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2008/03/24 00:32 베껴쓰기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거에요.

_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뒤라스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는데... 한동안 프랑스어 공부에 빠졌던 8학기쯤에...

뒤라스나 투르니에의 에세이집은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읽은 뒤라스의 유고집에서 몇 구절인가를 메모지에 옮겨 적고는

수첩 케이스에 끼워 놨다.

 

처음 읽었을 때는 참 이기적인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 충격이랄까, 깊은 인상을 받은 듯싶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포기하겠다고 결심만 하고, 미련에 허우적거리는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를 포기하는 것이 그에 대한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80대에 마흔 살 아래의 연하남과 마지막 사랑을 불태운 뒤라스는

내게 평생 자기 욕망을 좇아간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뭐 사실 실물은 모르니까. 영화 <연인>에서 보인 대로 엄청난 자의식의 소유자라는 건 확실하겠지만.

 

몇 해 시간이 지나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 것에 관한 말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려면 먼저 자기를 포기해야 한다.

끝없이 희생적인 사랑을 말함이 아니다.

난 이런이런 사람을 사랑하겠어. 내가 하려는 사랑의 방식은 이러이러한 거야.

이런 규정들을 버리는 것을 말함이다. 그저 사랑할 뿐이다.

사랑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 않고도, 생각하지 않고도 이런 사랑을 한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이 사랑에 대한 이해에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도달했다.

 

그리고 나는 또 그런 사랑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칙적으로는 옳았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내겐 서툰 부분이 있었다.

내가 그러한 방식의 사랑을 시도했기는 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한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다.

혹은.... 그에게 내 사랑이 제법 단단한 것이라는 걸 전해 주질 못했던 거고...

나는 여전히 나를 다 포기하지 못해서, 그래서... 또 희생적인 모드를 발동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을 기대했던 듯싶다.

어느 날 내가 그를 내 삶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간, 얼마간은 "사랑 따윈 필요없어." 식의 모드가 되어버렸달까?

오, 물론... 그 동안에도 연애나 좀더 안정적인 관계들을 꿈꾸고, 시도했고,

(별 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안정적인 "사랑"의 조건들에 관한 목록은 점점 길어졌다.

 

한참 바쁜 뒤, 모처럼 한가한 한 주일.....

가벼운 몸살 기운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꼼짝도 안 한 일요일 밤.

낮잠은 길었고, 이른 저녁 마신 커피 핑계로.. 괜시리 잠들기를 미루는 밤.

(월요병은 늘 일요일 자정을 넘기는 순간 시작된다.)

 

또 이 생각 저 생각... 걱정과 몽상 가운데... 오랜만에 뒤라스에 도달하다.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자신감은 여전히 없지만...  

연애뿐 아니라 관계 전반에 관해 생각을 확장해 보자면....

또 누군가들이 지금 내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관계들도 변하고 있고, 그 지속의 확실성도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포기던 지속(혹은 집착)이든 내 의지대로 일어나는 일은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내가 무언가 또 배운 것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을 만큼 노력할 준비 정도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구절... 그저 초대할 수 있는 소박한 뻔뻔함과?

 

내게로 오세요. 내 얼굴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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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00:32 2008/03/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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