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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동자의힘 투고-구조조정 저지 투쟁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려한다!

서울지하철노조의 구조조정 저지투쟁

 

 

손승권 |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부장

 

서울지하철은 지금 투쟁중이다.

도시철도의 경우와 같이, 서울메트로 김상돈 사장이 일방적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하고, 그에 따른 인사발령을 강행하려하기 때문이다.

 

좀 더 멀리 살펴보면 지난해 말, 서울지하철 노사는 창의교육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는데 넉 달에 거쳐 시간당 2만원씩 22시간 근무외 교육을 합의했다. 도철이 지급받은 교육비를 맞춘다는 명목이었다. 2008년 1월 2일 사장은 신년사를 발표하였고, 다음날 간부급과 본사 직원을 대상으로 창의혁신경영 교육을 진행하였다.

 

그 내용은 그동안 간헐적으로 공사가 주장하는 인사, 조직 제도의 전면적 개편과 구조조정의 내용이었다. 아울러 ‘이러한 혁신활동을 시비하는 자는 철저히 불이익 조치하겠다.’며 공사측은 강도높은 강행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사장의 의지는 1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서 현 정원의 20%인 2088명을 2010년까지 감원하겠다는 발표로 이어졌다.

 

한편,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지난 3월 초 선거를 치렀다. 이전 집행부는 노사협조주의 집행부로 도철과의 임금격차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주 5일제에 따른 인원충원을 포기하고, 전임자 축소 등 단협 개악을 했었다. 이들은 1월 도시철도의 파업국면과 내부의 투쟁 요구에 본사집회 등 투쟁일정을 배치하였으나, 이미 많은 조합원들은 노사협조 집행부가 현재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선거 결과는 민주진영의 다양한 세력들이 규합된 단일후보가 완봉승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집행부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선거 공고상 임기 개시일을 한 달이나 일찍 시작한 15대 집행부는 임기 일주일만에 이사회 저지 투쟁을 빌미로 16명이 직위해제되었다. 이외에 필자를 포함한 7명이 부당징계에 대한 사장실 항의방문을 이유로 해임되기도 하였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지난 10년간의 노사협조주의-실리 집행부와 민주파 집행부의 부침이 있었고, 조합원이 전반적으로 보수 안정화되었다는 평가가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생존권의 문제는 조합원들을 단결하게 하였다. 위원장의 단식농성에 이은 1차 조합원 총회는 2000명의 조합원이 운집하여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었고, 2단계 투쟁중 2차 조합원 총회는 2500명의 조합원이 결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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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합원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집행부가 오랜시간 같이 활동해 온 처지가 아니기에 상호 입장에 대한 배려와 토론을 채 하지도 못하고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올 임투와 구조조정 분쇄투쟁의 연결고리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도 진행하지 못했고, 필수공익사업장 문제는 섣부른 쟁의일정을 발목잡고 있다.

 

공사는 조직개편을 통하여 684명을 감원하고, 신사업 등에 180명, 퇴출제인 서비스지원단에 100여명을 발령내겠다고 한다. 이후 명예퇴직을 활성화하고, 분사화 방식으로 업무와 인원을 아웃소싱하겠다고 한다.

 

이번 인사발령의 규모와 강도가 도철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도철의 경우, 창의혁신조직에 대한 동의가 전제된 노사협의과정이었고, 우리는 아직은 공사 일방의 주장이라는 점이 그 하나이다. 다음은 도철은 근무형태 변경부분까지도 포함되었고, 노동조합이 이를 방기하였다는 점은 우리의 조건과 다르다는 점이다. 도시철도의 구조조정이 안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서울지하철의 구조조정은 시작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노동조합은 부당불법 인사발령에 대한 완강한 투쟁전선을 배치하되 한편으로는 대 서울시 투쟁 전선 설치와 08년 임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저들의 분석처럼 궤도 사업장중 외주화, 용역화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서울지하철이다. 그동안 지켜온 권리가 많은 만큼 앞으로 자본의 공격도 밀도있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쉽사리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노동조합과 이를 지지 지원하는 9500여 조합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초기의 혼란과 불안, 동요는 없다. 노동조합이 ‘싸워주는 것만도 고맙다.’는 한 조합원의 말처럼 노동조합이 저들의 공세와 회유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일시적 후퇴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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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동자의힘 투고- 서울지하철 현장은 지금...

2003년 노동자의힘 투고입니다.

대구참사 이후, 강화된 작업과 감사에 무기력한 모습, 파병 반대 파업 결의에 대한 제 결정에 대한 후회가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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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현장은 지금…

 

대구참사 이후 지하철 현장은 분주하다.

 

여론이 주목해서인지 뭔 놈의 전동차 사고는 그리 많이 나는지, 본사에서 고장 사고 등을 보도한 언론기사들을 모아 현장에 보낸 공문을 보니 나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이 틈을 타서 온갖 감사가 현장을 누비고 있다.

하다못해 서울시의원들은 고귀한 손에 하얀 장갑을 끼고 먼지점검을 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감사를 들어오는 곳이 하도 많아 출근하면 "오늘은 어디 감사야?"하는 것이 요즘 일상이다.

솔직히 감사 약발도 이력이 나서 이젠 긴장도 되지 않는다. 다만 청소하는 것이 귀찮을 뿐이다. 얼마 전 명박이가 내가 있는 기지에 왔다. 전날 바닥에 페인트칠하고, 청소하는 모습하고는….

 

"이게 뭐하는 짓이요!" 라고 팀장에게 면박 한 번 주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떠한 행동도 준비하지 못했다.

요사이 감사관이 현장에 내려온다 하면 조합원들은 벗었던 장갑도 끼는 척하고 있다. 그럴 때 나는 고민에 빠진다. '난 안해!'하고 대기실에 혼자 들어가 있을 수도, 같이 현장을 지킬(?) 수도 없는 고민 말이다.

조합원들에게 악다구니를 써도 "소나기는 피해야지"하며 짓는 헛웃음에 더 뭐라 말할 수도 없고, 과·팀장들에게 지랄을 해도 미안하다며 그 때뿐이다.

 

물론 또 다른 현장 분위기도 있다.

지난 2월 말경 봉천역 전동차 고장사고와 관련된 신정검수 지회는 지회 단독으로는 처음으로 시청역 조합원 총회를 성사시켰다. 내구연한이 지나 습성차(=고장이 잦은)인 전동차를 운행 다이아(=일정)를 맞추기 위해 내보낸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서울시는 징계 수준까지 간여해왔고, 해당 지회는 총회와 1인 시위, 열차 소자보로 대응 투쟁방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현장투쟁은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노사협의회에서 풀자', '1차 징계 수준을 보고 대응하자'는 (비)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배일도 위원장은 저만치 건너 가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외치는 '현장탄압 분쇄'의 구호가 '징계(의 수준)를 낮추어라.'는 구호로 들릴 적이 많다.

물론 부당한 징계에 대해 징계의 양정을 낮추는 것도 현실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차 끝나고 2차 징계 전에 한 번 박아주면 한 단계 내려 갈 거, 두 단계 내려가겠지', '그거 어차피 풀려.' 하는 반복의 경험에서 나오는 능란한 전망이 아니라, 숨죽인 현장의 목소리를 키우고, 비집고 들어오는 현장통제·감시체제를 파열하기 위해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조합 활동의 기본이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고, 더 많은 작업장의 힘을 획득하는 것'일 때 민주노조의 경계가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현장마다 특성이 있고, 노동조합 집행력의 차이도 있다.

사실 내 현장에서 잘하지 못하고, 대항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 목에 걸려있다. 그러나 좀 더 열심히 하는 현장의 투쟁이 징계 자체의 문제가 아닌 현장탄압의 고리를 끊어나가는 투쟁이길 기원한다.

49%의 조합원들(배일도 위원장은 51%의 조합원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한다)을 현장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투쟁이 목마를 뿐이다.

 

며칠 전 노사협의회가 끝났다.

노사협조주의자들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동(현장)과 자본(공사)의 대립각을 조율하고 교란한다. 이미 서울지하철에서 노사협의회는 배일도라는 인물의 노동조합내 지위를 확인하여주는, 그리고 조합원의 분노를 통제-분노가 약할 때는 단협도 팔아먹는-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끌려간다. 배일도 위원장의 '협력·상생, 대화의 전략'과 다른 전략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투쟁은 독자적 발전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배일도에 의해 노사협의회로 수렴되어버린다. 기존의 노사합의마저 재합의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면서도, '노사평화적 관점'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차마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럼에도 여태 무능하다. 이제 노사협의회에 대한 우리들의 대응과 조직 방식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겠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이 '파병 반대를 위한 파업'을 하겠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지난 4월 10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위한 파업 등 투쟁결의 건'이 상정되었고, 찬성 31명, 반대 61명으로 부결되었다. 배일도 위원장은 대의원들의 발의로 안건을 다시 상정하여 줄 것을 요구하며, 흥분하기조차 하였다.

임시대의원대회가 있기까지 많은 대의원들은 고민스러웠다. '통과시켜 줄 수도, 부결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였다. 사실 작업장외의 사안을 가지고, 파업을 선동하는 세련된 정치 감각에 놀랍기도 했다. 인터넷 조사에 94%의 조합원이 파업 반대라고 했다. 아마 두 달간 현장 탄압에 방관하고, 개인성과급의 개별지급(이전에는 소집단별 지급이었다.)에 대해 방조·무대응한 집행부에 대한 질타일 것이다.

나 역시 반대토론을 하였지만, 마음은 가슴에 단 반전 버튼만큼 밝지 못하다.

 

이제 좀 더 자유로운 작업장을 만드는, 그 가운데 우리의 투쟁이 작업장의 경계를 넘나드는 투쟁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속에서 나는 싸운다.

나 자신과 그 모든 구속을 깨는 길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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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동자의힘 투고 - 노조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자

 2002년 노동자의힘 투고입니다.

현장 대의원으로 세 번째 였고, 현장조직을 만들기 위해 뛰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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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자

 

 

지하철 대의원의 임기는 약 1년이다. 정확히는 차기 대의원 선출 전까지이다.

올해는 15기 대의원으로 지난 4월에 시작되었고, 소문으로는 12월에 대의원 선거가 있다고 하니 8개월 짜리 대의원인 셈이다.

며칠 전 9차례의 대의원대회가 있었으니, 짧은 기간동안 적지 않은 대의원대회를 치렀다. 그러나 지난 10월 말 정기대의원대회와 7차 임시대대가 성원 부족으로 안건을 논의조차 진행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반기에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과 배일도 위원장(솔직히 위원장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간에 안건 상정과 처리 등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대의원대회가 아무런 결정도 못하고 끝나버린 과정이 있었다.

대의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대의원대회는 위원장을 위한 말 잔치였을 뿐이었다. 대의원들이 안건을 제기하면 '내가 소집한 대회이므로 논의할 수 없다. 기타에서 제기해라, 대의원들이 서명해서 소집요구해라' 식으로 무시하는 위원장의 주장은 '또 다른 거수기'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었다.

 

대의원들도 '4개 지부 대의원 모임', 혹은 '차량지부 대의원 모임'등을 통해 나름대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작전을 짜기도 했다. 조합원들이 '대의원 180여명이 위원장 하나 못이기냐?'고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지난 3년 간의 무기력함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대의원대회에서의 대응의 문제만이 아니라 독자적인 자기 실천 구조를 가지려 하였던 것이다.

 

물론 상반기 중에는 소식지 작업, 집행부 총사퇴 권고 결의 등의 활동을 나름대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지난 02년 임단협안 부결투쟁 및 불신임 투쟁이 성과를 만들지 못하면서 -아니 정확히는 민주파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공투본이 해소되면서- 대의원만이 아니라 서울지하철 민주파 활동가들의 활동이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배일도와 같이 회의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배일도가 의도하는 수순대로 결국 진행될 것이고, 정당성만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대로 계속 갈 것인가?

얼마전 공사 등에서 제출되었다는 '고강도 구조조정' 문건이 나돌았다. 내가 속한 전동차 중정비 분야를 용역화하고 475명을 감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70%에 가까운 수치이다. 이 문건 내용은 아직 현장에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괜한 불안감만 조성할 수 있다'며 협조주의적 현장간부들은 선전과 토론을 기피하고 있었다.

몇 군데 조를 대상으로 쉬는 시간에 가서 1시간 연장운행과 노동시간 단축시 개악안과 더불어 공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설명을 하고 반응을 확인하였다. 물론 대의원으로서 나는 어떻게 하겠다, 조합원들은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과 함께...

 

조합원들은 '니가 1순위다'며 서로 장난도 치지만,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때 '자격증이라도 따야지' 하는 한 선배의 탄식은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이제 맞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니 싸우는 시늉이라도 우리가 낼 수 있을까 생각한다.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합원 동지들은 많지만, 그 전망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자신 있지 않다.

 

지하철 현장 어디를 다녀봐도 배일도가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런데 선거만 하면 당선된다. 문제는 민주노조를 지향한다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밖으로는 발전노조 파업투쟁의 과정 및 결과에서 4.2총파업철회와 현장탄압현실을 보며 또 한번 실망하고, 안으로는 투쟁의 전망을 올바로 밝혀내고 실천을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사의 근태감사 등 현장 탄압, 작업과 관련한 불합리한 문제 등에 대해 조합원들은 이제 더 이상 현장간부들에게 제기하지 않는다. 현장간부들도 문제를 발굴하고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우울한 이야기만 했다. 그럼 이제 서울지하철은 재기불능인가? 아니다.

 활동가들부터 활동을 재조직화하려 하고 있고, 그동안의 노동조합운동을 재점검하고 있다. 아직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현장 활동가들의 결집은 끊임없이 시도될 것이고, 조직적 실천활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현장은 실천의 의지와 전망을 가지고 조직할 때, 비로소 조직될 수 있다. 자기 현장과 분야를 넘어서 서울지하철 전체, 민주노조운동 전체의 관점 속에서 고민하고, 실천을 조직할 때 현장 조합원들은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지난 3년 간의 경험은 노동조합 체계 안의 투쟁이 얼마나 우리를 스스로 교란하였는가를 보여준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장간부가 아닌 현장활동가로서의 활동을 만들고, 노동조합 체계에 의존적이지 않은 독립적인 투쟁의 구심을 이제는 만들어 가야 한다.

 

지난 비대위와 공투본의 경험을 넘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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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민주노총 서울본부 투고-한라중공업 파업 지지

 

한라중공업 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하자!

 

지금 목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97년 부도이후 40%에 달하는 2,400여명의 인원감축, 임금삭감 21%(개인당 연 700여만원)의 고통분담을 전담하던 한라중공업의 노동자들이 8월 18일부터 전면적인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플랜트사업부는 8월 10일부터 파업에 돌입하였으며, 지난 9월 8일부터는 공장점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강고한 대오로 바뀌어 가고 있다.

또한 한라중공업 자본의 구조조정 가운데 더욱 참혹한 구렁텅이로 몰린 하청노동자들은 지난 3월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하청폐지와 하청노동자 조직사업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라 노동자들의 투쟁은 매각에 따른 고용/단협/노조승계의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이미 수개월의 임금을 체불 당하면서까지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힘써왔지만, 사측은 노동조합을 배제한 채 구체적인 고용보장도 없이 플랜트사업부 매각을 강행하고 있다. 또한 현대는 7천5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 받으며 향후 5년간의 위탁경영 후에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되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구조조정 기조에 맞선 한라 노동자들의 투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민간사업장에서의 일차적인 구조조정을 끝낸 자본과 정권이 이제 ’99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의 신호탄이다. 현대자본이 한라중공업 다음에는 현대 중공업을 노리는 것처럼, 구조조정은 마무리되지 않는다. 자본의 천년왕국을 만들 때까지.

자본은 이처럼 자신의 계획표대로 순차적으로 공격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연맹과 단사, 지역으로 고립된 투쟁을 하고 있지 않는가?  현재 한라중공업의 직영,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은 공장을 바리케이트로 해방구를 만들만큼 강고하다. 그러나 지역적으로, 여론적으로 고립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투쟁하는 민주노조운동에서도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라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지원은-하다못해 지지 FAX라도-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작년 현대자동차, 올해의 서울지하철 투쟁의 가슴아픈 기억을 넘어서는 서울지역 노동자 동지들의 관심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노동자들에게 호소한다.

 

1,300여명의 노동자 투사들의 투쟁을 저 멀리 영암땅에 내버려두지 말자!

자본의 신자유주의 노동자 탄압을 끝장낼 강고한 연대투쟁을 전개하자!

투쟁하는 동지들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부터 적극적인 연대를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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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김명희 선거운동본부 평가자료집 투고

 

 

 

김명희 민주노총 노동자후보의 선거투쟁을 하며. 

   

 

언뜻 보기에는 지배체제의 균열로 보이던, 그리하여 민주적(?) 4당 체제가 형성될 것 같은 선거 가 끝났다. 노동자계급에게는 누가 몇 석을 얻었는지 따위에 대한 관심은 개싸움에서 어느 개가 이겼는지, 어느 개가 똥물을 뒤집어썼는지에 대한 관심 같은 가십거리 외에 딴 것이 아니다. 이러한 개싸움을 끝내려면 싸움장에 물을 뿌리고, 몽둥이를 들고 개들을 쫒아내야 한다. 이러한 개들을 ‘계급의 이름으로’ 싸움장에서 우리가 사는 골목골목에서 쫓아내기 위해 나선 노동자 민중후보들이 있다. 뒷집 개를 대신하여 앞집 개와 붙어보겠다던 이들, 옆집 개를 응원하며 떡고물이라도 얻으려는 이들과 달리 이들은 가진 자가 판치는 총선정국을 몽둥이 하나들고 나섰다는 의지만으로도 반운 것이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없다. 올바른 정치세력화의 계획과 준비 속에서 궁극적 승리는 돌아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들의 대권 레이스의 몸 풀기 운동인  총선정국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전의 좌우파를 막론하고-정당 건설 등의 현실적 과제로 나타났다1). 주지하다시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체제 재생산적인 선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선거는 자본가 정권이 자신들의 폭력적 지배양식을 ‘국민의 선택’이라는 이유로  합법성을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이 가지는 권력과 부와 정치적 영향력의 심대한 불평등을 은폐하는 일인일표제식의 의사적 평등이 얼마만큼이나 다수의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하겠는가?  가진 자들이 언론을 장악하여 자기들의 논리로 다수 민중의 입과 귀를 가로막고, 오랜 세월 돈과 권력으로, 또한 ‘그들만의 법’으로 억압하는 현실에서 민중적 과제를 공유하고 의회연단에서 선전이라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선거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특수시기의 특수투쟁인 것 같지만, 그것 역시도 자본의 질서를 깨고자 하는 노동자의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복무되어질 때만이 투쟁적일 뿐이다. 

 

15대 총선을 평가하는 모든 글들이 말하듯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노동자, 민중진영은 공동의 총선투쟁과 조직적 대응들을 수행하지 못했다. 기간에 사상적, 조직적 과정을 달리해온 분파들이 갑자기 모여 선거투쟁의 기조와 내용, 그리고 이후의 공동의 전망을 내오는 가운데 선거를 치러 낼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독자후보전술을 구사한 선본들 간에도 2차례 정도의 언론 플레이적 합동기자회견을 제외한 공동의 투쟁과제를 만들어 가지 못한 것과 자신의 조직대상에 대한 일상적 정치투쟁사업을 배치하지 못하고 이번 선거를 계기화 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2)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단위노조의 결의로, 또한 정치세력화를 위해 기간 투쟁해왔던 서울지역의 대오들이 모였던 선본이 있다. 김명희 선본이다. 김명희 선본은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적 토대, 후보자신의 정치적 입장, 여러 대오들의 지원 등으로 인해 단위노조만의 결의와 정치적 사업수행의 초보자(?)라는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진 선본이었다.

이 글에서는 글 쓰는 이의 타 선본에 대한 이해의 부족 등으로 김명희 선본의 선거투쟁과정에서 느낀 몇 가지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후보전술결정의 배경을 살펴보자.

94년 전지협 6월 총파업을 힘차게 벌여 나갔던 서울지하철노조는 파업투쟁의 과정 속에서 정치적 엄호세력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96년  지자체선거 국면에서의 임투과정에서도 역시 자본과  정권, 그리고 보수야당의 농간에 다시  한번의 정치적 패배를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정치세력화의 상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부에서부터 힘 있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치세력화’라는 화두는 이미 던져진 것이다.

1월 31일 전지협 3기 대의원 대회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독자후보전술을 적극 지원한다.’라는 결의를 지해투가 2월 28일 총회에서 ‘지해투 동지의 출마시 적극참여한다’로 구체화시켰으며, 지하철 노조 내에 해고자 동지들이 중심이 되어 정치위원회가 꾸려져서, 3월 4일 노조 2대 위원장, 전지협 초대 사무처장이셨던 김명희 동지가 노동자후보로 성동을 출마가 결정되어졌다. 조합운동과 정치운동의 균등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단위노조가 비록 해고자 중심이지만 정치위원회를 꾸리고, 후보전술을 계기로 정치세력화의 전면에 나선 것은  노동운동의 진일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들이 지하철 현장단위의 토론과 실천으로 나타나지 못한 것, 그리하여 선본에 한번이라도 방문한 조합원 수가 백여 명을 조금 웃돈다는 사실은 단사 내에서의 공유 작업등의 실제적 실천의 모자람을 말한다. 또한, 노조 본조의 위치 등을 배경으로 한 출마 지역구의 선정, 중동부 지역 노조들과의 실천적 연대모색의 부재 등은 노동자 후보로서 전국적 범위에서의 실천이라는 선본기조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고 더 많은 조직노동자들과의 공동실천을 저해한 요소였다.

 

 후보전술을 상당히 늦게 결정한 관계로 시간적 긴박함속에서 기조를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도 참여성원과 단위들의 구체적 토론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실천의 통일성 등은 유지해 내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선거투쟁과 다른 양상이었다.  여기서는 선거투쟁의 기조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겠다. 다만 한 가지, 선거투쟁의 목표와 기조 역시도 투쟁의 연속에서 그 특수한 지위를 갖는 것이지 만루홈런식으로 준비되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에 있어 김명희 선본에서는 합동유세 2회, 개인유세 2회, 거리유세 180여회 등을 진행했다. 인지도가 낮은 무소속 후보로서 접촉면을 최대한 넓히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낮 시간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약간의 마찌꼬바 노동자들과 주로 인근 상인이었을 뿐이다. 자연히 그러다 보니 후보의 멘트에 ‘우리 노동자, 서민, 중소상인’이라는 잡다한 인칭사가 들어가고, 폭로의 내용들이 구체성을 띌 수 없게 되었다. 유세의 주 내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열사들의 이어진 죽음에 대한 애도로부터 시작되어, 재벌경제의 문제점, 여야당의 부패상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노동의 정치’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과제는 생산되지 못하였다. 혹자는 이것을 ‘권력의 상이 부재하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노동자정치운동의 조직적 현실이 아니가? 합의되어 나갈 수 있는 강령적 연구나 공동의 실천이 결여되어진 상황에서 몇 마디의 선언으로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계급의 정치가 현실에 이미 존재하며 노동자를 억압하고 있는데, 새로운 정치의 주체형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분명히 폭로되어져야 했다. 또한 준비과정에서 후보자의 정치선동훈련을 강화해내고, 다양한 입체적 프로그램을 준비해 들어가는 것이 기술적 측면에서 요구되어진다.

또, 한 가지 성동을 지역은 5인 이하 사업장 밀집지역이다. 애초 준비 단계에서부터 중동부 지역노조와 ‘ 5인 이하 사업장 근기법 적용을 위한 연대모임’등과의  연관성을 가지면서 조직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동 책임자들과 유세단원의 의지에만 맡겨진 것은 노조단위와 후보전술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번 김명희 선본의 특징은 서울지역의 좌파단위라는 곳은 거의 다 모였다는 점이다. 애초 지원대책위라는 형태로 묶였지만, 그 위상과 역할이 불분명한 관계로 초기의 결의와 다르게 인자파견과 재정지원단위가 되어졌다. 정치적 방침의 생산과 선거이후의 조직적 실천을 위한 단위들 간의 공유의 장이 되지못한 것은 시기적 한계만이 아니라, 비교적 동일한 정치방침을 가지고 있는 좌파진영 자체의 통합력내지는 구심력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선본은 선거초기에는 20명, 중반을 넘어가면서 30명 정도의 상근자를 가지게 되었으며, 자원봉사자들 역시도 편차가 있지만 동일한 수준으로 모였다. 이러한 숫자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기간 내내 가진 막연한 의혹과 미리 준비되어야할 내용있는 단계별/부문별 기획 등의 부재는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활동가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다국적 연합군’의 질을 뛰어넘는, 그리하여 ‘그나마’라는 기대 속에서 갖는 비주체성을 넘어 정치적 조직적 통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조직전망을 내오지 않는 이상, 이러한 문제는 항상 남지 않을까?            

 

선거 기간 중 노수석 학생의 죽음 후 대중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본은 영안실 방문과 기자회견을 실시하였다.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이 겹치면 대중투쟁을 중심에 두고 사고 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 간의 유기적 수준을 가늠하여 조절을 해야 하는 문제이다. 전국적 정치투쟁체가 없는 상황에서 일개 지역선본이 가지는 위상은 별 볼일 없는 것이다. 투쟁의 수위가 낮을 경우 오히려 그 내용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곳에서 폭로해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선거초기, 공공부문 해고자들의 연 행등으로 선본이 인적 구성이 안 되고, 투쟁사안에 대한 결합이 미비했던 점은 상호 투쟁을 대립물적인 것으로 일면 파악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4.11선거는 끝났다. 기술적인 부족, 중장기계획의 부재 속에서의 선거투쟁은 많은 실수와 한계를 노정했다. 조직된 노동자 대중들에게 강제 받지 못하고 새로운 노동정치의 방식을 개발해내지 못한 것은 뼈아픈 반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대중조직 내에서 정치세력화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까지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체적 측면에서 올바르게 평가되어져야 한다.

후보전술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한 전술에 불과할 뿐이다. 이후의 일 상속에서 노동자계급의식의 제고, 정치적 훈련은 정치세력화의 근거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 결합한 노동자동지들은- 비록 한 단사에 국한되어 있지만- 민주노조운동과 함께 성장한 이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하철은 물론 서울지역의 여타 조직 사업장을 근거로 한 정치세력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경험이 아니라 구체적, 공세적 실천을 위한 일 단초로서 이번 4.11선거가 위치 지워져야 한다. 노동의 정치, 계급의 정치라는 전략적 과제 속에서 실천적 투쟁의 지표로서 구체화시켜내야 한다. 선노들의 현장정치활동가로서의 자기정립이야 말로 자본의 입체적 현장장악음모에 맞선 현장권력의 사수투쟁의 가장 적극적 실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거이후 선본은 얼마간의 빚을 안고 대단한 아쉬움 속에서 임시 사무실을 지해투내에 두고 ‘4.11 동지회’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사업의 과제들은 다시금 지하철 노조의 정치위원회로 돌아가게 되었다. 4년을 준비하는 단위가 아니라 일상의 계급투쟁을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보고, 계급대중들과 함께 해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1)이것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구로의 아침] 창간 준비 1호, ‘4.11총선에 대한 민중운동 진영의 대응방침’을 참고하라.


2). 조직대상이 지역대중일 수도 계급대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지역적 조직화는 일정정도의 정치세력화의 조건들을 만들어낸 후, 일 계획으로써 나올 뿐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선언을 배경으로 출마한 3곳의 노동자후보 선본은 성장한 조합운동의 바탕에서 노동자 계급의 미래의 전망과 과제를 공유하는 작업부터 실천했어야 했다. 이러한  공유 작업의 생략, 민노총 중앙의 통일적 총선투쟁방침과 지원의 부재 등은 역량과 시기적 한계의 문제만은 아닌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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