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게 마감하는 월요일.

2008/03/25 00:33 생활감상문

걸어서 오가는 회사와 집 사이에 있는 영화관에 저녁 8시 반 영화를 예매해 놓고...

집에 들어가자니 나오기 귀찮아질 듯하고, 회사에서 H양과 메신저로 노닥거리다가...

혼자서 뭔가 먹기도 애매한 채 일단 나왔는데...

회사 앞에서 우연히 P선배를 만나... 김밥 한 줄 얻어먹으며 짧은 수다 떨었다.

(그 양반은 저녁도 드셨는데... 수다가 필요했나 보다)

 

영화관에 가니 그러고도 20분이 남았다.

상상마당 극장... 지하 4층에 좁은 대기실인데도 아늑하고 상큼하다. 흣.. 역쉬 홍대앞이얌.

옛날에 코아아트홀 시절이 잠깐 생각난다.

대기실에 마음에 드는 의자를 하나 골라 앉는다.

 

S출판사에 다니는 K후배에게 전화를 하니 안 받는다.

 

친구 H군에게 전화를 하니 진지한 대화중이란다. 그냥 걸었다고 하고 얼른 끊는다.

 

혼자서 출판사를 하는 R선배에게 전화를 하니, 반가이 받는다.

2년 전 C출판사를 홀연히 관두고 프랑스로 유학 갔다 돌아온 K선배랑 만나기로 했는데.. 같이 보잔다.

다담주쯤 연락한단다(경험상 이래 놓고 이 양반에 전화 안 한 경우가 많지만. 여튼.)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는 대학 동기 L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녀석은 내가 애인 없어서 심심하면 전화하는 것을 뻔히 알고는... 연락할 때마다 얼른 애인 구하란다.

지도 4년째 솔로인 주제에(뭐 그렇다고 나한테 넘어오지도 않는 주제에)....

나한테 말만 덜하면 넘어올 남자 많다며 작업의 기술을 전수해 준다.

(아아~~~~ 나도 나의 단점이 뭔지는 알거든) 살짝 짜증이 나려 했지만...

"친구.. 친구의 고언 명심하겠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네그려." 대기실에서 극장 안으로 도망간다.

 

자리에 앉아 전화기 끄려는 순간.. 아까 전화했던 K후배한테 전화 온다.

가벼운 안부. 그리고 다음에 또 봐요.

 

영화는 재미있었다.

크레딧 올라가는 사이 메신저로 떠들던 친구 H양(일본 영화 좋아한다)에게 영화평 바로 쏴준다.

 

터덜터덜 즐거이 걸어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달걀과 참치를 샀다.

손님이 별로 없는 동네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는 별것 아닌 대화에도 즐겁고 다정하시다.

 

길을 건너 야채가게에서 느타리버섯 한 팩과 붉고 푸른 피망을 한 개씩 샀다.

(요즘 양파와 피망, 버섯을 굴소스와 볶아 현미밥 비벼먹기에 아주 재미 붙였다.

담백하고 아삭아삭한 야채, 꼬들꼬들한 현미밥... 든든하고 맛나다.)

내일이 물건 들어오는 날이라고 1000원밖에 안 받으신다.

설마 천원이랴 싶어서 두 번이나 다시 물어보았다. 헷.

 

노트북에 걸린 과전류...로 인한 라디오 소음이 전자파 차단용 멀티탭을 사보았지만

접지가 안 되는 기본 아답터로는 해결이 안 나서

며칠이나 고민한 끝에 배송료까지 2만 7천 원 들여 접지되는 아답터를 샀더니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음악과 함께 고양되는 이 기분~~~

 

집에 오니.... 아까 진지한 대화중이던 H군이 문자를 보냈다.

전화 제대로 못 받아 미안하다고. 미숙한 자기의 현재 모습에 괴로워하는 후배 상담 중이었다고.

"괜찮아. 후배 상담해주다니 잘했네. 일천한 경험이지만 나누고 살자고."

"ㅋ 일간 한번 보자고."

 

그리고 다시 메신저로 H양와 영화감상문 그리고 하루의 소회를 나누다.

 

어제는 멀리 나갔다가 우리 집 근처를 거쳐 귀가할 수 있는(기실 최단경로로 귀가중인)

친구 H양과 Y군에게(H양은 일산에서 청량리, Y군은 서대문에서 불광동)

각각 놀자고 꼬셨으나 비 온다고 집으로들 가버렸다.

특히.. Y군... 내가 <대왕 세종>보다 못한 거야?

(물론 어제도 낮에는 친구들 전화는 왔지만 전화기 꺼놓고 낮잠이었고,

부모님 서운하시게시리... 전화 거셨는데도 답전화도 안 했다. 저녁에 다시 하실 때까징.)...

 

오늘은 사람이 많다. 사랑받는 기분이랄까?

기분이 즐거워 자정 무렵인데도 

파 한 가닥 한 가닥 다듬고, 당근 다지고, 참치 기름 빼서 달걀말이 만들고

도시락 싸놓고 설거지 하는 일이 즐겁기만 하다.

기분이 안 좋아도 요리는 헝클어진 나를 정리해 주는 마법을 부리지만.

 

오늘은 더 특별하다. 특별한 마음에... 또 잠 깎아먹고, 몇 줄 적었습니다.

작은 행복일수록 적어두고 오래 음미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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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00:33 2008/03/2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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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이  2008/03/25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내 건망증의 끝은 어디인가. 점심 약속 있는 걸 까먹고 한밤중에 도시락 싸고, 뿌듯하다고 글까지 남기다뉫.. 아침엔 힘들어서 운동 가서 졸고...T T
    게다가 알고 보니.. 아답터는 불량품. 음악 소리가 노이즈 없이 나온 건 노트북이 배터리 모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반품 신청 들어가신다. 아무래도 용산 가서 직접 보고 사야 하나? 에구 귀찮아.
  2. 뎡야핑  2008/03/25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하하 본문글 행복하게 읽었는데 덧글에서 뿜... ㅋㅋㅋㅋ
    화려한 태그가 인상적이에요 모든이를 언급해 주시는 센스...
  3. 강이  2008/03/25 1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워 해주셔서 무한한 감사. 찾아보기를 중시하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블로그 태그를 중시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종종 등장할 듯싶은 인물들이라...^ ^
  4. 윤삼  2008/03/26 2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왓, 나 나왔다. ㅋㅋ
  5. 강이  2008/03/27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론 쫌더 긍정적인 사례로 출연을 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