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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동자의힘 투고 - 노조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자

 2002년 노동자의힘 투고입니다.

현장 대의원으로 세 번째 였고, 현장조직을 만들기 위해 뛰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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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자

 

 

지하철 대의원의 임기는 약 1년이다. 정확히는 차기 대의원 선출 전까지이다.

올해는 15기 대의원으로 지난 4월에 시작되었고, 소문으로는 12월에 대의원 선거가 있다고 하니 8개월 짜리 대의원인 셈이다.

며칠 전 9차례의 대의원대회가 있었으니, 짧은 기간동안 적지 않은 대의원대회를 치렀다. 그러나 지난 10월 말 정기대의원대회와 7차 임시대대가 성원 부족으로 안건을 논의조차 진행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반기에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과 배일도 위원장(솔직히 위원장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간에 안건 상정과 처리 등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대의원대회가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끝나버린 과정이 있었다.

대의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대의원대회는 위원장을 위한 말 잔치였을 뿐이었다. 대의원들이 안건을 제기하면 '내가 소집한 대회이므로 논의할 수 없다. 기타에서 제기해라, 대의원들이 서명해서 소집요구해라' 식으로 무시하는 위원장의 주장은 '또 다른 거수기'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었다.

 

대의원들도 '4개 지부 대의원 모임', 혹은 '차량지부 대의원 모임'등을 통해 나름대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작전을 짜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대의원 180여명이 위원장 하나 못이기냐?'고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지난 3년 간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대의원대회에서의 대응의 문제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자기 실천 구조를 가지려 하였던 것이다.

 

물론 상반기 중에는 소식지 작업, 집행부 총사퇴 권고 결의 등의 활동을 나름대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난 02년 임단협안 부결투쟁 및 불신임 투쟁이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민주파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공투본이 해소되면서- 대의원만이 아니라 서울지하철 민주파 활동가들의 활동이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배일도와 같이 회의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배일도가 의도하는 수순대로 결국 진행될 것이고, 정당성만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대로 계속 갈 것인가?

얼마전 공사 등에서 제출되었다는 '고강도 구조조정' 문건이 나돌았다. 내가 속한 전동차 중정비 분야를 용역화하고 475명을 감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70%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 문건 내용은 아직 현장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괜한 불안감만 조성할 수 있다'며 협조주의적 현장간부들은 선전과 토론을 기피하고 있었다.

몇 군데 조를 대상으로 쉬는 시간에 가서 1시간 연장운행과 노동시간 단축시 개악안과 더불어 공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반응을 확인하였다. 물론 대의원으로서 나는 어떻게 하겠다, 조합원들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과 함께...

 

조합원들은 '니가 1순위다'며 서로 장난도 치지만,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때 '자격증이라도 따야지' 하는 한 선배의 탄식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이제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니 싸우는 시늉이라도 우리가 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합원 동지들은 많지만, 그 전망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자신 있지 않다.

 

지하철 현장 어디를 다녀봐도 배일도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런데 선거만 하면 당선된다. 문제는 민주노조를 지향한다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밖으로는 발전노조 파업투쟁의 과정 및 결과에서 4.2총파업철회와 현장탄압현실을 보며 또 한번 실망하고, 안으로는 투쟁의 전망을 올바로 밝혀내고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사의 근태감사 등 현장 탄압, 작업과 관련한 불합리한 문제 등에 대해 조합원들은 이제 더 이상 현장간부들에게 제기하지 않는다. 현장간부들도 문제를 발굴하고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우울한 이야기만 했다. 그럼 이제 서울지하철은 재기불능인가? 아니다.

 활동가들부터 활동을 재조직화하려 하고 있고, 그동안의 노동조합운동을 재점검하고 있다. 아직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장 활동가들의 결집은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고, 조직적 실천활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현장은 실천의 의지와 전망을 가지고 조직할 때, 비로소 조직될 수 있다. 자기 현장과 분야를 넘어서 서울지하철 전체,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관점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을 조직할 때 현장 조합원들은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3년 간의 경험은 노동조합 체계 안의 투쟁이 얼마나 우리를 스스로 교란하였는가를 보여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장간부가 아닌 현장활동가로서의 활동을 만들고, 노동조합 체계에 의존적이지 않은 독립적인 투쟁의 구심을 이제는 만들어 가야 한다.

 

지난 비대위와 공투본의 경험을 넘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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