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화끈 여름의 불꽃

2008/07/15 22:58 생활감상문

출근하자마자 30분을 못 견디고 에어컨을 틀었다. 평소 에어컨 바로 앞자리라.... 틀면 춥다고 온도 올리고, 바람 줄이고 하던 나였다. 어제는 영화+떡볶이+음주+노래방 풀코스 간만에 즐겨 주고... 선풍기 소리 견뎌 가며 다섯 시간쯤 푹 자고... 아침엔 모처럼 기운 난다며 헬스장 새로 등록해서 유산소 운동도 40분 땀 뻘뻘 해주신 터였다. 운동하고 땀 냈으면 시원해야 할 터인데... 회사 걸어가는 20분 동안 다시 몸에 열이 쌓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햇볕 받으면 순환이 잘 안 되고, 그대로 충전되는 현상 빈번, 말하자면 '인간 배터리'인 셈이다. 5월에 갑자기 강해진 햇빛 20분 받았다고 일사병 나서 토사곽란한 게 중1 때(더 어릴 적엔 말할 것도 없고). 이후에도 그런 일은 반복이라 여름이면 긴급 해열제로 아스피린을 준비해 둘 정도(그러고 보니 올해는 안 샀군). 요사이 계속된 열대야에 소화 잘 못 시키고, 골골거려.... 다음주에 또 한약을 짓네 마네... 그러고 있던 터였다. 아침에 잠깐 태양 아래 걸어간 그 열기 때문에... 오전부터 머리가 내내 아프고 계속되는 하품. 지난주에 워낙 잠이 부족했던지라... 모처럼 푹 잔 다섯 시간이지만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중간 중간 필자들에게 메일 쓰고, 전화하고, 교정지 들여다 보고, 한창 뜨거울 때 길 건너 디자인 사무실에 교정지 갖다 맡기고 하는 과정과정마다.... 정말 숨이 목까지 턱턱 막혀 왔다.

 

이 더위에 누군들 그렇게 일하지 않으랴만은 오늘은 정말 차곡차곡 몸에 열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고는 정작 춥다고 마케팅부 응접테이블에 가서 교정을 봤다. 괜히 열심히 일하는 정쿤에게 서양 고대철학 공부할 생각 없느냐, 책장에 꽂혀만 있는 고대철학사 책 한 권 주마....말 시키며 집적집적... 4시까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면 부족과 두통 그 가운데 불현듯 치밀어 오른.... 일과는 상관 없는 어떤 감정.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떤 메뉴얼에도 담겨 있지 않은, 혹은 어떤 메뉴얼도 믿을 수 없이, 하지만 결국엔 목이 졸릴 듯한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풀어내야 할... 두려움과 뒤섞인 감정. 그게 또 나를 태우고 있었다.  

 

내일 저녁에 세종체임버홀에서 하는 음악회 표가 당첨되었으나, 이번주에 회사 상반기 워크샵이 있는지라... 오늘내일은 집중해서 교정지 들여다보기로 계획.... 아쉽지만 HN양에게 가라고 전화. 그 덕분에... 영어회화 수업 시작하기 전에 오늘 잠깐 만나 저녁을 먹었다. 뭔가 좀 표현하고 싶어 털어 놔봤자... 그녀의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내게 와 닿기도 전에 뜨거운 대기에 흐물거린다. 결국 정념과 사념은 또한 고스란히 내 몫. 또 하나의 무진기행이라고 쓰디쓴 자조.

 

지난 학기에 학생들을 엄청 웃겨준 D. S. 선생은 강의를 너무 잘한 나머지... 영어교사들을 위한 특별반 강의하러 가고... 20대 후반의 J선생이 새로운 영어 선생이다. 지난 주엔 면도도 안 하고, 어깨는 넙대대, 좀 산적 같다 싶더니... 오늘은 머리도 빡빡, 수염도 깔끔... 나름 귀엽게 하고 왔다. 그러나 정신 맑음에도, 미안스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하품, 하품, 하품. 수업 참여도 열심히 했건만... 밖에서 들어온 열과 내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 때문에... 신체 전체에 산소가 부족했던 것이다.

 

땀을 좀더 내려고 30여 분 걸려 걸어왔건만.... 땀은 안 나고, 열만 더 축적되었는지, 허벅지며 손바닥이 화상 입은 듯 화끈거린다.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쐬도, 좀처럼 식질 않는군. 결국 스스로 사그러들 때까지 잠만이 해결책인가.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약속한 대로.... 11시 이후 인터넷 사용 금지 다짐을 지키기 위하야... 지금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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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22:58 2008/07/1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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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군  2008/07/16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그런 사연이 있던 거였군요.
    저야 책 받으면 좋긴 하지만, (더불어 누군 안 그렇겠냐만은) 읽은 책이 아주 쌓여있습니다. -_-;
    여튼 주시면 잘 읽겠습니다. ㅎㅎㅎ
  2. 정군  2008/07/16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읽'을' 책" 입니다. -_-;;
  3. 강이  2008/07/16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철학사 책이라기보단 철학자가 쓴 지중해 여행기 성격이 짙으니까 정쿤이 평소 즐겨 읽는 하드한 책에 비하면... 휴식용 텍스트가 아닐까 싶은데(마라톤 훈련 중에 스트레칭 정도?ㅋㅋ)? 즐거이 읽어 주시면, 내 기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