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2009/07/21 23:53 생활감상문

 Henri Toulouse-Lautrec, The Two Girlfriends, 1894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말을 들은 것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한 입 베어 물은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졸던 눈이 번쩍, 귀는 쫑긋(지난 주부터 정례화한 아침 운동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몸은 개운하지만 자꾸 졸리다. 오늘도 아침 10시부터 졸음이 와서, 본격 머리 쓰는 일은 못하고... 겨우 제안서 하나 쓰고, 오후엔 익숙치도 않은 인디자인으로 새 원고 조판하느라 머리 쥐어 짜다가... 헐레벌떡 정쿤과 함께 LJW선생님&KYB선생님 인터뷰 갔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옆에서 졸다가 깨다가 눈이 어찌나 감기는지... 사무실로 돌아와 업무 정리하면서도 퇴근하고 불어학원을 갈까 그냥 집에 가서 바로 잘까 고민하느라 10분이나 늦게 나왔다). 오오, 이 무슨 신선한 대사란 말인가. 한숨 졸면서 타고 가려던 604번 버스(회현역까지 직통)가 오질 않아 603번 타고 서소문에서 내려 북창동~소공동 가로질러 알리앙스 프랑세즈로 걸어가는 길에... 졸리다고 저녁도 안 먹고 퇴근(보식 시간인지라 회사 냉장고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들인 포장죽을 쟁여 놓고, 전자렌지로 데워 먹고 있다)한지라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간만에 웨스턴조선호텔 앞 패밀리마트에 들른 참이었다.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하나, 삼다수 한 통. '이런 식의 때우기용 식사는 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배 고파서 수업에 집중 못하면 안 되니까... 생각하며 한 입 베어 물어... 보식 기간이니까 50번 씹어야지 하고 있는데... 들려온 그 한마디. 옆자리에서 큰사발 먹던 두 여인의 대화다. 어어~ 이것이... 뭐랄까... "나 연애 시작했어"도 아니고 "작업 대상이 생겼어" 혹은 "사귀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 혹은 "나 꽂히는 남자 있어"도 아니고... 순수한 자기 발견 혹은 자기 긍정이랄까, 참 순수하게 들리는 것이... 이렇게 내밀한 고백을 엿듣게 되다뉫... 신선한 걸?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만났지? 아아... 수업 시작할 때 다 되었는데...' 혼자 애를 태우며 귀를 쫑긋하며서 대화를 들어보니.... 그의 이름은 재범. 알고 보니... 고백을 들어주는 친구 쪽도 알고 있는 남자. 오히려 고백한 여인은 그의 생김새와 이름밖에 모른다. '아아, 뭐지? 같은 거래처? 아니, 젊은 아가씨들인데... 같은 학원? 같은 교회?' 혼자 추리에 들어간 순간... "너 2PM 멤버인 줄 몰랐어?" "응, <10점 만점에 10점>만 들어봤지, 멤버가 누군지는 잘 몰랐어. 근데 어제 TV 보다가 처음 봤는데 완전 가슴 설레더라..."

웅... 내 김이 샐 건 없지만(덕분에 반만 먹으려던 삼각김밥만 다 먹었다. 30번씩만 씹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얘기였으면 훨 더 재미있었을걸. 모르는 사람의 연애담 듣기... 가끔은 재미있는데 말이야. 어쩐지... 편의점에서 라면 먹다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구한테 누구 생겼다는 얘길 하는 게 쫌 bizard하긴 하지. 나도 2PM이 일곱 명이라는 거 말고는 모르니까 나도 나중에 반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할 거 같지는 않아 쫌 속은 기분이 들더라구. 덕분에 잠 깨서 수업을 잘 들었지만 말이얌.

 

 

익명의 16세기 독일 음악가, Dantz Megdelein Dantz(Dance, Girl, Dance)

<암머바흐 하프시코드 작품집>, 연주 글렌 윌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21 23:53 2009/07/21 23:53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bluejep/trackback/198
  1. Lovefoxxx: 라브♡  2009/07/22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제목에 낚였어요.

    근데 나도 '작업 대상이 생겼어' 같은 표현 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하고 친구에게 운을 떼는 거 같아요.
    연예인일 경우엔
    '요즘엔 걔가 맘에 들더라...'이렇게 말할 듯...
    • 강이  2009/07/22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만 낚일 수 없어서 말이죵. 그래도 클릭하고 화면 바뀌는 몇 초간 설레지 않으셨나요? ㅋㅋㅋ
  2. noi  2009/07/22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독을 유도하는 제목이군요^^ "남의 연애담"을 듣고 싶은 바로 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OTL

    편의점 삼각김밥은 저도 바쁠 때(혹은 게으름 피울 때^^) 애용합니다. 일본은 종류도 많아서 골라먹는 재미도 있고요. 냉장고에 보관하는 음식이라 밥알이 딱딱해서 위장이 시원찮은 저는 여러 번 씹지 말래도 씹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50번까진 아니지만요) 그러다보면 왜 그리 천천히 먹냐고 핀잔도 받고..ㅠㅠ 밥 빨리 먹는 사람들이랑 밥 먹기 싫어요 :(
    • 강이  2009/07/22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에~ 제가 연애담 말하고 듣는 걸 원채 좋아해서 사석에선 거의 빠지지 않는 화제인데 말이죠.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블로그에 드나드는지라 그 냥반들의 사생활은 보호해 줘야 할 터, 여기에다 [제 것이든, 남의 것이든] 연애담을 쓰지는 못할 것 같아요. OTL시켜 드려 죄송하네요^ ^;;

      제가 워낙 김밥을 좋아하는데 [탄수화물과 고기 중심인] 편의점 삼각김밥과, [저가 재료로 김밥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천국까지 끊고 살려니 사실 좀 불편하긴 합니다. 아예 밥을 안 먹는 야채요법 기간 2주 중에도 옆에 무슨 음식이 있어도 괜찮았으나 회사에서 회의한다고 단체로 김밥 시켜 먹은 날은 정말 참기가 힘들더군요. 자꾸 앞으로 나가려는 손과 안 돼 하는 독백 사이에서 부르르~~~
      저도 밥을 50번까지 씹지는 않는데... 어제는 죽 대신 먹는 밥이라 꼭꼭 씹으려 한 것이죠. 밥 빨리 먹는 사람들이랑 밥 먹는 방법.. 있습니다. 남들이 한 공기 빨리 먹는 동안, 반 공기를 천천히 먹는 거죠. 다양한 반찬과 즐거운 수다와 함께. 기분도 좋고, 살도 빠지게[되지 않더라도 최소한 찌지 않게] 됩니다.^ ^
  3. 무연  2009/07/22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야, 낚였잖아. 쳇(*__).
  4. EM  2009/07/22 2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까 낚였었음을 일단 고백하고요... (-_-)
    강이님께 뭐 하나 여쭤볼 게 있어요. ^^;; 혹시 우리나라에서 "출판(업)"에 대해 나온 책들 중에 볼만한 게 있나요? 그 역사에 대해서요. 한반도나 동양 또는 유럽... 지역은 상관없고요, 번역서든 저술서든 가리지 않고요. 검색도 안해보고 여쭤보는 거니까, 너무 신경써서 답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냥 대충... 생각나시는 대로... ^^;;;
    • 강이  2009/07/22 23: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에~ 음... 그런 어려운 질문을... 뭐 여하간... 생각나는 대로만. (알라딘에 보면 훨씬 더 좋은 목록이 있을 테지만... 굳이 저한테 물어보셨으니;;)

      피터 버크 지음, <지식>, 박광식 옮김, 현실문화연구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지식의 탄생, 흐름, 분류, 판매, 소비, 상품화 등을 망라하는 "학문의 역사"를 담았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형성된, 이른바 '지식의 공화국(Republic of Knowledge)'에 대한 40여년에 걸친 지은이의 연구 결과물이다.

      부길만 지음, <책의 역사>, 일진사
      저도 안 봤으니 재미있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원하시는 게 백과사전식으로 나열된 정보라면...

      천정환 지음,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1920~1930년대의 한국에서 책 읽기 문화가 성립하는 과정과 대중 독자의 탄생, 그리고 근대문학과 책 읽기 문화와의 관계를 다룬 연구서.
      (이 책의 참고문헌 보시면 아마 원하는 문헌이 다 있을 듯합니다만)

      전후 현대 출판 문화가 궁금하시다면...

      앙드레 쉬프랭 지음, <열정의 편집>, 류영훈 옮김, 출판마케팅연구소
      세계대전 이후 판테온을 성장시킨 명편집자이자 뉴 프레스를 설립한 전설의 편집자 앙드레 쉬프랭의 출판론/편집자론.

      다이애나 애실 지음, <그대로 두기>, 이은선 옮김, 열린책들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출신으로 1940~1980년대 사이 영국 출판계에 관한 회고와 자신의 편집자 인생을 돌이켜 본 책.

      베네트 서프 지음, <내멋대로 출판사 랜덤하우스>, 정혜진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내멋대로" 책을 내고 싶어서 얼떨결에 세워놓은 작은 출판사를 20세기 미국 최대의 출판사로 만든 랜덤하우스 설립자 베네트 서프의 자서전. 출판사 설립과 운영을 둘러싼 에피소드, 미국 문학계를 화려하게 장식한 책들의 출간에 얽힌 사연, 출판인으로서의 보람, 편집자의 자세에 대한 견해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다.

      피에르 아술린 지음, <가스통 갈리마르 프랑스 출판의 반세기>, 강주헌 옮김, 열린책들
      갈리마르의 일생을 통해 출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정신적 가치를 상업적 성공과 연계시켜야 하는 출판이라는 산업의 복잡한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숨겨진 작가의 발굴과 작가 쟁탈전, 문학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베스트셀러 탄생의 뒷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출판계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병익 지음, <한국 문단사 1908~1970>, 문학과지성사
      1973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였던 저자가 연재를 묶어 낸 것으로, 저자의 첫 책이기도 하거니와 본격적이고 치밀하게 한국 근대문학의 태동기를 추적한 역저다. 책은 '문학사'가 아니고 '문단사'이니만큼, 문단 활동의 흐름과 창작 외적인 사건과 정황에 주목하고 있다. 문인들의 조직, 잡지 등의 문학활동, 논쟁, 여타의 화제에 시선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마셜 맥루한 지음, <구텐베르크 은하계: 활자인간의 형성>, 임상우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예술의 규칙: 문학 장의 기원과 구조>, 하태환 옮김, 동문선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독서의 역사>, 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정도를 들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출판사 취직한 지가 7년이요, 마음 먹고 한 게 또 그 반인데... 저도 참 제가 하는 업에 대해 공부도 안 하고 하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긴 하네요.
    • EM  2009/07/22 23: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와... 이렇게 빨리, 이렇게 많은 양의 답을 해주시다니... 정말 고마워요!
      "굳이" 강이님께 여쭤본 게 아니라 제가 그런 문제로 자문을 구할 사람 중에 강이님이 가장 제격이라서 그런 거죠 뭐 ^^;; 음... 제가 원래 궁금했던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author / publisher / printer / bookseller 등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에 대한 거였어요. 하지만 출판(업)에 대해 제가 워낙 모르다보니, 질문을 구체적으로 드리기가 어려워 위에서 두루뭉술하게 여쭤본 거였죠. 암튼 아래 알려주신 것들 중에서는 <책의 역사>가 가장 제 원래 의도에 맞을 것 같은데... 다른 책들도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주 유익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고마워요! (_,_)
    • 강이  2009/07/23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도움이 되었다면 저의 기쁨이지요. ^ ^
    • EM  2009/07/23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
    • 무연  2009/07/24 14: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제 샤르티에와 굴리엘모 카발로가 함께 엮은 [읽는다는 것의 역사]와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 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 베스트 셀러]도 참고 목록에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 EM  2009/07/28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흐... 고마워요, 무연! ^^
  5. NeoPool  2009/07/23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이님은 알고보니 강태공이셨구나!
    • 강이  2009/07/23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엇... 네오풀님까징 댓글을 주시다닛. 이런 영광이... 다들 외로우셨군요. 배고픈 물고기들이 미끼를 무는 법이죠.^ ^;;
  6. avril  2009/07/23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야, 네 이야기인 줄 알고 샴페인 터뜨리길 기대했는데... 쳇쳇쳇!
    • 강이  2009/07/2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앗... 언니마저^ ^;;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언니한테 따로 조용히 말씀 드릴 거 다 아시면서^ ^
  7. 동대문도서관  2010/07/27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동대문도서관 입니다.
    『근대의 책 읽기』 저자 천정환 교수님의 강좌 <독자, 그들의 대한민국 - 근현대 문학과 독자의 문화사>가 9월 7일부터 매주 화요일 7시에 동대문도서관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
    http://blog.daum.net/pangloss/6940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