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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철도노조 민주화 지원연대 투고

 

내가 철도노동자들에게 빚진 두 가지 이유

 

 

그때가 언제던가?

94년도 그 유난한 더위가 시작되던 6월에 나는 군 복무 중이었다.

3주간의 동원예비군훈련 조교로 차출되어 짐 싸들고 훈련장에서 먹고 자고 하기를 며칠(사실 나는 방위다). 저녁밥 먹고 어슬렁거리며 뉴스를 듣는데, 이 웬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상상도 못한 철도노동자들의 연행과 파업소식, 그리고 이어지는 선로위에 서버린 열차의 모습. 가슴이 꿍꽝꿍꽝 뛰기 시작하였다. 채널을 돌리며 전방위적 시청을 하였다.

사건의 전말을 대충 알고 나서는 그놈의 짬밥 때문에 뉴스를 못 본 불쌍한 운동권 쫄다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들도 궁금해 하였다.

다음날은 오전 교육도 땡땡이치며 TV만 보았다. 연이은 전지협 소속 서울/부산지하철의 공동파업.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행히 그날 24일은 금요일-우리도 집에 갔다가 월요일에 복귀하면 되었다. 방위를 선택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퇴근 후에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그 뒤 한 주간 저녁때만이라도 투쟁에 함께하고자 하였지만, 조계사에 갔다가도 칠거라는 이야기가 나와 먼저 떠야할 때는 내 자리를 두고 오는 허함을 느껴야만했다.

그렇게 철도노동자에게- 작게는 나에게도- 첫 번째 빚을 남긴 94년은 지나갔다.

그 뒤 나는 제대를 했고 빛나는 백수의 시대를 거쳐, 지금은 궤도노동자로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내가 ‘철도노조 민주화 지원연대’를 알게 된 것은 꽤 되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서 회원가입원서도 돌렸고, 많은 이들이 가입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입을 하지 않았다. 비록 성의문제이지만 당시 나는 비자발적 실업상태에 있었고, 속한 모임에서 회비 불량납부자였다.

이렇게 또 한번,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빚을 가지게 되었다.

집행위원장님의 총선 출마와 임단투 등으로 미루어졌던 ‘지원연대사업’이 이제는 정상화된단다. 조합비인상을 계기로 촉발된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지원연대’를 끌어당기고 있다.

또한, 숨죽여 있던 것 같은 철도의 현장에서의 투쟁은 나에게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과 그로인해 다시금 ‘지원연대’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철도노조 민주화는 철도 4만 노동자의 앞날만이 걸린 문제는 아니다. 전형적인 어용, 귀족적 작태를 보여 온 세력과 양심적 민주노조세력과의 한판인 것이다. 사실 외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고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서 있을 자리가 그 곳이라면 그 곳에서라도 최선의 싸움을 하는 ‘지원연대’회원이 되도록 하자.

 

이크, 아직 가입원서도 안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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