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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7)

Name  
   류은숙  (2005-05-17 11:07:19, Hit : 259, Vote : 10)
Subject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7)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7)
버마 상황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글인 것 같아 앞으로 조금씩 번역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출처: Searching for Peace in Asia Pacific, A Project of the European Centre for Conflict Prevention(2004) 31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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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버마의 정치적 정체는 계속되었다. 2000년 10월 시작된 Aung San Suu Kyi와 군부와의 회담 후 정권은 초기에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에 대한 탄압을 어느정도 누그러뜨렸다. 랑군(Rangoon)의 NLD사무소를 다시 여는 것이 허용되었고, 정부 통제하의 언론이 NLD와 Aung San Suu Kyi를 공격하는 것도 멈췄다. 정부는 일부 정치수를 석방했고, 그들 중 많은 수는 NLD 회원이었다. 2002년 5월, 정권은 또한 19개월 간의 가택연금이 있은 후 Aung San Suu Kyi에 대한 이동의 제한을 풀었다. 그녀의 연금해제는 해외에서뿐 아니라 버마에서도 환영받았고, 더 많은 개혁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었다. Aung San Suu Kyi는 국내 여행이 허용되자 Mandalay, Mon, Shan, Rakhine, Chin, Kachin 주를 방문했다.

그러나, 군부와 Anng San Suu Kyi와의 회담은 지연됐다. 일부 관찰자들은 그들의 회담이 결코 진지하게 시작되지 않았고, 신뢰형성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2003년 초, 군사정권은 몇몇 NLD 활동가들을 체포했고, 곧 석방하기는 했지만 Shan 민족의 고위급 정치가를 체포했다. 2003년 5월 30일, Aung San Suu Kyi의 경호인과 그녀의 지지자들이 정부가 조직한 폭도들에게 공격당하자, 회담이 재개되고 좀더 의미있는 정치적 대화로 진전되리라는 희망은 깨졌다. 이 일로 알려지지 않은 숫자의 NLD 회원들이 살해당하고 다쳤으며, Aung San Suu Kyi는 체포돼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구금됐다. 공격이 있은 후 수주동안 더많은 NLD 회원들이 체포됐다. 이일로 인해 국제사회는 강력한 비난을 했다. 여기에는 버마 군사 정권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취해왔던 아세안 국가들과 일본이 포함됐다. 2003년 8월,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버마군사정권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는 민주주의를 향한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의회의 회복이 포함됐지만 어떤 시간표나 대표자에 대한 세부사항도 담기지 않았다. 2003년 9월부터 Aung San Suu Kyi는 또다시 가택연금됐다. 군사정권은 2004년에 의회가 재소집될 것이라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모든 분쟁 당사자들은 그들의 활동목표는 민주 버마를 향한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정치 개혁을 향한 정부의 장치인 의회는 1996년 이래로 소집된 바 없다. NLD는 현재의 정치적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삼자회담(군부, 민주적 야당, 소수민족집단)을 요구해왔다. 대부분의 소수민족 조직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현재 분리주의를 거부하고 대신에 연방국가와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 소수민족 권리의 향상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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