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持病]

2008/01/28 13:50 생활감상문
지병[持病]
[명사]오랫동안 잘 낫지 아니하는 병.

 

10대 후반 이후에는... 30분 이상 책을 보려 하면...(로맨스나 추리소설, 환타지소설 제외)

눈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졸음이 왔다.

그런 채로... 공부는 대충대충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게다가 부모님 등골 빼먹으면서 대학원까지.

논문을 쓰다가는 알았다. 나는 난시였다. 진작에 안경을 써야 했던.

안경점에 안경 맞추러 갔는데, 안경을 썼으면 공부를 훨씬 잘했을 거란 말에...

수준은커녕 장수도 못 메꿔서 헤매던 논문학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T T

난시는 나의 지병이었다.

 

그렇게 안경재비 생활을 5년쯤 하는 중에...

나의 또 다른 지병이었던 과체중을 억수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어느 정도 해결했다.

체중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자, 매년 초 결산하는 퇴직금을 들여 난시를 수술로 해결했다. 

이젠 길에서 버스 번호판도 잘 보고, 멀찍이 있는 간판의 전화번호까지 잘 읽는다.

 

그런데 난시 수술을 예정해 놓고... 경미한 교통사고에 걸렸다.

아니... 과로로 인해 피폐한 몸에 교통사고가 지나갔다고 해야 할까.

흔적은 희미했지만, 통증은 오래 갔다.

후유증을 빌미로 나는 회사를 휴직하고, 결국 퇴직했다.

작년 한 해... 라식 수술비를 제외하고도 병원비가 200만 원을 넘어...

의료공제를 총 450만 원어치나 신청했다.

(사고 직후 보험회사에서 처리해준 의료비가 얼마인지는 확인도 안 했다.)

 

연초까지 한약을 대놓고 먹었고, 빡센 마감을 하고 여기저기 몸이 곪았다는 느낌은 왔고....

블로그가 처음 시작될 무렵의 패닉 상태가 지나갔을 때도...

사고 부위는 대체로 멀쩡했다. '내게 필요한 건 약간의 잠뿐이야.'

하지만 오판이었다. 잠을 보충하고, 정신을 되찾고, 블로그질에 빠지고...

매주 이틀 저녁을 스피노자/벤야민 강좌에 바치고... 피곤하다고 요가 수업은 계속 빼먹고...

마침 한의원은 내부 수리에 들어갔다.

 

교정지 분량에 압박 받아서 다이어리에 교정을 열심히 보자고 계획을 세울 정도인지라

매일 출근과 동시에 그날 볼 분량의 교정지를 세놓고 하루를 시작했다.

(안 쉰 건 아니다.. 하다가 땡땡이 나면 또 블로그질하고 서핑하고....

계속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한 게 문제였다.)

그리고 열흘째, 엉치 부위의 근육이 뭉쳐서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내부 수리가 끝났다는 단체 문자가 왔다.

다음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점심 시간에.

주말엔 빨래 한 번, 청소 한 번 하고.... 내처 누워 있었다.

누워서 자고, 누워서 TV 보고, 누워서 노트북으로 일드 보고....

(잠시 딴 길로 새자면... 타마키 히로시의 신작 <사슴 남자> 볼 만하다>.)

누워서 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오늘도 점심 시간에 병원에 갔더니.... 내일도 오란다.

가끔은.... 병원에서 날 안 놔준다는 생각도 들고....

인생 열심히 살려고 하면 늘 몸이 태클을 거는구나.

난 이렇게밖에 안 되는가.. 하는 패배주의도 빠지고...

(나보다 더 예민하고, 더 아픈 사람들도 뭔가를 이루며 잘만 살건만..)

그래도 몸이 하는 소리를 잘 들어야지.. 싶기도 하고.....

 

힘들다고 운동을 빼먹었더니.... 체중은 불고...

그래서 더 아픈 듯도 싶고.. 결국 당장의 컨디션보다는

좀더 깊숙한 데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결국 내 지병이란.... 의지박약인가?

 

이러면 또 결론이 너무 계몽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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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13:50 2008/01/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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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ara  2008/01/28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아플 때가 언제일까나??
  2. 강이  2008/01/28 1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가 안 아픈 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