하다는. 영역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힘도 있지만, 영역별로 권리/사회정책의 성격이나 내용의 차이들을 살펴보면 전체적인 그림이 더 잘 그려질 듯도 하고) (한편, 이 문제는 '자유'의 문제로 연결되기도 함. 주거비보조제도를 현금으로 지급할 것인지, 주택바우처로 지급할 것인지의 문제.)

 

(복지정책의 보편성이 인권의 보편성을 근거로 주장되는 경향도 주의해서 짚어볼 필요 있음. 약간 긴장. 천천히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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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1 00:03 2012/04/0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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