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죽었고, 나는 살겠다고 내 손으로 피를...

2009/05/24 00:08 생활감상문

숙취에 시달리면서 자다깨다를 반복하던 와중에, 11시 반쯤 H군으로부터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고. 놀란 마음에 술병으로 난 두통이 심해져 종일 토했다. 오후엔 속 가라앉힌다고 사 먹은 칡즙까지 토한 다음에... 제 손으로 바늘을 꺼내 열 손가락을 모두 땄다. 붉은 피인지 검은 피인지... 술병 날 때마다 이 짓하면서... 술 끊어야지 생각했지만... 오늘은 살겠다고 피를 보는데, 죽은 사람에 대한 뉴스를 반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내가 더 웃겼다.

 

충격의 강도와 색깔은 장국영이나 최진실 죽었을 때랑 좀 비슷한 듯도 싶다. 얼마 전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땐 (다녔던 학교, 같은 단대 건물이라 복도에서 뵌 적이 있기는 할 텐데, 딱히 기억은 없다) 안타까움과 아까움을 느끼면서도, (30년 세월을 함께 보낸 동료교수를 잃으신 오클라 샘의 심경만 걱정했을 뿐) 문상을 가야 한다든지 슬프다든지  이런 건 없었다.

 

슬프다기보다는 "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왜 죽었어? 그러지 말지"라는 느낌이지만, 심란하고 착잡한 건 나도 남들과 같다. 머리는 계속 아프고, 생각이란 건 계속 할 수밖에 없지만... 일단 사람이 죽었을 땐 사람들이 말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적는 게 기자라고 생각하는 미친 노인네한테 열받기도 싫고, 누구 죽음이 누구 죽음보다 더 대단하다고... 이 죽음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도 짜증이 나고, 이런 일을 겪고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혹은 한다면, 결국 이런 일을 통해서나 무언가 반전을 꾀하게 되려나...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나의 그 주춤거림도 싫다.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그걸 오늘은 생각하질 못하겠다. 아니면 입 밖에, 혹은 손끝으로 내놓는 건 안 하겠다겠지만. 아침에 정신 차리면 덕수궁에 분향을 하러 가야겠다.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 또 경찰들을 풀어놓은 인간들 때문에 열도 받고, 겁도 나지만... 어쨌든 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근거와 상관없이, 그래야 할 것 같다. 생각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그 다음에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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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4 00:08 2009/05/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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