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힐링한 날

오늘은 도무지 광장에 나갈 몸이 아니었다. 세월호 행진을 같이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주중에 몰아친 몸과 맘의 피로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몸이 그러니 아무 생각도 없어지고 오히려 광장에 나가고 싶어졌다. 박근혜를 당장 끌어내려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일리야. 그가 내려오건 말건 나부터 살아야겠는데 말야. 나는 조금 힐링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한 이상으로 힐링 했다.

 

세월호 행진이 청운동사무소 골목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접어들 때였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그 자리...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들과 침묵으로 밤을 샜던 자리. 유가족들이 경찰에게 사지가 들려 길가에 버려지던 자리. 내 발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흙밭에서 잠을 청했던 그때. 비오는 날 덮을 비닐 하나 없이 농성을 시작했던 그날. 그리고 숱한 기억들...

내가 울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눈물을 삼키고, 옆에서 우는 부모들을 봤다. 그/녀들도 그 어느때를 떠올렸으리라. 중국인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길을 유가족만 막아서는 경찰을 향해, 우리가 중국으로 국적을 바꾸면 보내줄 거냐며 항의하기도 했던 사람들. 그 자리를 우리는 주권자의 이름으로 막힘 없이 넘어섰다.

그러나 내가 벅찼던 것은, 그렇게 막히던 자리를 이제 넘어섰다는 감격이 아니었다. 그때 그/녀들이 그 자리를 함께 넘어섰기 때문에 이제 길이 열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법원이 열어준 길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벽에 부딪치며 깨졌던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열어온 길이다. 물러설 수 없었고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만들어온 길. 오늘 행진은 청와대 100미터 앞에서 멈췄지만 이미 우리는 청와대를 흔들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더욱 분노했다. 이렇게 흔드는데도 청와대에 앉아있는 박근혜는 이제 퇴진으로도 구속으로도 부족하다고. 수갑을 채우고 광화문광장에서 무릎을 꿇리고 싶어졌다.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막힌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삼보일배를 하다가 막혔던 바로 그 자리에 꿇어앉히고 싶어졌다. 

 

오늘은 지난주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왔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모두 단단히 화가 나있다. 추악하고 뻔뻔하고 엉망진창인 권력이 우리의 삶을 이렇게 흔들어왔다는 사실에. 저런 권력 때문에 누군가 죽어야 했고 애도는 핍박받아야 했고 아파도 숨죽여야 했고 멸시당해도 받아들여야 했다니... 

누군가는 지금 거리에 나온 우리도 그때 방관자거나 가해자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두려웠던 것 아닐까. 혼자 발버둥치는 것 외엔 살아남을 방법을 알 수 없었으니 그렇게 살아왔다. 함께 살 방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제 그게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닐까.

이렇게 모여서 외치니 권력이 움찔하기도 한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힐링 받은 것처럼, 사람들도 광장에서 거리에서 힐링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크게 변하지 않은 일상의 고단한 하루가 이어지지만 주말이 되면 제대로 쉬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시간이 그냥 잠시 취하는 마약주사 같은 것이 될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많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예전에도 유가족들은 7시간을 밝히라고 했지만 함께 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결국 특조위가 강제로 해산당했지만, 7시간을 숨기는 정부를 향해 분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친다. 당장 밝히라고, 당장 구속해서 수사하라고. 함께 외치면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수첩을 통해 김기춘이 끌려나오는 것처럼.

 

두려움은 박근혜와 체제의 부역자들의 몫. 박근혜가 버틸수록 체제는 더욱 크게 흔들린다는 걸 다시 깨우쳐준 오늘 집회 후 가장 바쁜 것은 비박과 국정원 되시겠다. 굳이 더 바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굳이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는 힘 들여 집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회에 나와서 힘 받는다는 거.

나는 폭발 일보직전으로 나를 몰고갔던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조금 보게 됐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리라. 주말의 힘으로 일상도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거. 반복되는 무기력이 아니라 강해지는 자신감으로.

그러니 정말 박근혜를 당장 끌어내리기 위해서 모이고 또 모일 수밖에.

오늘도 나는 세월호 유가족들 덕분에 힐링 했구나. 미안하다고도 고맙다고도 아직은 말못하겠고 일단 오늘 하루를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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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02:18 2016/12/04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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