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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에 쭌이 같이 살자고 했을 때, 내가 건 유일한 조건은 '담배 피면 싫어.' 하루에 두 갑 이상을 뿌리까지 태워주시는 아버지 덕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담배가 끔찍하게 싫었다. 전해 듣기로는 나 아기 적에도 한 방에서 아빠가 담배를 피운 모양이다. --;
건강 강박까지 살짝 있기에 담배 연기를 보면 폐가 당장 상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길을 가다 앞 사람이 담배를 피면 막 뛰어서 그 사람 앞에서 걷는다. 쭌은 거의 담배를 안 피는 편이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일 주일에 몇 개비는 피우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도 싫었고(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상하고 있다는 아픔), 쭌은 내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웬걸 어느 날 그의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발견했다. 거짓말을 못 하는 쭌은 이실직고를 하였고, 나는 같이 살면서 처음으로 지랄을 했다. 남들 보기에는 거의 안 피우다시피 하는 셈인데도 한 개비라도 그가 마시는 것이 괴롭다.
안다.. 나 쫌 강박이 심하다...
2. 담배 피기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남들 그렇듯이 대학다닐 때. 담배 먹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한 나는 담배 연기를 꿀꺽 삼켜 버렸다. 폐가 아니라 위로.. 으웩. 속이 이상했다. 그 뒤로는 방법을 어찌어찌 터득하고 술을 마시다 보면 (이건 순 멋이었던 듯...) 담배를 가끔 필 때가 있었는데, 어우 다음 날 뒤끝이 너무 안 좋았다. 속이 미식거리고 울렁거리는 것이 알코올만 섭취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 대학 졸업하니 술 마실 일도 줄고 담배를 볼 일도 없어졌다.
3. 아침 직원 회의를 하는데 학생부에서 이번주에 열릴 5차 학교폭력위원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자길 쳐다봤다고 남의 눈을 찌른 아이(다행히 크게는 안 다쳤다.ㅜㅜ), 다른 아이들 삥 뜯은 아이, 협박한 아이.. 별의별 사건이 다 있다. 그 중 담배 핀 아이..(학생부에 속하는 쌤들도 참 안 됐다. 누구나 가길 꺼리는 자리.. 애들이 천사는 아니니 사고는 있게 되고, 일 처리를 하느라 혹은 막느라 하다가 애들과 학부모에게 때로는 교사에게도 싫은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담배 핀 아이가 학폭에서 처벌을 받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대개 담배를 피우려면 담배값을 구해야 하고(용돈으론 부족하니 이 과정에서 삥을 뜯는다.), 혼자 피기는 어려우니 몰려다니게 된다.(모여 있으면 혈기가 왕성한 애들이라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공개적인 장소를 피하다 보니 환기가 안 되는 곳에서 일을 벌이고, 그 공간에 드는 다른 아이들이 간접 흡연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 자체와는 구분되어야 할 일 아닌가?
애들이 담배를 피우면 속상하다. 열 넷, 다섯, 여섯의 빨갛고 어여쁜 폐가 얼마나 괴로워할까. 아직도 쑥쑥 자라는 중인데. 지금 들이마신 연기가 앞으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네 몸이 상하는 것이 정말 속상하다고, 어른이 되어, 네 몸이 더 자라면, 해가 좀 덜하면 그 때쯤 다시 생각해보라고 이야길 한다.
왜 담배를 피면 벌을 받을까? 담배를 피우면 문제아라는 확률이 높아서? 성인이 되는 시기를 기점으로 허락이 되는 것과 처벌이 되는 것, 그 경계를 더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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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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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5년 넘게 흡연했다가 간신히 금연하고 있는 중에 있는 처지에서 학생들이 담배핀다면 정말 말리고 싶지만, 꽉막힌 그 일상에있다가 한 개비 불 붙였을때 온몸에 찌르르퍼지는 니코틴이 얼마나 달콤할까 싶기도 해요- 처벌하는 것이 흡연의 이유를 학생 개인의 비행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 같아 분노합니다. 'o'/바보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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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글이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어요. 대마초를 반대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거든요. 대마초는 보통 그 자체의 해로움보다 함께 유통되는 마약류 때문에 문제가 돼요. 담배 피운다고 문제아는 아니지만, 담배를 피우면 문제적 상황과 마주치게 되는 거지요. 대마초 합법화냐 아니냐 고민해 봐야겠어요. ㅋ 그나저나 배가 불룩해질 정도로 아이가 잘 크고 있어서 정말 기뻐요. 맥락 정말 안 맞다...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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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땅콩 / 네, 애들이 맛을 알아서 못 끊겠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울 아부지도 저 애기 생기면 끊으시겠다더니 이제는 애기가 세상에 나오면 끊겠다고... 학생들을 위한다해도 벌로 그걸 끊게 할 수 있을지 실효성도 의문이고요.바보여우/ 맥락 딱딱 맞는 걸요? ^^ 생각과 느낌을 나누었어요. 저도 애기가 잘 커서 기뻐요. 울 엄마가 제게 홍시 따주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아기 태명을 '홍시 아가' 줄여서 '홍아'라고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