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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시대

 

1. 최강서 열사

 

 2012년 12월 박근혜 정권이 시작되자마자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 열사가 자결을 하였다. 85호 크레인에 김진숙 동지가 올라 309일간의 고공농성을 하였고, 계속되는 희망버스에 힘입어 한진중공업 회장 조남호는 국회권고안을 받아들여 정리해고자를 1년후 재고용하는 조건으로 노.사 합의를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선별복직 이었고, 1년후 복직한 92명의 정리해고자조차 강제휴업을 당했다. 5건의 수주는 모두 필리핀 수빅으로 넘기고 600여명의 노동자들이 일감부족으로 장기휴업을 하고 있다. 노조는 김진숙 동지 고공농성 당시 배신했던 채길용을 필두로 하여 어용노조를 만들어 조합원을 빼가고, 노조에게는 158억의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노조파괴에만 혈안을 올리고 있다. 회사는 노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비조합 영업을 강제로 폐쇄시키고, 지회사무실을 12월 26일까지 공장 밖으로 이전할 것을 두 차례나 요구하고 있었다. 후에, 2013년 9월 김금식 동지가 이러한 문제로 또 자결을 했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는 적대적 계급이며 원수인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사회적합의의 결과였다. 조남호 한진자본은 겉으로는 여론에 떠밀려 합의를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기업이미지를 위해 노력하는 척 하더니 희망버스의 열기가 점차적으로 줄어들자,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선별복직. 손배가압류. 강제휴직 등으로 오로지 노조파괴에만 골몰했다. 그 악랄한 한진자본이 최강서 열사와 또 김금식 열사를 죽였다.

 

 

 

2. 이운남 열사

 

 이운남 열사는 2003년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을 만드는 발기인이었고 초대조직부장을 맡았었다. 2004년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박일수 열사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분신을 하고, 이운남 열사는 충격이 컸다고 한다.

 

<현대어용노동조합은 그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은 하나다 라는 원칙은 말장난 일뿐 열악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박일수 열사의 유서 중에서)

 

  노동자는 하나다? 과연 노동자는 하나인가? 이 말을 또 윤주형 열사 추모1주기 묘지에서 들었다. 그를 죽인 가식적인 자들은 또 ‘노동자는 하나다.’ 라는 말로 우리와 자신들과 같은 편 인척 한다. 그들과 우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민주노조인척 하면서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용 짓거리를 하는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의 관료들과 그들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같은 편이 될 수 없다. 같은 노동자 이면서 부르주아지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와 하나가 될 수 없다.

 

 이운남 열사는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않게 하기 위해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 때 세 동지와 함께 크레인에 오르며 저항했지만, 회사 경비대 용역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며 크레인에서 끌려 내려와 구속됐다.

 

 석방되고 자신이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테러 때문에 환영과 환청이 들렸다고 한다. 병원에서 1개월 정도의 격리치료를 요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입원은 좋지 않다는 생각에 동료들은 입원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에 한 동안 시간이 지난 뒤, 해고자 집행부로 2년을 일했지만, 노조는 너무 돈이 없었고. 가난했던 그의 동료들도 십시일반 지원했지만 생계를 이어 가기에는 택도 없었다. 이운남 열사는 2년 후 택배일과 택시기사 일을 하며 버텼다.

 

 생계를 위해 택시노동자로 일하다가 최근 마음의 병이 도졌다고 한다. 고인이 일했던 화진교통 사측은 최근 중앙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난 택시해고자들에 대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연판장을 다른 택시노동자들에게 돌렸다. 이운남 열사는 현대중공업 자본이 자신에게 저지른 폭력적 따돌림이 악몽처럼 살아나는 걸 느꼈다고 했다. 고인은 이에 항의하며 택시회사를 그만뒀다.

 

 이운남 동지 자결 하루 전인 12월21일 현대차 자본이 파업하는 비정규조합원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한 사건 소식을 들었다. 같은 날 한진중공업 자본의 노조 파괴 압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강서 열사의 소식까지 전해졌다.

 

 현대차, 한진중, 화진교통 자본의 가차 없는 폭행과 노조 파괴 행위는 이운남 열사에게 현대중공업이 저지른 모든 폭력 만행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라고 주변 동지들은 말한다. 이운남 열사를 마지막으로 본 증인들은 이런 사건들이 마치 자신 탓인 양 매우 괴로워했다고 한다.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주변 동료들이 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으나 하필 토요일이라 입원자리가 없었다. 고인은 결국 제대로 치료 받지 못 하고, 자신이 겪었던 정신질환의 이름조차 알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참조: 이운남 열사의 동료들의 글, 열사 이운남은 아프게 죽었다. 교선부장님의 글

http://dwpu.jinbo.net/bbs/zboard.php?id=member_board&no=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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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프롤레타리아네크워트 뉴스  http://blog.daum.net/pnn518/11297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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